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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알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감출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오는 감정이다. 반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그건 역시 사랑이며, 결혼이다. 한 때 사랑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하고, 그럼 저절로 행복해 진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여겼었다. 사랑, 결혼, 행복을 하나로 보았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사랑, 결혼, 행복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는데 버지니아 울프는 『출항』을 쓸 10대에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원하고, 결혼을 꿈꾸고 행복한 삶을 욕망하는 것까지 말이다.
소설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고모들의 손에 자란 스물 넷의 주인공 레이첼과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레이첼이 그녀의 가족과 지인이 동반한 여행지에서 소설가 지망생인 테렌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지만 열병에 죽는 과정을 다뤘다.
버지니아 울프는 레이첼를 둘러싼 다양한 등장 인물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사고가 어떻게 다른지, 세대 간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어머니의 부재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오직 피아노만이 전부였던 그녀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외숙모 헬렌이다. 스물 넷이란 나이에 사랑에 대해 욕망에 대해 무지했던, 아니 경험하지 못한 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만 살고 있는 조카에게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녀는 산타 마리나의 빌라에서 지내면서 근처 호텔에 머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었고, 어떤 이는 자유로운 연애와 혁명을 꿈꾸고 있었고, 어떤 이는 수재였고, 어떤 이는 소설가 지망생이었고 어떤 이는 사업가였다. 레이첼은 그들과 교류를 맺으며 자신이 떠나온 영국의 다른 삶을 알게 된다. 그런 조카를 보면서 헬렌은 레이첼이 누군가를 만나 변화하기를 바랐다. 아니, 젊은 남자와 연애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수재인 세인트와 소설가 지망생인 테렌스가 레이첼에게 다가왔고 그녀는 테렌스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마침내 그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곧 약혼을 하고 결혼을 약속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레이첼이 열병으로 죽고 테렌스를 절망한다. 레이첼의 내면이 성장하고 서로를 채워주며 삶을 이어갈 동반자를 만났으므로 행복한 결말이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레이첼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출항’의 뜻 그대로 기존의 곳을 떠나 자신의 내면을 찾아 나서는 행위를 더 떠나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것일까.
‘그녀는 자기들이 다퉜던 것들을, 특히나 바로 그날 오후 헬렌에 관해 얼마나 싸웠는지를 상기했으며, 그들이 같은 집에 살고 함께 기차를 타며 서로 너무나 달라서 화를 내게 될 30년, 40년, 50년 동안 얼마나 자주 다투게 될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피상적이며, 눈과 입과 턱 아래서 진행되고 있는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삶은 그녀와 관련 없었으며 다른 모든 것과도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시, 비록 그녀가 결혼해서 30년, 40년, 50년을 그와 함께 살며, 그와 싸우고, 그와 아주 가깝게 있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그에게서 독립적이었다. 그녀는 그 밖의 모든 것에서도 독립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트 존이 말한 것처럼, 그녀가 이것을 이해하게 만든 것은 사랑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런 독립심, 이런 고요함, 이런 확실성을 그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결코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이것 역시 사랑이었다. 그녀는 그 밖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p. 250~251 -2권>
소설은 어렵고 아름답다. 인물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나열하고 배경을 자세히 묘사해 지루했지만 흡입력이 강하다. 그건 버지니아 울프의 섬세함 때문이다. 레이첼의 미묘한 심경을 묘사할 때 언제나 거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준다. 더불어 소설가 지망생인 테렌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시의 구절들은 소설을 돋보이는 역할을 한다.
철학적인 연애소설이며, 자아를 찾아 나선 성장소설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삶에 대해, 욕망과 결혼에 대해 말한다. 레이철에 통해 한 여성의 자아가 어떻게 확립되는지 보여준다. 아니, 미완의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헬렌의 말처럼 말이다. 생은 때때로 당혹스럽고, 때때로 놀라운 일들을 마주하고, 때때로 감탄하며, 때때로 절망하고 절망하면서 계속 살아 나가니 말이다.
“결국, 비록 내가 레이첼을 꾸짖기는 하지만, 나 자신이 훨씬 현명하지는 않아. 물론, 나는 더 나이가 들었고, 거의 인생의 절반은 살았지만, 너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어. 그것은 당혹스런 일이지. ―때로는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도 위대한 것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발견할거야. ―아, 그래, 너는 확실히 그것이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할거야. ―그리고 그렇게 계속 살아 나가지.” <p. 198~199 - 2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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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출항』은, 빅토리아 시대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영국 여성들의 주체의식을 스물 네 살의 아가씨 레이첼의 삶을 통해 투영하고 있으며, 작가 버지니아 울프 자신의 자서전과도 같은 히스토리를 이 소설에 함축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그녀의 명성과 달리, 나는 그녀의 작품이나 삶 조차도 아는 바가 없다. 고작 우리나라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를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이 전부일 뿐. 이러한 무지함이 나 뿐만이 아니라는 번역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위안을 준다. 그녀의 작품이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지 않는데는 지나친 난해함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 난해함은 정독을 하지 않고는 전체적인 맥의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게다. 출항을 읽는 동안 내 느낌이 그랬다. 나름 어렵게 줄거리는 이해했지만, 20세기 핵심 개념이라는 '의식의 흐름 기법'은 작품 전체를 지루하게 만들고 흥미를 떨어뜨린다. 예술의 포장지에 싸인 격렬한 페미니즘,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모더니즘,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가부장적인 상태의 사회현상을 기술하고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목표를 두는 페미니즘 등이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 성향으로 보인다. 개념을 나름 이해하기 위해 용어 검색도 하고 그 줄기를 찾아 이것저것 확인도 해봤지만, 내용을 이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해답과 경계가 굉장히 모호해서 마치 여러 이론들을 광범위하게 풀어놓은 듯한 포괄적인 용어해설 덕분이다.
레이첼은 음악이라는 고립된 소통 밖에 모르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스물네 살 처녀이다. 1편에서 벌어진 핵심 사건은, 풍랑을 만난 배위에서 아버지뻘되는 전직 보수당 국회의원 리처드 댈러웨이에게 첫 키스를 당한 부분이다. 이 장면은 레이첼에게 두고두고 악몽이 되고 트라우마 상태로 남게 되면서 안타까움을 준다. 그리고, 휴가를 떠나기 위해 레이첼과 같은 배(해상무역업자인 레이첼 아버지 윌로우비 빈레이스의 배, 유프라지니 호)에 오른 외숙모 헬렌의 레이첼을 향한 마음가짐이다. 헬렌을 통해 서서히 세상의 무게를 알아가기 시작한 레이첼은 산타마리나 휴양지에서 소설가를 꿈꾸는 스물일곱 살의 테렌스 휴잇을 만나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2권은 1권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쓰여있기를 소망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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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버지니아 울프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실험적인 형태의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소설 형식을 추구하고 이를 완성시킨 그녀의 여러 작품들은, 당시에는 문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소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문단에서나 대중적으로도 작품 속에 드러나는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문체의 진행과 운율적인 요소에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아왔기 때문이고, 특히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에서 작품성을 크게 인정받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녀의 작품내용을 두고 편협한 시각이라든지, 또한 일정한 플롯이 없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적인 부분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난해하고 건조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문학의 장르를 시도하고 이를 구축해왔다는 점에서,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울프의 처녀작인 이 작품을 계기로 그녀의 여러 작품들을 두루 살펴보고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출항이라는 이 작품은 1915년에 발표된 그녀가 오랜 퇴고를 거듭한 끝에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 데뷔작으로, 울프의 생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작품의 내용을 통해 그녀가 살아온 인생의 일부가 투영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녀의 회상록에 따르면 울프는 저명한 문인이었던 아버지와 가정적인 어머니 밑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성장과정에서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과 이후 의붓오빠로부터 뜻하지 않은 성적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레이첼이라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울프가 추구하고자 했던 문학적 사상이나 서술 기법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한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작품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주인공 20대 중반의 숙녀인 레이첼은, 일찌기 어머니를 잃고 해상무역업자이면서 여러 척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아버지와 그녀를 돌봐주는 두 명의 고모들과 함께 생활을 해오다가,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의 선박 유프라지니호를 타고 남미의 산타 마리나로 휴가를 떠나는 외숙모 헬렌과 외삼촌 리들리와 동행하게 된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며 오로지 피아노 연주와 고전음악에만 매달리던 레이첼의 이번 여행은, 정치에 야망을 가진 아버지의 의도에 따라 자신에 부인 역할을 대신했으면 하는 개인적 욕망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며, 한편 외숙모 헬렌은 레이첼의 엄마가 한때는 자신의 친한 친구였던 관계로 순박하게 자라난 그녀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생각하고 있는 의도와는 달리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아님을 알려주고자 한다. 이후 이들은 몇날 며칠의 따분하고 지루한 선상생활 도중에 뜻하지 않은 거센 풍랑을 만나게 되는데, 레이첼은 이 과정에서 중간 기착지에서 탑승했던 보수성이 강한 40대의 전직 국회의원 댈러웨이에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기습적인 키스를 당하게 된다. 내성적인 경향을 보이며 이성에 대해 무지했던 그녀는 갑작스런 생애 첫 키스를 경험하게 되자, 이 일을 계기로 한동안 정신적 충격과 함께 심한 악몽에 시달리며, 당시의 상황이 뇌리에 지워지지 않은 채 마음의 상처로 남아 괴로움에 시달리며 불안한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후 레이첼은 산타 마리나에 도착해 그곳에서 일정한 직업이 없고 소설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양성애자인 테렌스를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고 고가구상을 운영하는 플러싱 부인의 주선으로 약혼까지 하게 되지만,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하기보다 우정에 가까운 그런 형태를 띠게 되고, 마침내는 레이첼이 아마존 상류 원주민 마을로 탐험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열병에 걸려 죽으면서, 이들의 사랑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아쉽게 끝나고 만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한편으로 해상사업으로 선박을 타고 외지로 다니는 아버지의 직업 탓에 자연스럽게 가정생활에 불충분할 수밖에 없는 레이첼 이라는 20대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워, 순박하게 자라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녀의 순탄하지 못한 젊은 시절을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 내용은 이야기의 전개상으로 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성임에도, 일정한 플롯의 형식을 띠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심리묘사가 위주로 되어 있어 일부 독자들의 경우 약간은 지루하게 읽혀 질수도 있을듯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당시 사회상의 문제점들, 이를테면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인제도의 불합리성과, 그에 따라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외부로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는 기구한 사회적 삶의 내용을 일부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그녀가 오늘날 페미니스트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된 것도, 바로 작품 속에 일종의 여성들과 관련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자의 말에 따르면, 독자들이 울프의 문학을 단지 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이라는 규정화 된 틀에 묶어 살펴볼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그녀의 작품 속에 사랑과 이타주의가 은연 중 녹아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울프의 문학은 역자의 말대로 고정적인 시각이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그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내용을 독자들이 살펴보고,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울프의 문학세계를 이 작품을 계기로 정독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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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다퉜다. 지난 주말의 이야기이다. 세살된 큰 아이를 넘넘 이뻐라 하는 막내 꼬모네 집에 갔다가 일이 벌어졌다. 어쩌면 별것도 아닌 일로... 계속 퉁퉁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왠지 보기 싫었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누님댁에서 쉬다 저녁시간까지 있게 되어 저녁을 먹고 가라는 성화에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했는데 거기서 발단이 되었다. 꼬맹이 때문에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지, 힘이 들었는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들어온 순간부터 퉁퉁대는 아내, 왜 그러냐고 물어도 말도 않하고 얼굴엔 짜증만 가득... 나도 괜시리 화가 나서는 짐싸라는 큰소리와 함께 그렇게 집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수요일, 4일 동안 아내랑 말 한마디 안했다. 돌아오는 길, 이유가 뭐냐? 그러지 좀 마라! 얘기를 해라... 계속 주저리 대는 나를 보고 말 한 마디도 안하는 아내. 나도 화났다. 아니 삐쳤다. 이건 뭐 남편을 무시하는건지 어쩌자는 건지... 첨으로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로 크게 다투었다. 이번엔 한번 오래 가보련다. 칼로 물베기... 별거 아닌 일이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ㅋㅋ 누나들이 이 사건 아닌 사건으로 아버지를 떠올렸단다. 가부장적인 모습의 대표인물이었던 우리 아버지. 내 행동에서 그런 아버지가 보였단다. 그럴수도... 아니 아닐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전쟁은.... 오래갈 것 같다. ㅠ.ㅠ
<출항>을 아내와 다툰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그 시대적 배경이 바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남성의 필요에 따른 예속물로, 남성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로서 가부장제가 보편화 하던 시대, 한 여성의 삶의 무게를 그려내는 작품이 바로 버지나아 울프의 소설 <출항>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의 무르익고 성숙기에 접어든 18세기 중후반 시대를 말한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외형상 사회적으로도 자유로와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억압되고 예속받는 여성들의 한이 묻어 있는 시대의 단면이 보여진다.
'울프만큼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 울프만큼 읽히지 않은 작가도 드물것이다. ... 그녀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해 인간주의 문학이다.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 따위는 그녀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른 간이역들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사랑과 이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인간주의 라는 정거장이었다. ... '
열한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너무나도 바쁜 아버지와 떨어져, 두 명의 고모와 지내는 스물네살 순진무구한 아가씨 레이첼 빈레이스! 그녀의 세상을 향한 작은 여행, 사랑 그리고 삶의 짧은 여정이 두 권의 책속에 그려진다. 아무것도 모른 백지 상태에서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은 레이첼의 시선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지배하던 남성 중심 사회속에서 억압받고 억눌린 여성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다. '출항'이란 제목속에 숨겨진 이중적인 의미를 읽어 나갈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 이 작가! 하지만 그녀를 작품속에서 만난 것은 처음인것 같다. 어디더라... 어디더라...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느 詩 속에선가 잠깐 스치듯 마주친 그녀의 이름이 다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은 정말이지 낯익다. 어디선가 만나본듯... 아직도... ㅋㅋ <출항>은 그녀의 처녀작이다. 10여년이란 시간을 두고 열 두번을 넘게 고쳐쓰며 늦은 나이에 항구를 떠난? 이 작품이 주는 의미는 그녀에게도 꽤나 색다른 느낌을 전해줄거란 생각이든다.
<출항>은 꽤나 어렵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제목에 담긴 다중적 의미를 차치 하더라도 그녀가 개척한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 기법을 보여준다. '의식의 흐름'! 이란 이 기법은 특별한 스토리라인보다는 캐릭터의 의식과 느낌을 두서없이 서술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그녀의 소설은 약간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반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시 어렵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게 쓰여진 색다른 작품이 바로 <출항>인 것이다.
1941년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선택했던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처녀작이기도 한 <출항>은 그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긴 작품이다. 마지막 레이첼의 모습속에 울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울프는 처음 순수한 아가씨 레이첼의 이름을 씬시아라고 지었다고 한다. 씬시아는 신화속 사냥의 여신이자 달의 여신으로 남성적이면서 당당한 여성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반대로 레이첼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희생제물'이란 의미를 갖는 피동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이름 하나에도 깊은 고민과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더욱 가치있게 바라보게 만든다.
'사실상 울프는 자신의 여주인공의 죽음을 딛고 서서 새로운 출항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레이첼이 바다 깊숙이 익사하는 순간 자신의 자아/주체가 와해됨을 느끼는 것과 달리 울프는 그 심연에서 떠오른다. <출항>은 울프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이다.' - 2권, P. 385 작품해설 중에서 -
절대로 쉽지 않은 <출항>을 조금은 편하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바로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품해설'이 아닐까 싶다. 특별하지 않은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 이 책을 읽은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싶다. 남성을 위한 이기적 욕망의 도구로,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서의 레이첼, 거기에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한 리들리,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한 휴잇... <출항>은 처음으로 그녀를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모습까지 예언한 그런 자전적 소설이 되어버렸다. 작가로서, 여성으로서 버지니아 울프, 그녀 자신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와의 첫 항해는 그렇게 설레임으로 마무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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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여성 문학인중 최고의 지성인중 한명인 버지니아 울프의 첫 장편소설을 만났다. 얼마나 공들인 작품이면 열두 번이나 고쳐 가며 10년 만에 세상에 내 놓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녀가 '출항'에 가지고 있는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출항'에서는 빅토리아 시대 남성 중심에 여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주인공 스물 네살의 레이첼 빈레이스는 십여 척의 선박을 소유한 해상무역업자인 아버지를 두고 있으며 두 고모와 함께 리치몬드에서 조용한 생활을 하던 아가씨다. 그녀의 인생관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외숙모 헬렌을 통해서 그녀의 가치관에 변화를 가져온다.
레이첼은 아버지 선박 유프라지니 호에 탑승했던 전직 국회의원 부부는 외삼촌 내외와는 다르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폭풍이 거세게 불던 아침에 레이첼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전직 국회의원의 갑작스런 행동은 남자에 무지했던 그녀를 혼란 속에 빠트리며 악몽을 꾸게 하는데...레이첼의 변화를 감지한 외숙모 헬렌은 그녀의 선박업자 아버지와 계속 여행을 하게 하는 대신에 자신들과 함께 남미 남게 한다.
헬렌을 통해서 이성과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된 레이첼 앞에 어느날 젊은 남성 두명을 만나게 된다. 한사람은 부유한 환경으로 인해 직업을 갖지 않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꿈꾸는 청년 테렌스 휴잇과 똑똑한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며 외골수에 꽉 막힌 성격의 변호사와 교수 자리를 고민중인 청년 존 허스트... 짧은 인연으로 스칠 수도 있던 레이첼, 헬렌, 휴잇, 허스트는 댄스 파티에서 네 사람이 만나게 되면서 각자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가지게 된다.
'출항'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울프는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정신병을 앓게 된다. 철학자이자 문예비평가인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으로 많은 지성인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사상을 구축해간다. 그녀를 20세기 대표적 모던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이유를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시대의 영향으로 레이첼, 헬렌, 휴잇, 허스트의 삶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출항 2'권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빨리 현명한 여성 헬렌과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려는 레이첼을 만나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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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을 단 한줄로 요약하라고 하면 다음과 같이 할 것이다.
"규방 처녀, 자유로운 삶 찾아 미지를 향해 출항하였다 열병으로 사망하다." 이토록 간단히 요약될 수 줄거리지만 이 소설은 간단하지도 범상하지도 않다. 너무 많은 이야깃 거리를 던져주고 있어 숨을 들이켜기도 힘겨워하며 읽어야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율리시스'는 향후 100년간 파고들 거리를 던져 준 작품이라고 칭송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제임스 조이스와 '의식의 흐름 기법'의 선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로 버지니아 울프가 거론되는 이유도 납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호평을 하고 있지만, 사실 첫 인상이 좋았던 작품은 아니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 내게 이토록 생소하고 껄끄럽게 다가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내게 등장 인물들의 행동과 내면의 흐름을 일일이 적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가는 서술 방식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 시장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혼란과 불편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에 적응해가고, 등장 인물들의 성격과 케릭터에 내재된 이미지가 분명해지면서 흐름은 급물살을 탔다.
작가의 삶을 아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뼈저리게 실감했다. 아마 작가의 삶을 전혀 몰랐다면 또 하나의 난해한 책 목록에 올려두고 말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대조적인 성향, 이미지의 케릭터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주제를 강화하려 시도했음이 엿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대조되는 성향의 케릭터를 적어보자면 여성 케릭터로는 여주인공인 레이첼과 수잔이, 남성 케릭터로는 테렌스와 아서의 조합을 들 수 있겠다.
이른바 레이첼은 '레이디의 표본'과 같이 느껴졌다. 권위와 부를 지닌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 온실속의 화초처럼 길러져 세상 물정 모르는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모질게 말하면 철부지인 아가씨 케릭터 인 것이다.
그에 반해 수잔은 서른 살의 노처녀이자, 결혼을 통해 안정을 꾀하는 순종적인 성향의 케릭터다. 순박하다는 점에서는 레이첼의 순수함과 닮아 있는 것 같지만, 레이첼의 무지에서 우러나는 순수함과 원숙함에서 우러나는 순박함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테렌스와 아서를 보면 테렌스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계층에 있다.
반면 아서는 부유하지도 않고, 어머니라는 벽에 막혀 자신이 원하는 일도 하지 못한다. 거기에 지금 하고 있는 일조차 전혀 좋아하지 않아서 억지로 하고 있다.
특징적인 케릭터를 하나 더 언급하자면 레이첼의 외숙모인 '헬렌'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경험이 많고, 레이첼을 아끼고 사랑하며 독립된 삶을 지켜주고자 하지만 정작 레이첼을 지켜내지 못한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이는 것에 비해 레이첼의 생명의 위기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특징은 내게 '버지니아 울프'가 느꼈던 그 시대의 진보적 여성의 한계를 형상화 한 것처럼 보였다. 레이첼의 죽음과 헬렌의 무력함,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절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케릭터 몇을 언급했을 뿐인데 벌써, 30분이 지났다.
제임스 조이스를 이야기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적었던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이 작품은 각각의 케릭터 하나 하나의 관점에서 감상을 적어도 충분할 만큼 많은 것을 품고 있다. 솔직히 한 번 읽었을 뿐인, 아니 읽었다고 이야기 하기도 부끄러워 훑었을 뿐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내가 무슨 대단한 감상을 적어낼 수 있을까?
대조적인 케릭터 설정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저자는 수잔과 아서의 커플보다는 레이첼과 테렌스의 케릭터에 더 많은 애정을 보인다. 2 권의 30쪽에 명기했듯, "그것은 끔찍한 일이야. 농장 일꾼들의 손에. 안 돼. 영국인의 손이 아니라 러시아인이나 중국인의 손에는 절대 안돼." 이것이 저자의 수잔과 아서에 대한 혹평의 일부다.
남성이 지배적인 권위를 휘두르던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불행을 거치면서도 작품을 써낸 그녀지만 결국 스스로를 수장시키는 죽음을 선택한 그녀의 절망을 온전히 이해 한다고는 못하겠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절망하게 했는지, 번번히 좌절시켰는지 난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레이첼은 분명 '열병'으로 죽었다. 하지만 레이첼의 죽음을 부추긴 것은 의사의 권위에 지나치게 기댔던 사람들과, 그들의 무지였다.
스물넷의 아가씨가 2주에 걸쳐 열병에 시달리는 동안 그들은 그저 돌팔이 의사인 줄도 모르고 그 의사의 "별 것 아니다"라는 말을 믿는다. 우스운 것은 전적인 신뢰가 아닌 의심이 따라붙은 불완전한 신뢰였음에도 미련스럽게 매달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레이첼은 죽었고, 테렌스는 그 죽음에서 도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테렌스는 레이첼의 약혼자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레이첼의 죽음은 금새 잊혀지는 것처럼 보인다. 잠깐의 폭풍과 함께 비가 내리지만, 그것은 금새 그치고 일상이 계속 된다. 테렌스는 다시 등장하지 않았고 그 밖의 인물들이 평화를 찾아가는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그리고 있다.
내게는 그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결말이 비극의 형상을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깟일로 권위가 흔들리는 일은 없다,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각인 시키듯 잔혹하게까지 느껴진 결말.
그녀를 몰랐던 때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 이렇게 무심한 세상에 어떤 희망을 품어 생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이렇게 신선하고, 놀랍고, 고통스럽지만, 강렬한 하나의 작품의 겉을 훑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적어내고 싶지만, 나의 인내가 깊지 않음을 탓하며 그만 적으려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녀의 절망과 슬픔을 좀 더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사람을 죽이나? "그것은 두려움이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두려움의 정체를 밝혀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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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간, 어떻게 시작이 되었고 왜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이 내용에 대해서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남편 레너드 울프의 이야기 그만큼 나의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춘기가 한창이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이들의 플라토닉 사랑은 마침내 내가 찾아오던 가장 완벽한 형태의 갈망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릴 적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의붓 오빠로부터 상습적인 성추행을 당하게 되며 그로 인해 그녀는 평생 남성기피 혹은 혐오증에 빠지게 된다.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며 살던 그녀에게 그녀를 여자로서, 아내로서 평생 지켜주고자 했던 사람이 바로 레너드 울프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요구했던 두 가지, 부부로서 함께 살되 부부관계를 맺지 않고 공무원생활을 하던 레너드에게 그 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일방적인 요구들을 레너드는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묵묵히 그녀만을 위한 삶의 동반자로 곁에 지켜주었다. 그녀가 작가로서 제 2의 인생에 펼칠 수 있도록 출판사를 열어 그녀를 독려했던 레너드. 그녀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그 하나만을 오롯이 담고 떠난 그들의 이야기는 이 출항이라는 소설 속에서 다시금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처녀작인 ‘출항’은 10여년간 열두 번을 고쳐 쓰며 34살에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녀 스스로가 의도한 대로 내가 그 길을 따라 온 것인지 아니면 나만의 해석에 빠져 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 속의 레이첼을 통해 버지니아의 인생을 담아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나 버린 어머니와 그녀을 어머니의 대역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 틈에서 레이첼은 20대의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분히 조용하고 참한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은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남자들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세상은 그녀의 바람대로 녹록히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여자에게 규정되어 있는 틀을 벗어나는 것을 꺼려했던 그 당시 남자들에게 이블린 머거트로이드와 같은 인물은 그 시대에는 꽤나 모험적이고 여성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모습들은 남자들을 위한 현실 속에서 그들이 이끌어 가는 사회에 별 다른 문제가 발생 하지 않도록 집안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알아도 모르고 지내는 허깨비와 같은 그저 여장을 한 인간을 원했을 터이다. 이러한 시대에 레이첼이 리처드의 기습 키스에 대항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혼자만의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제 힘으로 자신을 일으키는 것뿐이다. 버지니아 울프 그녀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에 그녀의 첫 작품인 출항은 내게 더 아련하게 남는 듯 하다. 어쩌면 수잔처럼 소설에서 만큼은 그녀의 삶이 평탄하고 소소한 행복이 흐르길 내심 바랐을지도 모를 터이다. 기쁨의 여신인 유프라지니호를 타고 시작된 그녀의 항해는 그녀 스스로도 멈출 수 없는 인생의 시작이다. 행복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았을 그녀에게 들이 닥친 현실이라는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소설이, 너무나도 버지니아 울프를 닮아 있어 먹먹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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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고등학교 때쯤이었을 것이다. 한창 제멋에 겨워서 과감하게 버지니아 울프에 도전하였었다. 그시절 평소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에게 소위 잘난척하고 싶어서 집어든 책이었다. 같은 여성작가라서 좀 잘 읽히지 않을 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고른 책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였다. 결과는 참패였다. 몇장 읽지도 않고 책을 덮어야 했다. 도무지 이해할수도 없었고 책 읽는 진행도 더디었다. 그런 기억을 뒤로하고 있었은데, 솔 출판사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이 출간되었고, 이벤트까지 있었다. 오래전 기억때문에 살짝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독서량에 은근히 기대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 처음에 번역가 진명희님의 글이 있다. "울프만큼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 울프만큼 읽히지 않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이 글은 어릴적 기억에 대한 위로를 책읽는 내내 용기를 나에게 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회사원이 된 나에게도 이 책은 그리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스토리나 내용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문장 자체가 매우 어렵고 호흡도 길었다. 읽다가 보면 맥을 놓치기 쉬웠고, 문장도 여리여리했다, 마치 주인공처럼. 그래도 2권의 책을 읽고나니 읽었다는,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을 끝까지 만났다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혹시 이 책을 접하게 되면 긴 호흡으로 여유를 갖고 만나보기를 추천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어렵고 긴호흡의 문장들과 싸워가며 전체 이야기의 스토리와 전개만을 생각하였다. 마치 줄다리기를 할때 온 손아귀에 힘을 쥐고 팽팽히 당기듯 말이다. 책을 다 읽고 그런 팽팽한 긴장감을 내려놓고나니 이 책에 대해 새롭게 다가왔다. 이 책의 스토리보다는 새롭게 느꼈던 버지니아 울프 <출항>의 매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레이첼 빈레이스이다. 그녀는 24살의 순진한 소녀로 약간의 우울함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으로 바쁜 아빠 윌로우비, 어릴적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빈자리가 그녀를 명랑함과 멀게 만든듯 하였다. 이야기는 레이첼의 외삼촌과 외숙모인 리틀리 앰브로우즈와 헬렌 앰브로우즈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런던을 떠나 남미의 산타 마리나로 향하는 유프라지니 호에 탑승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점차 레이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이 책의 제목이 <출항>인 이유는 이들이 런던에서 남미로의 여행에서 시작된 둣 하였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제목인 <출항>은 또다른 의미를 갖게됨을 알게 된다. 바로 아버지와 고모들의 손에서 자란 레이첼이 새로운 세상에 나아간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낯선 남자들과의 교류는 레이첼의 마음에 사랑과 고뇌와 방황을 선물하게 해준다. 마치 가보지 않는 첫 출항의 기대감과 두려움처럼. 또한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시대적 상황들로의 탈피 역시 또하나의 "출항"을 의미하기도 하는 곳 같았다. 현재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투표권이 없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했던 상황들이 살짝살짝 엿보인다. 하지만 헬렌과 레이첼을 통해 패미니즘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분명 여성 인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보수적인 배안의 남성들을 통해 어리석은 남성주의 사회를 비꼬고 있었다. 그러나 드러내 비판할 정도로 용기가 있지는 않은 둣했다. 여리고 긴 호흡으로 이야기 할뿐 마치 레이첼 처럼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그 시대의 최선일수도 있다. 여리고 여린 한 여자가 세상을 향해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항을 하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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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항 1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한번 쯤 누구나 들었을 것이다. 박인환의 유명한 시 '목마와 숙녀'에 첫 행에 나온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왜 박인환은 이국의 소설가를 시에 넣었을까. 그녀의 삶이 어떤 삶이었길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을까.
그녀의 삶을 보니 잘은 모르지만 꽤나 우울했던 것 같다. 정신 질환과 자살기도. 그래서 박인환이 그녀의 삶을 위로하려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1.
사진속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사진속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우울해 보인다.
이 출항이라는 소설은 그녀의 처녀작이라고 하며 십여년에 걸쳐 수정 작업을 예닙골번은 거쳤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가 소중히 생각했던 작품같다. 물론 어느 작품이든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그리고 그녀의 성 '울프'는 남편의 성을 따라서 된 것이다. 서양의 늑대라는 성이 있다는 게 재밌기도 하다. 오~우~
2.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제법 많다. 딕, 클라리사, 댈러웨이, 헬렌, 레이첼, 리차드, 테렌스 휴잇, 존 허스트 등. 주인공은 레이첼이라는 24살의 여자이다.
이 소설이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소설이라 점에서 아마도 레이첼이 그녀 자신인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모든게 이루어진다. 그들의 대화는 정치, 문학 등. 그 시대에 이슈거리가 주로 등장한다.
가령, 여자에게 투표권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소설의 사건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배 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만 한다.
읽는 내내 사건이 언제 터지는지 궁금해서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기막힌 사건은 나오지 않았다.
3.
묘사와 인물의 심리적인 면을 많이 다루고 있다. 고로 이 소설의 재미는 묘사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굳이 좋았던 점을 찾자면 묘사이다. 묘사가 단아한 맛을 자아낸다. 그런 묘사가 아주 많다. 그래서 좀 지루한 면이 많았다. 적당히 있을 곳에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그녀의 묘사가 작품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간혹 읽다가 문장에 맞지 않는 조사가 나올 때도 있었고, 오타와 비문도 눈에 띄었다. 물론 내가 잘못 본 것일수도 있다.
대사는 건조했다. 대사에서 각 인물의 특징을 잘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이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이란 기법과 비숫하다고 했는데 난 정말 이 기법만 보면 머리 아프다.
머리를 맑게 하지 않고 읽으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니 눈 한번 감으면 망망대해에 홀로 선 기분이 든다.
출항 1편에서는 레이첼이라는 여성의 심리를 알려주고 있다. 그녀는 남자를 모른다. 그래서 헬렌이 알려주고 있다.
아마도 2편에서는 사랑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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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며 한 편의 시를 읊조려 본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소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中에서 나는 아직도 버지니아 울프를 잘 모른다. 왜 그녀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는지,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고뇌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근래 <버지니아 울프 소설 전집>이 새롭게 출간되어 『출항 1,2권』을 읽게 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처녀작이란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스물네 살의 여주인공 레이첼을 통해 작가의 삶을 엿보는 느낌이 든다. 레이첼은 외숙모 헬렌과 외삼촌 리들리를 따라 남미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종종 인생을 여정에 비유한다. 일상을 벗어나려고 떠난 여행이 오히려 자기자신을 발견하고 찾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레이첼은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안락한 일상에서 아무런 자극없이 살아온 어린아이였던 것 같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레이첼의 경우처럼 온실 속 화초와 같이 살아야 하는 여인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의 결과가 아닐까. 아무래도 공감하기 어려운 시대적 배경이나 레이첼 주변의 인물들의 개성이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다. 순순히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보다는 주인공 속으로 흡수되어야 쉽게 읽는 편이라 그런 것 같다. 왠지 스물네 살의 레이첼이 멀게만 느껴진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출항』은 문학의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을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아닌 작가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사람을 어딘가로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바다로 나아가는 것은 자유보다는 시련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멀리서 보면 잔잔해 보이는 바다가 실제로는 거친 파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소녀같은 레이첼이 여행을 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축소한 느낌을 받는다. 목마를 타고 떠난 소녀처럼,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서른네 살에 쓴 스물네 살 레이첼의 이야기를 각자의 나이에서 바라본다는 건...... 넓디 넓은 바다가 한 가지의 모습이 아니듯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여러가지 의미로 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