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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삼국연의』의 문제점과 오류를 지적해 정확한 지식에 대한 앎의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내용이 논리적이고 전개가 시원시원하다는 점이다. 저자의 주장은 근거가 명확하고 막힘이 없어 반대의견을 지닌 자들을 설득하고 남을 정도로 힘이 있다. 필자인 나와 같이 『삼국연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을 만하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퇴고가 덜 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즉 주장이 매우 논리적이고 사례도 재미있는데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을 주어 아쉬움을 남긴다. 번역자 내지 편집자가 원문에 충실하려고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설익어 보이는 것보단 흐름이 매끄러운 것이 더 나으니 다음부터는 이런 부분을 좀 더 보완해 책을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은 총 19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삼국연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점’이다. 우리에게 삼국지로 잘 알려진 『삼국연의』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삼국연의』를 소설로 생각지 않고 실제 벌어졌던 역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난 그동안 줄곧 삼국지 관련 서평을 써오면서 그런 부분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왔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으니 그 이유는 오직 『삼국연의』 내에서만 문제를 발견하고 오류를 고쳐나가려 했던 점이다. 이와 달리 저자는 독자들에게 친숙한『삼국연의』를 이야기하되 『삼국연의』만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역사를 근거로 『삼국연의』를 조명하면서 『삼국연의』의 잘못된 오류를 바로잡고 조작된 내용을 밝히고 있다. 특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부분이 실은 왜곡되었다는 점을 아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삼국연의』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데 특히 눈에 띈 부분은 사수관 전투를 설명한 부분이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수관 전투는 촉한정통론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투 중 하나다. 왜냐하면 이 전투에서 관우가 적장인 화웅을 목 베고 무명졸개에서 유명인으로 등극하기 때문이다. 즉 관우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데뷔 무대가 바로 사수관 전투인데 저자는 이것이 잘못된 역사임을 바로잡고 있다. 그럼 대체 누가 사수관 전투에서 동탁의 맹장인 화웅의 목을 베었다는 것일까? 그 장수는 바로 손책과 손권의 아버지인 손견이라는 것이다. 이는 『삼국연의』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정사는 물론이고 『삼국연의』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알 수 있는 그런 내용이다 이 말이다. 난 삼국지 전문가이지만 정사 쪽은 아직 접근하지 못했다.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아직 『삼국연의』의 오류를 다 잡아내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중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원문이 아닌 번역본에만 의존해서 중국역사를 접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난 『삼국연의』를 수백 번 읽으면서 발견한 오류와 조작된 점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정사를 근거로 『삼국연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진 못한 상태다. 저자는 내가 다음 단계에서 할 일을 먼저 해준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무척 가치 있는 책이다. 다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길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국지에 대한 나의 열정이 식지 않는 한 난 『삼국연의』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해 오류와 조작을 완전히 바로잡을 생각이다. 모든 사람들이 조조를 진정한 영웅으로 인식하는 그날까지 난 그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촉한정통론자의 한계를 보여준 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조조에 대한 오해를 상당 부분 풀어주고 있다. 조조의 둘째 아들인 조비가 한나라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조조까지 역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조조는 지나칠 정도로 한나라에 집착한 충신인데 그의 아들이 헌제를 위협해 제위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조조를 간웅으로 묘사하고 한의 역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한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라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은 나의 평소 생각과 일치해 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의 주장을 경청했다. 하지만 유비와 제갈량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나와 생각이 크게 달라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국연의』는 주로 촉한 위주로 쓰였기 때문에 촉한을 좋게 보는 촉한정통론자들은 『삼국연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오류 내지 조작된 내용을 비판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대개 『삼국연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류는 친위파 즉 반 촉한정통론자들이다. 저자는 『삼국연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오류를 바로잡고 있어서 자칫 반 촉한정통론자이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유비와 제갈량을 두둔하는 주장을 해 중도를 추구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촉한정통론자이긴 하지만 조조의 능력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로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파격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고 조조를 간웅이 아닌 영웅으로 인식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유비와 제갈량의 문제를 거의 지적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간 것은 이 책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중국인 입장에서 삼국연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한(漢)족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뿌리를 다룬 『삼국연의』를 어찌 100% 비판만 할 수 있겠는가! 그건 무리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주장은 용기 있는 발언이었고 소신 있는 주장이었다고 본다. 촉한정통론자가 조조를 변명해주고 재평가해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 있고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삼국지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인간은 오랜 세월 겪어보지 않고서는 부적합한 제도의 폐단을 깨닫지 못한다.” “제도란 그 명운이 다하기 전에는 설령 거기에 병폐가 내재되어 있다 해도, 사람들은 그 위치에 있던 인물의 악랄함을 꾸짖을 뿐 그 제도의 폐단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감정의 만족도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사건의 진상을 이해해 앎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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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는 단군신화를 믿었다. 곰이 사람이 된다는 내용은 말이 좀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생각하며 단군의 자손인 걸 당연히 자랑스러워했다. 요즘 아이들은 환웅이 곰 부족과 결합해서 힘을 키워나갔고, 호랑이 부족은 환웅과 맞지 않아서 떠났다는 걸로 알고 있다. 환웅이 함께 데리고 온 구름과 비와 바람의 신도 환웅이 농사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을 이끌고 왔다는 걸로 똑 부러지게 배우고 있다. 이게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초등학생 때는 좀 몰라도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가 산타클로스라는 걸 알게 된 아이에게 더 이상 크리스마스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다. 삼국지하면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다. 돗자리 장수에 지나지 않던 유비가 세력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장대했고, 관우의 곧은 마음은 읽는 내내 어떤 경외심을 가지게 했다. 장비가 어이없게도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는 마음이 아팠고,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안고 적진에서 빠져나올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유비에겐 무슨 복이 저리도 많아서 중국 그 넓은 땅에서 인재가 모여들까 부럽기도 했고, 제갈량의 귀신같은 술책에 박수를 치기도 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수많은 장수들의 이름과 전투와 지략들을 보고나면 내가 한바탕 싸움을 치룬 것처럼 마음이 개운해지기도 했다. 저자는 역사를 알고 삼국지를 읽으면 독자의 시각과 관점으로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유비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든 이유를 혼란의 시대에는 무엇보다 안정이 급선무인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날이 유망한 실세를 도울 필요가 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영웅을 찾아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의 정치가들이 새겨들을 말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에 나온 “바람의 화원”이라는 책에는 조선의 화가 신윤복이 남장여자로 나온다. 그 책을 재미있게 읽고 난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신윤복이 여자라는 걸 이제야 알았네요” 한다. 마치 예전에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티비 광고를 본 어린아이가 침대는 가구냐고 묻는 시험지에 아니라고 해서 틀렸다는 내용과 비슷하다. 이 책의 저자도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이 역사와 삼국연의를 혼돈하고 중국 역사를 바르게 보지 않을까봐 염려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강조한다. 관우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한 것은 사실이지만 관우가 준 금은보화를 창고에 넣어놓고 봉인까지 해서 두고 왔다는 내용이나, 관우가 유비의 생사를 알고 조조의 지역에서 빠져나올 때 다섯 관을 지나오면서 여섯 장수의 목을 베어버렸다는 이야기는 다 꾸며낸 일이라고 한다. 결국 삼국지 안에 나오는 기묘하고 놀라운 이야기는 다 지어낸 일이라고 하니 곰이 사람이 된 것이 터무니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게 환웅과 곰 부족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콕 집어서 알게 해준 역사책의 건조하고 밋밋한 맛과 닮았다. 여러 가지 내용 중에서 조조의 인물됨을 조목조목 바꾸어 놓은 대목이 내게는 가장 흥미를 갖고 읽은 부분이다. 조조는 대체로 약삭빠르고 속이 엉큼하며 자기 이익을 취한 인물로 회자 되고 있지만 저자는 조조의 그런 면을 대체로 부정하고 있다. 삼국연의가 지나치게 유비를 미화한 부분이 없지 않다면 이 책은 삼국의 영웅들을 되도록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쓴 여사면이라는 중국작가는 중국을 대표하는 근대 역사작가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그가 타계한 지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저서들이 폭넓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 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이 작가가 저술한 수많은 중국역사서 중에서 유일하게 대중교양서로 펴낸 책이라고 한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 사극 열풍이 불면서 퓨전 사극이 유행이다. 퓨전을 넘어서 가상의 왕국을 만들어 역사드라마로 꾸미는 것이 어느 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면 되지 않으냐고 하는 쪽도 있고, 사극이라는 탈을 쓰고 왜곡이 심하면 아직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작년처럼 “뿌리 깊은 나무”가 인기를 끌면서 한글을 만든 이는 “한석규”라는 우스개 소리를 그저 우스개로 듣고 넘어가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이미 반세기도 전에 이 작가가 고민했다는 점이 내게는 참 놀랍게 다가왔다. 이런 우려가 역사를 바로 알고 나서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면, 혹은 소설을 읽는다면 그 내용을 헷갈리게 판단하거나 관점을 흩트릴 일이 없다고 보고 이 책을 펴낸 의미라고 짚어본다.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의 힘찬 격랑에 몸을 맡기며 빠져들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를 읽으며 그런 감동을 느낄 것이다. 그럴 때 이 책을 옆에 두고 역사와 소설을 비교해서 읽는다면 아주 좋은 독서가 될 것 같다. 좋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편집이다. 물론 출판사에서 충분히 고민한 결과겠지만 제목을 세로로 썼다거나 페이지 숫자를 세로로 한 기획이 어쩐지 촌스럽게 다가왔다. 표지나 책 속의 삽화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고 활자도 예스럽기 그지없어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인내심을 갖고 책을 다 읽었을 때, 내용면에서는 만족을 주고 있기 때문에 편집 부분이 더 안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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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일리어드 오디세이>나 <플루타루크 영웅전>가 있다면 동양에는 <삼국지(三國志)>가 있다는, 오히려 더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동양의 영원한 고전 <삼국지>는 분명 “역사서(歷史書)”가 아닌 “소설(歷史小說)”이다.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당연한” 말인데 종종 실제 역사와 소설을 헷갈려 하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삼국지> 일 것이다. 삼국시대 당시 중국 전체 인구가 채 800 만이 되지 않는 데도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曹操)가 100 만 대군을 동원했다거나, 관우(關羽)가 여포(呂布)의 부장 화웅(華雄)을 술이 식기도 전에 베어 버리고 제갈량(諸葛亮)이 맹획(孟獲)을 일곱 번 잡았다가 놓아 줬다는 고사(칠종칠금(七縱七擒))는 실제 역사서에는 찾아볼 수 없는 “허구(虛構)”라는 것은 삼국지에 조금만 관심 있다면 익히 알고 있을 그런 사례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삼국지>를 “소설”이 아닌 “역사”로 해설하는 책들을 시중에서 여러 권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중국 역사학자 “이중톈(易中天)”의 <삼국지 강의> 일 것이다. 이 책은 국내 출간(2007년) 하자마자 구입해서 열독(熱讀)했던 기억이 나는데 <삼국연의>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이 실제 역사와 어떻게 다른지, 또한 어떻게 미화되고 각색되었으며 폄하되었는지를 상세히 밝히고 있어 삼국지 마니아를 자처하는 나에게는 “보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 소개되는 삼국지에 대한 각종 견해 - 특히 조조가 간신(奸臣)이 아닌 진정한 영웅(英雄)이었다는 해석 - 는 작가의 독창적인 해석이 아니라 선배 역사학자들의 이론들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번에 그가 말하는 선배 역사학자의, 많은 삼국지 비평서(批評書)의 원전(原典)격의 책을 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중국을 대표하는 근대 4대 역사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여사면(吕思勉)”의 <삼국지를 읽다(원제 三國史話/도서출판유유/2012년 4월)>가 바로 그 책이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면 다양한 삼국지 비평서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구태여 지금 반세기 전의 이 책이 출간된 이유가 무엇일까?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역자 후기; 한 오래된 역사학자와의 새로운 만남>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역자는 지위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을 뿐더러 겸허하고 인정도 많았던 “여사면”의 도학적인 면모와 고귀한 인간성에 깊은 공감과 동정을 느꼈을 뿐더러, 이 책이 저명 사학자인 저자 여사면의 지명도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정도의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삼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후대의 여러 학자들이 본서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데, 특히 앞에서 언급한 <삼국지 강의>의 저자 “이중텐”이 그 대표적 인물로 이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국내에 소개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중국 4대 사학자의 한 사람인 그의 저서가 우리나라에 단 한권도 소개된 적이 없다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욕구와 "삼국연의"의 허구에 의해 야기된 역사 속 삼국 인물들에 대한 세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더 나아가 진실한 삼국의 모습이 본서를 통해 드러나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이 책을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작가는 <저자 서문; "삼국연의"를 읽는 역사의 눈>에서 오늘날 중국의 출판물 가운데 가장 널리 팔리는 책이 <삼국연의>이며, 유방과 이세민이 어느 왕조의 황제인지 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삼국의 역사에서만큼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삼국연의>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삼국연의>는 역사가 아닌 소설 - 작가는 <삼국연의>의 기원을 “설서(說書. 민간에 널리 퍼진 시대물, 역사물 등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중국 통속 예술의 하나. 본래 노래와 이야기가 함께 있었으나, 청나라 때 노래가 사라져 만담 형식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 이다 보니 잘 못 알려지고 기억되는 사실들이 많은데, 이제 우리는 역사를 연구할 때 얼마만큼 알고 기억하느냐가 아니라 기존의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는 데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점을 바로 잡는 일은 사람들이 잘 아는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 흥미도 있고 이해하기도 쉬운데, 삼국시대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이 시대부터 시작하는 편이 가장 좋기에 이 글을 썼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즉 대중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삼국 시대”에 대한 편견이나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이 제대로 된 역사 연구의 시발점(始發點)이자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책은 후한(後漢)말 절대 왕권의 붕괴와 대혼란을 가져온 “환관(宦官)”과 “외척(外戚)”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 후 주요 인물들과 사건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가감되었는지를 연대기 순서대로 해설하고, 마지막으로 삼국시대를 통일한 “사마씨(司馬氏)”의 “진(晋)”데 호족(豪族)들의 사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무리한다.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다 소개하자니 어려울 것 같고 “조조”를 간웅이 아닌 영웅으로 해석한 대목 한 두 가지 만 소개해보자.
삼국지에 보면 조조가 보도(寶刀)로 “동탁(董卓)”을 죽이려다가 실패하고는 서둘러 도망치고, 그 와중에 중모현 현령 “진궁(陳宮)”을 만나 함께 동행하다가 자신의 부친의 의형제인 “여백사”를 오해로 죽이고는 진궁에게 "차라리 내 편에서 천하 사람들을 져 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져버리게 할 수 는 없소"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조조의 모질고 잔혹함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삼국연의>가 억지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잘라 말한다. 동탁이 소제를 폐위시키자 조조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관직을 버리고 달아난 것은 사실이지만 보도로 통탁을 죽이려 한 일은 없었고, 당시 중모현 현령은 진궁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백사 사건도 "위서(魏書)", "세어", "잡기" 등의 역사서 등에 나오는데 여백사를 방문했지만 여백사는 출타 중이었고 여백사의 아들이 빈객들과 함께 조조를 협박해 말과 재물을 빼앗으려 하니, 조조가 칼로 쳐서 여럿을 죽였다고 적고 있다고 말하며, 이 세 역사서의 기록에도 진궁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조는 과연 간신이었을까? 조조를 간신이라 여기는 이유는 <삼국연의>의 영향이 클 텐데, 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삼국연의>의 원전인 “설서(說書)”의 저자들이 특별한 견해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사회 대중의 심리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조에 대한 부당한 평가는 그저 당시 사회가 영웅을 알아볼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작가는 조조가 오해받는 또다른 사건으로 조조가 “복황후(伏皇后)”를 살해한 사건을 예로 든다. 삼국지에 따르면 건안 19년에 복 황후가 부친 “복완(伏完)”에게 조조를 없애라는 밀서를 보내는데 이 밀서가 발각되자 조조는 복황후를 죽여 버린다고 나오는 데 이야기가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우선 조조가 자신을 헐뜯는 편지 한통에 격분해 복황후를 죽였다면 그는 평생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건은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어떤 정치적 음모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특히 삼국지 주에서 인용한 “조만전(曺瞞傳)”에 나오는 이야기, 즉 “화흠(華歆)”이 이 황후를 끌어내 잔인하게 죽이고 복완과 그의 일족 중에 수백 명을 죽였다는 기록은 조작해낸 이야기가 분명하고, 그 증거로 복완이 이 사건이 있기 5년 전인 건안 14년에 이미 죽었다며 조만전이 신뢰할 만한 책이 못 됨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한 한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오르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봉건적인 도덕률에 깊이 젖어 있었던 조조를 후대 사람들이 한 왕조 찬탈의 모함을 덮어 씌우는 이유에는 바로 삼국지 몇몇 부정확한 기록 때문이라고 말하여, 그 예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본디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임금이 국가와 백성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그 군주를 패하고 스스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무런 잘못이 아니며 이치에 어긋나지 않음에도 끝까지 신하의 절개를 고수했으니 이는 일종의 도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며, 그러기에 조조는 도덕적 기준을 고수하는 사람을 고지식한 자라고 할 수 있어도 못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는 없다. 또한 병사들이 많아지면 욕망이 커질 것을 우려해 병사들을 지나치게 많이 모집하지 않았고, 당시 자신이 군권을 놓을 수 없는 까닭은 화를 당할까 두려워서이고 자손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방책이라고 숨김없이 고백하는 점을 들어 역대의 영웅 가운데 이처럼 솔직한 사람은 없었으며 마음이 떳떳한 사람만이 이처럼 흉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작가는 조조의 사람됨과 영웅으로서의 풍모에 대한 오해를 여러 장(章)에 걸쳐 해명 - 심지어 어느 장은 제목이 “조조를 위한 변명”이다 - 하고 있다.
책 내용을 소개하다 보니 글이 쓸데 없이 길어졌지만 이 책에 대한 내 감상 몇 마디 남기고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 책, 한마디로 출간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앞서 말한 <삼국지 강의>나 이 책 보다 더 상세하고 풍부한 사례를 설명하는 삼국지 비평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이 “7할이 사실이고 3할이 허구”이라는 소설 <삼국연의> 속 삼국지 속 인물들과 사건들이 실제 역사와는 어떻게 다르고 왜곡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삼국지 교양서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인문 고전이라 할 수 있으며,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삼국지 비평서의 원전으로써의 가치만으로도 삼국지를 수 차례 반복해서 읽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마니아들 뿐 만 아니라, “삼국지 세계”에 이제 처음 발을 들여 놓는 초보 독자들에게도 소설 <삼국지>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때 동화작가인 고(故) 조풍연 선생님의 <소년판 삼국지(전 12권/계림/1980)>을 시작으로 근 30 여 년 동안 계속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내 삼국지 편력(編曆)에서 분명 기억해 둘 만 한 책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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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너무너무 유명해서 역사에 관심없는 사람도 유비,관우.장비의 이름은 알만큼 유명하고, 성장해가면서 알게 모르게 게임,만화,소설,영화, 드라마등으로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삼국지.
하지만 우리가 흔히 일반적인 사실로 알고 있는 삼국지가 소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우리가 아는 삼국지는 "삼국지연의"라는 나관중이 지은 소설이고 이것이 거의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삼국지연의로 인하여, 사람들이 조조는 간사한 영웅, 제갈량은 전략의 신, 유비는 후덕한 인품등으로 이미지가 거의 형상화 되어있는데 사람들은 마치 이게 진실인양-특히 코에이게임에 중독된 아이들-떠드는 실정이다. 나 역시 어린시절 삼국지를 읽으면서-물론 만화책-제갈량의 죽음을 슬퍼하고, 촉나라의 승리를 기뻐했으며, 제갈량과 지략대결을 펼치는 사마의를 미워했을 정도니 삼국지연의가 형성해 놓은 이미지를 깨부수는 일이란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그럼 정사삼국지란 무엇인가? 정사(正史), 말그대로 바른 역사다. 이 책의 저자는 진수라는 진나라(원래 촉나라 사람이었으나 진나라의 삼국통일 이후 진나라에서 벼슬을 했다) 사람이고, 이 책에서의 중심은 조조가 기틀을 마련하고 한왕조를 계승한 위왕조이다.즉,조조를 중심으로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삼국지연의는 진수의 삼국지를 기반으로 쓰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지만 사실과 겹치는 일들이 많고,그로 인해 연의가 마치 사실인것 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의 줄거리는 크게 황건의난, 동탁의 군림, 군웅할거, 원소와조조의 대결, 적벽대전, 유비입촉,남만정벌,제갈량의 북벌,사마씨의 정권장악,촉멸망,삼국통일 이렇게 진행되는데 이 리뷰에서는 삼국지에서 삼국정립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최근 양자위와 금성무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되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적벽대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연의에서 나오는 적벽대전의 개요는 이렇다. ...유표의 후계자인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고 형주를 바친다. 강동지역까지 내려온 조조는 손권에게 항복을 권고하고 손권진영에서는 항복과 항전의 갈림길에 놓인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유비가 삼고초려끝에 데리고 온 제갈량이 동오의 진영으로 가 손권에게 결사항전할것을 설득한다. 당시 손권이 중용한 주유는 화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제갈량은 강동이교의 이야기를 하며 주유를 도발하여 항전하도록 마음을 돌린다. 결국 주유까지 손권에게 싸울것을 건의하자 손권을 항전할것을 결심하며 유비와 동맹을 맺고 조조와의 회전을 눈앞에 두게 된다...한마디로 동오의 손권은 싸울생각이 없었는데 유비가 설득하여 결국 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사삼국지의 내용은 이렇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고 형주를 바치자 동오의 노숙은 손권에게 유비와 동맹할것을 권고한다. 마찬가지로 주유역시 조조와 싸울것을 주장한다. 화친파가 대다수였던 동오진영에서 결국 손권은 싸울것을 결심하고 유비를 받아들인다. 결국 연의와 다르게 동맹을 주장한것은 노숙이었고- 연의에서는 마치 제갈량 비서처럼 그려진다-노숙뿐만 아니라, 주유.손권역시 만만치 않은 야심가들 이었던 것이다.
제갈량이 "천하삼분지계"를 논했듯이 주유에게도 "천하이분지계"의 구상이 있었다. 그가 형주에서 기반을 다지는 동안 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더라면-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희롱당하여 울분속에 등창이 터져 피를 흘리며 사망하는것으로 그려진다.즉,제갈량이 주유보다 한수 위에 있다- 삼국지의 전개과정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지도 모를일이다.
저자는 연의뿐만 아니라 정사에서 나온 내용도 조작의 의문을 제기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사실 고대사란 단순한 몇가지의 사료만으로 연구되기때문에 다양한 학설이 나올수 있다. 삼국지는 중국사내에서도 워낙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만큼 많은 주장이 나오기 때문에 그의 의견에도 공감하지만, 또 다른 주장도 나올수도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삼국지의 큰 사건들을 열거하면서 그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관우가 형주에서 패한 가장 큰 원인은 유비가 서둘러 익주에 진출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라던가, 위연의 반란에 대해 그의 반란의지여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등을 주장하면서 저자는 말한다.
"역사서에 전해 내려오는 사건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사실과 다르다. 따라서 독자들은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P.147)
연의의 내용보다는 정사삼국지에 대한 견해와 자신의 새로운 주장을 좀 더많이 수록한것이 아쉬운 점이었으나 나에게는 굉장히 고무적이고 참신한 책이었다. 이문열님의 삼국지 이전의 삼국지를 읽어본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강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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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우면 가장 많이 타격을 받는 도서 시장, 그곳에서도 특히 교양인문서! 그러나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꼼꼼하게 알차고 좋은 교양인문서를 뚝심 있게 만들어나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유유 출판사의 짧은 편지 한 통에서 감동 받고 [삼국지를 읽다]를 읽기 시작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평일엔 바쁜 업무에 녹초가 되고 휴일엔 그저 휴식만을 간절히 원하는 절묘한 타이밍에 손안에 들어온 책이라 솔직히 말하면 집중할 수 없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흥미를 유발하는 역사소설이 아니라 그저 진지한 사실적 역사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런 여러 방해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긴 했지만, ‘잘못 알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다면 그 지식 또한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역사를 연구할 때 얼마만큼 알고 기억하느냐가 아니라 기존의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는데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서문에 나온 저자의 뜻에 괜스레 집중해보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이 책은 문학고전 ‘삼국지’를 실제 역사적 사실에 견주어 비교 분석하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따분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지만, 읽다보니 저자의 말대로 문학에 흥취가 있듯이 역사에도 그 나름의 흥취가 있는 것처럼 왠지 집중하게 된다. ‘문학의 흥취는 기이하고 다채로운 줄거리로 듣는 이에게 찬탄과 경이로움을 선사하지만, 사실 그 뜻은 얄팍하다. 그저 독자의 감정만 자극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감정을 만족시키려면 작품이 독자를 심사숙고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군사 책략이나 외교 수단 등은 변화무쌍하고 신출귀몰하다. 그러나 사리에 비추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 내용이 어린애나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유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역사는 이와 다르다. 역사상의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다. 그 속에서 군사 책략과 외교 문제 등은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 요소를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그들이 처한 환경이란 곧 주위 모든 분야의 정황을 가리키는데, 오늘날의 우리는 십중팔구 그들이 처한 환경의 속사정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당시에 강구했던 수단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근거로 그 잘잘못을 논할 수 있을까?’(p.65) 이렇게 작가가 사실에 근거하여 풀어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은 문학고전과 같기도 다르기도 하면서 새롭게 해석된 역사를 읽는 재미가 있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읽긴 했지만, 읽는 내내 ‘삼국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몰랐던 숨은 뜻과 거짓된 뜻에서 밝혀진 진실들이 새로운 가지를 뻗듯 그렇게 다가왔다. 더불어 읽는 내내 고개를 쳐든 욕망, 재미로만 읽었던 ‘삼국지’를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사실과 문학의 비교, 작가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나도 한 번 더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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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참으로 유명하다 못해 "너 책 좀 읽어봤냐?"라고 물었을 때 "그럼, <삼국지>도 읽었는데"라고 대답할 정도로 독서 좀 했다는 사람들 치고 한 번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책'이 된 지 오래되었다. 허나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하는 책 목록으로 올려야만 하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긍정적인 면이 많은 데 반해서 부정적인 면도 그 못지 않은 까닭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면을 꼽으라면 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하는 어리석은 짓은 피하고 싶다. 허나 부정적인 면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거니와 몇 가지 되지도 않으니 자세히 말하고 싶다. 많지도 않다.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할 테다. 바로 <전쟁>을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도덕'이 땅에 떨어져 도적들이 횡행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도적이라 함은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황건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아니 그들은 도리어 힘 없는 촌부들이었고, 평화로울 때라면 선량한 백성들이었기에 그들이 편히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들불처럼 일어나 저항한 것으로 본다면 결코 '도적'이라고 할 수 없을 테다.
내가 말한 '도적들'이 횡행하는 이야기란 것은 '십상시'라 불리던 못된 환관들을 일컫는 것이며, '하진'과 '소제, 헌제'를 비롯한 못난 왕실과 외척 들을 일컫는 것이요, 또 동탁과 조조, 원소, 유비, 손견 등과 같이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제 이익만을 챙기려는 못된 무리들을 싸잡아 일컬은 것이다. 다시 말해, 나름대로 나라의 녹을 먹으며 호의호식을 하던 놈들이 어지러운 때를 만나 세상을 바로 잡을 생각보다는 그에 앞서 제 이익만을 챙기려 혈안이 된, 오늘날로 치면 정권과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리는 못난 정치인들과 한 가지도 다를 것이 없기에 그닥 필독할 필요가 없는 책이란 말이다.
아니 그런 못된 놈들이 나라를 다스린답시고 나라 망치는 꼴을 더는 두고 볼 수는 없다면 <삼국지>는 필독해야 하는 책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른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 또는 아무리 이르게 보아도 뚜렷한 가치관이 형성되려는 자질을 갖춘 청소년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아직 세상을 순진무구하게 보아야 할 어린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그리고 피터팬보다 더 천진난만한 어른들에겐 아무 소용도 없거니와 읽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을 테니, 그닥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 바로 <삼국지>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히는 바다. 또한 <삼국지>가 지닌 유익함에 비하면 내 불평불만은 새발에 피일지도 모른다. 허나 <삼국지>를 읽고 또 읽은 내가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을 알리고는 싶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 태어나 천하 패권을 차지하려는 영웅들의 한 판 대결을 읽으며 젊은이들에게 웅지를 심어주고, 젊은 패기와 열정을 불사를 곳이 어드멘지 잘 일러주는 맛도 있으나, 자칫 <힘의 논리>만을 배워 백성들이 평화를 사랑하며 바라는 갈망을, 몇몇 영웅들은 진정 그런 백성들이 품은 바람을 이루기 위해 불의와 싸웠다는 점을 망각하고 말 수도 있기에 참으로 조심스럽게 읽어야 하는, 때론 가르침 없이 읽으면 '오독'할 수도 있다는 점이 <삼국지>를 어린 청소년들에게 그닥 권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삼국지>에 대한 내 촌평에 공감하지 않아도 좋다. 또 이해가 잘 안 되어 반론을 내비쳐도 좋다. 바로 그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가 철철 넘치기 때문이다. 흔히들 <역사에 정답이 있다>는 듯이 공부하곤 하는데, 절대 그럴 것 없다. 또 <역사>에 정답 따위가 있을 턱도 없다. 단지 '난 이 <역사적 사실>을 이런 근거로 이렇게 해석했어요.', '와, 그렇군요. 그 해석에 공감해요.', '아니, 난 그 해석에 공감할 수 없군요. 그 까닭은 그 <역사적 사실>을 저런 근거로 봤을 때 저렇게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내가 해석한 것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라고 <역사가들의 대화>가 '올바른 역사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 속 <역사적 진실>은 많은 역사가들이 수많은 대화를 통해서 과거의 사실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해석한 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 그렇군요. 공감해요'라고 했기 때문에 실어 놓은 것 뿐이다. 그러니 '흥선대원군=쇄국정책=근대화가 늦어진 조선=열강침탈에 속수무책' 이렇게 공식화하여 외우는 것은 진정한 역사를 공부했다고 볼 수 없다.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사치=프랑스 시민들이 분노=프랑스 혁명' 이렇게 외울 텐가? 정말로 '제1차 세계대전=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세르비아 청년이 쏜 총성 때문'이라고 외운 것을 '역사, 제대로 배웠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이 책의 글쓴이 '여사면'은 "난 소설 <삼국연의>를 통해 중국 진한 시대와 5호16국 시대, 그리고 후한의 멸망과 뒤이은 위진 시대를 새롭게 조명해 보았다"고 서술하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 <삼국연의> 속의 수많은 오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논박을 한 것은 물론,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익숙한 평가에 논박을 거듭하며 '여사면' 만의 평가를 내놓았다. 여기에 공감을 하든, 공감하지 못하고 반박을 하든, 그것은 <역사책>을 접하는 독자들의 몫이다.
이렇게 즐기면 그뿐이다. 헌데 <역사책>에 대한 평가를 '내 취향'에 따라 들쑥날쑥하게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테면,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책은 참 좋은 책으로,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 적으면 참 나쁜 책으로 평가하는 것이 그닥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책>은 말이다. 아니 <역사책> 가운데는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은 책에 더 끌리고, 더 유익한 경우도 참 많다. 그러면서 역사에 대한 내 식견과 안목이 더욱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면에서 참 유익한 책이다. 중국인 글쓴이가 썼기에 대~한국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까지 시시콜콜 열거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즐겨 읽었던 <삼국연의>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참 유익한 책이었다. 내 좁은 식견과 안목을 한층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릇 <역사책>에 대한 평가는 역사 전문가가 아니라면 하릴없이 진위 논란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 만약 '위서(가짜책)'가 우리에게 그토록 해악을 끼친다면 완전 가짜는 아니더라도 다분히 가짜라고 평가내리는 '반고'의 <한서>와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여전히 배우는 까닭이 무엇인가? 서양도 마찬가지다. 그레고리 7세가 하인리히 4세를 굴복시킴으로써 '교황권'을 '황제권'보다 더 탄탄하게 다지게 만들었던 <카노사의 굴욕>에 써먹은 문서도 오랜 진위 논란 뒤에 가짜로 판명되었단다. 그런데도 지금도 배우고 또 배운다. 왜 그럴까? 바로 이 때문에 <역사에 정답은 없다>는 게다.
한편 우리가 주로 읽는 <삼국지>는 정사를 다룬 <삼국지>가 아니라 나관중이 쓰고, 배송지가 주석을 달은 <삼국연의>다. 다시 말해, 역사책이 아니라 소설책이란 얘기다. 그래서 어찌보면 우리는 소설책을 읽으며 역사 공부를 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여기에 그닥 반감을 갖거나, 자칫 역사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는 편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호로관 앞에서 동탁토벌을 위해 연합군들이 동탁의 수장 화웅을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관우가 등장해 술이 식기도 전에 적장 화웅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연의>에 나오지만, 이는 뻥이고 화웅은 호로관 대치 이전에 손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진실이란다. 또 관우가 하비에서 조조에게 항복한 뒤 조조의 품에 머물렀던 것은 사실이지만, 다섯 개의 관문을 통과하며 여섯 장수의 목을 베고 유비에게 달아났다는 것은 소설적 허구란다. 또 관우가 안량은 몰라도 문추까지 죽였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관우의 인품에 흠을 찾았다고 보아 관우에 대한 평가를 낮잡아 볼 것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유비도 소설 속에서는 도덕군자처럼 굴었지만, 실상은 '2인자' 소리를 듣는 것을 꽤나 싫어해서 평원에 만족하지 못하고, 소패와 서주, 그리고 하비를 전전하다 조조의 품 속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고 높은 직위를 받지만, 결국 다시 떠나 원소에게 빌붙고, 유표에게 기대다가 신야 융중에서 제갈량을 만나 '천하삼분지계'를 얻어(?) 유표의 땅이던 형주를 기반으로 친족이던 유장의 촉을 빼앗아 끝내 촉한 황제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유비도 한낱 '야심가'와 다르지 않다. 그동안 도덕군자 행세를 했던 것도 오직 대권을 얻기 위한 생쑈에 불과했던 것이고...
이렇게 색다른 <삼국연의>의 맛을 엿볼 수 있었기에 참 유익한 책이었다. 또 <역사=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글쓴이가 곱다시해 보이기도 하고...이 참에 <삼국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읽어야 할 책이 이미 많이 쌓여 있다. 이렇게라도 변명거리가 있다는 게..참 좋다^^라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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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글로 된 삼국지를 완전하게 읽지 못하고 그 동안 아이와 같이 <만화 삼국지>를 읽고 이야기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던 저에게 이 <삼국지를 읽다>는 삼국지의 일련의 사건과 이야기들 속에서 삼국지에 담긴 교훈과 지혜를 그대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주어서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말그대로 삼국지의 힘이 느껴져서 즐거운 독서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감탄과 박수를 보내고 싶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시때때로 부대끼는 일들에 대해서 현명하게 해결하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일진대, 실제로는 그것이 잘 되지 않지요. 그래서 더욱 답답하기도 하고 누구에게라도 자문을 구하거나 일을 지혜롭게 풀어갈 조언을 어떻게든 얻고 싶은데 잘 되지 않지요. 그래서 이 책을 더욱 잘만났다는 생각이 들고 감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고전으로써의 삼국지를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새롭게 해석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이 책의 저자인 여사면의 재해석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뛰어나서 좋은 가치로 평가받는다는 소개에더욱 관심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소개의 의미를 알아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을 읽고 또 교훈과 지혜를 얻었다는 긍정적인 가치를 심어줍니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의 인물이나 역사적 인물들이 새롭게 재조명되는 예들에서 새로운 해석과 이해가 가능하듯이, 삼국지에서도 간사하고 교활하게 자신의 현실적 실리를 염두에 두는 인물로 보통 그려지던. 특히 조조라는 인물에 대해서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여 이야기해볼 수 있음을 알려주는 내용들의 소개도 주의깊게 보면서 생각에 잠기게 하더라고요.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롭게 그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며 변화된 해석과 전개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삼국지를 읽다>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또 해석하며 현실적인 난관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지 새롭게 생각해보게 해주고 기존의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각들로 더욱 삼국지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삼국지의 교훈과 지혜를 헤아리는 깊이가 깊어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삼국지를 읽다>! 많은 지인들에게 꼭 읽어보기를 추천드리고 싶은 책 1순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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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어릴 적 책을 읽고, 여기 저기 다양한 매체들로 만나 왔던 것 같다. 내용을 제대로 몰라도 유비, 관우, 조조 정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되어서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서평단을 신청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삼국지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그런지 제대로 책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의 디자인이 워낙 올드해서인지 글씨가 작기도 해서 읽기가 수월 하지는 않았다.
삼국지가 소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삼국지는 '삼국지연의'라는 나관중이 지은 소설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자체가 역사의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중국 사학계의 거목이라는 여사면이라는 저자는, 노란 안경을 쓰면 노랗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쓰면 다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역사서에 기록된 일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독자들의 비판적 사고를 요구한다.
삼국지를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 읽고 새로운 관점을 가져보기를 권하고 싶지만, 나는 읽는 내내 힘들었다. 비판적 사고를 가질 만큼의 나의 지식 부족 때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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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에서 방영중인 2010년 삼국지는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는 장면보다
후한이 겪은 재앙의 가장 큰 근원인 십상시를 통해 환관의 역사를 살펴보는 걸로 p.32-예로부터 황제란 현명한 자는 드물고 어리석은 자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p.44-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아는 사례는 대단히 자주 발견된다. p.47-제도란 그 명운이 다하기 전에는 설령 거기에 병폐가 내재되어 있다 해도
이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조조에 대한 평가로 넘어가 본다. 조조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사마의에 대한 평가는 포학하고 잔인하며 자기 한 몸을 위한 행동이라 평가한다.
조조에 대한 부당한 평가에 대해서는 이야기꾼이 대중의 심리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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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학에 가까운 연의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과 정통 역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역사학자의 시선을 보게 된다. 문학이 역사를 얼마나 왜곡 시킬 수 있는 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삼국지가 아닐까 한다. 나관중의 연의를 통해서 우리는 조조라는 인물의 왜곡을 보았으며, 유비라는 인물이 시대의 영웅이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삼국지를 읽지 않았던가. 하지만 역사는 누가 영웅이고 누가 간웅인지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 평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학은 작가의 의도와 작가의 생각이 담겨져 있고 그 부분을 역사로 받아들이게 되면 많은 오류가 생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라고 한다. 역자의 말처럼 잘 알지 못했고 이번 책을 통해서 그의 방대한 연구 기록을 보았다고 하니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학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역사를 보는 시각도 독특하고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하며 객관적인 근거를 준비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삼국지와 삼국연의의 차이점에 대한 분석 그리고 조조에 대한 인물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는데, 우리나라 역시 삼국 연의의 영향을 받아 정사 삼국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렇게 느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벌써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이 부분에 대한 고민과 사실을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삼국지를 보는 시각은 독특하게 시작을 한다. 삼국지 전반에 걸쳐 등장하지 않는 적이 없는 환관과 외척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을 한다. 역사상 주요 사건에서 빠지지 않는 환관, 권력의 중심에 서고자 항상 황재를 미혹시키고 위협하는 존재로 존재 하였던 외척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저자는 황건적 그리고 장각의 횡보 그리고 민심의 움직임에 대한 서술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황재를 위해 충성하는 백성들에 익숙한 우리는 모두 나관중이 만들어 낸 인물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의 백성들의 생활상은 황재가 누가 되든 사는 것에 모든 것이 집중하였지 충성이니 반역이니 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의 생활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황재가 누가되든 일반 백성들은 상관이 없었다. 사는 것이 똑같은데 황재가 바뀐다고 별로 달라질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동탁의 횡보 그리고 조조의 횡보에 모두 반기를 들고 황재를 떠받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삼국지연의에 의한 오해라고 보아야 한다. 화웅은 손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분명한데. 삼국연의에서는 관우의 손에 죽었다고 되어 있다. 삼국연의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88쪽) 이렇게 정사와 삼국연의 사이에 역사적 사실과 오류가 있음은 이 부분 뿐만이 아니고 진궁의 이야기 그리고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하였다는 이야기 속에서 관우가 죽인 다섯 관문의 여섯 장수의 이야기도 허구에 가깝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 덕분에 우리는 우리 역사는 아니지만 중국의 역사 속에서 한족의 우월함을 스스로 느끼게 만들어 준 그의 글을 그렇게 답습하고 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도가 있었던 작품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생각을 그렇게 담았던 소설인지 모르지만 정사와 구분하는 눈을 좀 길러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 단점이 없는 사람 관우에 대한 인물평에 서도 역시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관우는 유비가 없는 전장에서 항상 장수의 역할을 수행할 정도이고 군을 나눌 상황이면 관우가 장수가 될 정도를 개인적인 역량이나 지도력은 우수하였다고 한다. 연의에서도 그렇게 표현되어 있지만, 다만 관우에 대한 삼국지의 인물평 한 구절을 생각하면서 형주의 패배를 연관 시켜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의 단점 그 것이 가져온 전쟁의 패배 말이다. 유비에게 치명상을 안긴 그 것 말이다. [삼국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관우는 “사병은 잘 대우했지만 사대부에게 교만했고” 이로 인해 미방이나 사인과 같은 배신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관우의 약점이다. (195쪽) 역사는 한 줄로 사람을 평가한다. 당시의 상황을 잘 모르는 현대 사람들이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상황 그리고 인물을 평가하고 진실을 알기란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역사적 사실에 더 근접한 진실을 알기를 원하는 저자의 마음이 그렇게 바라보는 역사관이 아닐까 한다. 좀 오래전에 중국에서 저술된 책 임에도 우리에게 이제야 소개 된다는 것이 좀 아쉬울 정도로 역사에 대한 관점과 시각을 가지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옛일에 대한 해설과 옛사람에 대한 평가가 절대 불가한 것은 아니며, 가능한 범위 안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범위를 착실히 지켜가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너무도 적다. 그러나 이 얼마 안 되는 말 속에서 사실의 참모습을 다소나마 엿볼 수 있다. (6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