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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낮고 느린 삼저 三低 ‘자연스러운 건축’을 읽고 내용이 마음에 들어 곧장 이어서 건축가 구마 겐고와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엮은 대담집 ‘삼저주의’를 읽게 됐다. 구마 겐고는 그동안 발표했던 글을 통해서 기존의 건축과는 다른 건축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말해왔고 그 입장을 건축적으로 시도했고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 구마 겐고의 입장과 시도를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는 앞으로 도시와 사회는 작고 낮고 느린 (기존의 크고 높고 빠른 삼고에서) 삼저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보고 대담을 요청했고 구마 겐고는 그 요청에 응해 이 대담집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둘의 대화는 서로 생각이 맞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답게 공통된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들을 모으고 있고 다양한 사례와 영역을 넘나들며 끝도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때때로 근심과 고민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경쾌함으로 가득한 대화였다. 주제나 이야기의 주도권은 대담을 요청한 미우라 아쓰시가 갖고 있고 열정적으로 말을 토해내는 미우라 아쓰시에게 구마 겐고는 가볍게 동조하듯이 혹은 그 주장에 보충하거나 덧붙이듯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들이 대담을 나눈 당시의 일본은 계속되는 저성장과 경제침체의 상황이었고 자민당의 장기집권에서 잠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던 상황이라 뭔가 무기력하면서도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시기였을 것이고 그들의 대담은 그런 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앞으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건축을 중심으로 도시와 사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있다. 대담이기 때문에 읽기가 어렵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언급되는 내용들 중 생소한 것들도 많았고 일본 사회에 대해서 모른 것이 많아 그들이 언급하고 주목하는 내용들에 크게 공감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마치 그래야만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삼저를 주장하고 있는 미우라 아쓰시의 입장에는 분명 관심이 가고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너무 강요하듯 말하는 것 같아 때로는 불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의 생각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도 지금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상황을 곧 겪으리라 예측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단순히 일본 사회에 대한 고민과 근심으로만 읽혀지진 않게 된다. 한국 사회의 강한 삼고주의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봐야만 하는 지금 시점에서 ‘삼저주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이무라 아쓰시와 부드럽게 그 생각을 받아주고 여러 추가되는 내용들을 알려주는 둘의 대화에서 막힘없이 다양한 영역을 얘기하는 말솜씨와 지성에 감탄하며 읽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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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집값이 폭락한다고 한다. 아니, 이제 다 폭락했다고 한다. 집값은 계속 폭락하는데, 이제 다 폭락했으니 집을 사라고 한다. 집값은 바닥이라면서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고 또 걱정을 한다. 서울 사는 친구는 오래 전부터 어렵사리 전세라도 얻어 사는 데, 여전히 전세다. 그의 꿈은 집을 사서 그것을 팔아 차액을 챙기는 것이다. 차액을 챙겼다는 얘기는 아직 안 나온다. 여전히 그것이 꿈인지는 모르겠다.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전세값은 계속 오른다니, 그 친구의 생각도 여간 복잡하지 않을 것 같다. 집이 있어도 문제다. 가난한 사람은 싼 임대 아파트를 얻는다. 문제는 그 아파트 단지에는 가난한 사람만 산다. 한 달에도 몇 명씩 자살한다. 어지간히 사는 사람도 문제다. 외롭다.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른다. 옆집에 누가 사는 지 알고 싶어도, 신문만 봐서는 내 주위에는 온통 연쇄 살인범과 강간범 밖에 없는 것 같다. 문득, 그 신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말 잘 듣고 있다가, 감옥 같은 아닌 감옥인 너의 집에서 혼자 조용히 죽으라는 것일까. 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은 사람을 위해 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집을 위해 사람이 있다. 부모 잘못 만나면, 집 한 채 마련하려고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저당잡혀야 한다. 운 좋게 내 집 한 채 마련하면 최선을 다한 삶이고, 그렇지 않으면 뭔가 빠져도 크게 빠진 삶이다. 집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한국 사람에게 무엇일까. 이 책은 한국과 비슷한 길을 먼저 걸어가고 있는 일본의 건축가와 사회학자(?)의 대담이다. 제목이 '삼저주의'인데, 말 그대로 집을 지을 때는 세 가지가 낮아야 된다는 것이다. 소박함이라고 표현해도 된다.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작은 집, 오래된 집, 싼 집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내가 특히 기억에 남는 단어는 이들이 계속 강조하는 '공유'라는 단어다. 건축에서 공유는 아주 단순화하면 '마을'을 되살리는 건축을 이야기한다. 소통이 가능하게 만드는 건축, 이 소통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건축물을 밀어 버리고 새로 짓는 뉴타운이 아니라 오래된 건축물의 결을 그대로 살리며 보수(?)하는 건축 방식, 그래서 옛 것과 새 것의 소통도 중요하다. 일본의 장기 불황은 오히려 근대 너머의 세계를 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당연할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히면 자기 자신을 보지 못 한다. 그들은 20년의 실패를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 지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 언론에서는 그들의 장기 불황 때문에 결혼을 안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전자 산업이 망하고 등등 어두운 면만 보도하는데, 그런 시각은 정말 뭐 눈에는 뭐 밖에 안보인다는 속담이 딱 들어 맞는 보도 태도다. 고난이 인간을 강하게 만들듯이, 일본인들도 여전히 앞만 보고 달리기에 급급한 한국 사람들이 보지 못 하는 부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한국은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이 존재할까. 아니면, 정말 한 번 폭삭 망해야 이 지긋지긋한 자본과 경쟁의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노력이라도 시도할까. 주저리 주저리 쓸 데 없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만, 책값이 너무 비싸고, 건축책인데도 사진이 별로 없고, 오자가 눈에 자주 띈다. 일본의 건축물과 지역을 예로 드는 부분도 많이 낯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