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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가장 존경하는 사랑학 교수... 레오 버스카글리아.
그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청년 시절에 읽고 얼마나 감동 속에 살았는지 모른다.
최근 강의를 나가는 모 학교의 학보에 글을 내면서 레오 버스카글리아에 대한 기억을 적었다. 문득 다른 책을 찾게 되었고 그의 이 책 '아버지라는 이름의 큰 나무'와 다른 책 한 권을 더 구매하게 되었다.
후기나 글 소개를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의 책이라면 어느 다른 책보다도 더 훌륭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첫 도입부는 기대보다 훨씬 더 적은 기대를 보이며 작은 걸음으로 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는 레오 버스카글리아를 지금의 그로 만든 위대한 아버지였음을 알게 되었다.
진솔함. 정직함. 그리고 사랑.
초등학교를 중퇴한 그의 아버지였지만 그는 레오 버스카글리아가 교육학 박사로 수십년을 강의한 모든 내용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몸으로 자녀인 레오 버스카글리아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아직도 아버지를 따라 가는 것에 자신이 없지만 자기의 자녀에게 아버지 이야기 들려주는 것에는 아주 자랑스러워 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해 준 많은 말들이 감동적이고 세상을 이끄는 힘이 있지만
"세상은 감사하는 자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이다."라는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말을 되새겨 본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신 그의 아버지를 바라 본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말이 바로 삶으로 보여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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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저자의 다른 유명한 책에 무척 감동을 받았기에 우연히 이 책을 순식간에 읽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고 귀여운 책이고 책의 분량도 아주 적은 편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저와 저의 아버지의 관계를 상기시켰고... 수많은 자녀들과 그 자녀들의 아버지들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자는 올바른 아버지상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데 도움이 되도록 이 책을 저술하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자의 아버지께서 항상 어린 시절에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라고 질문하시고 모든 자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집안의 작은 문제라도 자녀들이 어리다고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밝히시면서 함께 극복하도록 노력했다는 것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참된 가족상을 발견했습니다. 책의 분량은 아주 적으나 그 감동과 그 속에서의 얻은 지혜는 참 오랫동안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
| 레오 버스카글리아(Leo Buscaglia)가 쓴 『아버지라는 이름의 큰나무』(Papa, my father)는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을 10가지 주제로 묶어, 회상하고 있다. 그가 기록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를 읽어 가면서, 나에겐 내가 느끼고 보아왔던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보는 듯했다. 아무것도 없이 미국에 건너온 이탈리아 이민자, 학력이라곤 초등학교 중퇴가 전부인 저자의 아버지. 가난에 시달리며 살면서도 한번도 희망을 버려 본적이 없으며, 언제나 신념에 기대어 모든 이들과 세상 모든 것을 대해 왔다. 가난했지만, 현재 있는 그대로 만족하며 서로 사랑했으며, 언제나 배우고자 가르쳐 주고자했으며, 다른 이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대했던 사람. 나의 아버지는 청소년 시절 아무것도 없이, 배우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오셨다. 누구에게 의지할 것도 바랄 것도 없었으며, 단순히 성실과 노력으로 자신의 삶과 가정을 꾸려오셨다. 무어 배운 것이라곤, 어렸을 때 동네 서당에서 배운 천자문 정도였다. 가진 것이라곤 무엇하나 내놓을게 없었다. 가족은 있었으나 무언가 큰 보살핌을 받아 본적도 없었으며, 나이가 드셔서는 되려 가족, 친지를 위해 항상 앞장서서 모든 일을 주관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세상은, 주위 사람들은 무엇하나 도와준 것 없었으며, 오히려 아버지의 도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신의 신념에 따라 한 순간도 낭비하거나, 헛됨 없이 성실히 살아가고 계신다. 비록 알고 있는 지식은 별로 없지만, 항상 무언가 배우려 하시며, 자식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쳐 주시려 노력하신다. 그 가르침들은 단순히 어떤 지식 뿐 아니라, 살면서 우리가 지녀야될 생각들, 삶의 자세들 모두를 포함한다. 저자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 동일할 수 없으며, 동일한 나라, 동시대를 살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흔히 말하는 어려운 시기를 거친 우리의 아버지 세대. 가진 것이라곤 성실과 노력, 신념뿐이었으며, 어려운 시기에 가난을 이겨 가정을 꾸려 가셨던 우리 들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어느새 우리나라가 광복 50주년이 넘어가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근대화되고 안정되어 있지만, 아직 대개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모두 국가의 경제발전과 사회적 혼란 속에 어려움을 겪으셨던 분들이다. 저자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우리 젊은 세대들의 아버지가 닮아 있는 것은 왜 일까? 단순히 성장기, 청년기의 경제적 어려움, 학문적 무지함 그런 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아버지로써의 부성(父性)을 뛰어넘는 삶에 대한, 자연, 사람, 가정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동일한 매개체 때문에, 당신의 세대들이 겪었던 환경들이 동시대, 완전히 동일한 국가, 조건 등이 아님에도 비슷한, 너무나도 흡사한 아버지 상을 그리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단지 너무나 엄한 존재였다. 목소리가 크고, 잘못에 크게 화를 내셨으며, 엄격하셨다. 그러나, 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알게 되는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도 자상하시고, 거대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삶의 모습에서 한가지, 한가지씩 배워야 할 것이, 당신께 배웠던 것들이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그런, 저자가 그리고 있는 아버지였다. 남들 보다 그리 잘난 것이나, 내세울 것은 없었지만, 평범 아니 오히려 부족한 삶을 사셨지만, 언제나 당당하셨으며, 다른 이들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대하셨다. 또한, 자신의 신념에 확고하셔서 어떤 어려움에도 꿋꿋이 당신의 뜻을 지키셨다. 어렸을 때 나에게는 단지 무섭고,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지만,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단지 소리칠줄만 아는 구세대였지만, 지금 나에게 아버지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 누구보다 너그러우시며 사랑으로 가득차신 분이다. 무언가 큰 선물을 주시는 분은 아니지만, 가끔 아들을 먼저 안으시며 사랑한다고 말하실 아는 분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다가온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와 함께 느껴진 당신의 사랑이었다. 단순히 어떤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 그 사랑은, 삶에 있어서 성실함과 노력으로 나타나며, 세상의 모든 사소한 것에도 깃들어 있고, 주위 다른 모든 이들에게 베풀고 나누어주신 것이다. 이제는 내게 너무나 늙어, 처량해 보이는 나의 아버지도, 어느새 나의 삶과 기억 속에, 우리에게 전하고 남기신 많은 것들에, 기대어 쉴 수 있고, 바라보며 우러러 볼 수 있는 큰나무로 남아 계신다. 그런 큰나무를 왜 이제껏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저자가 기록하고 있는 저자의 아버지의 모습과 삶, 그리고 사랑은 단순히 저자의 아버지의 것이 아닌, 우리가 미쳐 느끼지 못하고 있던, 나의, 우리의 아버지의 것이다. 우리가 못느끼는 사이에도 우리에게 가슴깊이 남고 있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 이젠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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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그리 크지 않으신 체구에 언제나 당당하셨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이 없으셨던 위대한 당신이셨다. 그리고 내가 사춘기를 지나 사회를 배워 갈 때 위대한 당신은 보수적 권위 의식에 사로잡힌 지극히 평범한 그저 그런 아버지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성년이 되면서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하나 변변하게 남기시지 못한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아버지로 마감되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남을 이해하고 남의 처지 생각하며 사랑을 가르치신 적도, 남다른 지식이나 지혜를 주신 적도, 남에게 보일 만한 어떤 유산도 남기시지 않은 그런 아버지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 단하나 아버지는 평소 늘 하신 말씀대로 마지막까지 자식들에게 손가지 않도록 하신겠다든 약속은 너무나 훌륭히 지키셨다. 늙음의 추함도 병듦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그렇게, 그렇게 가시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3년이 채 못된 세월 ! 그저 당신의 자리에 남들에게 욕듣지 않을 만큼 찾아가면서 그리고 아버지는 가셨어도 자식인 나는 이렇게 변함없이 효도를 다하고 있노라고 자위하면서 아버지의 기억을 세월 속에 묻고 있었다. 어버지에 대한 흐려가는 기억마저 세월 저편으로 묻어가면서 자칫 그렇게 잊으려했던 아버지의 큰 자리를 비로소 일깨운 것은 150쪽에 불과한 작은 책 - 레오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라는 이름의 큰 나무"였다. 이 책을 만나게 한 인연이 그저 다행스럽고 눈물겹도록 고마울 따름이다. 이 책은 아버지의 세월보다 더 나은 세월 속에서 더 나은 배움으로 더 나은 삶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속으로 우쭐거렸던 나의 오만함에 천 근 철퇴를 가하며 진정한 아버지의 자리를 깨우치게 하였다.
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는 분명 평범한 아버지는 아니다.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자기 철학이 있는 지성인으로서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세상을 살아가는 진정한 지혜가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고 자식들에게 그렇게 실천하도록 가르친 훌륭한 교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감동은 그런 훌륭한 아버지의 자리가 아니라 자식으로서의 버스카글리아가 아버지에게 느낀 마음 속에 우러나온 이해와 사랑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의 참된 자리를 보지 못하고 자만에 빠진 못된 생각들로 어릴적 위대했던 아버지의 전락에 대한 보상처럼 생각하여 왔다. 하지만 카글리아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나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진정한 자리를 비로소 깨닫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의 자리, 지금의 내 아이들에게 위대한 아버지(?)로 군림하고 있던 오만한 나의 자리를 끌어내리며 나의 아버지같은 아버지를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젊은 혈기로 한없는 방황의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나의 아버지는 항상 조금만 더 생각하며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어쭙쟎은 인생 철학을 펴며 허상을 쫓아다닐 때 아버지는 당신이 겪어오신 편치않은 인생을 고백하듯 그렇게 말씀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만큼한 세월이 흐르고 이런 인연이 닿아서야 당신의 못난 자식은 비로소 그 평범한 말씀이 얼마나 큰 깨우침이었던가를 알았던 것이다.
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가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이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면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용기와 세월이 묵을수록 은근히 느껴오는 욕심없는 아버지의 자리'를 가르쳐 주셨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처럼 삶의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자연과 인간에 대해 대가없는 사랑을 베푸는 질 높은 인생을 자식들에게 가리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너무나 평범한 아버지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아버지를 닮아 또 그런 자리를 만들어간다. 버스카글리아는 우리에게 차원높은 고상한 아버지를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평범과 단순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 위대한 큰나무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런 '아버지'이어야 한다.
- 99년 가을 어느 날 기우는 해를 보면서 - [인상깊은구절] 그렇다, 아버지가없는 아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많은 가정에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아버지, 아이들 삶의 본보기로서의 아버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에게 더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기 시작할 때 이미 그 관계는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법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존재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 시작할 때 파멸은 찾아오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