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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에서 부와 권력의 핵심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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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차라리 가칭 ‘강남특별자치구‘ 설치를 중앙에 건의해 아예 강남구를 서울시에서 추방시키실 용의는 없으십니까? 사사건건 서울시와 부닥치던 강남구가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가난한 집안, 모든 자녀를 공부시킬 수 없어 장남 한 명에게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더니 자신이 누린 혜택을 제 잘남으로 해석한 장남이 부모 형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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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차라리 가칭 ‘강남특별자치구‘ 설치를 중앙에 건의해 아예 강남구를 서울시에서 추방시키실 용의는 없으십니까?

사사건건 서울시와 부닥치던 강남구가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가난한 집안, 모든 자녀를 공부시킬 수 없어 장남 한 명에게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더니 자신이 누린 혜택을 제 잘남으로 해석한 장남이 부모 형제 내팽개친 형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강남이 잘 산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지만 현재의 집을 비싼 값에 판매하고 거둬들인 금액으로는 강남 지역 어디에도 내 집 마련은 커녕 전세조차도 구할 수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잘 살길래, 당시 강남구청장의 자신감이 어디로부터 비롯됐는지가 나는 문득 궁금했다. 격차가 너무 크니 오히려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 것이었다. 강남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갑갑한 마음에 찬물을 끼얹어보기도 했다.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건만, 강남을 떠나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잘못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순리라는 건 존재치 않았다. 대한민국에선 목소리 큰 사람이 밀어부치면 그게 곧 진리였다.

현재는 25개 자치구가 오밀조밀하게 서울에 들어차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불과 5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1973년의 지도를 보니 총 11개의 구만이 존재했고, 영등포구 성동구를 비롯한 많은 지역의 면적이 광활했다. 그만큼 서울지역의 인구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에는 아예 서울로 칭할 수 있는 지역 자체가 작았다.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경우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서울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양주군 노해면으로 시작하는 주소로 불렸다. 서울로의 인구 유입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동시에 인위적인 것이었다. 특히 허허벌판이던 강남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거듭나기까지 행해진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소위 명문으로 여겨지던 학교들이 대거 강남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네들의 뜻에 따라서는 물론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애초의 계획보다 거대한 부지가 주어지는 등의 특혜가 있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보니 이주를 꺼리던 사람들도 학교의 등장을 반겼다. 교육이라면 열과 성을 다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그렇게 강남으로 향했다.

학교 외의 각종 인프라 구축도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강남 개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영업 허가 취소라는 초강수를 피하고자 버스 터미널은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점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노선 대다수가 영남권을 목적지로 하고 있다는 점도 윗선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차별은 그렇게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돈은 없고 개발은 해야 하니 대기업들에게 손을 뻗는 일도 빈번했다. 서울한복판은 물론 강남 노른자위를 골라 입점한 롯데 그룹의 성장 또한 정치적 고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까지 이룬 모든 일은 칭송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속도전. ‘한강의 기적‘은 그러나 짙은 그림자를 지녔다. 기술력의 부족이었을까. 대다수 시설에서 건립보다 보수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급기야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라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돈을 아끼겠다는 천박한 자본주의는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삼풍백화점 사태를 향한 삼풍그룹 회장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여보쇼. 무너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그의 탐욕한 눈은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바라볼 줄 몰랐다. 그 때와 지금,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지.

더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 돌고 있다. 한 때 부동산 열풍을 조장했던 뉴타운 사업을 대신해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청년들에게,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에게 내 집 마련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강남 지역에의 내 집 마련은 더더욱. 도시재생 또한 막대한 자금이 투영된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사람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형국이 연출되지 말란 법은 없다. 여러모로 강남은 앞선 사회였다. 모두가 선망하는, 적잖은 이들이 여전히 지향하는,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이달의 사락 q*****2 2019.02.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