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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영화에 기울 때 책에 기울 때 음악에 기울 때가 있다면 요즘은 본능적으로 후자에서 할 말을 찾곤 하는 편이다. 드로잉도 그리고 싶고, 색칠도 하고 싶다. 붓에 물감 묻혀 그리고 싶은 그림도 있다. 내 마음이 공기와 섞여 진공 속으로 침잠한 후에 음악이 비로소 귀에 부딪치면 나는 아직 덜 자랐구나, 마음을 쓸어내린다. 실수가 낯설지 않다. 음악 안에서 길을 잃어도 누가 나를 찾아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건넬 것만 같다. 솜사탕도 좋고 소다수도 좋고 탄산음료도 좋을 달달한 밤들이 금세 끈적한 습기를 머금고 피부로 찾아들기 시작하면 계절은 변하는 거겠지. 어떤 음악을 들어도 비약적으로 감정과잉 상태다. 어제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함께 읽는 '즐거운 책 읽기'를 우연히 보게 되어 그런가. 침묵이 단지 말을 안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 내가 침묵으로 여겼던 수많은 상태는 그저 겉보기에 그랬을 뿐인가. 비가 내렸고, 배가 아팠다. 모든 것이 침묵한 건 아니었다.
넬의 곡들이 좋지만 특별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는데 계절 탓인지 마음 탓인지 근사하게 들린다. 봄이 슬프다. 나이를 먹어서 그럴까. 분홍색, 샛노란색, 주황색의 트렌치 코트를 입고 걸으면 그 어디라도 천국인 것만 같았는데 이제 눈안에 아름다운 것들이 들어차지 않는 것 같다. 본연적으로 사물 뒤의 외로움에 닿던 감각은 어느새 사라지는가. 넬은 아직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욕조에 꽃송이와 거품향수 띄워주는 남자의 부드러움처럼, 계절마다 바디샤워와 향수를 선물하는 남자의 섬세함처럼, 영화 속 아이스크림 키스, 요플레 애무 같은 것들을 따라해보고 싶었던 꿈많던 소녀시절처럼, 뒷모습 보이는 낮은 어깨를 톡톡 치면서 '괜찮아요' 말 걸고 싶은 선율이다. 목소리가 봄을 휘휘 감는다. 나는 감긴다. 이러다가 이사도라 던컨처럼 죽어도 낯설지 않은 경험이겠지. 넬의 곡을 듣다 봄이 목에 감긴 어떤 여자 숨을 놓다!
내쉬고 들이쉰다. 나 없이도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처럼 자연스러운 일인데, 요 며칠 계절이 수상하다. 불러낼 수 있는 건 모조리 불러내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상대를 괴롭히는 사랑처럼,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납작 엎드리는 구조된 동물처럼, 꽃송이가 슬프다. 벽화를 그려보고 싶었다.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꿈꿀 일도 못됐다. 이 앨범에 든 곡들을 들으며 안되는 게 어딨나, 부딪치면 무엇하나, 가라앉음에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끔거리는 위가 살아있음을 신호한다. 가볍게 흘러내리고 싶은 날들이다. 날카롭게 선 신경에 찔리는 대신, 모든 것을 용서하고만 싶은 나른함이 온몸을 뭉개고 있다. 아무 감정 없이 내려놓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이 순간 아무 것도 없었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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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마음에 쏙 드는 앨범 표지에 눈길이 간다. 한때 넬의 음악만 들었던 적도, 우울했던 마음을 도닥여주고 친구같았던 그 노래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그런 감성밴드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인디계에선 유명한 넬!! 4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한 그들의 음악과 대중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간 시도가 반갑고, 전곡이 내 스타일이다. 뮤직비디오에는 느낌있는 배우 이민기와, 송재림이 출연해 음악의 분위기를 더 표현해낸 것 같아 좋았다. 넬 만의 목소리와, 특유의 흡입력을 지닌 사운드로 팬들과, 넬의 음악을 처음듣는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다가올 것이다. 올해는 좋아하는 가수들이 잔뜩 컴백해서 개인적으로 너무 행복한 마음이다. 타이틀곡 다좋지만 standing in the rain, Cliff Parade을 강력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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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프리버드에서 밴드 결성 첫 공연을 한 지 13년, 정규 4집 발매 후 4년 만의 앨범이다. 한때는 가장 어두운 음악을 좇았었던, 지금은 가장 잘 나가는 록밴드, 그리고 거기에는 가장 좋은 악기인 목소리를 가진 중성적인 보컬 김종완이 있었다. 군가를 부르기엔 너무도 섬세했던 그의 음색은 역시 밴드 멜로디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오래 기다린 수많은 팬이 있으니 목에 핏대 세우던 컴백이었다. 2012 대학가요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넬의 무대는 근래 대학가요제 초대 가수 무대 중 가장 인상깊었다. 돌아온 넬의 음악은 생각보다 강했지만, 여전히 밴드의 음악적 테두리는 견고했다. 넬만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앨범. 타이틀곡보다는 전반적으로 앨범이 빛난다. 'Cliff Parade'나 'Hopeless Valentine'같은 곡들은 수록곡으로 묻히기에 아까우니 말이다. 이 앨범이 발판이 되어 예비역 밴드의 기상나팔이 울렸다. 부드러운 전반부 수록곡들에 비해 탄력을 받는 후반부의 트랙에서 보건데 밴드는 지금 추진력을 받는 중인듯 싶다. 모던록의 홍수 속에 왕년에 멜로디 좀 튕겼던 빅밴드의 향 후 행보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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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던록 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넬이 5집 'Slip Away'를 들고 돌아왔다. 음악적 주관을 뚜렷히 지키고 음반 자켓부터 사운드 하나 하나까지 작가주의적 정신이 깃들어있음은, 주관적 창작력이 척박한 한국 음악 씬에서 넬을 돋보이는 존재로 만들어줬다.
그러나 댄스 음악보다 밴드 음반에서 작가적인 정신이 높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엄밀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적용할 때 넬의 수준은 (비유하자면) 콜드플레이(Coldplay)가 위치하고 있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듯 보인다. 이것이 한국 록 씬에서 어느정도 위치를 점하고 있는 밴드임에도 비평가로서 넬을 호평할 수 없는 이유이다. 콜드플레이가 [Viva la vida] 이전까지 라디오헤드의 자양분을 더욱 침잠하는 분위기로 전향을 이끌어냈지만 여전히 아류작이라는 비판과 러브송 밴드라는 비판을 피해지 못했던 것처럼, 넬은 스스로 한계를 깨지 못하고 있다.
넬 5집의 특징은 밴드 프레임을 깨고 전자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통일감 있는 사운드 우주를 그리고자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실은 10~15여년전에 이미 라디오헤드를 통해 경험했던 부분이라, 위압적인 감동을 느끼기는 어렵다. 스웨이드의 초기작들이나 라디오헤드'가 자아냈던 사운드의 아우라를 고스란히 가지고 간다. 이를테면 넬 5집의 [Beautiful Stranger]가 반복적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노이즈 사운드의 경우 이미 라디오헤드가 2003년에 하나의 통일된 음반 미학으로 선보인 바 있는 기법이다.
여기에 타이틀곡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 기타 대신 현악 편곡이 자리함으로서 사실상 발라드에 가까운 접근법을 취함으로서, 이로서 넬은 밴드적 사운드 창출에 대한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보도자료에서는 장르를 뛰어넘어 표현에 집중하고자 했다는 의도로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설명하고 있으나, [믿어선 안될 말]을 기대했던 국내 록 팬에게는 다소 김 빠지는 넘버가 되겠다. 또 콜드플레이가 러브송 발라드와 록의 경계에서 집중 공격을 받았던 것을 상기해볼 때, 포크록이나 발라드에 가까운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 넬의 포지션은 더욱 더 애매해져버렸다. 앨범 동명의 곡인 [Slip Away] 역시 콜드플레이 수준에 그쳐버리는 단출한 사운드가 술에 물 탄듯 앨범의 싱거움을 더한다. 이러한 맹물 사운드를 바탕으로는, 앤드류 몽고메리*나 톰 요크의 간질이는 듯 날카로운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김종완의 보컬조차 힘을 잃고 지리멸렬한다. *Andrew Montgomery, 영국 인디밴드 Geneva의 보컬리스트
전반적으로 사운드의 접근법은 라디오헤디즘에 기반해있고, 결과물은 콜드플레이 수준에 그쳐 있어 창작적인 한계나 독창적인 표현력에 관한 재능의 부재가 안타까운 음반이다. 이승열이나 이소라가 브릿팝을 위시하면서도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넬의 음악은 지나치게 톤다운 되있다거나 모방에 가깝다.
허나 8번 트랙은 놀랍다. 넬 5집 8번 트랙에 자리한 [Cliff Parade]는 [믿어선 안될 말]에서 보여줬던 가공할 창작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엇갈리고 뒤엉켰지'라는 티저로 공개되었던 넘버로, 강성의 퍼즈 사운드를 중심으로 타이트한 전개를 보이는 대곡이다. 대중적 흡인력에 있어서도 가장 강력한 킬링 트랙으로, 티저로 공개되었음에도 타이틀곡으로 결정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Cliff Parade]는 앨범 내에 다른 곡들과 체급 자체가 다른 프론트 넘버라 하겠다.
이는 넬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믿어선 안될말]과 [Cliff Parade]가 보여주듯 넬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앰프가 터질 듯 찢어지는 강성의 사운드에 얹혀진 날카로운 선율인데, 자꾸만 감질맛나는 톤 다운 사운드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넬의 5집 'Slip Away'는 분명한 실패작이지만, [Cliff Parade]에서만큼은 충분히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앨범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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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의 하는 커피숍을 갔던 때, 함께 갔던 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 커피
숍의 음악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이야기를 할 때는 가게의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한
걸음 물러나고, 다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는 음악이 한걸음 앞으로 나와 가게를 가
득 채운다고, 그렇게 음악이 주연이 되었다가 다시 조연이 되는 그 적당한 정도를 너무
나 잘 맞추어서 음악을 틀어놓았다고 했다. 사실 그렇게 음악의 볼륨을 맞추는 것은 상
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음악들도 그러한 적당한 수준을
지키지는 않는다. 그런 적당한 음악을 찾는 것은 사실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러한 음악을 넬은 들려준다. 바로 적당히 주연과 조연을 넘나드는 음악을 이 넬의 음반
은 들려준다.
넬의 이 앨범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또한 뒤로도 물러나지 않는다. 적당한 선을 철
저하게 지킨다. 그리고 그러한 넬의 음악의 장점을 이 앨범은 제대로 모두 담아낸다. 물
론 몇몇 곡들은 강한 비트와 하드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넬의 노래들은 적
당한 선을 지키면서도 그 노래는 빈자리 없이 채워진 노래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러한
연주에 덧입혀진 가사들도 그렇게 삶을 하나 하나 이야기한다. 풍성하면서도 빈자리를
찾을 수 있는 음악, 그러면서도 삶의 배경이 되면서도 그렇다고 완전히 뒤로 물러나지
도 않는 묘한 모순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넬은 그렇게 넘치지 않는 즐거우면서 잔잔한
노래를 만난다.
넬의 노래에는 익숙한 외국 그룹들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마도 넬의 멤버들은 그
동안 그 노래들을 만나면서 성장하고, 그리고 그 성장을 통해서 다시 넬의 음악을 만들
어냈을 것이다. 그런 외국 그룹들의 음악을 기반으로 제대로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주
는 이들이 바로 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넬은 한곡 한곡이 아닌 전체 앨범을 통해
서 만나야 한다. 넘치지 않는 적당한 멋진 음악을 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