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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면서 어느 분야든지 처음 시작 할 때는 개론서를 읽거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개론서보다 이 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페이지가 좀 있어보이지만, 역사서에는 흔한 일이다. *책을 수령하면서 생각한 것보다 두꺼워 보인다. 검은색을 베이스로 한 묵직한 디자인 사이 간결하게 명조체로 쓰여진 제목이 두께를 더 강조한다. 페이지는 750정도인데, 2천페이지가 넘는 성경보다 훨신 두껍다. 양장본이 아니다. 오랫동안 보관하지 말고 어서어서 소화시키라는 것 같다. 마구마구 펜질해줘도 부담이 없을 것 같다. 목차를 흩어본다. 책을 고를 때는 눈에 띄지 않던 주제들이 보인다. 관심있었던 것들도 많다.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양한 저자들의 짧은 글들 이라, 제대로 읽으려면 오랫동안 조금씩 읽어가야 할 것 같다. 꾸준히 읽어야 겠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역사 속의 커뮤니케이션을 살펴보려는 일련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5판까지 진행된 걸로 보아서 일회성 프로젝트는 아닌 것 같다. 번역은 ~의 역사라서 마치 역사책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품게 하는데, 원서는 Communication in Histroy , 역사 속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역사 쪽보다는 커뮤니케이션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시대별로 나눈 체계아래 논문들이 묶여 있다. 논문의 저자들의 전공은 다양하다. *1부 원시 문명의 미디어 첫 글은 하버드 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는 알렉산더 마샥의 빙하시대인의 예술과 상징 이다. 그는 예술이 마구잡이 낙서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브레유 신부의 견해를 소개한다. 브레유 신부는 마구잡이 낙서에서 우연하게 동물상을 인식한 것이 예술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침팬지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해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마샥은 각각의 주장에 반대 근거를 든다. 그리고, 예술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기 보다는 인간의 의지 아래 등장했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고대에 대한 주장이 늘 그렇듯 브레유 신부의 주장도 마샥의 주장도 모두 결정적인 근거를 갖추지는 못한 것 같다. 두번째 글은 텍사스주립대의 고고학자, 데니즈 슈만트 베세랏 교수의 최초의 글쓰기 조짐 이다. 그녀는 먼저 상징과 기호를 구분한다. 상징은 우리를 숙고하게 하지만, 기호는 행동에 묶인 커뮤니케이션 장치일 뿐이다. 또, 상징은 문화권 내에서만 유효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사라진 문화권인 선사시대의 상징 유물들은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세번째 글은 이니스의 고대 제국의 미디어 이다. 그는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을 대상으로 글쓰기가 사회에 준 영향을 탐구한다. 그는 돌에서 파피루스로의 변천과 정치, 종교적 제도의 변화가 이집 문명 전반에 굉장한 부담을 안겨주었고, 그 때문에 이집트가 시리아 셈 족 군사들에게 정복당했다고 주장한다. 그 외에 특별한 주장은 없고, 대체로 고대 제국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사를 설명하고 있다.
네번째 글은 마샤 아셔와 로버트 아셔의 글쓰기 없는 문명 : 잉카제국과 결승문자 이다. 이 글은 결승문자의 사용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탐구와 설명이 주를 이룬다. 서양문화권과는 다른 문화권에서 사용한 기록체계인 결승문자를 탐구하면서 커뮤니케이션수단과 영향 등의 보편성과 개별성 등의 주제를 탐구해볼 수 도 있을것이다.
다섯번째 글은 이튼 칼리지의 앤드류 로빈슨의 글쓰기의 기원 이다. 제목 그대로 최초의 글쓰기에 대한 탐구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실한 답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인간도 과거에 대해서, 특히 최초의 것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주어진 유물을 통하여 고대 이집트, 중국, 중남미 등의 고대문명에 남아있는 회계 유물들을 통해 글쓰기가 실용적인 회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2부 서양사회의 문자 해독 전통
1부에서 글쓰기의 등장을 다루었다면, 2부는 그로 인해 발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혁명적 변화를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말의 문자화다. 초기 글쓰기가 정치, 경제적 목적에 국한되었다면 다음 단계부터는 점점 언어의 표현수단으로 쓰일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버지니아 주립대학교의 교수인 조해나 드러커는 알파벳(문자)의 등장이라는 글에서 초기 알파벳의 표현을 분석하고 있다.
예일대학의 에릭 해블록은 그리스의 유산 이라는 글에서 고대 그리스 알파벳과 그 사용을 탐구하고 있다. 이 글은 드러커의 글보다 좀 더 구체적이다. 나아가, 해블록은 고대 그리스에서 보통 사람의 읽기가 창출될 수 있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토론토 대학의 로버트 로건은 글쓰기와 알파벳의 영향이라는 글에서 해블록의 글을 보완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세인트루이스대학의 월터 옹은 구두언어, 문자해독, 현대매체라는 글에서 글쓰기와 인쇄의 영향을 파악하려면 구두언어적 전통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논의를 최근의 전자 미디어에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제임스 버크와 로버트 온스타인은 중세시대의 커뮤니케이션과 신앙이라는 글에서 중세의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관찰하고 있다. 교회가 모든 지식을 관리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교회에 맞지 않는 지식들이 폐기되거나 묻혀갔다. 이슬람문화권에 보관된 문서고에서 과거의 지식이 되살아나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되기까지를 덤덤하게 서술하고 있다.
*3부 인쇄혁명
컬림비아 대학의 T.F 카터 교수의 글은 고대 중국부터 시작된 종이와 인쇄기술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아마 중국의 종교탄압이 없었더라면 최초의 목판인쇄물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모든것은 추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탄압은 동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루이스 멈포드는 초기 활자업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활자의 모양의 실용성과 예술성 사이의 고민도 들춰진다. 또, 문맹자와의 관계도 살펴본다.
엘리자베스 아인젠슈타인은 글 읽는 대중의 등장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책의 보편화와 독서대중의 등장 사이의 밀접한 관련은 대개 누구나 짐작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좀 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텍사스주립대학교의 하비 J 그라프는 근대 초기의 문자해독 상황을 살펴본다. 그는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혁명의 주도세력들이 혁명의 성공 및 지속에 문맹퇴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유럽의 문맹퇴치와 종교개혁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 하다. 단,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비율이지, 당 대에도 여전히 문맹률은 낮지 않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존 B. 톰슨은 당시의 '뉴스'를 살펴본다. 근대적 우편제도가 등장하면서 세계를 잇는 커뮤니케이션 망이 조금씩 넓어지고 견고해졌다. 초기 신문은 대개 국 외의 일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 관심을 국내로 돌렸고, 당연히 정권과 마찰을 빗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등장하면서 양상은 조금 변했다. 어쨋거나, 정부는 언론과 썩 좋은 관계를 맺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4부 유선 전신의 세계
루즈벨트 대학교의 데니얼 헤드릭은 원거리 통신의 변화를 살펴본다. 주로 서양의 사료가 중심이 되는데,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봉화와 같은 시각적 수단에서 전기를 통신에 활용하기까지의 과도기를 서술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전기통신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새로운 수단은 보편화되었다.
이코노미스트의 톰 스탠디지는 전기통신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부제를 '빅토리아 시대판 인터넷'이라고 달고 있는데,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크게 무리없는 것 같다. 전신의 시작부터 확장까지 서술되고 있으며 해저 가설의 에피소드는 꽤 흥미로운 편이다. 일전에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호기롭게 적은 관련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마이클 셔드슨은 뉴스 보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다양한 근대적 매체(신문, 뉴스 등)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저널리즘이라 할 것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날의 고급스러운 저널리즘의 정착사에서 뉴욕타임스를 하나의 주춧돌로 보고 있다. 품위를 강조하며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 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그들은 황색언론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려 애썼다. 그들의 보도 행태는 오늘날의 저널리즘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듯 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의 클로드 S. 피셔는 전화의 등장을 서술하고 있다. 1876년 3월 벨에 의해 최초의 전화통신이 개설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사업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일종의 모험이었지만, 시대적 분위기와 맞았는 지 비교적 성공했다. 이런 저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과정을 거쳐서 19세기말 미국 사람 250명중 한 사람은 전화에 가입하게 되었다.
컬럼비아대학교의 제임스 W. 캐리는 좀 포괄적인 논의를 하려 한다. 그는 전신과 시간, 공간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이런저런 논의가 이어지지만, 저자는 이를 19c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전은 인류 역사에서 차별성을 나타내는 기준으로서의 '공간'을 축소시켰다 라고 요약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20c말 등장한 인터넷은 그러한 공간을 더더욱 축소시켜 아예 하나에 가깝게 만들어버렸다.
*5부 이미지 테크놀로지와 대중사회 등장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미술사학과 교수 율리히 켈러는 사진 저널리즘의 등장과 초기 모습을 관찰한다. 링컨은 집무실에서 사진을 찍은 첫 대통령이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보다, 함축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전달한다. 그래서일까, '연출기법'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초기 사진은 보도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지만, 점점 역활이 커졌다. 사진 전문기자가 등장했고, 보도용 사진만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포토 에이젼시도 등장했다. 이러한 것들은 사진 저널리즘을 제도화 시켰다.
MIT의 로잘린드 월리엄스는 당시 불어온 소비의 물결을 관찰한다. 박람회와 백화점, 전력의 보급 등은 당시 사람들에게 일련의 환상을 제공했다. 그러한 환상은 소비로 이어졌다.
마운드 홀리요크대학교의 치트롬은 영화의 초기 모습을 살펴본다. 17세기의 환등기를 거쳐 19세기가 되면 투영 동화 사진술이 개발된다. 에디슨의 조수였던 딕슨은 최초의 영화 촬영기인 키네토그래프를 만들었다. 5센트짜리 극장이 붐을 이루기 이전에는 주로 곡예장, 이동 쇼 등에서 상영되었다. 곡예로 다루어진 셈이다. 1909년 즈음부터 영화는 산업화되기 시작했다. 초기 영화의 주제가 너무나도 무분별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곧 최초의 영화에 대한 제재법규가 제정되었다.
스콧 에이먼은 1927년의 할리우드를 통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변천을 관찰한다. 그는 무성영화가 관객들의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음성의 출현은 영화산업과 그 주요 인물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듯 하다.
휴스턴 대학교의 집 파울즈는 대중매체의 변화와 스타 시스템의 등장을 살펴본다. 1920년대를 전후하여 도시 노동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꽤 좋아졌다. 그들 중 일부는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오락산업이 커지기 시작했다. 야구의 프로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영화산업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안정된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 일련의 모델을 구성하려 했고, 그 결과가 '스타 시스템'이다. 이는 배우들에게 상투적인 이미지를 요구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은 이 시스템에 순응했다.
메릴랜드 주립 대학교의 잭슨 리어즈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광고의 등장 이면을 서술한다. 20c가 되면서 광고주들은 이동하는 수백만 명의 군중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광고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면서, 그들은 광고의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들을 쏟아냈다.
*6부 라디오 방송의 세계
마르코니가 무선(또는 라디오전신)을 발명하면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는 대중사회의 등장을 더욱 가속화했다. 세계1차대전 이후 무선 음성 방송이 활성화되었다. 이는 점점 산업화되었다. 더글라스는 1920년대를 살펴보며 취미오락에서 주요 대중매체가 된 라디오 방송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스털링과 키트로스는 당시 라디오 방송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힘즈는 광고주의 등장과 라디오 방송과의 권력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맥루언은 조금 추상적인 논의를 펼친다. 그는 일상의 현실에서 미디어의 역활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들의 지각을 탐색한다.
*7부 텔레비전의 세계
북미 최초의 TV방송은 1939년에 시작했다. 라디오에 열광했던 대중들은 새로운 매체인 TV로 빠르게 옮겨갔다. TV문화는 곧 사회의 핵심이 되었다. 고고학자 카펜터는 미디어는 중립적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텔레비전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라디오, 영화, 연극, 도서와 구별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슈피겔은 1950년대 TV의 사회적 영향을 살펴본다. 그녀는 당시 TV 프로그램에 중산층의 소망이 반영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보드로흐코지는 1960년대에 등장한 히피의 반체제 운동, 반전운동 등의 젊은이 문화에 대한 TV의 대응을 살펴본다. 그녀는 이러한 반문화적 분위기가 당시 유행프로그램에 준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스티븐스는 라디오, 텔레비전과 여타 미디어 와의 상호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
*8부 정보화 시대의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
마지막 챕터는 컴퓨터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 미디어는 그 발전속도가 엄청나서 저자보다도 우리가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앞선 논의들을 바탕으로 연속선상에서 이 현상을 고찰해보려는 것 같다.
베니거는 컴퓨터라는 매체의 강점을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하나의 형태로 동일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원 형태가 텍스트였는지, 음성이었는지, 영상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컴퓨터라는 매체 안에서는 모든 것이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컴퓨터는 현대의 가장 보편적인 미디어가 될 것이라고 베니거는 주장한다.(그리고, 실제로 오늘날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인다.)
코원은 전자공학의 발전과정이 이전 형태의 미디어였던 라디오의 그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녀는 이 과정을 하나의 드라마(이런 개발/발전을 컨트롤하려는 자들 & 그러한 컨트롤을 제한하거나 부정하려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메노비치는 베니거의 컴퓨터-보편미디어론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라는 매체가 가진 변화의 힘이 게임, 애니메이션, www 등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고 관찰하고 있다.
어베트는 인터넷을 그 발전과정 등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그녀는 결코 인터넷이 한 두 사람에의하여 발전해오지 않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그녀는 인터넷의 발전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이들 간의 조화와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짚고 있다.
마지막 글에서 볼터와 그루신은 www(월드와이드웹)을 고찰한다. 그들은 www가 결코 과거의 미디어적 현상에서 외떨어진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듯 하다. 아울러, 이러한 현상이 현재 완성되지 않았으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책을 덮으면서
전체적으로 좀 읽기 어려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번역이 좀 어렵게 되어 있다. 사용된 단어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원문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원문도 그런걸까?
사실 그것보다 이 책이 커뮤니케이션 서적이라는 점에 그 이유가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주로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비교적 추상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편이다. 반대로 문화사가들의 글들은 상당히 구체화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후자가, (특히 아마추어에게) 읽기 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각 챕터별로 앞에 머리글이 있어서 읽기에 지침을 제공해 주는 것은 괜찮았다.
과연,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히 흩어볼 사람이 있을까? 아마 그런 사람은 역자와 편집자 정도 밖에 없을 것 같다. 전공자들도 과연 바쁜 시간을 쪼개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이 책의 분량은 1학기에 강의할 수 있는 양도 아니다. 그러한 책을 1달 안에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 어쨋거나, 어설프게나마 흩어보고 글을 썼다. 읽고 정리하고 분석해서 쓰는 데, 시간이 정말 많이 들어갔는데 결과물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책 읽느라 못 한 것들, 못 읽은 책들이 꽤 많은 데 말이다. 어쩃거나, 이 책은 애증의 기억으로 남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