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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조카를 이해하고 싶어서 구매했다. 내가 요즘 공부를 가르쳐주는 조카는 수시로 멍~을 때린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건.. 꼭 혼자만의 세상이 따로 있는 것마냥.. 알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야 더 공부를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신다'님의 리뷰를 보고 바로 구매버튼을 눌러버렸다. 참 좋은 책인데.. 늦게 왔다. 대부분은 주문한 다음날이면 근처 편의점에 도착하는데.. 이 책은 이틀이나 더 걸렸다. 그리고 그 이틀 사이에 나와 내 조카 사이가 많이 휘청했다. 모르겠다. 지금 조카의 마음이 어떤지.. 다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하루만 더 빨리 도착했더라면..하는 아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조카를 포기할 뻔 했다. 원래도 멍~과 똘똘할 때가 왔다갔다하는 아이이긴 한데.. 그날은 멍~ 상태가 너무 심했다. 한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10문제 중에 한 문제만 어거지로 정답으로 해주고 나머지를 설명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시간을 줄테니.. 천천히 다시 풀어보라고 시간을 주었는데.. 아이는 의욕이 없었다. 푸는 건지 마는 건지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그런 멍~한 상태.. 그동안 그래도 힘들어하면서도 잘 따라왔던터라.. 그날도 그래도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는 랙 걸린 컴퓨터 마냥 한 문제를 가지고 20분이 넘도록 꼼짝을 안 했다. 아니 못했다인가? .. 하기 싫은 거 억지로 시킨다고 시위하는 것만 같아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는 아이 아빠에게 전화해서 데리고 가라고, 얘는 지금 공부할 맘이 1도 없다고, 무조건 당장 데리고 가라고.. 그리고는 모자 푹 눌러쓰고 귀에 이어폰 끼고 눈 꼭 감고 아이가 갈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나는 덩치 크고 나이만 많은 '애'였다. 그리고 집에 가서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자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이 책을 읽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면서 조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나는 좋은 고모, 어른이고 싶었는데.. 그냥 '어른이'였다. 아직도..ㅠ
p.17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는 아이들을 보면 그런 말 합니다. '꿈이 없어도 좋으니까 포기하지는 말자. 살다 보면 또 하고 싶은 것이 생기는 법이야. 그렇게 살아가는 것 중에, 특히 너희들만 할 때는 책 읽는 것도 아주 중요해. 왜냐하면 책 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길이 있거든. 나도 책 속에서 희망을 찾은 사람이란다……' 라고 말하지요.
그렇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꿈이든 뭐든.. 더욱이 내 사랑하는 조카인데.. 나는 순간의 울컥으로 그 아이를 놓아버릴 뻔했다. 지금도 너무 아찔한...ㅠ
p.20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잘했다, 힘내라, 쉬면서 해라 같은 말이라고. 여러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잘했다! 힘내라!" 하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러 니까 아이들은 힘들어할수록 공부가 안 될수록 누군가에게 격려를 받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워낙에 자신감이 없어서 "잘하고 있어!", "쫌만 더 힘내보자!"라고 공부 시간에 종종 응원을 하기는 했지만 한심하게도 쉬면서 해라,는 말은 해준 적이 없다. 아무리 방학이여도, 하루 종일 남는 게 시간이여도, 안 하던 공부를 갑자기 조금 무리해서 하게 되면.. 힘든게 당연한 건데.. 나는 이 정도쯤은 참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오히려 다그쳤다. ㅠ
p.24 "이제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가장 쉽게 하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말은 뭘까요? 이게 제가 오늘 청소년문학에 대한 말을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질문이 애매하다는 것을 인정했고, 그래서 곧바로 "그건 '그냥'이라는 말입니다" 하고 말해버렸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만만하게 생각하면서도, 가장 의지하고 싶은 말은…… '그냥'이라는 말입니다. 그냥!" 그제야 내 앞에 앉아 있는 어른들은 그 말뜻을 알아듣고는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짓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버릇처럼 내뱉는 '그냥'이라는 말처럼 어른들을 납득하기 힘든 말도 없을 것이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청소년들의 입에 달라붙어서 살아가는 '그냥'이라는 놈! 그놈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또는 그런 모양으로 줄곧,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는 것.' 비슷한 말로는 가만히, 그대로, 어쩐지 등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듯 모를 듯한 말인데, 어쩌자고 그 말이 청소년들이랑 동맹을 결성해 어른들을 혼란시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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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이라는 말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 그들이 되었을 때만 비로소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 말에 의지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은 그걸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냥'이라는 말은 스스로 그 말을 내뱉는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나는 '그냥'이라는 말을 들으면 수많은 청소년의 얼굴이 떠오르고, 외계인의 언어처럼 애매모호한 그 단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가장 잘 맞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게, 나는 '그냥'이란 단어에 별 반감이 없다. 나도 덩치만 크고 나이만 많은 '어른이'라.. '그냥'이란 말을 달고 산다. 특히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을 때, 말 섞으면 피곤할 것 같을 때.. 그리고 그 '그냥'이란 단어는.. 대개 나보다 어른인 사람에게 참 많이 쓴다.ㅡㅡ;;
p.45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나도 아이들이 꼰대라고 부르는 어른이 돼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진다.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나에게 다가와서 봄바람처럼 어루만져주고 장다리꽃처럼 웃어주었던 어른들. 비록 생은 가난했어도 봄나비처럼 아름다웠던 그분들만큼만 살아간다면, 그건 나름 괜찮은 삶이 될 것 같다.
…중략…
우리 사회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멘토라는 사람도 차고 넘치고, 훌륭하다는 평판을 받는 사람도 차고 넘치지만 진정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린아이한테도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누구한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그들의 말을 들을려고 하는 사람,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어른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쫌쫌쫌 많~이 지난 어느날.. 미니스커트만큼이나 짧은 교복치마를 보며 생각했다. 쯧, 단정한 교복이 얼마나 이쁜지.. 교복다운 교복이 얼마나 이쁜데.. 왜 쟤들은 모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순간 나도 꼰대가 다 됐구나..싶었다. 우리 때는 교복치마가 월남치마였는데.. 그걸 까먹고서는..ㅡㅡ;;;ㅋ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내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좋은 어른. 아~ 저런 사람이 진짜 어른이지..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생각만큼 내가 잘 자라지 못할 뿐.ㅠ
p.53 "선생님, 그걸 제가 어떻게 설명합니까? 그래서 전 그냥 이렇게 말했어요. 물론 맛있는 거 먹을 때도 좋고, 어디 여행 갔을 때도 좋지만, 그냥 집에서 멍 때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요. 학교며 학원, 친구, 뭐, 뭐…… 다 잊고 그냥 무의식 상태로 있을 때, 그때가 좋다고요. 근데 엄마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저한테 맛있는 거 자주 먹자고 하고, 자주 어디 여행 가자고 하고, 힘들면 공부 많이 안 해도 된다고 하시고…… 근데 전 그냥 멍 때리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는데, 그런 꼴을 못 보니, 언제부턴가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지고, 가족 여행도 싫어지고…… 근데 가족 여행은 힐링이 아니잖아요? 역시 부모님이랑 마주쳐야 하고, 그렇다면 일상이거든요. 저는 그런 일상과 먼, 일상에서 벗어나서 혼자 있고 싶은 거죠. 그게 안 되니까 그냥 멍 때리는 거구요. 청소년이라는 게 어디 혼자 맘대로 갈 수도 없잖아요? 우린 자유인이 아니더라고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지만 우린 어디 맘대로 못 가요. 반드시 부모의 동의가…… 그래서 멍 때린다고요……."
나는 멍~ 때리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터라.. 크게 공감은 못하지만 왠지 이해는 된다. 근데.. 이 책 속의 아이와 내 조카의 멍~이 과연 같은 종류일까? 왠지 그런 것 같지 않은 이 느낌적인 느낌이.. 참으로 불길하고 씁쓸하다. 같은 거면 차라리 다행인데..ㅡㅡ;;;
p.64 "…중략… 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성공했다고 생각해. 그건 틀리지 않을 거야." 나는 지현이한테 네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야 자신감이 찾아온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현아, 난 서른의 문턱에서 '나를 지지했어.' 진심으로 나를 믿고, 위로해주고, 고맙다고. 못난 정신을 만나서 육신인 네가 너무 고생했구나.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하구."
육신한테 미안한 1인 추가요~! 나는 아직도 나를 그닥 믿지 못한다. 내가 나를 배반할 때가 수도 없이 있었다. 지지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꿈도 포부도 여전히 없다. 그냥 나의 하루 하루가 안전한 안녕이길 바라는 그런 소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저렇게 말씀해줄 수 있는 작가님이.. 부럽고 멋있었다. 나도 그런 어른이고 싶은데..^;;;
p.89 성준이는 내 친구의 아들이었는데, 고등학교에 가서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친구관계도 원만하지 않았고, 당연히 성적은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도 몇 번 그 아이를 만나서 위로해준답시고 밥을 사주고는 이러저러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아이들을 만나서 위로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성준이의 파릇파릇한 눈빛이 너무 꺾여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성준이는 시종일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자주 눈을 깜빡였으며, 무슨 말을 하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런 성준이를 눈에 담고 오는데 내내 마음이 아팠다.
내 조카는 그렇게 적응을 못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성적이 너무 바닥이라.. 자신감도 같이 바닥이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공부를 좀 봐줘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던 차에 조카가 친구들에게 수학을 너무 못해서 놀림받았다고.. 수학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을 때.. 필요성을 느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지들은 얼마나 잘하길래~ 남의 귀한 조카를 놀리나~싶어 학교를 쫓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마 나도 그 무리였으면.. 놀렸을 것 같아서..ㅡ,ㅠ;;; 여하튼 지금 같이 공부한지 50일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자신감은 바닥이다. 문제지 앞에만 앉으면 얼음이 되어버릴 때가 일쑤이고, "아마 다 틀릴 거예요~"가 입에 배어 있는 이 아이를.. 나는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ㅠ
p.92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그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하도 힘들어서 신을 떠올리면서 교회를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교회에서 만난 전도사님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오직 하느님에게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아니 미쳐버릴 정도로 맹렬히 기도를 하고, 일부러 소리 내어 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신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근처에 절에도 가보았다. 제발……,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위로 받고 싶은데 그런 존재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중략…
아이한테는 아무런 탈출구가 없었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죽음을 생각했고, 그때마다 놀라면서 그런 생각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불쑥불쑥 죽고 싶다는 생각이 게릴라처럼 뇌리를 들이닥칠 때마다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어대고 어디론가 기를 쓰며 도망치려고 했다. 생각하는 뇌를 어디엔가 버리고 싶었다. 자꾸만 죽음을 생각하는 자신이 두려워지고, 이러다가 감당하지 못할 순간이 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꼴등을 한 자신의 성적표가 고향 어머니 앞으로 부쳐지는 순간, 아이는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누가 부르는지, 목적지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마음속에는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의 몸이 불쌍했다.
제발.. 나는 이 단어를 쓸 때의 기분을 안다. 몸이 지독히 아팠을 때도, 마음이 끔찍하게 아팠을 때도 나는 그랬다. 제발.. 몸이 지독하게 아팠을 때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었고, 마음이 끔찍하게 아팠을 때는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란 생각은 다 도려내고 싶었다. 자꾸 자꾸 죽고 싶어져서 부러 잠속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살고 싶단 생각이 간절하진 않더라도 죽고 싶단 생각은 조금 옅어지겠지.. 그렇게 제발.. 간절히 바라며..
p.95 아이는 그때부터 생이란, 오직 한 그루 나무처럼 버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외롭기는 했지만 주변의 나무나 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가로수도 자주 끌어안는 버릇이 생겼고, 작은 풀꽃만 보아도 그것을 꺽어다가 자취방에 다 꽂아두었다. 그들을 보면서 버티는 법을 배웠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마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숙연해졌다가, 죽으려고 했던 그 순간의 감정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죽고 싶다, 그때의 감정은 뭘까. 나는 잘 모른다. 실제로 그 당시 나는 멍해졌고, 그냥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을 뿐이다. 죽고 싶다, 그런 생각은 정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그 순간이 한 생의 시간을 결정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내가 죽지 않았던 것은 버티는 법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나도 버티는 중이다. 작가님이 느꼈던 감정들을 여러 차례 겪었지만 그래도.. 버티는 법을 나는 알았다. 순간, 순간을 넘기면 된다. 그 순간을 넘기면 산다. 그래서 나는 참 많이 잤다. 얼마전에도...
p.101 한번은 단골로 꼴찌를 하는 친구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서 "네가 친구니까, 공부하는 법을 알려줘라" 하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나는 꼴찌를 하는 친구를 불러다가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넌 이해 못하겠지만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는데 안 돼. 금방 까먹어버리고……"하고 말했다. 나는 그때 그 아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도 꼴찌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그 친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꼴찌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들 말처럼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고 꼴찌를 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아예 공부를 하지 않아서 꼴찌를 하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다만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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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꼴찌 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학교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야. 꼴찌인데도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다른 것으로 인정받는다면, 그건 괜찮아. 하지만 꼴찌여서 스트레스 받고 그러면, 그렇다면 학교를 잠시 쉬어도 돼. 공부란 꼭 학교에서만 하는 거 아니거든." 이것은 한때 꼴찌였던 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이자 자그마한 대안 제시라고 할 수 있다. 잠시 쉬는 것도 그런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벗어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공부 외에도 길은 많다. 그러니 더 이상 상처받지 말고, 꼴등이 꼭 필요한 학교라는 구조 속에서 허둥거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조카는 그림을 잘 그린다.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곧잘 그리곤 한다. 동영상 편집도 할 줄 안다. 나는 봐도 봐도 못 외우는 영화 대사나 애니메이션 대사를 줄줄 왼다. 그리고 상상을 잘 한다. 수학 문제를 공부할 때 도형은 상상하면서 푼다. 이런 면에선 내 조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절대 못하는 걸 저렇게도 잘하는데.. 성적이 바닥이고 반응도 좀 늦어서 자신감도 바닥이고 상처를 잘 받는다.ㅠ
p.164 그 시절에 내가 어느 정도 책을 보았는지 그건 모른다. 다만 내 손에서 하루도 책을 놓지 않았고, 내 가방은 늘 책으로 가득차서 어느 범생이의 가방보다 더 무거웠다. 나는 그런 무게를 은근히 즐겼다. 그리고 내가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책은 그 누구보다도 많이 읽었을 것이고, 그것이 훗날 내 살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작가가 되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 지식들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자부했다. 그리고 돈을 벌게 되면 가장 먼저 나만의 서재를 꾸밀 것이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책 때문에 그 시절을 버티어낸 것이다. 아마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소년이 그 시절을 버티어냈을지…… 솔직히 나는 장담할 수 없다.
근 20여 년간 나를 버티게 한 것도 책이라 생각된다. 처음 죽음이란 것을 생각했을 때 울 고등학교 문학선생님은 주 1회 독서노트 제출을 명하셨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는 두려움보다 문학선생님의 눈이 더 두려웠다. 어쩔 수 없이 매주 한 권씩 읽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매주 한 권이 며칠에 한 권, 하루에 몇 권이 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책에 가까워졌고, 힘들 때마다 관련된 책을 하나 하나 찾아가며 읽고, 부러 서평이벤트를 신청해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의 책도 읽어보고 그렇게 지금까지 잘인지는 모르지만 버티고 있다. 그리고 꿈은 이뤘었다. 나만의 서재. 작년까지 3면을 책장과 책으로 채운 방이 있었다. 그리고 책읽을 때 앉으면 좋을 흔들의자도..ㅎㅎ 꿈을 이뤘지만 잘 사용하진 못했다. 역시 책과 나는 한방에 같이 있어야 함을.. 새삼 지난 3년을 보며 느꼈다. '방=서재'여야 책을 더 가깝게 두고 읽을 수 있다.
p.178 인간이란 동물이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일정 부분 꼰대의 되물림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이란 나이가 들어갈수록 누군가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본능이 강해진다. 그것은 먼저 경험하고 배운 것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자연스러운 본능이기 때문에 뭐라 할 수는 없다. 아이들도 그건 안다. 다만 그 방법적인 측면에서 아이들은 '꼰대'라는 방점을 찍고 맹렬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존재적인 위치를 이용해 아랫사람에게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본능인데.. 나는 왜 이 본능이 왜 이렇게도 싫은지..ㅠ
p.187 아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꿈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일인지 깨달았다. 꿈이란 가능한 것이냐 불가능한 것이냐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누군가 꿈꾸는 것,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 그것이 꿈이다. 그런 꿈이 없으면 가슴 속에서 따뜻한 힘이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멋지고 즐거운 일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무 살 이후로 꿈을 갖는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갖고 싶은데 무언가 절실히 하고 싶은 게 없다. 그냥 다만..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마시며 책 읽을 시간과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비록 가난한 생生일지라도 비루하게는 살지 말자가 나의 신조이자 자존심이랄까..
너무 좋은 책을 읽었다. 너무 좋은 책을 쓴 어른을 만났다. 너무 좋은 책을 쓴 어른을 만나서 닮고 싶어져 좋았다. 나는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예전에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를 읽었을때 딱 이랬는데..ㅎㅎ 어쩌면.. 이 책이 나의 2019년 책이 될 지도 모른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팍~ 든다.__________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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