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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25, 한기 17, 확대된 역사지평.
곽광의 처는 허황후를 독살하여 딸을 입궁시키더니, 허황후가 남긴 아들 유석이 태자가 되자 딸을 시켜서 태자마저 독살하려 하네요. 허황후는 건강한 사람도 위험한 출산 때를 노려서 어찌어찌 성공...했지만 이것까지 성공할 리는 없죠. 저런 아내를 제대로 단속 안 했다는 점이 결국 곽광의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곽씨는 예상대로 세력이 깎여가는 걸 못 견뎌서 천자를 폐위할 모의를 하다가 들키고 체포당하고 곽황후는 폐위당한 끝에 자살, 곽씨들은 주멸당합니다. 사마광의 평에는 곽광은 어쨌든 충성스럽게 한 왕조를 보필했는데, 곽씨 집안에 아무도 없게 한 것은 효선제도 은혜를 적게 베푼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쨌든 본인을 옹립한 것은 곽광이고, 선대제들을 보좌한 공도 있으니까요... 근데 황제 입장에서는 조강지처 황후를 죽이기까지 했으니 또 납득가기도 하고...?
그리고 곽황후가 떠난 자리에는 총애하는 후궁들(관도공주의 어머니 화첩여, 회양헌왕의 어머니 장첩여, 초효왕의 어머니 위첩여)이 아니라 '곽씨가 황태자를 해치려고 한 것을 거울삼아 후궁 가운데 아들이 없고 근신하는' 왕첩여를 세웠는데 황후로 삼았지만 황제의 아내라기보다 태자의 어머니로 고른 듯, 계속 총애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왕씨 일족이 후일 역사에서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하면 이것도 업보를 쌓는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제목이 확대된 역사지평이라서 뭔가 있나... 했는데 딱히 눈에 띄는 내용은 안 보이네요...? 나이가 여든 살 이상의 사람은 (무고, 살해, 상해 제외) 연좌시키지 말라는 등 죄인의 처우에 대한 내용은 아마 본인이 죄인의 후손으로 이름뿐인 황족으로 살아왔던 경험 때문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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