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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31, 한기 23, 우유부단한 성제
왕봉이 병석에 눕자 성제는 왕담을 후계자로 생각하지만 왕봉은 왕음을 추천하고 왕담은 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제는 왕담도 썼고... 당연히 둘 사이는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제는 투계 따위를 보러 미행하며 부평후(=장방. 성제의 고모 경무공주의 아들이며, 아내는 허황후의 여동생이라 최측근)의 가인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왕씨의 사치가 도를 넘었는데(속으로 이를 악물었지만 아직 말을 아니하였다. 마치 미앙궁의 백호전과 비슷하니, 이에 황상이 화가 나서 거기장군 왕음을 책망하였다...) 질책하면서도 '황상은 다만 그들을 두렵게 하려고 하였을 뿐이지 실제로 주살할 생각은 없었다' 라고. 이 때 어떤 이유에서건 보여주기식 처벌을 받게 했다면...?
허황후와 반첩여가 총애를 받았는데, 반첩여는 성제와 연 타기를 사양하면서 '현명하고 성스러운 군주들은 모두 명신들이 곁에 있었는데, 3대 말기의 군주들은 마침내 폐첩들이 있었으니' 라고 진언하고 성제는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양아공주의 집에서 조비연과 그 여동생을 불러들인 뒤 조비연은 총애를 빼앗긴 허황후와 반첩여가 후궁들을 저주한다며 참소해 허황후는 폐출당하고 반첩여는 참소를 하지 않았다고 훌륭하게 변명하여 용서받지만 총애를 되찾지는 못하고 태후를 봉양하러 간다며 빠져나갑니다. 후궁으로서 황제에게 올바른 행실을 가지도록 진언하여 돕고, 실총하여 위기에 처해도 훌륭하게 벗어나는, 그야말로 능력자네요.
그리고 왕망이 등장했습니다. 일찍이 사사로이 시비를 사들였는데 형제들이 소문을 듣고 알자 (여색을 밝힌다는 말을 피하기 위해) 후장군 주자원에게는 아들이 없는데 이 여자는 아들을 낳을 것 같다며 주박에게 비녀를 바칩니다. 이 어마어마한? 인내력을 다른 곳에 썼더라면... 망탁조의의 시작이 되진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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