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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33. 한기 25, 태후들의 암투와 부태후
성제가 건강하다가 갑자기 죽었는데(기록 속 황제의 죽음 가운데 폭사한 첫 번째 기록이라고) 백성들은 조소의에게 죄를 돌렸고, 조소의는 자살하였습니다. 반표-성제의 후궁 반첩여의 조카가 반첩여가 말한 '성제는 참 좋은 사람인데, 주색에 빠지니 조씨가 안팎을 어지럽혔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 이어지는데... 이걸 군주제 국가에서 군주를 묘사하는 한계겠지요. 부평후 장방은 성제의 사망소식에 곡하고 울다가 죽었다는데 이를 두고 장방이 황상을 사랑했지만 충성심은 없었던, 인의 도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리고 애제 치세의 시작입니다. 태황태후 왕씨, 황태후 조씨 외에 친할머니 부태후와 친어머니 정희가 궁중에 등장하게 되는데 사실상 애제를 키웠다는 부태후는 이제 널 황제로 만들어준 보답을 받아야겠다는 듯(...) 이것저것 요구합니다. 진 장양왕의 어머니는 본래 하씨였는데 화양부인이 아들로 삼았고, 즉위 후에는 하씨와 화양부인 모두 태후로 불렀다며 정도공왕후를 제태후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올라왔는데 외척으로 권력을 휘둘러 온 이들이 새 경쟁자의 출현을 기뻐할 리도 없고 비교대상이 하필 진이네요;;; 오히려 탄핵당합니다. 양자가 되면 보통 친모보다 양모를 우선하는 게 맞다는 식으로 봤던 것 같은데 아닌 걸까요 그냥 친혈육의 정을 믿고 몰아붙인 걸까요...? 어쨌든 부태후 사촌동생의 딸을 황후로 삼고, 결국 정도태후(부태후)는 공황태후로 정희는 공황후로 하며 식읍도 태황태후 왕씨, 황태후 조씨와 동일하게 합니다. 왕망은 미앙궁의 술자리에서 '정도태후는 번국의 첩인데 어찌하여 태황태후와 자리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하여 좌석을 다시 설치하고 이로 인해 부태후에게 미움받아 사직합니다. 왕망이 물러나자 부태후의 사촌동생 우장군 부희에게 사람들의 희망이 모이는데 이쪽은 정말로 겸양한 사람이라서 이미 상도 사양하고 부태후에게 간언도 열심히 해서 친족이 오히려 보정시키기 싫어할 지경이었네요. 반면 부태후 사촌동생의 아들 부천은 사악해서 애제마저 싫어했는데도 부태후가 노해서 면직시켜서 고향으로 보냈다가도 다시 머무르게 했다고...;; '그것은 부태후의 압력을 받은 것인데, 모두가 이와 같은 것이었다.' 성제는 본인이 우유부단하고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는 느낌이 좀 더 강했는데 애제는 친조모에게 이용당해 외척들 사이에서 치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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