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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39, 한기 31, 왕망의 죽음과 군웅의 활약
첫 챕터가 황제 자리에 오른 유현 인데, 용릉대후의 증손이자 경시장군이라 불렸던 유현은 '유연에게 있는 위엄과 엄명함을 꺼렸고, 유현이 나약하다는 것에 욕심을 내어 먼저 함께 그를 책립하기로 정'한 신시병과 평림병의 장수들에 의해 추대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이용당하는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대놓고 선언당한 황제의 운명이란... '남쪽을 향하고 서서 여러 신하들로부터 조하를 받는데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땀을 흘렸고, 또 손을 들기는 했으나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유연을 세우고자 했던 사람들은 실망하여 대부분 복종하지 아니하였다, 는 언급도 이어서 나옵니다.
한편 왕망은 안정된 걸 보이려고 사심의 딸을 황후로 삼고 후궁을 120명(공/경/대부/원사에 지위와 칭호를 맞추어 3부인/9빈/27세부/81어처) 들이고 천하에 사면하고 항복해온 자를 살려주겠다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진짜 120명일지도 의문이지만 망조 든 나라에 후궁이 된 사람들의 운명이란...
유수가 활약하고, 왕망은 한나라 병사들이 왕망이 효평황제를 짐살했다는 소리를 부정하기 위해 애씁니다... 한 평제가 위독해지자 왕망이 하늘에 대고 그 병을 고쳐주고 대신 자기가 죽겠다고 썼던 귀중한 문서를 보관해뒀다가 공개했다고 하는데 과연 당시에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있기는 했을지? 왕망의 신하들조차 믿어주는 척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경시(유현)은 유연 형제의 명망이 높아지자 유연을 죽이고 유수마저 죽이려고 했지만 유수는 형을 위해 상복조차 입지 않고 평상시대로 지내고, 경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유수를 파로대장군 무신후로 책봉합니다. 허무한 가정입니다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이 때 경시가 유수까지 죽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거듭 원망하였고 싸울 생각을 갖지 아니한(기대했던 만큼의 돈을 받지 못해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고 ㅎ) 왕망 측은 결국 무너지고 황황실주(한평제의 처, 왕망의 딸, 당시 32세)는 스스로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고 왕망은... 두오가 죽이고 공빈취가 머리를 잘랐는데 군인들이 '마디마디를 해체하고 살을 저미면서 다투다가 서로 죽인 것이 수십 명'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왕망이 죽었다고 한순간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서... 유수는 형 유연의 죽음을 홀로 애도하고 남몰래 슬퍼하는데, 자신이 조후를 피해 바꿔져 살아남은 성제의 아들 유자여라고 주장하는(왕망 시기에 이미 유자여를 자칭하는 사람이 있어 왕망이 죽였음) 왕랑이 나타나 천자가 됩니다. 그 외에도 전란은 계속되는데 경시는 자각 없는 언행을 하네요(제장에게 '노략질한 것이 얼마나 되오?'라고 묻는다거나 조맹의 딸을 받아들여서 부인으로 삼았던 연고로 정치를 조맹에게 위탁하고 밤낮으로 후원에서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심). 안 봐도 앞날이 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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