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치통감 43권 한기 35, 중원의 재통일. 이번 권은 세조 광무황제 건무 12년부터 시작되는데 성가 용흥 12년이자 한제 노방 3년으로, 주석 연도가 훌쩍 줄어들었습니다. 아마도 중국사에서 IF를 생각하지 않을 결정적 순간 중 하나, 후한의 진정한 시작입니다. 혼란한 시대에는 무인이 필요하지만 평화로운 시대에는 무인이 필요하기 마련, 함께 전장을 달렸던 이들에게 보상은 필요하지만 공신 세력이 너무 강대하면 왕권이 흔들리기 마련... 이 필연적이고 역사 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어 왔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부분을 유수는 잘 해냈다...고 사서는 말합니다. '황제는 비록 공신들을 제어하였지만 매번 구부려서 용납하였으며, 그들의 조그만 실수는 용서하였다. 먼 곳에서 보내온 진귀한 음식은 반드시 먼저 제후들에게 두루 하사하게 하여 태관에 남긴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모두가 그들의 복록을 보존하였고, 주살되거나 견책을 받는 사람이 없었다.' 건무 14년에는 이제 연호가 하나로 통일이 끝났음을 보여주고... 곽후가 폐위되고 음 귀인이 황후가 됩니다. 외부 정리가 끝났으니 내부 정리를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소설의 영향일까요? 19년에는 곽후 소생 태자 유강이 태자의 자리를 사양하고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하며, 유수는 이를 받아들여 유강을 동해왕으로 삼고 음후 소생 유양을 황태자로 삼아 유장으로 고칩니다. 음후가 본래 유수의 부인이었고, 곽후가 황후가 되고 태자 자리를 차지했으나 결국 폐후되고 음후가 황후 자리와 태자 자리를 모두 차지하기까지, 사서에는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갈등이 꽤나 치열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한편으로... 그럼에도 결정적으로 이복형제지간에 피는 보지 않은 것을 과연 누구의 수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번 권도 흥미로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