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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체능 방면으로는 도무지 재주가 없는 편이다. 미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창시절 미술실기 시간이면 막막하고 난처했던 느낌이 종종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어서 좋았던 것의 하나가 바로 내가 소질없는 과목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고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부담감이 없어지니까 뒤늦게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 물론 미술작품 감상에 머물긴 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루블박물관에서의 큰 감동이 계기가 된것 같다. 그때가 벌써 10년전이었는데 그 후로 조금씩 미술관련 서적을 찾아보게도 되고, 화가들의 작품과 생애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어쩌다 한 번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될 수 있으면 미술관과 박물관을 꼭 찾아보게 되었는데, 멋진 예술작품과의 만남이 여행자로서의 설렘과 약간의 흥분에 덧붙여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렘브란트를 알게된 것도 여행지에서였다. 서양미술사에서 렘브란트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60이 조금 넘는 생전에 자화상만 60여점 을 그린 서양 회화 사상 유례없는 특이한 개성의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들은 자기 응시의 화가, 다시 말해서 자지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치는, 내향적이자 인간의 정신적 갈등에 남달리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가로 지적되고 있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젊은 날의 초상부터 죽기 얼마전 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고르란히 작품속에 담은 렘브란트,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로서는 상당히 성공했다고 하겠지만 렘브란트는 한편 말년으로 갈수록 불행한 가정사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 화보집 속 그의 생애에 관한 글 중에서 "그러나 렘브란트의 위대성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역경에 초연하여 자신의 예술에만 집착할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오히려 역경일수록 그의 예술은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나 예술가로서도 뛰어나고 있었다는 점, 그것은 생활의 급변에 의해 화가를 천직으로 삼는 그의 자각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 예술가로서 렘브란트는 결코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예술가는 무엇보다 작품으로 인정을 받아야 마땅할것 같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는 말의 맥락에서 본다면 행복한 화가도 그림을 그리지 않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 화보집에 소개된 40여점의 작품에서 나는 새롭게 렘브란트를 만났다. 작품마다 친절하게 상세한 해설이 있어서 작품 이해가 수월했고, 그의 대표작인 "야경(Night Watch)"과 런던국립미술관에서 마주쳤던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이었다고 하는 "목욕하는 여인", 그리고 몇몇 자화상 등 간혹 눈에 익은 작품도 있어 반가왔다. 도판이라는 한계성때문에 원화의 감동이 덜 전해지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렘브란트의 작품만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친근한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렘브란트의 위대성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역경에 초연하여 자신의 예술에만 집착할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오히려 역경일수록 그의 예술은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나 예술가로서도 뛰어나고 있었다는 점, 그것은 생활의 급변에 의해 화가를 천직으로 삼는 그의 자각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 예술가로서 렘브란트는 결코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