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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비교>는 지구 인류 문명의 수천 년 역사 중에서 세 가지 키워드 조합을 우선 뽑아낸다. 바로 민주주의와 인권, 세계화와 자본주의, 제국과 민족주의다. 이 세 가지 조합은 흔히 세트처럼 따라다닌다고 여겨지고는 하는데, 이 책은 바로 그 지점부터 예리하게 파고들며 분석한다. 그리고 그 개념이 한국의 역사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고, 어떻게 변모했으며,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든지를 아울러 세밀하게 살펴본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이른마 '통념'이라는 것에 은근히 도전하며, 정면에서 뒤집지는 않지만 널리 알려진 버전과 실제 역사에서의 모습은 많이 다르거나 적어도 합리성과 논거를 갖춘 다른 해석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단순히 주입식으로 밀어붙이거나 나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키워드나 개념에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연구한다. 예를 들어 첫번째 챕터인 민주주의와 인권 이야기에서, 세계사를 도식할 때에는 흔히 보통선거와 평등선거를 투표 제도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자 목표이자 이상형처럼 말하고는 한다. 요컨대 일정 금액 이상의 재산이 있어야 한다거나, 고대 로마에서 군대에서 제대하면 시민권이 없던 사람도 시민권을 주는 등 특정한 활동을 이수해야 한다는 식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투표권이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처음에 그런 개념이 만들어지고 출발한 이유를 들려주면서, 그런 단선적인 시선에 대해 은근히 의문점을 던지고 있다. 옛 유럽에서 일정한 재산이 있어야만 투표권을 인정했던 이유는,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이러했다. 돈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의 재산이 있어야만,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는 먹고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돈줄을 쥔 사람에게 투표한다면, 과연 온전히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을까? 발상 자체는 그럴듯하다. 플라톤의 철인정치에서 훌륭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될 거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그럴듯해 보인다. 고대 로마에서 가난한 군인에게도 투표권과 다름없는 권한을 줬더니 군대의 장군을 위해 표를 던지게 되었다는 사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인가? 그러면 자립할 만큼의 재산이 있는 사람은 과연 온전히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투표를 하는가? 이 책에서는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것을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와 인권과 현대적인 의미의 투표권 및 시민 정치를 탄생시킨 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할 따름이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통념과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많다. 목차를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질 것 같아서, 그냥 단순히 통념을 덜컥 믿고 속편해지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을 지경이다. 비단 한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외국의 역사도 높은 비중으로 다루는데, 외국의 옛 이론과 주장을 이해하려면 당시 역사와 시대상에 대해 알아야 할 때도 많아서 더욱 그렇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지식을 아우르면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기에, 막상 읽다 보면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크게 민주주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가 서양 문화권에서 언제 어떻게 생겨나며 어떤 모습으로 변화했고, 오늘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다룬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한국의 역사에서는 그 개념이 어떻게 도입되었고, 근현대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단선적인 통념이나 일명 상식 운운하는 이야기에서는 미처 주목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속속들이 짚어내고 분석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 및 사상사가 절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개인적으로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다룬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지적하는 부분부터 흥미로웠다.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국주의를 발흥하고 식민지를 점령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식민지가 넓어질수록 민족의 자긍심이 높아진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을 받은 나라에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데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신념이 여러 식민지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하고, 제국에서 독립한 뒤에 자체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민족주의는 양가적인 면모가 유난히 많은 주의인데, 이런 부분을 자세하고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대목은 문장 하나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민족주의의 배타적인 면모와 협력과 단합이 잘 되는 면모가 한국 현대사와 현대 사회에서 양껏 발휘되면서, 잘 모르는 사람끼리도 끈끈하게 뭉치지만 때로는 바로 그런 경향 때문에 이런저런 단점이 생겨나는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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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뉴스를 보아도 신문을 보아도 한일 무역전쟁에 관한 이슈 일색이다. 그래서일까. 일 때문에 자주 일본에 가는 나에게, 예전에는 지인들이 요즘 뜨는 맛집이나 핫 플레이스 등을 주로 물어봤는데 요즘은 일본의 정치나 역사에 관한 질문을 주로 한다. 일본에 정말 그렇게 혐한이 많은지, 일본인들은 아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본인들은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없다는데 정말 그런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드디어 한국인들이 일본의 겉모습이 아니라 실체에 관심을 가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반가우면서도 일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애먹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 <역사의 비교>를 만났다. <역사의 비교>의 저자 김대륜은 현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비교역사학 강의를 하고 있다. 비교역사학이란 일국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 개념이나 현상을 중심으로 시공간을 종횡하며 여러 지역의 역사적 경험을 두루 살피는 학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공부하면 일국의 시공간이라는 한계를 넘어 보다 길고 넓은 차원에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라는 세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세계사와 한국사를 동시에 고찰한다. 이런 방식을 취하면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민주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알기 때문에 보다 쉽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따로 따로 공부했던 나라들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각 나라에서 일어났던 개별적인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알기 쉽다. 제1장 '민주주의와 인권'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 태동한 민주주의가 20세기 대한민국의 정치 이념으로 채택되기까지 어떠한 역사적 과정이 있었는지를 고찰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고라'라고 불리는 광장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표결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최초의 민주주의 실험은 여성과 외국인, 노예를 배제했다는 한계가 있다. 사회가 조금만 불안정해도 중우정치로 변질되거나 군주정 또는 귀족정으로 바뀔 수 있다는 불안 요소 또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국민 스스로를 지배하는 정치 이념을 구상하고 시도했다는 점은 의의가 있다. 이 시기 동양에선 군주 한 사람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주의 체제만이 유일했다. 비록 관료 집단의 견제를 받고 군주의 역할은 백성의 삶을 돌보는 것으로 한정되기는 했지만, 관료의 견제가 군주의 권력을 압도하거나 군주가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않는다고 처벌당한 사례는 많지 않다. 구한말 조선에 서양의 정치 이념으로서 민주주의가 소개되었을 때도 민주주의는 '그저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수단'으로서 중요하게 고려되었을 뿐이다. 제2장 '세계화와 자본주의'에서는 대외 무역의 역사와 이로 인해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은 세계화, 그리고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에 자리잡은 자본주의 열풍에 관해 고찰한다. 국가 간에 서로 비교우위가 있는 물품을 교역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경제 시스템이 있었던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 시스템이 두 개 또는 몇 개 정도의 국가 간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벌어지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계기는 영국의 산업 혁명이다. 산업 혁명을 통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영국산 면제품이 세계 시장에 쏟아지자 그 전에 면제품 수출로 이익을 보았던 인도와 이란 등이 면제품 수출국에서 면제품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그 대신 인도와 이란은 면직물의 원료, 즉 원면을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완성품인 면제품을 공급하는 것과 원료에 불과한 원면을 공급하는 것은 부가가치의 차원이 달랐다. 결국 영국은 이 대규모 무역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며 막대한 부를 쌓았고, 이를 본 다른 국가들이 너나할 것 없이 식민지 확보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영국발 자본주의의 확산이고 제국주의의 시작이다. 제3장 '제국과 민족주의'에서는 제국주의가 확산된 과정과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지금도 존재하는 민족주의의 잔재를 알아본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들었던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을 넘어 세계 수위의 열강이 되기를 꿈궜고, 이를 위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인 조선을 침탈해 제국주의의 기지로 삼으려 했다. 일본은 지금도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조선의 산업화는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진행되었고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한 1910년대에는 이미 한국인 소유의 공장이 등장했다. 오히려 일본이 한국 경제에 침투하면서 성장이 저해되었다. 게다가 일제의 식민지배는 한국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 정계와 군부의 엘리트들은 서양 열강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조선이 독립을 유지하거나 일본의 완전한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고 보았고, 조선이 독립을 유지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기에 침탈을 강행한 것이다. 제국주의는 세계 전체의 이익과 평화보다 자국의 이익과 안녕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와 강한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 과정에서 민족 내부에서 민족과 국가 이외의 가치는 무시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일본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쟁탈전에 몰두하느라 국가 내부에 존재해 있던 정치 개혁의 열망을 무시하거나 억압했다. 그 결과 일본은 자국의 경제 발전 수준이나 세계적 위상에 걸맞지 않은 낮은 수준의 정치 발전 단계에 머무르게 되었고, 일본 국민들 또한 국민이 국민 스스로 주권자로서 발언하고 행동함으로써 정권을 바꾸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경험을 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민주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쭉 훑고 나니 그동안 내가 받았던 일본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대답해줄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역사에 관한 지식을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역사적 맥락을 찾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비교>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책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