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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도서를 읽은 이유로서는 뜬금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아이돌 플랫폼 산업의 이해를 위해 달리보 베즐리의 ‘재현 분열 시대의 건축: 생산의 그늘 아래 창조성의 문제’를 읽었다. 그리고 책을 한 번 읽은 지금, 굉장히 만족스럽다. 저자 달리보 베즐리가 평생 공부한 모든 지식을 꽉 눌러 담은 듯한 이 책은, 책장에 두고 세 번, 네 번 곱씹어도 다른 맛이 날 것이라 장담한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를 대비하여, 베즐리의 건축에 대한 생각과 그 근거를 짚고, 중간에 내 생각을 덧붙여 내가 아이돌 플랫폼 산업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적어 두고자 한다. 이 책은 기술이 아이디어보다 중시되고 ‘어떻게 만드는지’가 ‘왜 만드는지’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오늘날의 건축에 대해 말한다. 지금 건축은 자율성, 자기창조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그러한 경향이 나타난 것이 왜 문제일까? 봉준호는 마틴 스콜세지를 인용하면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게 나쁜 것일까? 이제 베즐리의 생각을 알아보자. 베즐리에 따르면, 건축은 체현, 정초, 그리고 문화의 중재 역할을 그 본성으로 갖는다. 건물은 재현이다. 우리 경험은 주어진 실재와 그 재현이 중재되는 공간에 있고, 거기서 일상적 삶의 상황적 조건들과 자연 세계의 공간적 특징은 직접 재현될 수 없고 재현을 통해 소통된다. 따라서 건축은 소통공간을 만드는 일이어야 하는데, 소통공간이란 관계, 상호성, 그리고 이해가능한 연속체를 말한다. 재현은 상징적 재현과 도구적 재현으로 나뉜다. 상징적 재현은 ‘왜 만드는지’가 중요한 전통적 경험에서 오고, 도구적 재현은 ‘어떻게 만드는지’가 중요한 인공적 체계에서 온다. 재현은 아무리 보편적이어도 남겨진 나머지 실재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 나름에 재현 방식을 지정해 주어야 하고 따라서 이중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문화적 가치와 과학 기술의 갈등이다. 최근에 BTS가 진행한 캠페인 문구인 ’Love yourself, and speak yourself’에서 이러한 갈등이 어떤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에 대해 말하라’는 그들의 주장은 바로 요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민에 대한 답으로써 제시되었다. 그렇다면 그 고민은 무엇인가? 바로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다. 나는 내가 스스로 정의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세간의 평판이 결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나’를 ‘건축가’로 치환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는 자신이 놓여진 상황과 맥락에서 자신의 건축을 할 수 있다. “건축가들은 남과 자신을 구별 짓게 하는, 자기 작품에 참신성과 독창성의 기운을 주는 차이를 잘 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작업에 장기적으로 문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공통의 참조와 목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p. 39) 재현이 본성이 상징적 재현에서 도구적, 해방적 재현으로 분열했기 때문에 건축가는 스스로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라는 말은 틀린 말일 수도 있다. “건축은 그 시대에 의존한다. 시대의 내부 구조의 결정화이자, 그 형태의 점진적 전개다. 기술과 건축이 그토록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p. 46)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은 작품이 될 수 없다. 당연히도, 과학 기술만이 전부가 될 수도 없다. 건축가가 스스로의 생각을 최소한으로 두고, 오직최신 건축 기술만을 표현하고자 설계한 괴상한 건물이 최고의 건축일까? 베즐리는 이렇게 말한다. “건축가 자신을 창조성과 관련된 일체의 것을 떠맡는 단독 대행자로 여기는 것이 아방가르드 정신의 표시다. ... 샤로운뿐 아니라 그와 정반대인 미스의 작품에도 이 문제가 있다. ... 결국 미스의 건물들은 ... 고상한 물질적 구조물들로 남아 있을 뿐이다.” (p. 66) “이 지적 구축물에 근거해서, 미스의 건물들에 나타나 있는 해방되고 고립된 실재가 가끔씩은 더 넓은 의미 영역에 놓인다. 이러한 의미는 미스 자신에게나 그의 주장에 설득된 사람들에게나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속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비판적 이해를 지닌 사람들에게 이 주장은 불가사의하고 현혹적이다.” (p. 67) 그렇다면 베즐리가 생각하는 현대 건축이 맞이한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2장에서 소개하는 재현의 발생 조건과 재현 과정, 소통 현상과 소통공간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시작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아주 복합적인 신학, 철학, 정치적 프로그램을 이해할 수 있고, 조각이나 회화의 복잡한 도상 뒤의 의도를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러나 건축에서 이 과제는 대게 구축적, 형태적 이해를 넘어서지 못하고 구조와 형태의 해석에 그치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p. 113) 그 원인은 언어의 문제에 있다. 우리가 처한 인간적 상황과 경험, 그리고 시각적 속성들과 공간의 구조는 모두 연속성을 갖고 있는데, “더 분절된 문화 수준과 건축 간의 의미적 연속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은 건축주, 성직자, 인문학자, 지식인, 예술가, 건축가 사이에 있었을 소통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p. 115) 따라서 소통의 역할이 중요한데, 베즐리는 건축의 침묵적 언어를 건축구축적 구조라고 불렀다. 그리고 베즐리는 그러한 언어적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건축에서 재현의 역할 변화를 르네상스 시대(3장), 바로크 시대(4장), 그리고 현대 시대(5장)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중세 광학에서 바로크 시대의 인공투시도 등장에 대한 분석은 인상적이다. 종교적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빛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구되던 건축 기술들은, 신 중심 세계가 우주 중심 세계로 옮겨가는 후기 르네상스 세계에서 나타난 변화들로 인하여 건축 사상에 변화를 일으켰다고 한다. (개인주의의 성장, 문화의 파편화, 사회적-도시적 제도의 위기, 심각한 종교 대립, 그리고 가치의 일반적 상대화 등) 건축에 있어 현대 시대가 오고, “이론적 지식이 새로운 재현 방식과 조합되자 건축은 고도로 형식화된 분야가 되었다.” (p.378) 도구적 재현이 대두되면서 재현이 양분되기 시작하고, 건축이 단지 기술의 이해에 지나지 않게 되면서 소통공간으로서의 제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현대적 상황은 헷갈리고 현혹적”이다. (p. 425) 베즐리는 그림 6.12에서 NASA가 개발한 VR기기를 언급하며 가상 현실에서의 건축까지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밀라노에 있는 브라만테의 산 사티로 교회의 ‘가짜 콰이어’가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다. (p. 297) “많은 건축가가 더 순수한 기술적 가능성의 영역을 향해 해방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p. 481) 다시 적자면, 나는 이 책을 고른 이유가 문화 산업의 이해를 위해서였고, 따라서 이 쯤에서 목적을 달성했다. 6장까지 읽고 내가 떠올린 것은, 아이돌 그룹과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 그리고 그러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획사의 관계였다. 아이돌 플랫폼 산업에서, 내가 볼 때 기획사는 건축가, 아이돌 그룹은 건물, 그리고 팬들은 체험자다. 아이돌 그룹은 소통공간, 즉 플랫폼으로써 기능하며 기획사가 팬, 즉 잠재고객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컨셉을 잘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성공한다. 이것은 베즐리가 말하는 좋은 건축의 달성 조건과 비슷하다. 또한 기획사가 제시하는 컨셉이 잠재고객이 원하는 것과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소통되는 언어의 종류는 다르지만 앞에서 말한 ‘건축구축적 구조’가 이들 셋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면 아이돌 그룹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은 또 아니다. 세상에 수많은 건물이 존재하듯, “예를 들어 어떤 콜라주가 어떤 형편에서는 추상적이고 혼란스럽고 무의미해 보여도, 다른 이해 조건에서는 의미 있는 구성물을 재현할 수 있다.” (p. 495) 기획사가 생각하는 잠재고객의 대상에도 여러 타입이 있다. 예를 들어, BTS처럼 그들이 주창하는 메시지가 인류적 가치와 맞닿고, 또한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주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아이돌이 있는가 하면, KPOP와 JPOP을 아우르는 시장을 목표로 두고 긍정적 에너지를 주 전략으로 내세워 성공적으로 안착한 아이즈원과 같은 아이돌도 있다. 이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대 의상과 각 잡힌 군무가 갖는 시각적 이미지,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의 내용이 갖는 청각적 이미지를 넘어서는 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아이돌 플랫폼은 성격은 건축적이면서도, 대부분의 체험자가 모니터 2차원 화면으로 그들을 만나기 때문에 회화적 성격을 많이 갖는 것 같다. 그러니 그것을 넘어서는 답을 찾자면,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각 그룹이 갖는 ‘성격’이 그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바로 8장의 내용이다. 그래서 결국 현대 건축에 나타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베즐리가 제안하는 답이 8장이다. 베즐리는 건축에서 시학을 실현하는 것이 답이라고 주장하며, 먼저 회화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 그림이 무엇을 재현하는가?’를 첫 번째 물음으로 삼는 것은 아주 순진무구한 객관주의적 선입견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림을 이해하는 일의 일부일 수는 있다. 무엇을 재현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한, 그 인식은 그 그림을 지각하는 계기가 된다. 상징적 재현에서, 상징은 단순히 의미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의미가 저절로 나타나게 해 준다. 달리 말해, 재현된 것은 그것에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으로 현존한다. 오늘날 재현을 이해할 때 우리는 보통 그런 구별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구별의 중요성도 모른다. … 이 무지의 결과 우리는 진정한 재현의 잔재가 남아 있는 어떤 경험 영역이 있는지 몰랐다. ‘성격’이라는 말이 뜻하는 영역이 그것이다.” (p. 549) 그리고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베즐리의 답은 1장부터 7장까지의 내용을 꿰뚫는 글이기에, 그 본문을 여기 다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워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기겠다. 나는 건축학을 이 책으로 처음 접했기 때문에, 책을 한 번 읽은 지금도 베즐리의 생각과 근거들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자신이 없다. 이 책은 석학에게 받는 수업의 요약서이기 때문이다. 바로크,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 건축으로 이어지는 3장~5장의 경우, 사진 예시들이 있었기에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사진이 컬러가 아니어서, 빛에 대한 예시의 경우는 검색해보고서야 공감했다. 이것은 당연히, 컬러 사진을 찾아가며 읽을 정도로 이 책이 재미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6장~7장에 도달하여 비로소 문화 산업의 발생과 작동 원리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올바른 이해인지는 아직 공부가 덜 되어 잘 모르겠다. 내가 “일차적 경험을 암시적으로만 재현하는 더 의식적이고 지적인 기능에 점차 집중” (p. 107) 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이 책을 또 다시 읽고, 도움이 될만한 다른 책을 또 찾아볼 것이다. 아마 다음 책은 페터 춤토르의 ‘건축을 생각하다’가 될 것이다. 춤토르의 책을 펴기 전에, 베즐리의 책을 먼저 읽은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적었듯이, ‘재현 분열 시대의 건축: 생산의 그늘 아래 창조성의 문제’라는 책 제목과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는, 당신이 이 책을 집어 드는 것조차 주저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다행히도 당신의 걱정과 달리, 이 책은 건축학에 대해서 지루하게 수업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건축 도서의 탈을 쓴 종합 예술 도서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의 건축학 지식이 아주 많이 늘 것이 확실하다. 나는 이 책이 우리가 세상과 마주하여 부딪히는 고민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앞서 맞닥뜨렸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왔는지, 그리고 지금 시대에 그 해법은 어떻게 찾을 것인지 가르쳐주는 지침서이자 문화산업 전반의 이해를 돕는 참고서로 여겨진다. 책을 읽다 쏟아지는 사례 연구에 수업 흐름을 놓친 것 같다면 옮긴이의 말과 목차를 참조하라. 이 책은 정말 잘 쓴 책이어서,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