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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벌써 20호 가까이 동인지를 낸 또문에서 제 1호였던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 다음으로 냈던 제 2호 동인지이다. 86년에 처음으로 나왔다. 농담처럼 오가기도 하는 말이지만, 한국은 프리모던에서 포스트모던까지가 정말로 급속히 진행되었고, 진행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프리모던에서 포스트모던까지가 마구 혼재되어 있는 그런 사회가 아닌가. 여성 문제의 경우에도, 문제 자체야 별 변함이 없겠지만 그 문제를 보는 '시각'은 십년이 멀다하고 변화하며 그렇게 변해 버린 시각과 함께 또 여전히 구닥다리 사고 방식들이 혼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도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권두 좌담은 그런 시각의 변천, 그리고 변화 속의 혼란을, 다양한 연령 층의 좌담 참석자들이 내놓는 경험담과 생각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인호, 고정희, 조혜정, 조옥라, 한현옥, 김효선, 오숙희, 정진경, 김미경, 김애실 등 좌담치고 상당히 많은 인물들(여기, 박완서 선생도 참석할 예정이었다고, 조혜정 교수가 좌담 중간에 밝히고 있다)이 참석하고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한국 (엘리트) 여성의 자립의 역사'이기도 하며 '한국 (엘리트) 여성의 자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이기도 하다. 이제는 거의 '상식'이 되었을 것들(여자에게, 결혼도 중요하지만 '일'이 갖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등등)에 대한 진지한 말들을 읽다보면, 여성의 현실이란게 변했는가하면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는가 하면 변했구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이 말하는 '여성 자립의 조건'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자율성의 확립'이다. 여기에는 경제적/감정적 독립이 포함되고, 열린사회/공동체적 삶의 지향이 포함된다. 이렇게 정리하자면 '구름잡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실제로 이 좌담은 아주 재미있다. 좌담자들도 아주 재밌어하며 했겠다, 싶은 것이 '(웃음)'이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또문 동인지로 이후 '지배문화, 남성문화' '주부, 그 막힘과 트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등이 나왔는데, 이 동인지들이 여성 문제의 좀더 구체적인 측면을 파고 들었다면, 제 2호로 나왔던 이 책은 '개괄적'으로 여성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 책에는, 여성과 결혼/일에 대한 문제제기의 글들과 더불어, 광고와 언어의 여성주의적 비평, 여성의 직업활동 영역에 대한 고찰, 한국의 여성 문학 역사, 을 내용으로 하는 글들도 실려 있다. [인상깊은구절] 이인호: 여성의 경우 자율이라고 할 적에 결혼과 많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결혼에 얽매여서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제는 결혼하느냐 안하느냐에 관계없이 여성이 자율적으로 살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하는 조건들에 관해서 얘기해 봤으면 좋겠어요. 결혼했다고 해서 반드시 자율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조옥라: 우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만 스스로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질 수 있겠지요. 결혼이라는 것이 많은 여성에게는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조혜정: 경제자립과 함께 감정적인 독립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여성 자신이 너무 의존적이어서는 안되지만 남편의 감정적인 의존이 심해도 자립이 어려우니까요. (p.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