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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라마찬드란의 이론들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천재적이면서도 간단해서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쉬 접근할 수 있도록 글을 써 나간다.
하지만 독자와 번역가는 다르다. 독자는 쉬엄쉬엄 책을 읽어도 되지만, 번역자는 저자가 어떤 뉘앙스로 어떤 생각을 표현하였는지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번역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예를 들어 projection이라는 단어를 보자. neurology의 관점에서 이 단어는 특정 신경이 특정 부위로 연결된다는 의미로 쓰여진다. 반면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는 하나의 방어기제로, 투사라는 단어로 이미 번역이 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닥터 라마찬드란이 무슨 관점에서 단어선택을 하였는지 엄밀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역자는 엉망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기계적인 고유명사의 수많은 오타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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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찬드판의 원저는 굉장히 통찰력이 있으며 뛰어난 책이다. 그러나 번역판은 쓰레기이다. 제대로된 출판사라면 이 책은 모두 회수하여 전량폐기 되어야하며 Yes24에서도 같은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으려면 책의 판매를 중단해야한다. 의학자이며 생물심리학을 배웠으며 라마찬드판의 두뇌실험실을 읽은 입장에서보면 이책의 번역자가 무슨 의도로 책을 이렇게 망가뜨렸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이 책은 9장 까지 구성되어있으며 여느책과 마찬가지로 소소한 번역상의 오류는 보인다. 8장까지 읽는데 일주일이 걸렸는데, 9장 한 장을 읽는데3주 이상이 걸렸다. 원서와 대조하면서 오류를 수정하면서 읽었기때문이다. 9장은 중요한 장이다. 이 부분을 읽지않겠다면 책을 사라! 9장을 읽겠다면 오류를 모두 수정한 책이 나오면 그때 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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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뇌를 가지고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일 수도 있다는 글을 오래 전에 읽은 바가 있다. 즉, 연구의 도구와 대상이 겹치는 철학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쉽지 않은 연구 분야가 바로 ‘뇌’입니다. 그래서 더욱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도 한다. 그런 불가능의 분야라고 일컬어지는 뇌 과학 분야도 여러 연구 도구를 이용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의 추측과 심리학적인 분석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분석 틀을 갖추기 시작했고, 따라서 ‘과학’으로서의 자격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서 있는 이 중 한 명이 바로 V. S. 라마찬드란 박사이다.
라마찬드란의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는 몇 가지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그의 뇌에 대한 연구 성과를 펼쳐놓은 책이다. 시각의 문제는 과연 시각이란 것이 무엇이며 보는 것이 아는 것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를 질문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다. 공감각(예를 들어 숫자에서 색을 느끼는 것)을 지닌 사람들을 통해서는 예술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뇌 과학 분야의 가장 큰 연구 성과 중의 하나라고도 하는 ‘거울 신경’을 통해서는 문명의 발생과 자폐증의 문제, 언어의 발생 등을 다루고 있으며, 그 밖에도 미학과 예술의 차이와 진화, 그리고 자의식의 문제도 다루고 있다. 질문은 다분히 철학적이지만 그 질문에 접근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논리적이며 과학적이다. 그리고 의도적인 비틀기라든가 현란한 수사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위에 이상이 있는 환자에 대한 꼼꼼한 관찰과 간단하지만 정확한 실험, 그리고 철저한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 이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명확하게 뇌에 대해서 진화론적인 입장에 서 있다. 즉, 인간의 뇌가 지금의 놀라운 수준의 일을 하는 것은 절대자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장구한 진화적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이상이 생길 수가 있고, 그 이상을 통해서 우리는 뇌의 기능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라마찬드란 박사의 견해인 것이다. 그러나 라마찬드란도 이 문제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다.”라는 식으로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수시로 접할 수가 있다. “~일 것이다.”라는 그의 어법이 바로 지금 뇌 과학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것이 그런 추론을 통해서 발달해왔다는 그의 언급도 뇌 과학이 현재 놓여 있는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즉 다른 과학 분야가 걸어간 길을 걸어가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라마찬드란 박사는 쓴 셈이다. 그러나 그만큼 어려운 분야이면서 밝혀낼 것이 많은 분야라는 것이고, 또한 그만큼 중요한 분야이다. 아마도 그만큼 가치 있는 분야의 현재를 밝히고, 이 분야로 뛰어들 젊은이를 찾고자 하는 바램인지도 모른다.
* 한 가지 불만은 번역이다. 라마찬드란 박사가 결코 어려운 말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어지럽히려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은 도무지 알아먹지 못할 부분이 있다. 그건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더 심해지는데 번역자의 긴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전문 번역자가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쉬운 책을 어렵게 만들어버리면 어떡하라고… (2012.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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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났을때부터 난 내 의지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그게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라마찬드란 박사의 실제 실험 사례를 통해 "지금껏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것들이 나의 자유의지가 아닐수도 있겠구나!" 라는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다.
그럼 지금 내가 리뷰를 쓰고 있는것도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그 전에 뇌가 그렇게 하도록 지시한거란 말인가? 그럼 내가 태어날때부터 생성된 나의 뇌에 프로그램 된 행동 system들은 어디서 왔는가!
그 행동 system을 재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면 나란 사람의 모든것을 바꿀 수 있겠는가?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아닐수가 없다.
인간의 신체 중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뇌!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용하는 뇌는 불과 10% 이내라고 한다 나머지 90%의 영역은 과연 신의 영역일까?
진지한 사색을 하게 만드는 뇌 과학 분야의 명저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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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 당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뇌의 두 얼굴
그런데 이런 엄청난 능력을 지닌 인간의 뇌도 종종 오 동작을 일으킨다. 잘 동작하던 기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지하거나 프로그램 된 것과 다른 동작을 하는 것처럼 보통사람이 수행하는 것과는 다른 패턴의 동작이나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또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인식하여 모든 생활의 기반이 되는 자아를 인지 못하여(자페증) 반 사회적인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일단 뇌에 대한 연구나 자료들 자체가 워낙 어려운 분야이다 보니 400여 페이지의 두께가 무척 부담이 된다. 필자도 이 책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자신만만한 상태까지는 아니어도 ‘뭐,읽으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 동안 읽은 책 중에는 500 페이지가 넘는 책들도 꽤 되었고‘논어’ 나 ‘미의 탄생’같은 어려운 책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솔직히 말하자면 ‘논어’는 읽긴 했지만 내용이 정리가 안되었다… ㅋㅋㅋ 첫 장부터 나온 ‘뇌 구조도’와 뇌 조직의 설명에서 기가 죽어버렸다. 이제 두 달(중간에 이 책보다 약간 쉬운 책을 하나 병행해서 읽었다.)이나 걸리긴 했지만 나름 정리가 되었다.
본서는 대략 아래의 5가지 주제에 대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지 중 일부를 절단한 환자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증상 중에 이미 절단한 환부, 예를 들면 교통사고로 뼈가 완전히 부서져서 절단한 왼팔이 수술 후에도 계속 아픈 경우가 있다. 통증이 통감신경을 통해 전달이 된 것이라면 사고를 당한 팔이 아니라 절단 부위 끝이 아프거나 아니면 통증이 아예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팔에서 오는 통증은 외과적 치료가 끝난 후에도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이것은 뇌 안의 각 조직들과 신경들간을 연결하는 섬유다발의 연결 고리와 자신의 신체지도와 관련이 있다. 뇌에는 자신의 신체와 조직들에 대한 방대한 지도가 그려져 있어서 자신의 신체에 나타나는 상황은 외부를 바라보는 감각기관(오감)아닌 신체지도와 신경섬유로 오는 신호를 비교하여 판단하게 된다. 이 지도는 각 기관에 배치된 신경조직으로부터의 새로운 신호를 받아 점진적으로 업데이트가 된다. 그런데 갑작스런 사고에 의해 이 절차에 오류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이미 없어진 기관에서 통증이 전달된다고 오판을 하는 것이다.
이 증상은 온전한 팔을 거울에 비춰진 만들어진 가상의 쌍둥이 팔을 조작하면서 그 크기를 점점 작게 조절하는 교정치료를 통해 완화된다고 한다. 뇌에서 손실된 조직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신속히 최신 정보로 갱신하도록 돕는 교정 방법이다.
거울신경을 통해 인류는 문화와 지식의 전승이라는 생물학적으로 아주 새로운 도구를 지니게 된다. 이 도구를 획득한 초기 인류는 사냥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매번 실제 사냥을 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 알타미르의 벽화는 잘 알려진 대로 들소 사냥을 그린 것인데 실제 사냥에 앞서 이 그림으로 들소의 생김새 특징 그리고 사냥방법을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벌과 나비도 미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반응방법이나 반응의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을 배제하면 이런 명제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벌과 나비에게 꿀의 달콤함=배부름=즐거움 또는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적절한 역할 수행=만족감 이 인간이 예술품을 볼 때 느끼는 환희, 슬픔 같은 감정과 신경학적으로 흡사하다고 말한다면 꿀과 나비가 화려한 꽃을 찾는 것은 그들의 미학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좀 더 복잡하지만 그 근간은 꿀과 나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인간의 미학은 나무 덤불 속에 숨은 포식자를 찾아내기 위한 기능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인간의 기저에 깔린 예술품에 대한 미학 즉 예술에 대한 판단은 바로 즐거움(안정)이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보다는 그것이 위험한 상황(예술품에서는 친근하지 않은 상황이나 사조로 인한 혼란)이라도 확실한 상황이 더 좋은 것이다. 내가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은 오히려 즐거운 것이 된다.(현대의 레포츠의 대부분이 가벼운 위험 상황을 이겨 나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잠깐~ 뜬금 없는 생각 하나. ‘우리의 자아는 남의 시선에 의해 태어나고 외롭게 혼자 성장하는 것도 아닌데 점점 외로운 사람들이 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그가 말하듯이 이런 기술적인 발전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 수 없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크기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기회를 더 자주 만들것이다. 어쩌면 알아가면 갈수록 더욱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악순환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이런 발전으로 인간은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도덕적인 과학자의 겸손으로 볼지 창조자의 손길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지는 또 다른 논쟁거리이니 여기서 글을 접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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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을 봤는데도 사람마다 인지하는 것이 다르고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을 질병이라던가 어떠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마다 무언가를 대하는 시각이 다르다 혹은 기억하는 바가 다르다 그러니 어떻게 하자~,라는 다소 철학적인 접근만 할 뿐이다. 하지만, 보는 것과 인지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개인의 철학, 가치관 등의 영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병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부조화가 일어날 수 있다. 뇌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에서는 자기가 보는 것이 다르게 인식되어 괴로운 혹은 주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존은 맹장염 수술 후 다리에 있던 혈전 하나가 뇌졸중을 일으킨 후로 부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얼굴이 있다는 것은 보지만 누구의 얼굴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림이 있다는 것은 보지만 어떤 그림인지는 알지 못한다.
카그라스 증후군이란 것도 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도 어머니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다만 자신의 어머니와 닮은 사람이 앞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모든 접촉에는 자신의 어머니임을 인지한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과 이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처리하는 기능은 뇌의 다른 부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떠한 것을 보고 인지하고 기억하는 것은 결국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심각도에 따라서 그 사람의 특성이 되기도 하고 질병이 되기도 한다.
시각과 인지에 대한 이 부분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이 책을 보고 있는 것인가 인지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보고 있는가 읽고 있는가. 지각은 판단과 해석을 포함하고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이를 보고 가공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닐까. 문해력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읽는 것을 가공하여 인지시키는 행위이고 이것이 부족하다는 것은 가공하고 인지하는 뇌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도 질병이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내가 가진 인지능력이 외부요인에 의해서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장르에 따라 어떤 부분에서는 경로가 제대로 활성화되어있어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처리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뇌는 가소성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자극을 줌으로써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제대로 공부하는 법이란 지속적으로 자극을 줌으로써 제대로 인지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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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두께가 있다보니 오래 걸리긴 하는군요. 오랜만에 읽는 뇌과학 책입니다. 요즘 뭔가 고민이 생겨서 이 분야를 찾았는데, 낯선 이름의 뽀대(?)나는 책이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라마찬드란 박사를 찾아보니깐 국내에도 꽤 인기가 있는 사람이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이분 되게 유쾌한 사람 같습니다. 격식도 없고 시종일관 진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내 머리가 일으키는 착각, 나도 모르게 행동했던 것들이 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왜 원숭이가 아닌지, 오랫동안 고민하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던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정의내리네요. 인간으로 태어난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오랜만에 느껴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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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번역투가 걸리긴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깔끔하다. 기본 라마찬드란 박사가 주장하는 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좀더 깊어지고 농밀해졌다고 해야 할까? 연구결과나 실험내용에 대해 좀더 심도깊게 다뤘다는 걸 알 수 있다. 기다리던 책이라 보자마자 구입했는데 두께감을 보고 좀 당황스럽긴 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술술 잘도 읽힌다. 앞으로도 계속 국내에서 라마찬드란 책을 만나볼 수 있음 좋겠다. 우리나라에도 저명한 뇌과학 전문가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왜 전통 뇌과학 책을 찾아보기 힘든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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