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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던 시절에 '나치'에 협력한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탔다면 말이 된다고 보는가? 사실 독일인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무엇'이 옳은 일인지 판단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서 조국을 배신하고 국가권력에 대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역할'이 자랑스럽지 못했고, 옳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일을 더욱 힘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양철북>은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인들의 뒤늦은 뉘우침과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반성이 담긴 역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심지어 '나치'에 협력했었기에 더욱 생생한 증언과 잘못으로 얼룩진 과거를 정확하게 회고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임에 틀림없지만, 2차 세계대전 뒤에 '이념의 대결'이라는 냉전체제 속에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마샬플랜)으로 인해 빠르게 회복한 뒤 거침없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나라다. 그럼에도 '유대인 학살'과 같은 과거의 짐이 발목을 잡히 않도록 확실한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서 '유럽공동체'의 리더를 맡을 정도로 신뢰를 얻는 나라로 거듭났다. 이는 '또 다른 전범국가'인 일본의 행보와 사뭇 다른 모습이라 일제의 피해당사국인 우리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암튼, 그런 독일의 '과거사죄와 반성'의 일환을 배경으로 과거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인의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쓰인 '전후문학' 가운데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사회고발'이라는 의도와는 다르게 야한 소설, 혹은 불륜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도 하다. 이는 영화 <양철북>의 상영이후 '그런 부분'만을 부각시켜 영상화한 탓도 있지만, 소설속에서도 다분히 그런 내용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난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소설속에 담겨진 '상징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큰데, 독일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은 폴란드의 비극, 나치 독일의 탄압으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유대인과 유대계 유럽인들, 그리고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폭력인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나치협력자들과 무도한 권력이 저지르는 폭력이 두려워 알고도 따를 수밖에 없었던 나치부역자들, 그리고 그러한 나치에 끝까지 저항하던 이들과 그들을 응원하지만 끝내 '표면화'하지 못하고 그저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벅차서 우물쭈물하던 평범한 독일인들까지 모두 그 '상징성'에 담겨 서술되고 있기에 난해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징성을 '모범답안'처럼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만이 가장 바람직한 독서법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오직 '하나의 정답'만을 이해하기 위해서 강조하는 독서법이 학창시절에는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당위성을 갖출 수 있을지언정, 정답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문학을 오랫동안 널리 읽고 읽히는 까닭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고 '새로운 감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면 <양철북> 또한, 그렇게 읽혀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도 '자유'롭게 읽어야 할 것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난쟁이를 '보는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색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스카'는 스스로 성장하길 거부했다. 그리고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기도 싫었는데, 딱 하나 '양철북'을 선물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탄생을 '선택'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상징성이 가득한 이 소설의 관점에서 풀이하자면, 오스카는 '독일, 그 자체'를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광기로 가득한 독재자가 다스리는 혼돈스러운 시대는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서 '야만의 시절'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몰염치와 이기적인 모습을 그대로 대칭시켰던 것일테다. 다시 말해,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독재자의 광기를 아직 미성숙한 오스카의 겉모습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테다. 허나 오스카에겐 '양철북'이 있다. 당시 성숙한 독일 어른들이 일삼던 행위들도 얼마간 '정상적'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미쳐돌아가는 세상속에서 맹목적으로 '히틀러'를 따르던 이들도 바로 독일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오스카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양철북을 두드려 정화하려 들었다. 이를 테면, '사회고발'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던 오스카의 '양철북'만으론 나치라 불리던 폭주기관차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런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수많은 독일인들은 타고 있자니 불안했고, 내리자니 그 또한 목숨을 걸어야할 판이었다. 어찌해야 좋을까? 오스카는 수차례 '찣어지고 망가진 양철북'을 대신할 '새 양철북'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회고발의 명맥'을 유지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만 펼쳐졌을 뿐이다. 한편, 독일이 전쟁을 한창 진행하던 중에 오스카는 첫사랑을 만난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오스카가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는 없었다. 사랑이란 '정신적 성숙'뿐만 아니라 '육체적 성숙'도 함께여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카에게 '육체적 성숙'은 아직 일렀다. 오스카의 성장은 '독일의 성숙'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독일은 미쳐돌아가고 있었고,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스카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자신의 첫사랑을 아버지 마체라트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독일의 패망 직전 소련군의 침공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아버지를 '나치'라고 고발하며 소련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만들고, 그의 무덤에 '양철북'도 함께 묻으며 '성장'을 결심한다. '사회고발'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무뎌지고 만 것일까?
전쟁이 끝나고 오스카도 '성장'을 한 뒤라 '한 사람의 몫'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특히, 사랑하는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려는 모습에서 안타까움마저 느낄 정도다. 그러다 미술대학 교수의 의례로 '누드모델'을 하면서 엄연한 가장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발가벗겨진 몸도 '독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뒤늦은 성장으로 '꼽추'가 되어 버렸지만, 전쟁의 상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독일의 기형적인 성장'을 한 몸에 보여준다는 일념에 돈벌이는 쏠쏠해진다. 그러나 끝내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만다. 마리아에게 청혼을 하지만 마리아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리아와 헤어진 뒤, 오스카는 음악적 성공으로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다. '양파주점'에서 '북 연주가'로 데뷔해 독일인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허나 간호사 도로테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오스카에겐 '새로운 삶'을 살아갈 계기가 된다. 과연 그 삶은 어떤 모습일까? 깨끗한 반성과 뉘우침으로 '성장을 부정했던 잘못'을 씻고 아름답고 찬란한 행복을 꾸리며 살아가게 될까? 아니면 성장하려 노력했으나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좌절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광기'가 탄생해버리게 될까?
어쩌면 <양철북>은 미성숙한 사람들이 벌인 끔찍한 일들을 나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양태의 '미성숙함'을 보며 자신에게 딱 맞는 '미성숙'을 발견하고 관찰하며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말이다. 궁극적으로 '나치의 만행'에 대한 고발을 하면서, 그런 부정함과 부도덕함에 알게 모르게 동참했던 사람들을 비판하는 소설이지만, 그러한 '독일'과 아무런 연관도 없고, 배경지식도 없는 독자들마저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바로 '미성숙'이란 말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성장'이 얼마나 힘들며,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점에서 개개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어야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걸작이라는 말도 된다. 과연 우리사회는 개개인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개인 스스로도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 갖춰야 할 조건들을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른다. 중요한 것은 반성과 성찰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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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오스카 마케라트의 서른 살 자서전이다. 1952년에서 1954년에 걸쳐 정신 병원에 수감된 난쟁이 오스카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한 방화범이 오스카의 외할머니의 치마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즉, 정신 병원을 무대로 한 현재 시점과 오스카가 양철북을 두드리고 유리를 깨뜨리며 회상하는 1899년에서 1954년에 걸친 독일의 역사가 이중적으로 교차되며 진행된다. 그리고 주인공 오스카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교화도 거부하지만, 우리에게 통렬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1959년 발표 당시 기성도덕을 해체시키는 가차 없는 솔직성과 치밀한 사회 비판 등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과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후 최대의 문제작이자 최고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199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는 현대 독일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로서 항상 시대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특히 [양철북]에서는 작가 특유의 양식인 반어와 풍차, 알레고리 등이 밀도 있게 형상화되어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27년 독일과 폴란드 국경의 자유 도시 단치히에서 태어난 귄터 그라스는 나치의 만행을 직접 책임져야 할 세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14세에 히틀러 소년단원이 되어 16세에 전선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전쟁 포로로 잡혀 온갖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과거의 고통이 한 송이 찬란한 꽃으로 피어난 것이 바로 소설 [양철북]이다. 세 살 생일날에 성장하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양철북을 목에 매달고 다니며 두드리는 어린아이 오스카가 몸으로 체현한 이 이야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사의 축소판이며 어둡고 퀴퀴한 냄새 나는 과거 고백의 결정판이다.
그라스는 독일에서 나치즘이 발생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근거를 현실에 안주한 독일 소시민 계급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독일 소시민들의 세부적인 일상의 현실과 그들의 태도, 사고방식들이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관찰되고 있다. 소시민들의 성, 부패, 나약함, 속물근성, 어이없는 끔직한 죽음, 전쟁의 진행 등을 일상 속에서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나치의 군악대 연주나, 무대 밑 오스카의 양철북 리듬이나 모두 아무 생각 없이 쫓아가는 군중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나치즘의 지지층으로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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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은 난쟁이 오스카가 불륜을 저지르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단순화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역사와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와 모순, 불합리를 날카롭게 비꼬고 있어 풍자 소설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풍자란,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비판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 살 때부터 양철북을 두드리며 그리고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성장을 멈추는 오스카는 위선과 거짓에 가득 찬 어른 세계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양철북]은 혹독한 자기비판과 불구자의 몸으로 상징된 병든 독일 사회의 내적 성찰이다.
<오스카의 가족>
1. 할머니 - [양철북]은 외할머니의 '네 겹 치마'에서 시작된다. 이 폭이 넓은 치마 속이 오스카의 탄생의 시작인 것이다. 오스카는 자기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의 가족사를 서술하고 있다. 어머니 아그네스를 폭 넓은 치마 속에서 잉태했던 할머니는 전쟁의 혼돈 속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급격한 정치, 군사, 세계사적 사건 속에서도 감자를 굽는 할머니의 네 겹 치마 속은 오스카에게 영원한 휴식과 위안을 주는 장소이다.
2. 오스카의 두 아버지 - 마체라트 : 1934년, 비교적 일찍 나치당에 가입한다. 나치의 유혹을 따르던 독일 보통 사람의 행동 양식을 취한다. 건실하고 책임감 넘치며 남편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아내의 불륜을 용서하기도 했고, 아내가 죽은 뒤에도 오스카를 따뜻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얀 브론스키 : 어머니의 외사촌이자 애인이다. 예술적이고 감성적인 얀 브론스키는 아그네스와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갖는 인물이다. 오스카의 가족은 아버지 마체라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카슈브인으로 그려진다. 어머니 아그네스와 삼촌 얀 브론스키 두 사람이 대화할 때 사용하는 카슈브 방언은 남편 마체라트를 고립시킨다.
3. 어머니 아그네스 - 젊었을 때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마체라트와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다. 이것은 카슈브인과 독일인의 결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성실하지만 부도덕적이고 맹목적인 남편의 모습의 대안을 찾아 외사촌인 얀 브론스키와 불륜을 저지른다.
* 한 장으로 읽는 [양철북]
제 1 부 1. 폭넓은 치마, 가족사 - 오스카의 외할머니 안나 브론스키는 감자 밭에서 앉아 쫓기는 한 남자를 관찰한다. 그리고 이 남자를 치마 속에 숨겨 주면서,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가 탄생하게 된다.
2. 나방과 전구, 오스카의 탄생 - 아그네스와 사촌 오빠인 얀 브론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절친한 사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독일인 마체라트가 나타나고 이 셋의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전쟁 중 부상을 당한 마체라트를 간호조무사로 있던 아그네스가 만나면서 이 둘은 결혼을 한다. 결혼 후, 오스카는 백열전구를 두들기는 나방의 날개짓을 들으며 처음 세상에 태어난다.
3. 세 살, 양철북, 지하실 - 세 살 생일 선물로 양철북을 받은 오스카는 어른들의 혐오스러움을 보며 스스로 성장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는 아빠 마체라트가 열어 놓은 지하실 통로 계단에서 추락한 후 신장 94센티미터에서 성장을 멈춘다.
4. 유리 깨는 목소리 - 세 살의 오스카는 소리를 질러 유리를 깨는 능력을 얻게 된다. 조용하고 얌전하던 아이에게 파괴적이고 효과적인 비명 소리를 얻는데 성공한 것이다. 오스카의 신기한 목소리는 초등학교 입학날에도 위력을 발휘하여, 그 이후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다. 새 양철북을 얻기 위해 목요일마다 가는 시내에서 엄마와 삼촌 얀의 간통 장면을 보고 소리를 지른다. 가족들과 서커스를 관람하다가 음악 광대 베브라를 만난다.
5. 성금요일의 식사 - 엄마 아그네스는 생선 중독으로 죽는다. 뱀장어 사건 이후 생선을 꾸역꾸역 먹어대던 엄마의 죄책감은 임신 3개월의 몸으로 스스로 죽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6. 믿음 소망 사랑 - 1938년 독일 전역에서 벌어진 유대인에 대한 폭력 및 방화 사건으로 아그네스를 사모하던 장난감 가게 주인인 마르쿠스는 자살한다.
제 2 부 1. 폴란드 우체국 - 얀을 찾아 폴란드 우체국에 방문하던 오스카는 우체국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을 맞게 된다. 독일 전함은 폴란드 해안 지역을 공격하고, 폴란드 우체국은 폭격을 맞았다. 우체국 전투에서 체포된 얀은 독일군에 의해 사살된다.
2. 마리아 - 가게 일을 도와주기 위해 온 마리아는 오스카의 첫사랑이 된다. 예쁜 얼굴과 강력한 바닐라향이 나는 마리아는 오스카의 감성을 성장시킨다. 하지만 마체라트에 의해 마리아는 임신을 하고, 아들 쿠르트를 낳는다. 마리아와의 관계에 좌절을 느낀 오스카는 집을 떠난다.
3. 패전과 피난, 그리고 성장 - 베브라와 함께 독일 전선의 공연 극단에서 인기 몰이를 하다가 몽환적 난쟁이 여인 로스비타를 만난다. 하지만 그가 전쟁터에서 죽자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소련군이 점령한 마체라트는 나치당 배지를 삼키다가 소련군에 의해 사살된다. 마체라트를 매장하면서 오스카는 양철북도 함께 땅에 묻고 성장을 결심한다.
제 3 부 1. 부싯돌과 인조 꿀 -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서독으로 간 오스카는 병원에서 성장의 고통을 치료하고, 마리아는 인조 꿀 거래로 생계를 이어간다. 오스카는 예술 대학 학생들의 제안에 따라 모델 일을 하기로 한다.
2. 마돈나 - 예수와 마돈나의 모습을 그려 낸 '마돈나49'라는 제목의 누드 포스터가 걸린 모습을 마리아가 보고 화를 내자, 오스카는 집을 나온다. 새로 얻은 집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간호사 도로테아를 동경하고 사랑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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