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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자율학습 땡땡이를 치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 영화를 본 친구들과 복도에서 벌을 서야했지만, 창피함도 잊을 정도로 영화는 환상적이었다. 바로 오우삼 감독, 유덕화 주연의 『천장지구』였다. 느와르와 멜로의 조화가 어딘지 촌스러우면서도 주인공 유덕화는 사춘기 여고생의 마음을 자극하는 동경의 대상으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의 모습은 고결해보였다. 불량하지만 불량한 느낌이 없는, 첫 느와르와의 만남이었다. 이후부터 느와르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부쩍 느와르영화가 많아진 느낌을 받곤 하는데, 아마도 느와르가 한국인들에게 묘한 향수같은 것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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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느와르 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 ‘악인은 너무 많다’(감독 김회근)가 아마도 전형적인 느와르로 보여진다. 건달 출신으로 흥신소를 운영하던 남자가 뜻하지 않게 범죄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야기로 느와르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들 -'어두운 골목길, 안개가 자욱한 인적이 거의 없는 스산한 거리, 가로 등 밑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남자, 자욱한 담배 연기, 급히 빠져 나가는 자동차 엔진 소리, 검정 양복과 몸 어딘가에 꼭 있는 문신- 느와르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고 있는 구성 요소들이다. 여기에 '부패' '배반' '냉소주의' '환멸' 등이 가미되어 기본 줄거리로 다루어지고 있다.
나서영의 『이게 바로 누와르! 』는 느와르가 갖추어야 할 구성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다
늘 사고만 치고 바보 형을 둔 윤구, 25년만에 재회한 형은 여전한 모습이었고, 한우리회 형제들은 그런 모습의 형도 따뜻하게 맞아준다. 알콜중독이었던 아버지에게 매일 맞고 자란 성구의 불행에 그늘로 자리잡아 있는 꽃처럼 이쁜 엄마.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엄마는 매일 맞는 성구를 대신하여 맞다가 벙어리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엄마와 동생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던 자괴감으로 괴로웠던 성구는 벽가도라는 외진 섬에 엄마의 소식을 듣게 된다. 완벽주의에 엄하기만 한 군인 출신의 아버지에게 도망가고 싶어 가출한 최동학은 늘 따라다니는 아버지의 눈초리를 기억한다. 성인이 되자 ,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사라지고 아버지는 새여자와 아들, 딸을 두고 살고 있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보고 최동학은 아버지를 더욱 증오하지만, 자꾸 아버지를 맴돌게 된다.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한우리회는 혈연관계보다 더한 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보형에게 깍듯이 존대해주고 오랫동안 헤어진 엄마와 동생의 해우에 마음으로 울어주는 진한 동지애를 자랑하지만, 그들 앞에 불어닥친 불행이라는 괴물은 '용진마트'라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라는 이름이었다. 심상만 , 심상문 형제가 세운 대형마트는 중소유통업체와 상인들을 야금야금 삼킨다. 영세상인들과 비정규직원들은 용진마트를 상대로 천막을 치고 숙식을 하며 철야농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용진구청과 용진마트는 용역패를 상주시키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시위대는 처참히 무너지고 깨졌다. 이를 바라보는 한우리회 이권하는 그들의 눈물과 슬픔과 억울함을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이기기 위해서 그들의 눈물을 기억하기로 했다.
오우삼 감독의 누와르는 비둘기는 날아야 하고, 옷자락은 흩날려야 하며, 조명은 항상 뒤에서 비쳐져야 한다이다. 오우삼의 영화와 나서영의 글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오우삼의 그것을 화려한 토핑으로 장식한 피자라고 한다면, 나서영의 글은 봄날 한철 맛볼 수 있는 화려한듯 화려하지 않은 화전같다고나 할까. 나서영 작가는 간결하고 과하지 않는 표현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한 침해하지 않으려하는 배려가 묻어난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누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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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에 대형 할인점들이 한 달에 몇 번은 쉬어야 한다는 문제로 시끌법썩 했다. 각 지방의회는 조례로 정하여 강제규정으로 만들고, 또 어떤 곳은 스스로 그러하겠다고도 한다. 이유는 한가지이다. 소위 말하는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어떠할까? #2 한때 피자나 통닭을 할인점에서 싸게 파니까, 동네 피자 집이나 치킨 집이 망한다는 우려가 봇물처럼 터져나 와 중단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대형 할인점에서 원가보다도 싸게 팔아 망하겠다던 치킨 집이나 피자 집을 보면 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들이다. 그들을 망하게 하는 것은 원재료의 단가가 높아서만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업체의 횡포와 쓸데없는 간섭, 그리고 불공정한 약관이 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따지고 보면 대형할인점들과 똑 같은 자본집단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3 요즘 저녁을 먹으려고 음식점을 찾다 보면 대부분이 불이 꺼져 있다. 그나마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널따란 주차장을 갖추고 있는 대형음식점뿐이다. 그런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가게 업종이 바뀐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는 식당이었는데, 어제는 빵집으로 변했다가, 오늘 가보면 삼겹살 집이 되어 있다. 삼겹살 집 또한 얼마나 유지될지 모르겠다.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대형 갈비 집이 자리잡고 있는데.. #4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이 이윤을 향하고 있고, 또 시장은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각종 규제를 철폐하라 말하고, 공기업 또한 민영화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칠레를 비롯한 남미에서 수도나 전기를 민영화 하고 난 후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이것들이 누와르를 설명하기 위하여 적절한 예가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일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대기업은 정관계 인사들을 관리하고, 하청업체에 대해서는 원료가는 고사하고 물가상승률과 관계없이 매년 CR(원가절감)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덤덤하게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직접 당하는 것이 아닌지라, 결과론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기에 이런 횡포 혹은 불공정거래는 사라지지 않고, 자본은 더욱 비대해질 뿐이다. 하기 사 소비자들은 그나마 조금 덕(?)을 보겠지만, 그것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지 못한다. 작은 도시 용진에 나타난 심상문, 심상만 형제 또한 이렇게 자본과 권력이 유착된 이익을 찾아 왔다. 용진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 마트를 세우겠다는 공약으로 형은 군수에 당선되고, 동생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용진마트의 대표가 되어 사업을 영위한다. 형은 모든 행정적 편의를 보아주고, 동생은 납품업체들을 착취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알 듯, 모를 듯 진행되던 불공정거래도 용진의 소비를 독차지해 가면서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한우리회, 이권하를 중심으로 6명의 형제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친목단체이다. 용진 사람 대부분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용진마트가 들어서기 전,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빌려주고, 장사가 되지 않은 곳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주며 작은 도시 용진을 사람 사는 곳으로 지탱하게 해주는 버팀목이기도 했다. 형제들 모두 불우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고, 어려서는 사람답게 살지 못했지만 용진에서 형제가 된 후,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되어 있었다. 영진마트의 하청업체 착취와 종업원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그들로 하여금 저항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농성과 시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형인 군수의 비호를 받는 용진마트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경찰은 오히려 시위자들을 협박하고, 급기야 돈으로 매수된 조폭들이 몰려와서 시위대를 해산시킨다. 시위대들이 고통을 당하자 급기야 형제들은 조폭들을 몰아내지만, 권력과 금력에 대항한 그 결과는 처참했다.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이니까 이해하겠지만, 그러나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건, 자유주의건 사람의 도리상 가책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그 들, 그러나 자본주의는 사람이 아니고,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굶어 죽는 사람은 자신들과 동일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용진에서 일어난 일들을 읽다 보면 어디선가 많이 접했던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에 다름 아니다. 오늘도 이 땅 어디에선가는 자본의 착취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의 시위와 농성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권력과 금력에 매수된 폭력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 책 [이게 바로 누와르]는 이 땅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을 읽고서 답을 얻은 것은 없다. 제목 그대로 우리의 현실, 이것이 바로 누와르임을 느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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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근처에 동네 빵집이 있었다. 직원들 간식 살 때 가끔씩 이용했었다. 자주 이용하니 몇개 더 얹어 주시기도 하고 그래서 다니던 곳인데 언젠가 빵을 사러 갔더니 가게가 문을 닫아 버렸다. 걸어서 5분 거리였는데 없어져버리니 아쉽다. 빵을 사러 가려면 저 아랫 동네에 까지 내려가야 해서 불편했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가게 문을 닫았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요즘엔 빵집도 프랜차이즈 시대라 사람들이 거기에서 이용하는 바람에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은 것이었다. 많은 동네 빵집들이 문을 닫았다. 그대신에 프랜차이즈 빵집은 성황을 이룬다. 요즘엔 커피나 음료까지 같이 판매하는 바람에 더욱 그렇다. 어디 빵집 뿐이랴. 슈퍼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슈퍼가 꽤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거의 찾아 볼수가 없다. 대형 마트가 곳곳에 생기는 바람에 설 자리가 없다. 싸고 좋은 제품이 많은 대형 마트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싼 제품을 구입할수 있어서 좋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막막한 일이 되어버렸다. 일단 장사가 안되니 세를 감당할 수 없고 끝에는 폐업까지 해 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 들을 담았다. 작은 도시 용주군의 시내. 이 곳에는 혜영빌딩이라고 3층 건물이 있는데 1층엔 형제 부동산, 2층엔 한우리회 사무실, 3층은 이권하가 사용하고 있다. 용주군의 군민이라면 혜영 빌딩의 '형제'와 '한우리회'를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형제는 모두 여섯 명의 남자로 구성된 친목단체였고 한우리회원들은 서로의 가게를 이용하고 매출을 올려주었고 급전이 필요할때도 두말 없이 빌려주는 곳이었다. 이권하가 만들어낸 형제와 한우리회는 용주군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심씨 형제중 심상만은 용주군의 발전에 기여하게 될 '용진 마트'를 내세워 군수가 된다. 용진 마트는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향상으로 용주군이 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할거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점을 보지 못했다. 소상인들의 삶이었던 그 모든 것들이 용진 마트 때문에 어떻게 변해 가는가. 언론 매체에서나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문제점들이 이어진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쟁이 밀리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더 발전하고 진보하면 됩니다. 경쟁에 밀려 낙오된 자들의 발악입니다. 촛불처럼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115페이지 중에서)
『이게 바로 누와르』라는 작품은 조폭들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시장 경제에 대해서, 대기업의 이기심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공생하는 관계일 것 같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도 대기업은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고 횡포를 휘두르는 모습은 씁쓸하기까지 했다. 미래 저 너머의 것이 아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우리들 또한 용주군의 주민들처럼 그렇게 하고 있고, 내 일이 아니라는 것에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반성을 해본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가벼운 소설일것 같았는데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내 소비 형태는 어떤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맨 뒷장 작가의 궁금증 열 가지에 대해서는 나도 궁금하단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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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엔 도깨비 시장이라고 재래시장이 하나 있다. 작년인가 지붕공사를 하고 너저분한 가판대를 정리해서 시장치고는 제법 깨끗하고 편리하다. 시장이 가까운 탓에 나는 대형 마트를 자주 찾지 않는다. 냉장고 가득 뭔가를 채우는 것. 나는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을 만큼 사고, 깨끗하게 비우는 것. 그걸 좋아하는 성격 탓에 재래시장을 자주 찾는다. 무엇보다 시장 상인들과 친해지면 덤으로 생기는 것도 많고, 조금 더 싸게 구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직은 그런 정이 많아서 나는 시장이 좋다. 그런 우리 동네에 몇 개월 전.. 시장 상인들이 매일 시위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다. 대형 마트의 슈퍼가 재래시장 건너편에 큰 규모로 들어선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그때 우리 동네의 시끄러웠던 현실을 생각나게 했다. 인구 6만이 작은 도시 용주군. 용주군 군민이라면 한우리회와 형제를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았고 또 연관이 없다면 그 역시도 이상하다. 이권하를 비롯한 여섯 명의 남자들로 구성된 친목단체. 한우리회는 용주군의 번영회 성격을 띤 단체다. 형제 헬스장 주인 백후연, 형제 통닭 이성구, 실전 격투 최동학, 형제 정육점 유동식, 형제 오락실 윤구. 한우리회 회원은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 급전으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서로의 가계에 매출을 올려주고 개인의 경조사를 챙겨주는 든든한 가족 같은 단체? 하지만 이 작은 군에 용진마트가 들어서면서 이곳에선 평화가 사라진다. 한우리회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소비의 나눔이다. 서로가 서로를 소모해주며 원활한 경제 순환을 이끌었다. 하지만 용진마트라는 거대 공룡이 들어서면서 그 기능들이 무너져갔다. 점점 소득이 줄어드는 곳이 광범위하게 늘어나고 업종이 다양해지며 공동의 시련으로 다가왔다. 도매업자를 착취하여 큰 이익을 남기고 중소 유통업체들이 설 자리는 사라졌다. 용진 마트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시위를 벌이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만다. 생존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니 모두의 위기가 되었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린 거대한 하마... 그래서 돈이 돈을 부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처음엔 모두에게 발전된 미래가 오리라 생각했다. 거대한 용진마트가 들어서면 경제 발전에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 말했었다. 하지만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었을까? 지금 우리나라... 어떤 지역에서고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란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거대한 공룡 기업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작년 남편의 회사에서도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에 관한 세미나가 한창이었고 아이디어 공모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공공기관에선 상생을 이야기 하며 눈에 보이는 뭔가를 (문서나 공문으로) 보여주길 원하며, 기업들에 요구하지만 그것 역시 탁상 행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물건이 있고, 건들이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지금 대기업들은 돈이 되는 것에 악귀처럼 달려든다. 발전이라는 이유로, 혹은 더 많은 고용을 창출 한다는이유로.. 하지만 그건 같이 죽자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음을 알 것 같다. 나는 선이 이긴다는 것을 믿고 싶고 사람의 정이 이긴다는 것을 믿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많이 아팠다. 이 세상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면 안 된다. 지금은 내가 아니어도 훗날.. 내가 그 직, 간접적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돈이 많으면 모든 게 가능한 세상. 나는 그런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점점 그런 세상이 되는 것 같아 아프다. 제발.. 높으신 분들이 이런 책 좀 읽고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행복한 경제 활동이 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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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님의 선물로 읽게 된 책이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일단 두껍지 않고 읽기 편해서 좋았다. 표지를 보면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심씨 형제와 한우리회의 형제들을 대립적으로 나타내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용주군을 보면 여느 시골 지역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지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들을 이루며 살아간다.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 이들의 일상과 평화로움에 어느날 불청객이 와서 이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바로 욕심으로 가득한 심씨 형제와 거대한 공룡 '용진마트'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용진마트'의 등장이 지역사회에 활력과 편리함을 주는 듯 하지만 결국은 사람들의 중요한 터전을 갉아먹는 기생충과도 같은 존재임을 사람들은 알게된다.
소설은 용주군이라는 지역사회를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은 현재의 우리나라의 현실을 축소해 놓은 듯 하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동네슈퍼까지 브랜드를 많들어 기존의 상권들을 집어 삼켜간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하지만 굳이 작은 곳 까지 침투를 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버는 기업들이 조금만 양보하고 상생하면 될 것을 조금 더 돈을 벌어보겠다고 땅따먹기를 해간다. 서민들이 먹는 음식 따위엔 전혀 관심도 없을 사람들이...예를 들어 떡볶이같은 경우에도 브랜드화 시켜서 주변 상권들을 죽여버리는 현실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싸고 편리한 것이 좋아서 대형마트를 찾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박리다매 방식의 유통구조가 주변 영세업자들을 죽이고, 나중에는 대형마트들이 원하는데로 가격을 올리거나 이득을 취하게 되면 그 부담은 다시 소비자에게로 오게 될 것이다.
다시 소설로 이야기를 돌리자면,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용주군이라는 지역으로 빗대어 이야기를 진행해간다. 지역을 지키려는 한우리회의 형제들과 지역을 삼켜 버리려는 심씨형제와 용역들... 결국 아무리 발버둥쳐도 대기업의 횡포와 힘 앞에서는 이겨낼 도리가 없다는 것이 씁쓸하다. 좋은 지도자와 좋은 기업인이 나와서 조금이라도 변화되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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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전주시가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 휴무에 관련된 조례를 통과시켰다는 사실이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지역주민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조례의 통과는 큰 화제가 되었고 바로 법적인 타당성을 문제 삼아 대기업의 항의와 함께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미쳐 연달아 관련 조례가 선포된 일이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실제로 전주시에서는 대형마트의 휴업이 시행되었다. 미처 휴업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약간의 불편을 겪기는 했지만 큰 혼란은 없었고, 특별히 가시적인 성과 역시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자체가 외부 대형 유통업계의 독식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권력은 약자를 보고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근래로는 보기 드문 사례라 하겠다.
훈훈한 미담같은 사례지만 사실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대형 유통업체가 생기고 자리를 잡는 동안 오랜 시간 거주한 동네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곳곳에 위치하고 있고 간단한 근황을 주고 받을 수 있던 동네 구멍가게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의욕적으로 운영되던 지역의 중소마트는 문을 닫았다. 또한 재래시장은 대형마트와 비교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갈 이유가 없어졌다.(최근에는 재래시장의 인심도 야박한 편이고 물건을 안 사면 마수걸이인데 재수없다고 욕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더더욱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이러저런 이유로 지역의 상권이 약화되고 있는 사이에 오늘도 대형마트는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이런 이야기가 소설로 나온 책이 있다. 용진군이라는 한 지역이 있다. 중소도시도 아닌 이 지역은 한우리회라는 모임이 중심이 되어 상권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한우리회의 중심에는 이권하를 비롯한 형제들이 있다. 팔에는 형제라는 문신을 가지고 있는 이들 여섯 형제는 다들 외모도 과거도 평범하지 않다. 반 이상이 교도소 신세를 지내본 이들은 십여년 전 용진군에 외부 사채업자가 들어와 지역 주민들이 사채의 늪에 빠졌을 때 목숨걸고 그 사채업자들과 다퉈 지역을 지켜낸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형량을 채우고 나와 만든 단체인 한우리회는 상인들의 이권을 지켜주고 보호해주기 위해 만든 단체로 여러 가지 혜택이 있기에 지역 상인이라면 자신해서 들어가고 싶은 단체이다. 그리고 형제들은 단순무식한 깡패같고 주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존경하고 의존하고 싶은 의리파들이다.
이런 지역에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심상문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대형 쇼핑 센터가 세워진다. 지역의 자금을 보호하고 일거리 창출이 가능할 것을 기대한 대형 쇼핑 센터의 건립은 지역 주민 모두에게 기대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건립이 되고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입주권을 보장받은 땅주인들은 다달이 내야할 월세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되기에 입주권을 그림의 떡일 뿐이고, 대형 유통 마트에 의해 주변 가게들의 수입이 눈에 띄게 줄어 생계를 걱정해야 할 수준이 된다. 그리고 이 마트에 납품하는 중소 기업들은 용진 마트의 부당한 납품가에 의해 부도 위협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는 점점 이 대형 마트인 용진 마트를 사용하지만 이로 인해 생계를 위협 받는 이들이 지나치게 많은 결과적으로 용진 마트만이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었다. 더구나 비정규직은 부당하게 시간을 착취당하고 조금이라도 항의하면 바로 해고당하게 된다.
이에 이들은 생존을 건 투쟁을 하게 되지만 지역 정권을 장악한 용진 마트의 언론 플레이에 지역 주민들은 투쟁하는 쪽을 비난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형제들에게는 이 상황을 타계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소설이기에 과장된 흐름이 있다. 하지만 재미를 위한 과장이 아니다. 실제 대기업과 지역 상권과의 다툼은 황소개구리 한 마리를 연못에 풀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닥치는대로 먹고 번식하는 황소개구리처럼 각 지역에 세워진 대형 유통 업체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이 입는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다. 생계가 걸린 상황이 아니지만 소설 속 용진마트처럼 상생을 모른다. 차라리 현실에서도 형제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현실에서는 이들을 대변하고 대항해줄 인물도 없다.
자본주의의 냉혹함 속에서 오늘도 또다른 용진군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어보기를.... 그리하여 그들의 무자비한 욕망을 버리고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바람직한 상업 생태계가 탄생하길 바래 본다. |
전태일 분신자살이란 말만 들어도 우리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아니다 나보다 더 먼저인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일이잖아? 그런데 마치 나도 같은 세대를 겪어온 것 같은 느낌이 왜? 드는 걸까?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22살의 전태일이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이렇게 외치면서 죽은 기억이 난다. <이게 바로 누와르>를 읽는데 왜? 이 사람이 생각 난걸까? 누와르 속에는 많은 우리 현실 세계의 아픔들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바로 누와르>를 다 읽고서 표지가 왜? 이렇게 그려진 것을 알았다. 앞에 6명은 혜영빌딩 한우리회 사무실의 이권하, 형제식당을 하는 유동식, 형제도장을 하는 최동학, 형제오락실이 윤구, 형제헬스장의 백후연, 형제통닭집 이성구 이렇게 주인공인 형제들이다. 그리고 뒤에 음지에 숨어있는 2명은 용주군 심상문, 심상만 형제다. 1994년, 인구 6만의 작은 도시 용주군에 사이좋은 형제들이 살고 물론 그들은 친 형제가 아니다. 그리고 군수가 되고 싶은 심상문이 용주군에 온다. 외지 사람이 들어와 군수는 어려운데 그의 공략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군수로 만들었다. 용주군의 국민들이 백화점을 가려면 자동차로 두 시간을 달려야 했고, 구멍가게 말고는 변변한 마트가 없었다. 그런데 대형마트, 백화점, 영화관이 포함된 용진마트가 들어선다니 그동안 없이 살았던 서러움이 설렘으로 바뀌어 마음이 움직였다. 이권하는 한우리 회원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등 그동안 용주군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맞아 해주는 그런 사람으로 용주군에서는 6형제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심상문이 군수가 되고 그의 동생 심상만이 용진마트 사장이 되면서 그들은 변하기 시작하는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게 바로 누와르>는 6형제들의 가족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때 그들은 방황을 하고 학교들도 제대로 나온 이들이 없지만 어른이 된 그들은 가족들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잘 보살피려고 많은 노력들을 하고 가족 간의 슬픔이나 아픔을 서서히 치료해가는 과정들이 나타난다. 심상문, 심상만형제로 인해 용진마트가 들어서면서 용주군의 상가 상인들이 손님이 줄면서 폐업 수준에 도달한다. 이유가 용진마트가 들어서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지만 용진마트와 그들은 경쟁업체였던 것이다. 용진마트 부지 확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그들은 용진마트가 들어서면 상가를 하나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대 힘없고 지식이 부족한 그들이 당한 것이다. 권리금과 입주금이 너무 비싸서 들어갈 엄두도 못 낸다. 용진마트 횡포로 졸지에 도산하게 된 중소 유통업체들 용진마트의 계약조건이 엉망이다. 용진마트의 이득을 위해 중소기업들이 차차로 망해간다. 군청이나 경찰들도 용진마트 편을 드는 세상 역시 힘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빽이 있어야 하는 세상인가? 많은 소비와 유통에 대해 공부를 해보는 그런 내용들이 나온다. 그리고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용진마트에 취직한 노동자들이 외친다. 노동자는 그저 도구일 뿐이 었다. 그나마 사용자의 도구 역할을 하는데 자존심이 상해 끽소리라도 했다간 당장에 모가지가 날아갔고 간이 작은 사람들은 속으로 끙끙 앓으며 도구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렇게 노동자들까지 용진마트의 수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당했다. 거기에 용역회사들이 강제 진압에 들어가면서, 화가 난 6명 형제들이 뭉친다. 과연 그들의 앞날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족적이면서도 읽는 내내 화가 나기도 하고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재미와 흥미가 진지함과 억울함이 겹쳐져 나의 감성에 자극을 주고 그들의 억울함에 방법을 찾아가면서 나도 그들 속에 들어간 것 같은 그런 소설이다.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이 엮어가는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그런 소설이다. 현시대의 아픔을 다룬 소설이기도하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아마 영화가 나온다면 좋을 듯하다. 여러 영화들이 내 머릿속에서 지나간다. 마지막에 반전에 반전이 나온다. 혹시 2편을 예고하는 건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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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제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용주군의 상가 번영회와 비슷한 한우리회를 결성하고 그 한우리회의 핵심멤버라고 할 수 있는 이권하, 윤구, 이성구, 유동식, 최동학, 백후연 여섯 형제의 아프고 슬픈 가정사가 조금씩 펼쳐진다.
그리고 한우리회의 근거지이자 그들의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는 용주군에 대형 마트인 용진마트가 들어섬에 따라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약자 VS 강자 = 선악 대립 구도
대형마트 VS 재래시장&중소업체, 정규직 VS 비정규직, 사람 VS 사람(용역 VS 해고직원, 중소업체사장,한우리회)
여기서도 등장하는 '통큰 치킨'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면 한때 대형마트에서 판매해 전국이 들썩했던 통큰 치킨은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뉴스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통큰 치킨의 통큰 행사도 문제였지만 다소 냉정한 시각으로 봤을 때 일반 치킨 전문점도 어느 정도의 문제는 안고 있었다. 모 방송국의 소비자 불만 해결 프로그램에 등장한 '과연 치킨은 한 마리가 맞는 것일까?'와 통큰 치킨과의 비교를 떠나 '정말 가격면에서 적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인데 이러한 문제나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경유착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문제점, 그에 따르는 폐단은 물론 힘없는 약자의 비굴한 모습 등은 어디선가 한번쯤은 접해봤을 것들이다. 이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꺼리낌없고 숨김없이 당당하게 드러내는 풍자소설(인물과 사회의 결점, 모순, 불합리 따위를 풍자하는 소설)을 연상케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불편하다.
모 아니면 도 식이다.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실과 맞닿아 걸리는 게 많고 동일시 하기에는 너무나 소설같은 이야기들도 있다. 중간까지 잘 이어오던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러 지나치게 자극적이며 공격적으로 변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냉소적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인 글들이 보는 내내 쌍방통행이라기 보단 일방통행인 느낌이 강하게 들어 씁쓸하기까지하다. 또한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답답한 속이 시원해지기는 커녕 더 답답해져버렸다.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 해결책과 꽤나 충격적인 반전 결말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아헤매던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책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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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에서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이과에서의 법칙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과에서의 법칙은 보편적이고 광범위하게 쓰이며 오랫동안 쓰인 것이 대부분인 반면 문과에서의 법칙은 툭하면 깨지고 새로운 법칙이 나타나며 누구도 그것이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과에서는 법칙이라 불리는 것이 거의 없다. 이과와 문과의 법칙의 무게가 이렇게 많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정해져 있는 것과 정해져 있지 않는 것의 차이일 것이다. 이과에서는 정해진 것을 숫자와 그래프 같은 데이터로 나타내고 법칙을 통해 고정시켜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과는 고정시킬 수가 없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변수는 어디로 튈 지 모른다. 아무리 많은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결과는 계속 어긋나고 비뚤어진다.
최근의 이과출신의 CEO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어떤 하나를 고정시켜서 생긴 경영의 성과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문과출신 CEO들은 너무 많은 변수에 기준을 잡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중구난방의 경영을 하기 쉬운 반면 이과출신의 CEO는 어떤 기준을 잡고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나서 추진해나가기 때문에 추진력이 있으며 따라서 같이 해결되는 문제들이 많았기 때문에 화제가 되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문과출신의 CEO가 별 볼 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CEO는 문과출신이고 이과출신은 소수다.
이 책은 사회적 현상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문과적 시각으로는 조금 모자라보인다. 너무 단순화시키고 축소화시켜놨다. 따라서 이과적으로 본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내가 본 대로 사회비판적인 의미로 쓰여졌다면 너무 동화적이다.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동화적인 감성과 버무려 놓았다.
용주군이라는 작은 동네는 다소 강압적이지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요소가 두루 갖추어져 있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 곳에 용진마트라는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서 산업기반이 파괴되고 마을의 경제는 파탄이나고 비정규직으로 몰리는 사람의 울음소리는 끝이나지 않는다. 용주군의 질서를 만들고 지켜나가고 있던 사람들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용진마트를 위협해서 어느정도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만 용진마트측은 더 큰 강압을 사용해서 용주군을 완전히 집어삼킨다. 이것이 이 책이 대강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고 생각난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금광을 발견했는 데 그 금광에 인부 10명을 고용해서 금을 캤다. 수입이 100이라고 하면 인부에게 1씩 총 10을 주고 90을 자기의 수입으로 하는 데 이 사람이 이 90을 쓰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근처에 있는 풍경좋고 멋진 호숫가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호화롭게 사는 데 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부를 더 고용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인부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다르다. 첫번째 방법은 90의 수입은 건축자재를 사고 건축가를 부르고 하는 것에 돈을 써서 외부로 돈이 다 나가게 하는 것이고 두번째 방법을 쓴다면 단기간에 더 많은 금을 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금맥이 더 빨리 마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세번째 방법을 쓴다면 10명의 인부는 더 많은 돈을 그 지역에 쓸 것이고 하나씩 식당과 상점이 들어설 것이다. 식당과 상점은 90의 수익을 가진 사람이 다시 재투자를 할 수 있게 되고 인프라가 늘어가기 시작하는 이 곳에는 인부의 가족들이 들어올것이고 더 많은 인프라가 구축되고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산업이 이루어지면 재투자와 순환을 통한 하나의 마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부의 순환을 통한 가치의 재창출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인 데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이야기를 섞어놓은 것이다. 몇 번째 이야기가 될 것인가는 90의 수입을 가진 사람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때문에 현명한 지도자를 바란다. 이것은 세 번째 현상을 더 원활하게 해서 더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것이다. 우리 나라는 땅덩어리가 작고 그마저 분단되어 있지만 복잡하고 활발한 경제현상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국토 면적과 경제 창출효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더 다이내믹하고 다양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데 이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 단순해서 단지 소설일 뿐이라고 넘겨버리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사회를 보여준다고 이야기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넘기기에는 제일 뒷장에 나온 작가의 물음 10개가 마음에 걸린다. 궁금증 하나,는 뽑아놓으면 5년간 자기 좆대로 해버리는 게 민주주의? 라고 나와있는 데 많은 학자들은 민주주의는 가장 강력하고 합법적인 독재가 가능한 제도라고 이야기한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많은 학자가 민주주의의 이 점을 걱정하고 있는 데 사회주의는 실패로 끝났고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만 남았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적이 아니듯이 또 종교가 종교적이지 않듯이 사실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적이지 않다.
궁금증 둘에는 진보의 뜻이 더 나아짐이라고 말하고 있는 데 사전적 의미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지칭할 수는 없다. 현실은 사전적 의미보다 훨씬 많은 의미로 많은 단어가 쓰이고 있으며 지금도 새로운 단어와 뜻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전적의미는 어떤 주장의 근거가 되기는 너무 부족하다. 사전적의미는 진리가 아니며 이 글 말미에 있는 '진보' 너희가 더 '보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글쎄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가 구분이 뚜렸해지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어차피 49와 51의 차이인데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것 조차가 형식적으로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 든지 오래다. 이 좌와 우를 처음 나눈 사람은 이광수라는 문인인데 이 사람도 친일문인이다. 친일문인이 붙여놓은 좌와 우라는 말이 아직까지 쓰이는 이유는 굳이 나누어야 하기 때문 인것 같다.
우와 극우로 나누던지 좌와 극좌라 나누던지 좌와 우로 나누던지 정치의 스펙트럼이 크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말은 그냥 말...
궁금증 셋은 독재자의 딸이 유력한 대선후보라는 데 민주주의는 수치를 느끼지 않는가? 인데...수치를 느끼지 않는다가 답인 것 같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궁금증 넷은 대통령과 이건희 중 누구의 힘이 더 강한가? 이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말해 뭐하겠는가?
궁금증 다섯은 대학에 입학하는 청년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는가? 인데 사회구조를 바꾸기 전에는 대학을 가야한다. 어느 회사에가든지 대졸과 고졸은 확연한 차이(보수와 승진)를 보이고 대학을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경우도 많다. 사회구조를 바꾸려고 나서지 않고 같이 흘러가기를 바라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사회가 바라는 곳 인정해주는 곳에 이끌려가기 마련이다. 대학교가 스펙이 될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겠다고 하는 데 아마 꿈만 꾸면 진짜 꿈만 꾸게 될 것이다.
여섯부터 열까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나 하나 다 대답을 하자면 끝이 없고 또 멋지게 반박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만약 사회를 바꾸기를 원한다면 책상 앞에서 쓰는 글 말고 거리로 나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 소리를 질러야 한다. 움직이지 않고 만들어진 세상에 순응하면서 속으로만 이야기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결국 치기 어린 행동들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만약 이 작가님이 정말 사회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면 거리로 나가서 미친 듯이 현실과 부딪혀 봤으면 좋겠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누가 알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작가님보다 몇 살 더 많은 사람으로써 사회구조적인 불만을 한 번쯤 가져본 사람으로서 나는 내가 행동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얼마전 '88만원 세대'가 절판되었다고 했다. 저자인 우석훈님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거리로 나와주기를 바랬는 데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자신들의 처지를 합리화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고 절판을 결심했다고 했다. 나도 사회에 고개를 숙이고 기를 쓰고 기성세대에 편입되려고 하는 만큼 이 걱정과 우려에 할 말은 없다. 이 분이 걱정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내 앞가림이나 신경쓰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나의 곁에는 기대감을 가지고 보고 계시는 부모님이 있고 평범한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말은 핑계에 불구하다 사실은 나는 현실에 부딪힐 만한 용기가 없어서 비겁한 선택을 했다는 말이 옳을 것 같다. 꽤 오래전부터 젊은 세대를 걱정하는 말이 나왔다. 그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어서 다시 젊은이 들을 걱정한다.
얼마전 신문기사에서 요즘 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안정성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세태를 우려하는 기사를 봤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무슨 공무원, 교수, 연구원같이 이름만 들어도 엄청 안정적일 것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이야기였다. 본인은 가장 안정적인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직업을 가지고서는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라는 이 아이러니는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한 힘앞에 거북이가 등껍질에 숨듯이 숨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 걱정만 하는 사람들이 불씨만 당겨질 수 있다면 그래서 유지시킬 수만 있다면 진짜 세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선구자를 계속 기다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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