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자에게 실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현실에 안주하여 거기에 머무는 자들이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자는 현싱에 안주해야 할까 오직 그것만이 두려울 뿐입니다. 실패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도전할 기회가 없음이 슬플 뿐입니다.- p47
누구나 꿈을 꾼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 할지라도 꿈을 꾸고 있을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며칠 전 홀로 밤에 잠들지 못하고 보게 된 독립영화 한편이 자꾸 떠오른다. 꿈을 잃었을 때 사람이 얼마나 피폐하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한 남자의 흐리멍텅한 눈빛, 때에 쩔은 옷, 생기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죽어있는 기운이 노숙자라는 그의 신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 노숙자들에게 반려자로 유기견을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 개고기를 먹기 위해 대여를 받게 되는데, 동사무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졸졸 따라오며 의지하는 개를 보고 마음이 변한다. 개와 함께 노숙을 하면서 점점 주인공의 눈이 초롱초롱 변화가 오고,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는데 , 주워 먹은 닭뼈에 문제가 생겨 동물병원에 데려갔지만 암이라 얼마 못산다며 의사는 온 길에 안락사를 시키자고 한다. 생전 처음으로 외로움을 잊게 해준 녀석을 차마 안락사 시키지는 못하고 돌아오는 노숙자청년은 죽어가는 개를 위해 처음으로 달세방을 계약하고 세수를 한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위해 꿈을 꾸는 청년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밝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꿈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그래서 아름답다.
로마와 훈족과의 다툼으로 대륙이 피바다가 되자 모르민족은 락카슈숲으로 들어간다. 락카슈숲은 모르민족에게 유일한 세상이자, 피난처가 되어주고 세상과 모르민족 사이의 락카슈숲은 넘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벽이다. 락키슈숲의 풍요로 모르민족은 노르딕이라는 통수를 중심으로 번영하였다. 할아버지 무릎에서 달의 전설을 듣고 자란 알라마노는 달의 전설이 꿈으로 자리잡게 된다. 세상의 왕들이 달의 흙을 먹고 젊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알로마노는 달의 여행을 꿈꾸고 아르토스산 정상에서는 달에 손이 닿는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믿음은 성인이 되어서도 더 단단해지고 강해져서 가슴 속에 품은 달의 여행은 더욱 확고해져 갔다. 고아였던 아르곤을 동생삼아 가슴 속에 품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흑진주처럼 이쁜 루우비에게도 자신의 꿈을 말해주지만, 아르곤과 루우비에게는 너무도 먼 불안하기만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락키슈숲을 떠난 민족이 없기에 알로마노가 달의 여행을 떠난다는 말은 통수 노르딕과 마을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고, 장로들의 반대에 부딪히지지만, 꿈에는 실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알로마노의 말에 노르딕은 다이아몬드를 달에 박아 더 빛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여행을 허락한다. 한편, 루우비는 두려움에 알로마노와 이별을 하고 , 아르곤만이 같이 길을 떠난다.
아르토스 산을 찾아 떠난지 마흔 번의 야영을 하고 양식이 떨어진 3일뒤에 작은 민가에 들어선 알로마노와 아르곤은 장님 시인 베르테르의 집에 쉬게 되고, 베르테르가 눈이 멀게 된 이야기와 사랑의 아픔을 듣게 된다. 달의 여행을 하는 알로마노에게 달에 자신의 시를 걸어 모든 사람이 보게 해달라는 베르테르의 꿈을 담아 먼 길을 서두르는데 루우비가 알로마노와 아르곤 앞에 쓰러져있다.
이후 , 알로마노 일행은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로, 바보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는 눈총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 알로마노의 금을 훔치기 위해 접근한 몰모이 또한 바보같은 꿈을 꾸는 알로마노를 속으로는 비웃으며 길안내자로 접근한다. 몰모이의 끈임없는 배신에도 변함없이 순수한 믿음을 보여주는 알로마노 일행에, 난생 처음으로 자신을 믿어준 알로마노를 위해 죽음을 택한 몰모이는 알로마노의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닌 지금 죽어가는 자신과 같이 흙 위에 뒹구는 금덩이가 오히려 더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자신에게도 꿈이 있었지만, 꿈을 위해 한 번도 노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눈을 감는다.
알로마노의 여행은 꿈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꿈을 찾아주기 위한 여행이다. 꿈은 순수의 결정체이며, 믿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에 『알로마노, 달의 여행』은 첫사랑의 추억을 잃어버린 이에게 사랑을 되찾아주고, 사람에게 신뢰를 잃어버린 가난한 이에게는 믿음이라는 것을, 날지 못하는 작은 새에게는 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알로마노가 아르토스 산 정상에서 달이 여전히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는 사실에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달의 여행에서 배운 자기 완성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꿈을 이루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삶의 진리를 일깨우며, 눈 앞에 보이는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멀리 앞날을 내다보기를 마음속에 자신만의 꿈과 이상을 간직하며 살아가라는 알로마노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알로마노, 달의 여행>은 이렇게 잃었던 꿈을 찾아주는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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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지 대한 고민을 한다. 아니 생각해본다. 이제 마흔을 넘긴 내가 늘 무언가를 꿈꾸는 것을 사람들은 주책이라 말하기도 하고, 대단하다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나는 꿈꾸는 게 좋다. 그게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여기 꿈을 꾸는 청년이 있다. 아르토스라는 아주 높은 산에 올라 달이 떠오르는 순간 손을 뻗어, 달을 만져보고 달의 흙을 가져오는 꿈. 그리고 달을 향해 떠나고자 하는 알로마노의 꿈. 사람들은 말한다. 허황되고 말도 안 되는 꿈이라고. 하지만 알로마노는 생각한다. 꿈과 이상을 가슴속에 품게 되면 그것을 이루고자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고... 알로마노는 통수인 노르딕을 찾아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노르딕은 알로마노의 꿈을 지지해준다. 드디어 알로마노와 동생 아르곤 그리고 친구 루우비는 달을 향해 긴 여정을 떠나게 되고 그들 앞에는 시련도 희망도 아픔도 사랑도 함께 하게 된다.... 꿈에는 실패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 걸음을 가야 이뤄지는 꿈을 가진 사람이 백 걸음을 가다 멈춰 섰다고 실망할까요? 물론 꿈을 이루지 못함에 아쉬움과 절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향해 전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 겁니다. 도전하는 자에게는 실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현실에 안주하여 거기에 머무는 자들이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자는 현실에 안주해야 할까 오직 그것만이 두려울 뿐입니다. 실패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도전할 기회가 없음이 슬플 뿐입니다. (47)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20대가 생각나고 그리웠다. 그때 나도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내 꿈을 위해 하루 4시간도 못자면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2년 동안 공부하고 얻은 결과는 나를 미치도록 행복하게 했다. 누가 시켜서 하지 않았고, 누군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너무 원해서 했던 공부였기에 그 결과는 달디 단 꿀맛이었다. 그 성과는, 그 결과는 나를 계속 꿈꾸게 했다. 이후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그 맛을 잊지 못해 나는 꿈을 꾼다.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해 조금씩 맛보게 되는 꿈의 성과들은 나를 들뜨게 하고 나를 흥분하게 한다. 그리고 그 맛을 아이들이 느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늘 조그만 미션을 주고 행복하게 만든다. 아직은 소소한 작은 꿈이지만 조금씩 그 꿈을 키워나가면 큰 꿈을 꾸고 미션을 수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이라 나는 믿는다. 꿈을 꾼다고 해서 다 성공한다고 믿지 않는다. 또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꿈은 계속 꿀 수 있고 실패를 하게 되더라도 그 실패로 인해 배울 수 있고,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면 그 꿈은 성공 혹은 실패로 나눌 필요조차 없다. 또한 누군가의 평가로, 시선으로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면 안 된다. 그 과정을 함께 하지 않은 사람이 감히... 누군가의 꿈을 가지고 성공했다 혹은 실패했다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사춘기가 되고 자신의 미래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면 나는 이 책을 슬며시 선물해 주고 싶다. 미래가 두려워서 실패가 두려워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이 책을 친구라 생각하고 읽어보게 하고 싶다.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넓은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과 꿈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넓다고 하나 사람의 마음이 그보다 작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의 꿈은 세상 보다 작았을 뿐입니다. 실패와 성공, 어느 쪽에도 치우칠 필요가 없습니다. (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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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구석구석 박혀있는 빛나는 단어는 바로 '꿈'이라는 단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미일관하게 직조되어 있는데 주인공과 주변인물, 그리고 모든 배경까지 '꿈'을 말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이다. 서사구조는 간단하다. 알로마노라는 주인공이 누구나가 반대하는 달에로의 여행을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 꿈을 이루어 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지극히 평범한 '꿈'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지금 나의 상황에 주는 감동과 여운은 적지 않았다. 오래동안 현실과 꿈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 아직은 꿈에 대한 열정이 현실이 주는 무게감을 이기고 있지만 조금씩 현실이 꿈을 갈아먹고 있는 지금이다. 현실을 바라보고 누구나가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위해 꿈을 저버리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아직 분명하게 결단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도 알로마노가 여행하면서 만났던, 꿈을 꾸고 있으면서 그것을 감추고 살았던 사람들중에 한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 다시한번 오래동안 희망해 왔던 '꿈'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꿈은 말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로마가 훈족에게 침략을 받게되어 힘의 균형이 팽팽히 유지될때 약소국들의 저마다 살길을 모색했는데 순박한 모르민족은 락키슈풀이라는 곳에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오랜세월동안 그 안에 살아서 숲 밖의 세상에 대해서 의식하지 못했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금기사항이 되었다.
주인공 알로마노는 할아버지로부터 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달에 대한 꿈을 가지기 시작했고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꿈을 꾸기 지작했다. 그때 동생 아르곤과 루우비는 알로마노와 함께 모든 사람이 반대하고 부정하는 달에로의 여행을 시작하는데 그 길을 가면서 꿈을 잃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을 알로마노 일행의 꿈 이야기를 들어면서 깊이 감추어왔던 자신의 꿈을 다시 떠올리고 실현시키기 시작한다.
알로마노 일행은 세상의 꼭대기라고 할 수 있는 아르토스산에 오르면서 아르곤과 루우비는 부상으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꿈에서 내려오게 되고 알로마노와 여행길에서 알게된 피피와 함께 아르토스산에 오르면서 오래동안 꿈꿔왔던 그리고 실행해 왔던 꿈을 이루게 된다. 결국 그는 꿈의 정점에서 그 넘어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자신이 이룬 꿈이 매우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았음을 마르민족의 통수인 노르딕과의 대화속에서 밝히면서 끝을 맺는다.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중심되는 교훈은 알로마노가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것이 아니였다. 그것을 꿈을 잃었던 사람들이 알로마노의 꿈을 통해서 다시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마르민족의 통수 노르딕은 감히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금기사항이였던 알로마노의 세상 밖으로의 여행을 허락해 줌으로써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현실이라는 울타리에 창조적인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알로마노가 여행중에 만난 첫 번째 사람이였던 베르테르에게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시에 대한 꿈을 찾아주었고, 그의 부인 에스메랄다에게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꿈을 찾아주었다. 알로마노 일행의 금을 탐내 그들을 속이고 금을 훔치려는 몰로이에게 참된 우정과 사랑의 꿈을 찾아주었고, 어느 마을에서 만난 한 아이의 작은 오리 제제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꿈을 찾아주었다. 퓌카산의 식인 거인으로 오해받고 살아가는 체호프라는 노인에게 젊은날 그가 사랑했던 여인 이자벨라에 대한 사랑을 다시 찾아었고, 아토로산 산 밑에 살고 있는 피피와 그의 부모에게 가수와 행복에의 꿈을 다시 찾아주었다.
소설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손가락질했던 알로마노의 꿈를 통해서 그동안 감추며 잊고 살았던 주변인물들의 꿈이 하나, 둘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백미다. 즉 꿈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전염시킨다는 것. 꿈은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며 그것을 이루는 과정 가운데 다른 사람들의 꿈도 다시 살려낸다는 것이다.
꿈은 전염된다. 꿈꾸는 것 자체로도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으로도 사람들에게 꿈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자신의 과거와 현실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꿈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게 된다. 꿈을 실천하는 것은 그것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꿈의 열매를 나누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현실이라는 얼어붙은 땅을 깨뜨려 그속에 감추어져 있던 꿈을 다시 살려내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꿈꾸는 것 자체로 이미 현재 실현된 꿈이며,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실천하는 것 자체로 꿈은 전염되어 함께 꾸는 꿈으로 퍼지게 되며 그것은 곧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꿈은 아름답게 전염되는 것이다. 이 책은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가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꾸고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말해주고 있다.
"하늘을 나는 건 새의 본능이지. 비록 날개를 다쳤지만 그것으로 본능은 꺾이지 않아. 언젠간 날개짓을 시작할 거야"(p.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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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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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실현, 성공, 소원성취...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건 꿈꾸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물론 꼭 이루어져야만 '꿈'이라는 법도 없다. 꿈을 꾼다는 것에 보다 더 큰 의미가 있으므로...
알로마노, 그는 어릴때 할아버지로부터 달에 관한 전설을 듣고 달이 있다고 알려진 아르토스산으로의 여행을 생각한다. 그는 로마와 훈족의 다툼을 피해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는 음침하고 무섭기로 악명높은 락키슈숲에 숨어서 살아온 모르민족의 후손이다.
그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늘 '달'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에겐 동생 아르곤과 둘도없이 친하게 지내는 루우비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둘 역시 알로마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불가능한 일' 혹은 '꿈은 꿈'일뿐이라고 은연중에 그리 생각한다.
모두가 숲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걸 우려하고 걱정하는데도 알로마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락키슈숲의 통수인 노르딕에게 소신껏 밝히고 도움을 구하고 아르곤과 루우비에게도 자신과 함께하길 청한다. 알로마노가 제안한 달로의 여행에 갈등하는 아르곤과 루우비, 아르곤은 납득하려 애쓰며 알로마노와 함께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숲을 떠나 다다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달로의 여행에 루우비는 가족과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불신과의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가지 않기로 한다. 알로마노와 아르곤 한발 먼저 떠난 후에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루우비가 둘을 찾아오게 되고 셋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알로마노와 아르곤, 루우비 이 셋은 여행을 하면서 몰랐던 세계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는다.
눈 먼 장님이자 시인인 베르테르와 그의 아내, 에스메랄다, 남의 것을 탐내는 몰로이, 마르만족의 습격, 퓌카산의 식인거인 체호프, 시로스 시의 벨루샤, 산 사나이면서 가수 지망생인 피피...
베르테르가 '선'의 화신이라면 몰로이는 '악'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악을 대표하는 인물로 권선징악과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퓌카산의 식인거인 체호프를 통해 혼자 사는 것보다 다같이 어울려 살아가야한다는 것과 알로마노 일행이 아르토스산을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피피의 모습에선 서로 돕고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은 꿈을 잃어가는 시대다. 느리고 조용한 것보다는 빠르고 자극적인 것이 더 만연하다. 대부분 꿈을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자기자신의 안락함만을 추구한다. 그런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 꿈꾸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져보면 어떻겠냐고 알로마노는 속삭인다.
'평화롭고 안정된 현실을 벗어나 힘들고 고생스럽더라도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야한다고...'
비가오면 땅이 굳고 더 단단해지듯이 알로마노와 아르곤, 루우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여행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꿈과 희망의 싹이 틔워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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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 이야기가 등장한 걸까? 물론 이유가 있을 수 있고 단순히 읽는 이의 이해력이 부족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읽게되면 쉬이 피곤해지고 몰입하기가 힘들어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즉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복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충분치 못했던 것 같고 시작과 마무리가 다소 약했던 것 같다. 특히 맨마지막의 몇 줄은 길을 잘 걷다가 예기치 못한 구덩이에 한발을 쑥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느낌을 받은 건 역시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기에 그렇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한자 한자 음미하며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치만 잔잔한 여운을 던져주는 글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기에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더불어 꿈꾸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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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5 04~ 05 06 음? 짧은 시간안에 읽었구나;; 싶다. 사실 매우 오래 읽은 것 같은 느낌^^//
호감이 갔던 작가이자, 내가 알기론 이책이 처음으로 출판한 책이라고 알고있는데 그분에 대한 첫인상! 묘하고 영롱하고 버엉-한 오페라+카드뮴 엘로우오렌지의 혼합같은 느낌!
사실, 서평을 읽고 바로 쓰지 않고 살짝이지만 미룬 이유가 있다... 나는 지금껏 소설하고 친하지 않았기때문에 많은 소설을 접해 본것도 아니고, 많은 작가를 아는 것도아니다. 그런내가 서평이라니... 솔직히 두렵고 부담스러웠다. 소설이라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서평이란 말보단 블로그에 쓰는 글의 제목처럼 '책리뷰'라는 말이 좋다. 그저 나는 읽고 책에 얽힌 나의 이야기거리를 풀어놓고 후기를 올리는 정도의 가벼운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평이라는 단어는...? 조금은 전문적이어 보이고, 평가한다는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싶다. 나의 다른글도 그렇지만 이글은 그저 내가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쓰는 자유로운 글쯤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이런 책이라면 언제나 나오는 말이지만 재생지와 기부! 너무나 기분좋은 단어이다. 출판사나 작가가 이런 문구를 적극적으로 써주었다면 어쩐지 더욱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책에서 기부한다는 내용의 문구를 아주아주 적극적으로 썼다. 게다가 책이 재생지라니, 환경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사면서 이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과연 이렇게 책을 찍어내는데 얼마나 많은 나무가 죽었을까... 하고. 그런데 재생지를 사용했다는 문구가 있다면 참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출판사에 대한 이미지또한 좋아지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이런 작가와 출판사라면 다른것을 보지않고 이미 이점만으로 호감도가 급 상승한다.ㅎㅎ 나는 소설 읽기를 조금 어려워 하는데, (읽으면서 등장인물이 많이 햇갈리고 전개방식이 조금만 어렵게 쓰여있어도 폭풍꼬인다;;그래서 더더욱 노력하고 있지만^^;;) 이 책은 간단하고 짧은 그런 소설이 아니라 처음에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긴장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한 에피소드 4쯤 되어서부턴 그런 느낌보단 반전의 묘미에 빠져들었고 나의 예상이 빗나갈때마다 더더욱 책이 좋아졌다. 내가 워낙 글쓰는것이나 글읽는것이 서툴고 부족해서 나만 그렇게 느낀건지, 정말 다들그렇게느끼고 작가가 의도한 내용의 전개방식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예상을 깨는 그런 반전스러움을 느꼈고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재미였다. 아, 물론 등장인물이 햇갈리는것은 에피소드 2까지 였다. 그 이후로는 대충 어떻게 글이 흐르고 있는지 파악 할 수 있었기에 전혀 햇갈리지 않고 술술 읽어나갔다. 처음에 책을 펼쳐들면서는 제목과 내용에 대해 간단히 알아뒀던 나는, 응?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닌데? 왜인지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고있네? 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알로미노는 등장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용은 굉장히 흥미 있었기에 별다른 의문없이 읽고있었다. 그러던 와중 이런 역사적인일이 있었나? 싶었는데 아하! 지명과 이름은 사실과 무관하단다. 소설이어도 나는 이런 현실성이 묻어나는 소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소설을 잘 안읽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진짜 있는 일도아닌데 그게 얼마나 감동적이라고 한들 공감이 잘 가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허구성이 조금 덜하고 더 현실감있다면? 나는 더 빠져들기 쉬웠다. 이점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였다. 다 읽고 난후 작가의 말을 읽은 나는, 그때서야 생각했다. 문학시간에 배웠던 문학과 소설의 정의를. (사실... 정확히 기억안나서 옛날에 배웠던 문학책을 다시 펼쳐들었다...ㅋㅋ - 어머나 필기가 열심히 되어있어서 좀 놀랐다;) 문학 : 문학은 보편적으로 가치있는 체험을 언어를 통해 표현한 예술이다. 소설 : 현실에서 있음직한 일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하여 꾸며 낸 이야기이다. (개연성있는허구) 라면서 아래에 개연성과 현실성, 교훈성에 대해 자세한 필기가 되어있었다. 달에 대한 이야기나 환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것이다. 작가 또한 그랬고 이 책은 작가가 경험 한 것을 조금 다르게 표현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것과 작가의 말을 보면서 내가 느낀것은 어쩌면 에세이나 전기등을 보며 현실적인 감동을 느낄 수도 있지만, 소설은 조금 더 순수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달까? 언젠가 내가 꿈꿔왔던것,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을 소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저 소설을 읽지않은 것에 죄책감같은 것을 가지고 도전한답시고 (정말로 요시모토 바나나작가님이 좋다) 요시모토 바나나작가님의 짧고 감동적인 소설위주로 읽었는데, 사실 읽으면서 감동을 느끼긴 했지만 공감하는 단계는 아니었고 이야기 자체의 감동외엔 별다르게 느끼는 것이 없었다. 물론 나서영 작가님의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지만 다 읽은후 프롤로그형식으로 쓰여진 작가의 말을 본뒤엔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까지 (말하자면) 억지로 읽어왔던 소설이 이젠 내가 정말 읽고싶어지는 장르로 다가왔다. 사람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뭔가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우연히 어떤일을 해냈거나 우연히 뭔가를 깨달았다는둥의 말을들으며 '우연히'라는 단어가 너무나 좋다. 그렇지만 '우연히'라는 단어가 좋을뿐 우연하다는 것을 믿지는 않는다. 필연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생각지도 못하던 찰나에 일어났기때문에 사람들이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사실 그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책을 늘 사보기만하면 늘 내가 읽는 장르만 읽게 되는데 (그것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선물을 받을때나 서평단등에선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말해주지 않고 좋다고 하는 책을 받게 되었을때 어쩌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내 생각이 바뀌는 계기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달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비슷하게, 별에 대해 무척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별을 딴다는 것이나 별이 내리는 것에 대한 그런 환상이 있던 어린시절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나서영이라는 작가가 내 머리에서 떠나는 일이 없을 것 같다.
글씨체. 좀 아이러니이긴한데, 소설이라 어느 한부분을 콕찝어서 좋다고 할수도 없지 않을까? 앞뒤를 잘라먹으면 그 내용을 이해 할 수 없기도하고 오해할 수 있기도 하기에. 글씨체가 제목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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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룬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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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마노 달의 여행 / 나서영
1.
(스포 有)
어릴적 소원이 있었습니다. 과자 공장에 들어가 내가 원하는 모든 과자들을 맛보고 즐기는 꿈이요. 아침은 초콜릿 우유에 말아먹는 과일 시리얼, 점심은 비스킷에 곰돌이와, 지렁이모양 젤리, 저녁은 띠부띠부 씰이 들어 있는 포켓몬 빵. 과자 공장에서 일한다고 과자를 실컨 먹는건 아니라는걸 알 정도로 성숙해 지면서 이 소원은 잊혀져 갔는데요. 가끔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빼놓지 않고 이야기 하긴 합니다. 웃긴것은 제가 이 얘기를 해보면 다들 한번쯤은 비슷한 생각을 해봤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지만 보편적인 상상 그리고 꿈. <찰리의 초콜릿 공장>이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아마 이런 보편적인 상상력 때문이 아니였을까요?
2.
여기 또 다른 소원을 가진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로마노. 걸어서 달에가겠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남자입니다. 알로마노가 어릴적 그의 할아버지는 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멀리솟은 아스트로산에 오르면 달에 닿을수 있고, 달의 흙에 젊음을 유지시켜주고 청춘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어린 알로마노로 하여금 언젠가 달에 닿고 말겠다는 꿈을 키우게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꿈을 놓지 못하는 알로마노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달을향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 여정은 무척이나 험난합니다. 사기꾼을 만나기도하고, 난폭한 추격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이들의 격려와 부러움을 받습니다. 꿈을 찾아나선 용감한 사람들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말이죠.
3.
책의 마지막 부분 알로마노는 아스트로산의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산의 정상에서도 달은 멀리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 뿐닿을수도 만질수도 없습니다. 결국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전설속의 이야기였던거죠. 하지만 산을 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알로마노와 친구들은 많은것을 얻었습니다. 물론 잃은것들도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들이 새롭게 얻은것으로 인식됩니다. 알로마노가 살던 세상은 참으로 작았습니다. 그는 그 작은 한계점을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갔고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세계에서도 그것보다 더 큰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사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안정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을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꿈이라 생각되는 틀을 깨기 전에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알로마노를 현실적이지 못한 이상주의자라 칭할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상주의자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세상이 변화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무척이나 단순한 동화같은 이야기였지만,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상당히 강렬했습니다. 동갑내기 작가의 다른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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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자에게 실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현실에 안주하여 거기에 머무는 자들이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자는 현싱에 안주해야 할까 오직 그것만이 두려울 뿐입니다. 실패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도전할 기회가 없음이 슬플 뿐입니다.- p47
달을 여행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기 않을까 싶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 떠난 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으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못이룬 것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보였고 꼭 그곳에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기에 너무나도 힘든 여정이었기에.. 과연 알로마노는 무사히 갔다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락키슈숲을 떠나는 순간부터 마주하게 될 현실앞에서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흔쾌히 허락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하지만 알로마노는 꿈을 이루고 싶어했다 그래서 같이 여행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루우비와 그리고 아르곤... 이들도 처음에는 달의 이야기를 믿지 못했다
아르토스산 정상에서 꼭 흙을 파고 젊어지고 싶다는 그의 꿈은 확고했다 그곳을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숨도 가빠지고 힘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달은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에게 들어있던 ' 꿈 ' 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이루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는 말이 있듯이... 늘 꿈을 꾸며 나아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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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가보자.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그 길에 희망을 품고 가보자. 젊은 작가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사람의 구도의 길을 가듯이 그렇게 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알로마노라는 주인공이 찾아 가는 달의 여행은 그의 꿈을 찾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희망을 품고, 동료를 찾으며, 세상을 배우고 그 속에서 자신의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선다. 모든 것이 인생의 그 것과 같다. 순탄하지도 모든 것이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지만 알로마노는 꿈을 찾아 떠난다. 그렇게 찾아가는 길에서 희망을 배우며 사람을 배우며 인생을 배우고 세상을 배운다. 우리는 그렇게 꿈을 이루어 나간다. 산 중턱까지는 눈도 쌓이지 않고 먹거리도 꽤 있답니다. 혹시 모르니 그것들로 자급자족하며 식량을 비축하세요. 언제나 길을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길로만 발걸음을 하시고, 괜히 시간을 아낀답시고 경사를 무리해서 가로지르거나 무리한 코스를 지나는 건 만용이니 절대 삼가도록 하세요. (247쪽) 그렇게 무겁지도 않은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짜릿한 연애담도 아니고, 용맹한 극적인 장면을 담지도 않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쉽게 읽히면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한 것은 아마도 알로마노의 여정을 위의 인용 글처럼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른들이 말한다. 항상 그렇게 말한다. 지금 풍족하다고 낭비하지 말 것이며, 조급하다고 그리고 자신 있다고 위험하게 질러가는 것을 피할 것이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심한 고비를 넘으려 하지 말라고, 그렇게 기대하는 마음이 책을 읽으면서 알로마노가 달에 도착하기를 그렇게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알게 모르게 알로마노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나로 인해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해를 입지 않을 테니까. 이것을 생각하면 나는 더욱 포악하고 악랄해져야겠지. 그래야 식인 거인이 존재하는 이유가 충족될 테니. (203쪽) 보지 않고 사실이 아닌 일이라도 세상이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남에게 도움이 될 경우가 있다.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세상에서 소외가 되더라도 스스로를 그 곳에 담아 두는 것을 내 사명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는 것 이것도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만나지 못하고 관념에 쌓여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젊은 작가라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성장 소설로서도 그리고 어른들에게 꿈에 대한 감정을 찾는 이야기로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에피소드별로 자신의 감정과 세상의 이치와 자신의 삶의 경험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 나서영이라는 작가는 89년생이 맞을까? 글의 무게는 작가의 나이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고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