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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으로 기억되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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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원도 바닷가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무작정 상경했다가 참전 용사가 된 한 청년과, 1.4 후퇴 때 잠시 아랫동네에 피해 있다가 연로하신 부모님과 생이별하고 혈혈단신 월남한 평안도 출신의 한 처녀가 있었다. 의지할 곳 없는 두 젊은이가 휴전 후 어수선한 타관객지 서울에서 만나 명륜동 어느 문간방에 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부엌도 없는 그 문간방에서 아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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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원도 바닷가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무작정 상경했다가 참전 용사가 된 한 청년과, 1.4 후퇴 때 잠시 아랫동네에 피해 있다가 연로하신 부모님과 생이별하고 혈혈단신 월남한 평안도 출신의 한 처녀가 있었다. 의지할 곳 없는 두 젊은이가 휴전 후 어수선한 타관객지 서울에서 만나 명륜동 어느 문간방에 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부엌도 없는 그 문간방에서 아이를 낳았다. 쌍팔년도(단기 4288)에 태어난 그 아이는 지금 지하철 요금을 면제 받는 노인이 되었다.

 

명륜동에서 태어났지만 거기서 자란 기억은 없고, 북아현동-공덕동-마포-돈암동을 거치는 동안 매년 좀 더 싼 셋방을 찾아 옮겨 다닌 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홍역으로 죽어 윗목에 뉘어놓았던 동생이 무서웠지만, 달리 갈 곳이 없어 곁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기도 했다. 지금은 강변북로가 된 마포강둑은 가난에 지친 어머니가 자식들을 데리고 자살하러 가던 곳이었고, 아버지가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쳤던 곳이었다. 미아리고개에서도 한참 올라간 산동네는 물을 지어다 먹어야 했다. 중학교 들어가서야 수도가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이주민이었으나 사실상 도시난민으로 살았던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사람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언젠가 집에 스님이 들어와 이집 큰 아들은 대학을 못갈 거라고 해서 어머니가 크게 낙심하셨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갈 때는 딱 그만큼, 대학 갈 때도 딱 그만큼 형편이 피어서 아슬아슬하게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바탕이 없기도 했고 재주도 없어서 강남은 고사하고 아파트에서도 살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 언제부턴가 그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곳을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옛 모습이 남아있기야 하겠나만. 그런 까닭에 송은영 교수가 ‘60~70년대 문학으로 본 서울의 사회사를 책으로 냈다는 기사에 눈길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그 비참했던 가난을 과거사로 돌릴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덕분에 추억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 그런데 그때는 비참한 게 뭔지도 몰랐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2.

 

유튜브에 심심치 않게 50~60년대 서울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보인다. 아직 기억이 흐릴 나이는 아니어서 동영상에 나오는 곳을 쉽게 알아차린다. 당시 서울 모습을 담아놓은 책들이 어딘가 나와 있기는 할 텐데 굳이 찾아볼 생각은 못했다. ‘서울 탄생기는 그것과는 달리 당시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울 거리와 분위기를 정리해 놓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라도 옛 기억을 돌아볼 수 있는 길잡이가 되지 싶어 작년 휴가 간 김에 사왔다. 읽고 나서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도록 서평을 쓰지 못했다. 이유는 백만 가지도 넘지만, 굳이 하나를 짚어내자면 3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안이 서울인 줄 알고 살아온 내 눈에 강남이 서울인양 서술해놓은 것이 못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지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사실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게 사실인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그걸 사실로 받아들이기 껄끄러운 것 또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서울의 사회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소설가 16인이 지은 110편 남짓한 문학작품과 수많은 논문, 텍스트에서 관련 내용을 추려내는 방대한 작업을 마다 않았다. 논문과 텍스트야 일반인의 독서 범위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니 별개로 하고, 저자가 인용한 문학작품 중에 읽은 것이 얼마나 되나 헤아려 봤다. 내 나이 또래 평균보다 적게 읽은 편은 아니었을 텐데 겨우 스무 편 남짓 꼽을 수 있었다. 읽었던 작품이라고 해도 줄거리 따라가기 바빴지 그 작품에 배경이 되는 묘사를 살펴볼 겨를도 없었고, 묘사를 살펴 봤다한들 이미 수십 년 전 일이니 기억이 날 리도 만무이다.

 

3.

 

1966년 발표된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망우리-수유리-영등포-천호동-시흥을 서울의 경계로 묘사하고 있고 이것이 1963년 당시 경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하지만, 당시 한강 건너편을 서울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국민학교 졸업할 무렵 미아리고개 산동네로 이사 갔는데, 당시 미아 삼거리를 지나면 온통 논밭이어서 그곳에 개구리나 잡으러 갔던 내게는 서울로 여겨질리 만무한 일이었다. 결국 당시 국민학생이던 내게 서울은 그저 문안을 걸어서 갈 수 있는 범위 정도였던 듯하다. 어쩌면 전차가 닿는 곳까지를 서울로 여긴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저자가 언급한 당시 서울의 상상적 경계와 일치한다.

 

서울 사람은 서울말을 쓰는 사람이었다. 비록 도시 난민으로 살아도 서울말을 쓰면 서울 사람이었고, 서울말을 쓰지 않으면 사는 형편에 관계없이 촌놈이었다. 그런데 왜 서울 사는 이는 서울 사람이고 촌에 사는 사람은 촌놈이었을까? 최일남의 서울의 초상에서 말끝마다 촌놈 촌놈 해서 우리 스스로 낮추지 말자. 어떤 놈은 처음부터 서울놈이라드냐.” 했다지만, 서울에 살면 서울 사람이었지 서울놈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서울말이 권력일 수 있다는 건 어린 시절 몇 번 다녀온 삼척 할머니 댁에서 부러움과 질시가 섞인 서울내기라는 말을 들으면서 깨달았고, 그런 경험은 대학 입학하고 처음 내려갔던부산을 지나 80년대 초 현장생활을 했던 울진, 거제까지 이어졌다.

 

지방은 내려가는곳이고 서울은 올라가는곳이었다. 서울이 북쪽이어서 그랬을까? 서울보다 북쪽인 춘천이나 철원에서도 서울 가는 기차는 상행이었다. 나랏님이 계서서 그랬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서울이 올라가는 곳이라는 데 시비 건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요즘은 들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들어가는곳이었는데, 그것과 같은 심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는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의 95%는 이주민의 자손이며 1세대 이주민의 삶이 난민의 삶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난민의 삶이니 살기가 얼마나 팍팍했을까. 지금으로서는 짐작도 못할 가난을 겪으면서 그것을 가난인 줄조차 모르고 살았다. 다들 그렇게 살았으므로.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끌려 마포강둑에 참 여러 번 갔다. 어머니는 자식을 업고 걸려서 가깝지 않은 그 길을 죽으러 가셨던 것이다. 마포강에는 다리도 없어 빠져죽을 도리가 없는데도 강둑에는 늘 죽으러 오는 여인들이 있었다. 아주 많이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었는데도 그들은 서로의 가난에 쉽게 공감했고, 금세 십년지기가 되어 팍팍한 삶의 고통을 서로 감싸 안았다. 그저 한풀이나 하는 곳이었던 그 강둑에서 어느 날 아버지는 가장의 삶을 내려놓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를 구해준 분이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살펴보니 구두만 덩그마니 남아있더라고 했다. 그런데 왜 신발은 가지런히 벗어놓는 것일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강둑에 놓인 강변북로가 퇴근길이 되면서 간혹 그때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 “언제 우리도 옛말하며 살 날이 오겠느냐고 되뇌시던 어머니를 기억하면서.

 

그런 내게도 마포강이 슬프기만 한 곳이 아닌 것은 밤섬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마포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밤섬으로 가서 계곡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에 수박을 담가놓고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고 왔다. 마포강에 묶어놓았던 놀잇배 위에서 뛰놀다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기억 때문에 평생 수영은 남의 일이 되었다. 놀잇배가 뭔지, 서울에 노 젓는 나룻배가 있었고, 밤섬에 계곡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끔 서강대교가 끝나는 강변북로 카페 한 곳을 찾는다. 뿌리만 남은 밤섬을 내려다보며 어린 시절 뛰놀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억 속의 서울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4.

 

어느 날 집 앞에 큰 공사가 벌어졌다. 집은 집인데 아파트라고 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것 같았던 마포아파트는 고작 6층에 열 평을 겨우 넘었지만, 내게는 피안의 세계였다. 아파트 단지는 담으로 둘러쳐졌고, 그 안에 있는 놀이터는 선택된 아이들의 공간이었다. 아버지가 아는 분이 거기 살았는데, 자기 집 호수를 대고 들어와서 놀이터에서 놀라고 한 선처 덕분에 두어 번 들어간 일이 있었다. 저자는 이 아파트가 현대화를 상징하는 부촌으로 인식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했지만, 내게는 지을 때부터 부자들의 성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 단지였던 마포아파트는 훗날 최초의 아파트 재개발 역사를 쓰기도 했다.

 

어느 날 미아리고개 아래까지 오던 전차가 없어지고, 삼각지에 입체교차로가 생겼으며, 아현동에 청계천에 고가도로가 생겼다. 당시 제일 높던 삼일빌딩 앞에 새까맣게 솟아오른 고가도로는 훗날 운전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넘어야 하는 두려운 코스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일하시던 태평로에 가자면 남대문을 지나야하는데, 멀쩡히 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굳이 남대문 지하도로 돌아갔다. 지하도 안의 가게들은 또 얼마나 화려했던지. 생각해보면 그 좁은 공간에 노점상 몇이 있는 것이었을 텐데.

 

와우아파트가 무너지고, 방송에서 신고산타령을 와우아파트가 우르르로 바꿔 불렀던 조영남이 붙들려가고, 대연각호텔 시민회관 대왕코너가 불에 타고, 수십 년 시민의 발을 묶었던 통행금지가 없어지면서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옛 서울은 차례대로 무너지고 재가 되고 사라져갔다. 서울에서 나고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그런 내게도 지금 서울은, 옹색했지만 따뜻했던 기억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저 차갑고 정 주기 어려운 메트로폴리스일 뿐이다.

 

그러니 저자의 역작 서울 탄생기3부는 내게는 서울일 수가 없다.

 

 

YES마니아 : 로얄 b*****3 2020.05.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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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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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글을 어떻게 쓰셨나요?먼저 많은 소설을 다 읽고 후에 기억에 의존해서 챕터를 만드셨나요?아니면 책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챕터를 구성할 소재를 모으셨나요?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서울의 공간을 재구성한 작업이다. 메모지를 계속 써가며 읽었다.24p 이 책의 목표는 분명하다.  그것은 서울을 재현한 문학텍스트라는 '육체'에 각인된 '감수성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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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글을 어떻게 쓰셨나요?

먼저 많은 소설을 다 읽고 후에 기억에 의존해서 챕터를 만드셨나요?

아니면 책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챕터를 구성할 소재를 모으셨나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서울의 공간을 재구성한 작업이다. 메모지를 계속 써가며 읽었다.


24p 이 책의 목표는 분명하다.  그것은 서울을 재현한 문학텍스트라는 '육체'에 각인된 '감수성의 고고학'이다. ... 현대도시 성루으이 탄생과 관련되 ㄴ기억들은 이제 사람들의 언어와 잠재의식에만 남아 있기 때문에, 문학적 언어에 새겨진 그 단층들을 다시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 그것은 성루이 하나의 사회적 공가느올서 구성되는 ㅅ방식에 대한 탐구이자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잊어버린 기억에 대한 발굴이다.


51p 그것은 사람들의 서울에 대한 공간 감각이 아직 국가권력의 힘과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한 강제적 재배치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72p 대통령선거가 지역주의 형성의 큰 계기였다는 연구가 있듯이... 1960년대 중반까지 서울이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지역들의 차이를 알아채거나 서열화하는 힘을 가졌다기 보다는 그저 여러 공간에서 모인 사람들을 동일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보는게 맞을 듯하다.


200p 교통체계의 개편은 서울이라는 도시공간내부의 기능적 분화, 위계화, 또는 불평등한 발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45p 196601971년 사이에 발표된 소설들에 나타난 서울의 서민주택은 이전시기처럼 빈민촌 판잣집과 같은 일률적 형태가 아니었다. ... 그것은 서울의 거주지가 다양해졌다는 의미인 동시에, 서미층들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계층 분회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253p 서울의 계층분화는 도심과 주변부가 위계화되는 도시공간의 구조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거주공간에서도 나타난다.


78p 유직자라 할지라도 정상적 수입으로는 생활비의 3분의1에 미달할 지경이니 자연 파생되는 온갖 부정과 협잡에 서로 시기하고 경계하며 말세기적 향라고가 음울한 허설 속에 강절도가 횡행하고 인생을 저주하는 신음소리만 충만하고 있다.


87p 서울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채워진 이주민들의 역사는 그들이 서울을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여 재영토화한 결과이다.


92p 시골에서 좁다란 공동체의 압력을 받으며 개인의 욕망을 포기해야 했다면, 성루에서는 그 모든 것에서 다 벗어날 수 있다. - 한국전쟁, 419가 없었다면 해방 후 50년대에 이미 일어났을 상황?


106p 문화적 갈증, 고전음악다방: 당시 귀거래, 양지 등 많은 다방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128p 앞에서 서울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이주민들이 '떠돌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는데, 서울에서 자기 집에 사는 사람조차 3분의 1정도가 1녀도 안되어 계속 이사를 해야 한다면 그 집이 과연 자기 집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132p 거주기간의 단기성과 일회성에 동반되는 불안감, 그리고 안정된 집과 방에 대한 집착은 1960-70년대 서울 이주민들의 공통된 경험이었다. ... 원래 방 또는 방의 확장으로서의 집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을 보자앻주는 최저선인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고 이싿. 집과 방은 개인의 자아가 형성되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정체성을 좌우한다.


133p 방들의 수효만큼 세상에 존재하는 기적의 수효, 하나의 방이 꾸며지기까지는 사실 예측할 수 ㅇ벗는 운명의 도움이 필요하다. -  개인, 기관, 시설 모두 자리를 찾고 잡는 시기, 이주와 정착의 시대(마치 유럽의 중세)


135p 나와 방의 경계를 심각하게 그어놓고 있지 않는 듯한 때의 합치를 가장 엄격한 사랑의 감정으로 동경하는 것이다. ... 우리는 장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장소를 이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어떤 장소를 찾는 것이다. 우리 존재를 정착시키고, 우리의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한 근거로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이 시기의 문학은 서울 전체를 자기 존재의 근거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내면과 관련시켜서 '방'과 '집'이라는 사적 공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75p 결국 문학텍스트가 현재의 도시경관에서 은폐되어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작업은, 현재의 핵심을 꿰뚫고 미래를 구상하는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


179p 촌스럽지만 건강한 창녀였던 길녀가 몇 년 후인 1970년대 초반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나 조선작의 '영자으이 전성시대'에서 불량한 호스티스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을 떠올려보면, 비록 꼭 들어맞을 예언은 아니어도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설명이 마냥 허황된 예감은 아니었다. 


230p 관광은 현재의 삶에 대한 이해나 특정한 장소의 장소서을 삭제해버리고, 아름다우 ㄴ경관과 기념비적인 것에 한정된 시선을 강요한다.


231p  서울의 고층건물신축에 관광객의 시선이 작요한다는 것은, 결국 도시경관이 소비가치를 따라 동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32p 그 결과 탄생한 것은 단순히 '무국적' 또는 '무장소성'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도시경관이다.


238p  무장소성은 공간의 상풍적 소비와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 자본이 추구하는 목적 중의 하나로 문학텍스트가 보여주는 이러한 공간체험의 변화는 자본의 힘이 성루의 도시공간을 완전히 바꿔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48p  집들은 물론 전쟁 후에 지은 것이겠지만 알맞게 낡아 있어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과 공기와의 사잉에 어떤 원근법을 다듬어가고 있었다.


249p ... 등이 오늘날 전통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집들이 민족적 전통의 소상이기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축적된 시간과 생활의 무게 때문이다.


271p  빈민들이 서울 개발로 인한 판잣집 철거에 저항할 수 없었던 것처럼,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도 부도산투기의 신화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곧장 신분상승에서 밀려나는 격렬한 계급문화가 시작되었다.

l*****s 2020.09.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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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 만든 도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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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 만든 도시 서울.한국소설구절 따라가는 재미.엄청난 분량이어서 속독으로 따라가고 있지만.내게 서울은 끝내 동이 아니라 '망우리' 로 수렴되는 확장된-편입된 서울, 그래서 간신히 서울시민의 지위는 획득했으나 끝내 특별시민으로 살지 못하고 수도권의 언저리인 경기도로 밀린 가족사 자체이기도 하다.-서울탄생기, 송은영, 푸른역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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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 만든 도시 서울.
한국소설구절 따라가는 재미.
엄청난 분량이어서 속독으로 따라가고 있지만.
내게 서울은 끝내 동이 아니라 '망우리' 로 수렴되는 확장된-편입된 서울, 그래서 간신히 서울시민의 지위는 획득했으나 끝내 특별시민으로 살지 못하고 수도권의 언저리인 경기도로 밀린 가족사 자체이기도 하다.

-서울탄생기, 송은영, 푸른역사(2018)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a****6 2020.07.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