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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2011년 그는 노르웨이 주요 정부 건물에 폭탄 테러를 일으킨 뒤 청소년 행사가 열리던 우퇴이아 섬에서 청소년 77명을 총으로 죽였다. 당시 그의 나이 32세. https://ko.wikipedia.org/wiki/2011%EB%85%84_%EB%85%B8%EB%A5%B4%EC%9B%A8%EC%9D%B4_%ED%85%8C%EB%9F%AC
그는 우파 범죄인을 변호한 경력이 있는데다 같은 건물에서 일해 인사를 나누었던 예이르 리페스타드를 변호인으로 선임한다. 리페스타드에겐 브레이비크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지만...
이 책은 그 이후 1년 간 남긴 변호 기록이다. 그는 악마를 대변한다는 이유로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비난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그 와중에도 법치주의라는 민주사회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격려를 받기도 했다.
브레이비크의 범죄 사실은 명백했다. 그는 경찰관복을 입고 청소년들을 안심시킨 채로 그들의 머리에 총탄을 박았다.
그에게 유일하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점은 그가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양형 사실이다. 형사법에서 말하는 '책임능력'은 범죄 사실에 대해서도 처벌을 받을 일종의 자격을 요구한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은 적어도 그의 징역 기간을 조금이라도 깎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브레이비크는 그것을 거부한다. 자신은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숭고한 사명을 띠고 전쟁을 치른 군인이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어릴 때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었지만 분명 그는 정신이상자라고 보기에는 명확한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혐오를 가진 차별주의자였다.
법정에서는 히틀러식 경례도 했지만 그것이 증인과 방청객으로 참석한 유가족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말에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면을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이런 인간을 대변해야하는 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의 숙명이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할 수 밖에 없는 고민을 흥미진진한 필치로 담았다. 내가 나중에 변호사가 된다면 쓰고 싶은 글이 바로 이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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