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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후지이 다케시라는 일본인이 쓴 칼럼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저자 소개를 보니, 그는 일본인으로서 한국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역사문제연구소의 연구실장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3월에 일본으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진보학자들의 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연구실장을 역임했다면, 학자로서 저자의 연구 역량이 충분히 증명되고 사회와 역사를 보는 시각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겨레신문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은 책으로, 2014년 6월부터 2017년 12월까지의 기간 동안 썼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말미에 2017년에 출간된 사진집(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에 대한 서평과 잡지(문학3, 2호)에 기고했던 글 각각 1편 씩을 첨부했다.
흥미로운 것은 '서문을 대신하여'라는 글에서 이 책을 '유고집'이라고 규정하고,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는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검색을 해보니, 그는 여전히 일본에서 역사학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자신이 쓴 글을 엮어 낸 책을 ‘유고집’이라고 하는 것에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짐작컨대 앞으로 이러한 글을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로 글을 쓰고 일간지에 칼럼을 썼던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로서 더이상 활동할 수 없음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이해된다.
일본에서도 여전히 역사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은 계속하겠지만, 그 글들은 '한국 사회의 안'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이해되었다. 일간지에 기고하는 칼럼의 성격으로 인해, 역사학자로서 저자의 글들은 매우 시사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저자는 그 칼럼들을 '이미 쓴 글들로 묻어버리기로 했'지만,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느 분이 자신의 글을 소개한 내용을 보고 출판을 결심했다고 한다. 다시는 '후지이 다케시'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한국어로 글을 쓸 일이 없겠지만, 자신의 정신사의 흔적을 '유고집'의 형태로 남기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라 하겠다.
저자의 첫 칼럼은 ‘멈춘 세월, 흐르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쓴 2014년 6월 1일자 신문에 기고한 내용이다. '세월호'가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으며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던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시작되는 그의 글에는, 당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안목이 정치인들과 일부 학자들의 그릇된 행태들을 매섭게 향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사건을 ‘세월호’라는 고유명사로 부르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이 사건을 ‘4.16’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바로 그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서 일상이 깨지면서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죽은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느낀 우리 자신의 붕괴감’을 간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4.16’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자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간직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의 글들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독자들에게 우리의 현실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 특히 일본인임에도 한국 사회 극우들의 일본 편향적인 태도와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있는 일본 사회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이 책의 글들에서는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누가 국가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제목의 2017년 12월 10일자의 칼럼을 끝으로, 한국에서의 칼럼을 쓰는 일은 멈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초기까지 계속된 그의 칼럼들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인식이 너무도 잘 드러나고 있다.
저자가 칼럼을 기고했던 신문을 여전히 구독하고 있기에, 아마도 나 역시 당시에 이 칼럼들을 읽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유사한 내용들의 글들이 지면에 많이 보였기에, 저자의 이름이나 글의 내용들에 대해서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글만을 엮은 책으로 다시 읽었을 때, 역사학자로서 국적으로 떠나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저자의 글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일본인으로서 자신의 뚜렷한 역사관을 통해서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는 저자의 관점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 ‘신친일파’를 자처하면서 일본의 극우의 논리를 추종하는 듯한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활동하고 있다. 왜곡된 자료를 바탕으로 어설픈 논리를 펼쳐내는 '신친일파'들의 심리를 간파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칼럼들을 통해서, 저자의 역사관과 현실을 바라보는 안목에 대해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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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는 누구인가> 일본인이나 한국에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한 사람. 2000년부터 서울에 사는 동안 대한민국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간 사람. 『무명의 말들』 '서문을 대신하여'에 이 책은 유고집입니다.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는 죽었고(...)라 쓰고 2018년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 그야말로 쓰는 자의 이름을 버린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무명의 말들』은 어떤 책인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쓴 칼럼을 모은 책. 세월호부터 메르스 사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뉴라이트, 위안부 문제, 사드, 촛불시민 등 당시 정세를 소환하는 글로 한가득. 그래서 읽다 보면 그 시절로 회귀한 기분이다. <나는 어떻게 읽었나> 2017년 나는 광장에 나가 있었다. 그때는 원하는 결과를 얻었고, 현재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저자 역시 2017년 광장에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촛불을 든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나 같은 간장 종지는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든 시민에게 박수를! 우리 모두 대단했어. 우리 진짜 멋있었어'가 고작인데, 작가는 한 치 앞을 더 내다본 눈. 밝은 눈. 밝은 눈으로 모병제, 정치적 올바름(PC) 등 다양한 주제를 생각지 못했던 측면에서 바라본다. 밝은 눈은 글도 잘 써서 논리 펼치는 솜씨가 압권이다. 어떤 면으로는 문제적 시각으로도 읽혔다. 근데 너무 말이 되게 글을 써서 홀렸다. 이런 식이면 눈 뜨고도 코 베일 수 있을 것 같다. 논리의 종착역은 글을 쓴 시기답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촛불을 든 이후로 귀결된다. 대체로 '다시 생각해라, 대비해라,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 류의 잔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치 현시점의 세상은 요지경을 예견한 것처럼. 10년 전부터 후지이 다케시의 글을 실시간으로 읽었다면 그 시간 동안 나는 덜 헤맸을까. 그런 생각도 하며 읽었다. <엔딩> 어떤 사정으로 쓰는 삶을 접었는지 알 수 없으나. '유고집'이라고 못 박은 기개가 대단하나. 긴 세월이 흐른 후일지라도 후지이 다케시가 다시 글을 쓴다면 꼭 찾아 읽고 싶다. 212페이지에 인상 깊은 시각을 독서노트에 베껴 적었다. 이런 게 바로 좋은 게 좋은 거라 퉁치고 넘어가지 말라는 충고라고 받아들였다. 인간사 왜 이토록 엉망진창 갈등 구조인가도 너무나 이해가 가는 시선이고. 블로그에도 옮겨두고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읽어야겠다.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기술로 '정치적 올바름'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광장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뒤섞이는 광장에서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나 민주주의는 그러한 갈등을 통해서만 생성된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경험은 힘들고 두려운 것일 수 있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해자가 될 각오도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회피하고 있는 한, 세상은커녕 나 자신도 변할 수 없다. '착한 방관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