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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일본사 전국역사교사모임 휴머니스트/2018.12.10. sanbaram
요즘 아베 일본 수상은 군국주의의 망령을 실현하려는 욕심으로 우리를 자극하고, 그들의 애국심과 집단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그래서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나라가 일본이다. 이웃이면서도 우리와의 관계에서 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나라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 책이 <처음 읽는 일본사>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엮은 이 책은 많은 독자와 학생이 세계사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역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는 ‘이이토코토리’와 조화를 중시하는 ‘와(和)’정신은 개방성과 고유색이 공존하는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었으며, 덴노와 무사 상인은 일본역사의 주역들이라고 한다. 책임 집필자 전형준은 고려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휘경여자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사모임 ‘역사사랑’을 오랫동안 이끌고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생각하는 세계사>(서양 고대 편, 서양 중세 편)가 있다.
기원전 1만 년경, 일본에서는 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를 거치며 문명이 발달했다. 4-6세기경, 일본열도의 소국들을 통합한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라이진을 적극 받아들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야마토 정권은 7세기에 들어서 호족 세력을 누르고 덴노 중심의 강력한 국가로 탈바꿈했다. 헤이안 시대 말기, 무사가 하나의 지배 계급으로 성장했다. 무사들은 가마쿠라 바쿠후를 만들고 귀족으로부터 지배권을 빼앗아 전국을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무로마치 바쿠후 말기에 이르러 바쿠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전국의 유력 다이묘들은 자기 지역을 통치하며 주변 다이묘들과 항쟁을 거듭했다. 노부나가가 최초로 전국 통일의 기초를 닦고 뒤를 이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했다. 조선과 벌인 임진전쟁의 후유증으로 도요토미 정권이 몰락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새로운 바쿠후를 열었다.
에도 바쿠후는 무사, 농민, 수공업자, 상인의 신분 질서를 엄격히 하고 크리스트교 전파에 따른 사회 동요를 막기 위해 쇄국 정책을 실시하는 등 바쿠후 체제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페리의 위협으로 에도 바쿠후는 그동안 체제 안정을 위해 유지했던 쇄국 정책이라는 빗장을 풀었다. 그 여파로 에도 바쿠후가 무너진 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사회로 나아갔다. 헌법을 만들어 근대 국가로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고, 경제 부문의 급속한 근대화로 산업 사회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근대화에 주력하던 일본은 그동안 축적한 힘을 제국주의적 침략에 이용했고, 일청 전쟁과 일러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한국을 강제로 병합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서구 열강이 아시아의 식민지를 관리하는 데 소홀해지자, 이 틈을 타고 일본이 세력 확장에 나섰다. 일본은 만주 사변을 시작으로 일중 전쟁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태평양 전쟁까지 도발하며 일본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물적 손실을 떠안은 채 결국 1945년 패전을 맞이했다. 패전 이후의 일본을 맡은 맥아더는 비군사화와 민주화 정책으로 새로운 일본 건설을 추진했다. 미국은 덴노의 인간선언과 일본국헌법 공포를 통해 일본에서 군국주의의 색채를 지우고 민주 국가를 세우는데 힘썼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 노력은 미소 냉전의 심화와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반공의 교두보 역할을 맡게 되면서 퇴색했다. 불완전한 전후 청산 결과, 일본은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음에도 정치 보수화와 군사 대국화로 주변 국가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악영향을 주고 말았다.
“일본역사 전환기의 중심에는 늘 덴노와 무사, 상인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현대로 오면서 덴노는 권력의 정점에서 상징적 위치로, 무사는 군부의 군인으로, 상인은 재벌로 재탄생하는데, 그들이 남긴 흔적과 영향은 지금도 일본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p.378)” 군사 대국의 반열에 들어선 지금. 그들은 경제력을 앞세워 힘의 외교를 펼치며 이웃나라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가장 강력한 조상신의 대리자로 덴노를 숭배하며 무사의 후예를 자처하는 권력자와 경제적 이익에 집착하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 그들을 이길 수는 없다.
“이웃나라 일본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보아 오던 것을 넘어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p.381)”라는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역사의식과 국민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대응으로는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 주변의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우리의 미래를 바르게 정립해 갈 수 있기에 일본의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일본 역사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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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는 원시 신앙과 조상신 신앙의 연장선에 있다. 덴노는 조상신을 모신 거대한 신사를 건설하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건한 의식도 함께 만들어 갔다. 덴노의 조상신이 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일본 사회에서 숭배되는 무수히 많은 신 가운데 최고신으로 숭상됐고, 덴노는 최고신의 후예로 여겨졌다. 오늘날까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신 이세 신궁은 최고의 신사로 받들어지고 있다. p.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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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장군이 머무르는 군막을 일컫던 바쿠후는 무사들이 정권을 잡은 뒤부터 무사 정권 자체를 가리키게 됐다. 무사를 부하처럼 대하던 귀족들은 이 상황을 터무니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쇼군은 덴노에게 일본 통지를 허가받은 모양새를 취했으며, 가마쿠라 바쿠후가 덴노의 조정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었다. p.94 가마쿠라 바쿠후의 성립은 귀족 지배를 무사 지배가 대체하고 봉건 사회의 성립을 알린 일본 역사상 두 번째 전환기였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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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풍의 문화는 9세기 말에 한자를 변형해 만든 ‘가나’라는 문자가 탄생하면서 더욱 유행했다. 사람들은 가나를 사용해 일본인의 사고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되었다. 가나 문자로 쓰인 문예가 발달하고, 일본 고유의 정형시인 와카(和歌) 같은 장르가 형성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와카가 유행하자 개인이 창작한 산문 문학인 모노가타리(物語)와 일기 등도 함께 발달했다.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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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일으킬 여유가 없다. 하루빨리 서양 문명국과 진퇴를 한께 해야 할 것이다. 청이나 조선을 대함에 있어 이웃 나라이기 때문에 특별히 고려할 필요가 없다. 서양처럼 일본도 이들을 식민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국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일본인들은 자국의 아시아 침략이 정당하다고 믿게 되었다. 이 생각의 바탕에는 일본인만이 근대화에 성공했고, 일본인은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하며, 다른 아시아인들은 뒤떨어져 있다고 하는 차별 의식이 깔려 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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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은 서구 열강을 추종하는 반면,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사상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배경이 되는 정한론과 대동아 공영론 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비쳤다. 그는 감옥에서 가석방된 뒤 학교를 세워 바쿠후 말기의 지사(志士)들을 양성했다. 그의 제자였던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이토 히로부미 등은 메이지 정부에서 홋카이도를 개척하고 오키나와를 일본에 복속시켰으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만주와 타이완, 필리핀을 침략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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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역사를 연결하며 야마토 정권을 세운 진무 텐노를 실제 인물로 보기는 힘들다. 호노니니기가 가져온 3종 신기는 새 텐노가 즉위할 때마다 물려받았는데, 거울은 시의 영혼을 상징하며 종교 의식을 주관할 때 사용했고, 옥은 풍요를, 검은 강한 무력을 상징했다. 신화에서 진무 텐노는 지금의 나라 지역에서 기원전 660년 2월 11일경에 즉위했다. 이를 근거로 오늘날 일본은 2월 11일을 건국 기념일로 삼고 있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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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만 년경, 일본에서는 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를 거치며 문명이 발달했다. 4-6세기경, 일본열도의 소국들을 통합한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라이진을 적극 받아들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야마토 정권은 7세기에 들어서 호족 세력을 누르고 덴노 중심의 강력한 국가로 탈바꿈했다. 헤이안 시대 말기, 무사가 하나의 지배 계급으로 성장했다. 무사들은 가마쿠라 바쿠후를 만들고 귀족으로부터 지배권을 빼앗아 전국을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무로마치 바쿠후 말기에 이르러 바쿠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전국의 유력 다이묘들은 자기 지역을 통치하며 주변 다이묘들과 항쟁을 거듭했다. 노부나가가 최초로 전국 통일의 기초를 닦고 뒤를 이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했다. 조선과 벌인 임진전쟁의 후유증으로 도요토미 정권이 몰락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새로운 바쿠후를 열었다.
에도 바쿠후는 무사, 농민, 수공업자, 상인의 신분 질서를 엄격히 하고 크리스트교 전파에 따른 사회 동요를 막기 위해 쇄국 정책을 실시하는 등 바쿠후 체제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페리의 위협으로 에도 바쿠후는 그동안 체제 안정을 위해 유지했던 쇄국 정책이라는 빗장을 풀었다. 그 여파로 에도 바쿠후가 무너진 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사회로 나아갔다. 헌법을 만들어 근대 국가로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고, 경제 부문의 급속한 근대화로 산업 사회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근대화에 주력하던 일본은 그동안 축적한 힘을 제국주의적 침략에 이용했고, 일청 전쟁과 일러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한국을 강제로 병합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서구 열강이 아시아의 식민지를 관리하는 데 소홀해지자, 이 틈을 타고 일본이 세력 확장에 나섰다. 일본은 만주 사변을 시작으로 일중 전쟁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태평양 전쟁까지 도발하며 일본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물적 손실을 떠안은 채 결국 1945년 패전을 맞이했다. 패전 이후의 일본을 맡은 맥아더는 비군사화와 민주화 정책으로 새로운 일본 건설을 추진했다. 미국은 덴노의 인간선언과 일본국헌법 공포를 통해 일본에서 군국주의의 색채를 지우고 민주 국가를 세우는데 힘썼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 노력은 미소 냉전의 심화와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반공의 교두보 역할을 맡게 되면서 퇴색했다. 불완전한 전후 청산 결과, 일본은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음에도 정치 보수화와 군사 대국화로 주변 국가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악영향을 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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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후 냉전시대의 도래와 6.25전쟁으로 일본은 이탈리아나 독일과 달리 정치적, 경제적 지배 체제의 기초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패전 직후의 이러한 상황 때문에 유럽의 동맹국들과 달리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정계와 경제계에 자연스럽게 남게 됐다. p.338 일본의 재무장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패전으로 문을 닫았던 군수 공장은 다시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당시의 신문들은 이런 상황을 ‘역(逆)코스’라고 불렀다. 동아시아에 불어닥친 미소 냉전의 영향으로 미국의 대일 정책은 비군사화 민주화에서 크게 후퇴했다. 그 대신 일본은 아시아의 공산화를 저지하는 반공과 자본주의 기지로 전환됐다.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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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처음 읽는 일본사 저자 : 전국역사교사모임 출판사 : Humanist
최근 일본사를 쓴 책을 한권 읽었는데 생각보다 아쉬웠고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 책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자 새로운 책을 읽어보았다.
일본 역사를 보면 매우 특이한 점이 있다. 덴노(일왕)는 기원전의 1대 덴노인 덴노 진무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다고 한다. 진짜인지 논란은 없는지 사실은 모르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덴노는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까지 정치의 중심에 있다 군벌이 정권을 잡는 바쿠후(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도 없어지진 않고 그대로 살아남았다. 12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된 바쿠후는 덴노를 인정하였고 실권을 가져가긴 했지만 덴노의 명맥을 끊지 않았다. 또 서양 중세시대의 기사를 떠오르게 하는 무사 집단도 매우 특이하다. 칼을 차고 다니며 일반 백성들을 죽일 권리를 가지고 있던 무사들은 전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도 동시에 행했다. 어찌보면 근대화가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집단이 많지 않고 역사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는 셈이다. 역사를 보다보니 특이했다.
우리 나라에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알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일본의 정권이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를 거쳐 16세기 전국시대를 거치며 혼란의 시기가 있을 때 그 마지막에 전국 통일에 가장 가깝고 실제로 이뤘던 인물이 셋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들이다. 이 책에서 이 셋의 차이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인물들을 잘은 모르지만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같다. 나중에 전국시대를 그린 재밌는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찾아보고 싶다. 그 시대 사람들에겐 끔찍하겠지만 어느 나라든 이렇게 전쟁을 하고 싸우는 시기가 후대에는 재밌게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또 있다. 400쪽에 가까운 내용인데 메이지 유신부터 시작되는 일본의 근현대사를 거의 반절에 해당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 버블경제 외엔 일본 근현대사에 대해 정말 잘 몰랐는데 잘 알 수 있었고 그 이전에도 여러 만행들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가깝지만 먼 나라, 중국에 비해 역사는 잘 모르는 나라이지만 꼭 알아야 하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나라가 중국과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의 개요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너무 좋았고 다음엔 새로운 내용을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