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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절망의 시간을 넘어 선 문학을 말하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절망의 시간을 넘어 선 문학을 말하다" 내용보기
우리의 삶이 문학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한 작가의 산문에서 느꼈다. 발췌 문장에서처럼 아버지가 소를 팔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등록금으로 대주었던 그 마음이 문학으로 표현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소설의 꼭지가 되듯, 문학은 우리 삶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세상이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는 비장하게 희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절망의 시간을 넘어 선 문학을 말하다" 내용보기

우리의 삶이 문학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한 작가의 산문에서 느꼈다. 발췌 문장에서처럼 아버지가 소를 팔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등록금으로 대주었던 그 마음이 문학으로 표현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소설의 꼭지가 되듯, 문학은 우리 삶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세상이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는 비장하게 희극적인 삶을 삭제할 수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문학은 소다. (22페이지)

 

소설가의 산문은 삶의 궤적이다. 작가가 느끼는 문학에 대한 생각과 열정도 어쩌면 삶의 또다른 표현이 아닌가. 산문에서 보이는 작가의 기억은 그가 쓰는 소설의 근간이다. 그의 문학의 뿌리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가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저 진중한 글을 쓰는 작가로 기억되는 손홍규의 산문은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산문의 시작부터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시골의 버거운 삶은 주로 소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나타나는데, 자식들 대학 등록금이 필요할 때마다 소 한 마리 씩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준다. 소를 팔아 학자금을 대주었고, 그 학자금으로 공부를 하고 오늘의 작가가 있는 것처럼 '문학은 소다' 라고 말하는 첫 편의 산문에서부터 나는 그저 작가의 글이 좋아졌다.

 

 

가까운 가족을 보내고 난 후의 감정들은 사실 표현하기가 막막하다. 그 슬픔을, 그 아픔을 작가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표현하겠나.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다. 말하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의 차이가 있듯, 작가가 경험한 고모의 장례식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했다. 고모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촌 형제들의 마음을, 그저 엽전 한 잎을 놓고 갈라진 목소리로 그게 외쳤던 고모부의 외침에서 막막함을 보았다. 그 광경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산문을 보면,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사고를 당해 손가락 끝부분이 잘린 아버지, 팔 한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애틋함. 1톤 트럭을 사서 장에 다니며 물건을 팔았던 아버지의 고단함을 느끼는 자식으로서의 애틋함에 나도 몰래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동안 여러번 절망하였을 아버지가 사고로 팔이 다쳤을때 수술실 앞에서 손을 내민 장면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다. 다 알지 못하는 부모님의 삶을 알아가며 그는 소설을 쓸 것이었다.

 

사실 나는 절망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 가운데 정말 절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싶다. 멀쩡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인데 깊이 절망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75페이지) 

 

그동안 내가 읽었던 그의 소설과 산문이 비로소 접점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느꼈던 삶의 여러 모습들이 진중하고도 묵직한 문장을 만들어 내었다. 그가 쓴 문장들에서 나는 그의 다른 작품들을 상상한다. 상처 투성이의 아이를 입양했던 터키인의 이야기를 그렸던 『이슬람 정육점』 같은 따뜻한 이야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문학은 그가 포기해버린 꿈을 일깨워 줘야 한다. 그가 차마 선택하지 못하고 가슴 한쪽에 숨겨둔 꿈을 꺼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한다. 결코 이룰 수 없지만 결코 포기할 수도 없는 꿈에 말을 건네야 한다.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존재 또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꿈을 꾸어서 인간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지 못하는 인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91페이지)

 

문장들이 좋다. 그가 말하는 문학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과 책과 독서에 얽힌 이야기가 좋다. 가볍게 말하는 듯 하지만 전혀 가볍지 않다. 일상을 말하는 문장들에서도 진중함이 있다. 함부로 읽어내서는 안되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기울여 진다. 그가 언급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 두었던 감정들의 발화였음을 느끼게 된다.

 

밤이 되면 더욱 그렇다. 창문을 열면 밤이 내 작은 방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창문을 닫으면 밤 속에 고립된다. 나는 밤에 포위된 채 헛된 고뇌를 되풀이한다. 문학 말고 다른 가능성이 없는 시간, 밤은 우울하다. (141페이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부모님을 사랑함에도 생전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 많은 여행을 다닐 것을 후회해 보지만 생전에 계시지 않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일때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손을 내밀라고. 그때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말이 있는 것임을 말했다.

 

작가가 말하는 고향과 자식으로서 바라보는 부모님들에 대한 생각, 혹은 함께 자랐던 사촌 형제들에 대한 애틋함이 스며있는 글이었다. 소설을 쓴 작가로서 바라보는 일상과 그것에서 오는 깊은 고뇌와 통찰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건 고작 두세 편의 소설일 뿐이지만, 산문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매혹적인 문장들, 깊은 생각들에서 오는 작가의 기억의 저편. 그것들이 그의 문학의 근간이었음을 밝혔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다치는 것보다 마음을 다치는 것이 더 아픈 법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을 달래 줄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때 받았던 부모님의 애정과 애틋함이 아닐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9.01.02. 신고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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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절망이 넘어서는 지점...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슬픔과 절망이 넘어서는 지점...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내용보기
종종, 뭔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엄마 때문이다. 엄마를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그 말을 다 하고 살아갈 수 없어서. 그저 가슴 속 말들을 쏟아낼 게 필요했다. 그래서 가끔 썼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썼다. 그 말이 되고 안 되고의 기준은 내 마음이 하는 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고 싶은 말 다 꺼내놓고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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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뭔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엄마 때문이다. 엄마를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그 말을 다 하고 살아갈 수 없어서. 그저 가슴 속 말들을 쏟아낼 게 필요했다. 그래서 가끔 썼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썼다. 그 말이 되고 안 되고의 기준은 내 마음이 하는 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고 싶은 말 다 꺼내놓고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적어도 말이 아닌 문장으로 써 내려간다면 조금은 개운하지 않을까 하는, 뭔가 풀어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누구나 그런 의미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살아가지 않을까? 뭔가를 하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 정도는 계산할 수 없는 간절함 같은 거라고 말이다. 문학이 삶을 말한다고, 그동안 문학으로 슬픔과 절망을 말해왔다고 하는 작가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삶이 문학과 닿아 있고, 그 문학으로 슬픔과 절망을 담아 세상에 터트려 놓은 말일 터였다. 그러니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다음 문장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내 슬픔과 절망을 안고 살아왔을 테니까,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아갈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적어 내려간 마음이 산문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의 말들과 의미 없게 들릴 지라도 해야만 했던 말들로, 해가 기우는 저녁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오늘의 그가 존재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걸어왔는지, 그가 하는 문학의 토대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들려준다. 물론 그가 이 글을 적은 이유가 그게 전부는 아닐 테지만, 적어도 듣는 우리는 그가 문학을 계속해야만 했던 까닭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가 아이의 생채기에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는 것은 어른이 된 후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아이였던 시절의 아픔을 불러올 때마다, 성장하면서 겪은 결핍의 순간마다, 소설가가 되어도 다 채우지 못한 문학의 바람이 떠오를 때마다 따라오는 사연들이 쌓여 저녁의 슬픔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고 하면 내가 너무 거만한 것일까? 적어도 그가 말하는 슬픔의 모습을 알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슬픔과 기쁨, 상처와 고통이 지금 당신의 글을 채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창밖의 어둠은 한층 두터워졌고 나는 습관처럼 이런 잠언을 떠올린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우리니. 그러나 새벽은 매번 가까워졌다가 매번 되돌아갔다. 마찬가지로 밤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앞으로 내가 견뎌야 할 밤들 역시 무자비할 것이다. 시대의 전위가 되고 싶은 작가적 욕망은 비난받을 필요가 없으나 너무 앞서 달려갈 필요도 없다. 추억이 없는 자는 오래 견디지 못하므로 한 번쯤 무릎을 꿇고 발 아래 귀를 대어볼 일이다. 저 지하에서 어떤 소리가 들린다면 그 소리가 바로 비참했던 한국의 밤들일 테다 - 문학은 그렇게 하지 않는 거다. (143페이지)

 

문학을 소라고 말하는 강렬한 한 문장에 꽂혀 그의 문학이 궁금해졌다. 물론 나는 그의 소설과 산문을 살짝 맛본 적이 있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만큼 그의 작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이번 책이 그를 알아가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의 문학의 근원과 그가 생각하는 세상과 그가 향하고 싶은 삶의 방향을 들은 것만 같다. 그는 한밤의 소와 마주하던 눈빛, 소의 생애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아름다운 한 생을 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아직 풀어내지 못한 글로 그 생애를 표현하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어느 날 소가 태어나고, 또 팔려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문학을 계속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을 것 같다. 생계를 책임지던 소를 팔면서, 아버지가 보내는 눈빛의 말을 그는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문학을 계속해야겠느냐고. 가난한 시골살이의 모든 것일지도 모를 것을 잃어가면서 계속해야 할 존재였느냐고 스스로 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많은 것이 결핍된 채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누군가에게 얹혀살면서 문학을 계속 했다. 또 언젠가 일어났던 일, 탈곡기에 잃은 아버지의 오른쪽 검지를 생각하며 또 한 번 문학을 생각했을 것이다. 장갑의 검지 부분을 잘라내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잃어버린 손가락일까, 아니면 이 손으로 계속 책임져야 할 식구들의 생계일까. 아버지는 1톤 트럭에 다시 한번 생을 건다. 그 트럭에 무엇이든 실어다가 팔았다.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대단한 영업 실력을 뽐낼 수는 없었겠지. 장사하는 시간이 쌓여갔다고 해서 아버지의 수입이 월등히 나아지진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생을 보면서 그의 결핍은 계속되었고, 그 안에서 문학도 계속됐다.

 

사실 나는 절망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 가운데 정말 절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싶다. 멀쩡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인데 깊이 절망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75페이지)

 

특히 절망에 관한 이야기를 아버지와 함께 들려줄 때는 어떤 간절한 몸부림을 보는 것 같다. 슬픔과 절망의 본질을 아버지에게서 찾았다. 손가락 하나를 잃은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일을 찾아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잃은 아버지는 절망하지 않았다. 아니. 절망했으나 절망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왔다. 감추고 싶었던 그 절망을 어린 아들은 나중에서야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슬픔을 몰랐고 불안을 견디는 법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의 손가락은 그에게 문학이 된다. 그가 문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많겠지만, 무언가 그가 문학을 잃지 않게 끝까지 붙잡아주는 게 있다면, 그건 그 무엇도 아닌 아버지의 손가락이었으리라. 누구에게나 그런 의미가 하나쯤 존재한다고 믿는다. 내가 뭔가를 끼적이고 싶은 모든 순간에 엄마를 떠올리는 것처럼.

 

내가 어릴 적의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무엇이든 했다. 콩나물을 길러서 팔았고, 집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통닭을 튀겨 팔았다. 온 집안에 기름 냄새가 배어 빠지지 않은 느끼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했던 것은 분식집이었는데, 아이러니한 건 엄마는 분식 종류의 음식을 못 했다는 거다. 김밥 떡볶이 같은 분식집의 기본을 못 했는데도 엄마가 했던 가게의 상호명은 '00분식'이었다. 엄마는 그 분식집에서 백반을 팔았다. 시장에 작은 상가를 얻어 백반을 팔고 주변 상인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이 가게를 참 오래 했는데, 여동생의 결혼 비용에 보태려고 가게를 정리했다. 마침 가게가 잘 안 될 무렵이기도 했고, 엄마의 육체가 이런저런 병을 안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여동생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그 가게를 당분간 운영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의 아버지가 집안 전부였던 소를 팔아서 학비를 대준 것처럼, 엄마에게도 시장의 작은 가게는 그런 의미였을 것 같다. 부모가 부재중일 때 작가가 소의 여물을 먹여주었던 것처럼, 나는 학교가 끝나고 엄마의 가게로 갔다.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설거지를 했고, 단체 손님 예약의 음식을 같이 준비했다. 손님이 없어 한가한 시간의 무료함을 같이 즐겼고, 가게에 필요한 서류상의 문제를 같이 알아보고 준비하곤 했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웃으면서 여유 있던 시간보다, 바로 앞의 순간을 넘어가느라 애쓰던 기억이다.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하는 바람으로 버티던 날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겹쳐지는 건 그런 감정이다. 지금의 그가 문학을 할 수 있게 바탕이 되었던 시간이, 엄마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마음을 배운 것과 같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걷는 것. 누구나 자기만의 간절함을 품고 살아가듯, 내 안의 간절함도 꺼내주려 애쓰며 살아가는 것. 작가에게는 그게 문학이었듯, 나에게도 어떤 형체가 되어 나타날 것이기에 계속 애쓰며 살아가야 하는 게 주어졌다.

 

그와 한방을 쓰던 할머니, 세상을 떠난 고모의 장례식장,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말들을 떠올리며 절망 그 너머의 삶을 기다린다. 슬픔과 절망에 가득 찬 게 삶이겠지만, 이제 그 삶은 슬픔과 절망만으로 채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마주하고 건너가야 할 전쟁쯤으로 여기며, 그 전쟁의 승리로 만날 희망의 삶을 노래한다. 인간답게 사는 것,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 문학으로 꿈을 꾸게 하는 것. 무엇 하나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로, 슬픔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지점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결국 그것을 찾아가려는 몸부림을 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희망, 내일, 꿈같은 것. 그것들을 포기하게 하는 많은 것으로부터 싸우는 게 운명인 존재들 말이다. 매일 저녁 귀가하는 그 길에 다친 마음을 부여잡고 있을지라도, 그걸 견디면서 가는 게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게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듯,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라는 듯...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존재 또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꿈을 꾸어서 인간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지 못하는 인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인간은 아이러니라는 미로에서 길을 잃었고 아직도 헤매는 중이다. 그곳에서 인간은 더 이상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다시 신비로워져야 한다. 탈신비화된 이 세계에서, 다시 말해 부르주아들만이 꿈을 꾸는 이 세계에서 꿈을 꿀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부르주아들과 다른 꿈을 꾸는 건 인간의 삶을 재신비화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다. 그리고 본래 인간은 신비로웠음을 잊지 않는 이유다. (91페이지)

 

n******i 2018.12.30. 신고 공감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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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을 잡고 웃다가, 시큰한 콧날 위로 눈물을 떨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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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C를 전라남도 장성에서 받았다. OBC는 (Officer's Basic course) 흔히 초군반 교육이라 부른다.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소위 계급장을 단 상태로 초급군사훈련을 받는 것이다. 벌써 15년 전이다. 세월이 빠르다. 영천 3사관학교에서 4개월 동안의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10월 말부터 이듬해 2월 중순께 까지 OBC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병과가 보병이었으므로 광주 상무대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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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C를 전라남도 장성에서 받았다. OBC는 (Officer's Basic course) 흔히 초군반 교육이라 부른다.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소위 계급장을 단 상태로 초급군사훈련을 받는 것이다. 벌써 15년 전이다. 세월이 빠르다. 영천 3사관학교에서 4개월 동안의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10월 말부터 이듬해 2월 중순께 까지 OBC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병과가 보병이었으므로 광주 상무대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했다. 그곳이 바로 OBC교육을 하는 장소였다. 통칭 광주 상무대라고 했으나 행정구역으로는 전남 장성군에 위치해 있었다. 초겨울에 시작되어 한겨울을 지나는 교육이었으나 남도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에 추위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겪은 남도의 추위는 대단했다. 무엇보다 내 생전 그렇게 많은 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경북 포항에서 나고 자라 대구에서 학교를 다닌 게 이전까지 인생의 전부였다. 지리적 특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눈이 많이 내렸다. 전남 장성, 영광, 함평, 전북 고창 부근에 아무튼 무진장 눈이 내렸다.

 

소령 진급을 앞둔 훈육장교의 훈육을 받는 탓에 우리는 눈이 펑펑 내리는 아침이면 웃통을 까고 보병학교를 2바퀴씩 돌며 뜀걸음을 하곤 했다. 다들 담배 2개비에서 나올 만한 엄청난 양의 입김을 토해내는 동시에 각자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내면서 뛰었다. 특히, 높은 계급이 모여 있는 본관 앞을 지날 때면 더 목청껏 군가를 불러대곤 했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내무반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도 시키는지 청소부터 얼차려, 총기 수입 등등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었다.

반쯤 나간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수십 번 반복될 때쯤 동기들 사이에서 비슷한 생각이 싹텄다.

아니, 우리도 이제 장교인데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훈육장교라고 해봤자 대위인데?

야금야금 우리들 피도 안 마른 머리에 반항기가 물들 때쯤이었지 싶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동기간에 주먹다짐이 일어났다. 마침, 진급을 앞두고 우리를 정예장교로 만들기 위해 혈안(자기가 진급하기 위해)이 되어 있었던 그 훈육장교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많이 맞았다.

눈이 하얗게 쌓인 훈육대 뒤편에서 하얀 눈을 등허리로 맞으며 엎드려뻗친 채로 참 많이도 맞았다.

많이 아팠다.

그 일로 훈육대 전체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정말 따뜻한 날 맞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아팠던 것 같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하얀 눈 위에 서서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웃통을 까도 하얀 입김에 욕설을 더하지 않았다. 높은 계급이 모여 있는 본관을 지날 때면 훈육장교의 핏대 세운 ‘더 크게’ 소리를 듣지 않아도 너나 할 것 없이 방금 배운 군가처럼 그렇게 목 놓아 군가를 부르며 달렸었다.

 

“연세대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연희교차로 근처에서 백골단에게 죽어라 얻어맞았다. 추운 날 맞으면 따뜻한 날 맞은 것보다 두 배는 더 아팠다.” (p.184, 대학 시절)

“체포되었다. 장안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싸대기를 좀 맞았다. 아는 대로 불었더니 더는 때리지 않았다.” (p.185, 대학 시절)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는 일은 흥미롭다. 아무래도 소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가 김훈에 흠뻑 빠져 그의 소설을 탐독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그를 모르겠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우연찮게 김훈의 산문을 읽으며 그와 그의 소설을 더 알게 되었었다. 손홍규 작가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의 소설을 읽기 전 그의 산문을 먼저 읽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이 책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적인 표현이 즐비한 글부터 위에 인용한 글처럼 배꼽을 잡을 만큼 재미있는 글도 있다.

 

‘아는 대로 불었더니 더는 때리지 않았다.’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이내 슬퍼졌다. 작가의 대학생활이 나의 대학생활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연배도 5년 정도 차이가 나고 나는 어디에 끌려가 싸대기를 맞을 만큼 열심히 운동하지도 않았지만 대학가에서 더 이상 정의와 대의의 가치가 학생들에게 먹히지 않아 가던 운동의 끄트머리를 비슷하게 겪었던 것 같다. 함께 운동에 뛰어들었던 동기는 단과대 학생회장이 되어 여러 운동에 참여했고 구속까지 되었었다. 같은 학회에 속해있던 동기 및 선후배들은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 경찰이 찾아와 만나기도 했는데, 1년도 채 몸담지 않았던 내게는 그 어떤 공권력의 접촉도 없었다. 그때 내가 ‘나는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지, ‘왜 나의 열렬한 투쟁의식은 공권력이 알아주지 않는 건지’라고 불평했는지 적확하게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지금 이렇게 졸렬하고 비루하게 일상을 버티는 꼴을 보면 전자가 100%다.

 

“어디로 갈래? 묻기에 휴전선으로 보내주세요, 했다. 왜? 하고 묻기에 전 글을 쓰려는 사람입니다. 분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요. 그는 내게 좆까!라고 했으나 정말 휴전선으로 보내줬다.” (p.186, 대학 시절)

 

‘좆까’라고 했으면 보내지 말아야지, 참 야속한 사람이다.

 

“이듬해 2월 졸업을 하루 앞둔 날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당선이라고.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에게 등단했다고 말했다. 축하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월급은 얼마냐?” (p.188, 대학 시절)

 

‘월급은 얼마냐?’에서 또 배꼽을 잡으며 뒹굴었다. 작가 본인에게는 웃픈 경험일 수 있겠지만 어지간해선 책을 보며 웃겨서 나뒹구는 일이 없는 나를 나뒹굴게 했다면 이 작가, 참 글 잘 쓰는 사람이다. 아! 비슷한 친구의 경험이 있어서 더 공감했을 지도 모르겠다. 네팔에서 NGO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8∼9년 되었다. 그곳에서 의미를 찾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친구다. 1년이나 2년에 한두 번 한국에 들어온다. 귀국해서 본가인 대구에 내려오면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 “너 언제 취직할래?” 9년이나 외국에서 생활하며 일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우리를 만날 때마다 친구는 우리에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월급은 얼마냐?” 작가의 아버지도 내 친구의 어머니도 이해된다. 그 바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식의 속상함 또한 이해된다. 나도 그러니까. 당신도 그럴 테니까.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을 때 당신의 오른쪽 뺨에 부딪혔다가 중심에서 밀려나며 가장자리에서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반죽 같은 햇살의 덩어리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p.64, 어머니와 나)

“슬픔과 고통으로 한번 구겨진 사람은 제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은박지가 그러하듯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p.195, 기억이 우리를 본다)

 

몇 달 전쯤, 이사한 새집에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일주일 정도 계시다 내려가셨는데, 토요일 오후의 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멍하게 TV를 응시하고 있는 어머니의 뺨을 관통하듯 비추던 찬란한 햇빛의 눈부심.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린 순간 마주쳤다. 슬픔인지 죄스러움인지 안쓰러움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저녁을 먹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여전히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의 뺨이 너무 야위고 깊게 패인 주름이 너무 얄미웠다. 구겨진 은박지가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어머니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은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위의 인용문을 읽고 나서(특히 64페이지)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머니 번호를 눌러 통화했다.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인지 작가와 나만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좋으면서 싫었다.

자꾸만 되돌아봐야 하니까.

 

“글쓰기처럼 독서 역시 그런 행위다. 나는 아직 행복한 책읽기가 무언지 잘 모른다. 내게 독서는 고달픈 행위였다.” (p.139,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다)

“아무리 오랜 세월 되풀이해서 쓴다 한들 결코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으로 써온 문장들이 내게도 있다.” (p.311, 바람이 분다)

 

절망으로 써온 문장들이 아직 내게는 없다. 그만큼 절실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흉내만 냈던 것 같다. 이제는 이직을 하고 절대적으로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끄적일 시간도 모자란 판이라고 혼자 자위하며 지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독서가 고달프고 절망으로 문장을 써야 한다니, 더 겁이 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을 읽는다. 가끔 글도 끄적인다. 아직 절망의 나락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처음 만난 작가와 글이었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일단 글을 너무 잘 쓴다. 미학적이며 현실적이다. 유머도 있다. 이 책을 다 읽기 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그의 소설 2권을 담았다. 얼른 읽고 싶다.

 

‘아짐찮다(p.44)’, ‘묵새기며(p.57)’, ‘넛할아버지(p.54)’, ‘갈쌍갈쌍 했다.(p.79)’, ‘햇살이 은성했고(p.100)’, ‘벼리어진(p.286)’

처음 만난 단어와 표현이 많았다. 하나하나 찾아가며 뜻을 반복해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l****h 2019.03.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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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절절해 보이는 소회들이 주옥같이 이어지는... 손홍규,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무심코 절절해 보이는 소회들이 주옥같이 이어지는... 손홍규,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내용보기
산문집은 <절망을 말하다>, <문학은 네가 선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 <수많은 밤들의 이야기>, <슬픔과 고통으로 구겨진 사람> 이라는 네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책의 말미 <미니픽션>이라는 꼭지에는 헛것들과 불한당의 소설사라는 두 개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첫 번째 챕터의 문장과 이야기는 눈물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세 번째 챕터는 웃기기도하고 슬프기도
"무심코 절절해 보이는 소회들이 주옥같이 이어지는... 손홍규,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내용보기

  산문집은 <절망을 말하다>, <문학은 네가 선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 <수많은 밤들의 이야기>, <슬픔과 고통으로 구겨진 사람> 이라는 네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책의 말미 <미니픽션>이라는 꼭지에는 헛것들과 불한당의 소설사라는 두 개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첫 번째 챕터의 문장과 이야기는 눈물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세 번째 챕터는 웃기기도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야말로 웃프다, 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챕터의 글들은 첫 번째 챕터의 글들과 조금 겹치기도 한다. 어딘가 지면에 칼럼으로 실었던 글들인가 싶게 잘 정제되어 있다.   

 
  “소름이 돋았다. 언젠가 암소의 혀가 핥고 지나간 적 있던 내 손등 위에 속삭이는 말처럼 은밀하면서 간지러운 것들이 돋아났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는 외양간으로 가서 얼어붙은 두엄을 밖으로 치웠다. 술기운이 잦아들면서 차가워졌던 몸이 달아올랐다. 식은땀이 흘렀다. 소를 팔았지만 우리집은 여전히 가난했다. 내게 그 소가 대학 등록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는 주무신다. 어머니는 맑은 물로 무쇠솥을 부시어내고 주인을 잃은 외양간으로는 사방에서 사나운 시선 같은 찬바람이 몰아친다. 쇠스랑을 쥘 자격이 없는 손아귀 가득 더운 땀이 배어난다. 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그래, 소설이라는 걸 쓸 테냐. 아버지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이래도 소설이라는 걸 쓸 테냐. 나는 고개를 저었는데 무엇을 부정하는 거였는지는 아버지 역시 확신할 수 없었으리라. 쓰고 말고 할 게 있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으나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제기랄, 소설은 이미 저 소가 다 써버린걸요. 세상이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는 비장하게 희극적인 삶을 삭제할 수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문학은 소다.” (p.22)


  ‘문학은 소다’는 산문집을 여는 첫 번째 글이다. 우시장에 들러 소를 팔고 돌아온 다음의 소회가 적힌 부분을 따로 떼어 옮겨 적어 보았다. 그 안에서 어린 작가가 그만큼 무심코 절절해 보였기 때문이다. 소를 팔아 등록금을 대는 일이 흔하던 시절이다. 세상 쓸모 있는 소를 팔아 그 돈을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소설 쓰는 아들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아비의 심정은 또 어떠하였겠는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할머니의 형제였던 넛할아버지는 자주는 아니었고 일 년에 꼭 한 번씩 우리집을 찾아왔다. 찾아오는 시기는 날을 받아둔 것처럼 일정했는데 첫눈이 내리고 서리가 내려앉고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희고 푸른 하늘이 떠오를 무렵이었다. 내가 지금도 기이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는 그 시절 전화는커녕 다른 기별조차 없었건만 오라버니가 오는 날을 틀림없이 알아 그날 아침이면 아버지에게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술을 한 되 받아오길 청하는 거였다. 그런 날이면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점심때 못 미쳐 지게를 진 넛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들이닥치기 마련이었다. 지겟작대기를 탁탁 찍으며 눈 덮인 산길을 넘어온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것도 제대로 된 신도 아닌 짚신이나 고무신을 신은 채 병에 든 술을 한 모금씩 삼키며 허위단심 넘어왔으련만 힘든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그 볼품없이 검게 타고 쭈그러든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며 지게를 내려놓고 토방에 올라서 막 댓돌에 내려선 누이의 두 손을 마주잡는 거였다. 당신들 사이에 별다른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오라버니, 외깄소.“ ”누이, 잘 지냈는가.“ 그러고는 아랫목을 서로 양보하다 비스듬히 몸을 틀고 나란히 앉아 넛할아버지는 점심으로 술을 마시고 할머니는 오라버니가 지게에 지고 온 곶감 가운데 하나를 먹었다. 그러고 나면 넛할아버지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누이의 손등을 한 번 쓸어주고는 다시 지게를 지고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거였다.』 (pp.54~55)


  첫 번째 챕터에는 소설가의 가족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는 할머니도 있다.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지만 일찍 돌아가신 탓에 기억 가능한 많은 추억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길어 올린 위의 이야기는 아름답다. 하루를 온전히 쏟아 나이 먹은 누이를 찾은 나이 먹은 오라비의 심경, 그렇게 먼길 찾아온 오라비를 잠시 옆에 두고 다시 떠나보내는 누이의 마음이 잠시 읽는 이를 먹먹하도록 만들고 만다.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노인들을 생각하다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노인이 된 부모가 보인다. 당신들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바쳐 노인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그리고 지금 나와 더불어 노인이 될 게 분명한 아내와 노인이 된 우리를 기억해줄 딸아이를 본다. 혈통처럼 세월이 흐르고 꽃잎이 분분히 떨어져 사연처럼 쌓이고 해가 저문다. 삶이 이슥해지는 시간들. 사소하고 비범한 우리의 노년이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p.62)


  글을 쓰며 흘러 보낸 시간들이 산문집의 곳곳에 있다. 거기에는 작가 자신의 시간도 있고 작가의 가족의 시간도 있다.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문학 동호회에서 흘러가는 시간도 있고 집도 절도 없는 그를 잘도 받아준 친구나 선후배와 함께 보낸 시간도 있다.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여기까지 왔노라고 말한다. 그 시간들이 제대로 쌓인 덕분에 작가는 이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 이문구 선생은 어느 산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낙향해 살던 선생은 어느 날 시내로 장을 보러 나갔다가 맘에 쏙 드는 생선을 보았으나 혼자서 사먹기에는 분에 넘치는 반찬거리인지라 값도 묻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한 노부인이 생선장수 함지박 앞에 서더니 다짜고짜 넙치를 손에 들고 ‘월매나 헌댜?’라고 물었다. 생선장수는 만 원은 받아야 하지만 마수걸이니 팔천 원만 달라고 했다. 노부인은 넙치를 던지듯이 놓으면서 ‘팔천 원이라고 이름 붙였남’ 하고 불퉁거렸다. 그때부터 생선장수와 노부인 사이에 흥정이 시작되는 거였다. 소설가 한창훈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고추를 좀 사려고 여수항 근처를 기웃거리던 그는 때깔 좋은 고추를 늘어놓은 노점상을 발견하곤 주인사내에게 얼마냐고 물었다. 그해 고추 작황이 좋지 않아 웬만하지는 않으리라 짐작은 했으나 듣기에 귀가 아플 만큼 비쌌던지라 그도 고춧값이 뭐이리 비싸냐고 투덜댔다. 그 말에 주인사내는 기분이 좋다 나쁘다 식의 말 대신 ‘그러게 말이오. 사람 고춧값은 싸디 싼디’라고 하는 거였다. 주인사내의 신세한탄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고추를 두어 근쯤 팔아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인정일 테다. 그 소설가들의 문장이 일상에서 길어올린 평범한 언어임에도 싱싱하고 눈부실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이들이 남의 말에 무심하기는커녕 외려 사소한 한마디에 담긴 진정을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이리라...” (pp.246~247)


  옮겨 적다가 중간에 끊지를 못하겠다. 하나의 호흡으로 길지만 매끄럽게 써내려가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그래서 길게 인용하고 말았다. 착착 혀에 감기는 문장들을 실컷 읽었다. 책의 삼분의 일을 읽은 것은 홍제천변에 자리한 카페에서였다. 등산복장을 한 이들 열댓 명이 이층에 있어서 일층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어수선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홍규 /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 교유서가 / 345쪽 / 2018 (2018)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21.03.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