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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죽음으로 천 년을 살다' 의미심장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삶과 발자취를 담은 책입니다. 책의 절반 정도는 이회영 선생님이 어떤 분이셨고, 어떤 업적을 남기셨는지 그 일대기를 담았고, 나머지 절반은 이회영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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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김태빈 작가님과 전희경 작가님입니다. '항일 답사'를 정리하셨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직까지 독립운동의 역사를 따라가는 지도나 여행정보가 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주를 걷다'라는 책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쓰여 있는데,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발간하실 예정인 것 같아서 덩달아 기대가 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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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보면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 명문가였는지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필독도서였던 '오성과 한음'이야기의 주인공인 이항복의 손자로, 이회영 선생님은 큰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명문가의 사람이었습니다. '헤이그 특사'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꽤 익숙한 단어입니다.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적어도 독립운동과 관련된 전시나 박물관에 한 번이라도 가 보았다면, 누구나 헤이그 특사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헤이그 특사를 주도했는가?'하는 점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우당 이회영 선생님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알려진 바가 적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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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를 포함한 사진자료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는, 교육적인 책입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그리고 교양을 위해 직장인과 주부들도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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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한용운', '안창호', '이준'... 우리가 역사서 속에서 따로따로 배우고 외웠던 위인들이 이름이 이 책에서 서로 마주치고 함께 일하고, 스쳐 지나갑니다. 당시의 상황을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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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회영 선생님의 마지막 순간으로 다가가고, 1부가 끝이납니다. 1부는 우당 이회영 선생님이 누구이며, 어떤 뜻을 세웠고, 어떻게 그 뜻을 펴고자 노력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분들도 알고 있는 이름들, '안창호', '윤봉길', '한용운'...많은 위인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을사늑약', '헤이그 특사'...많은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책에 수록된 다수의 사진자료들이 당시 상황을 현장감있게 전해주고, 더 구체적으로 역사 속 이야기들을 간접체험하는 장치가 되어줍니다. 독립을 염원하던 의사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치열했는지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역사 속 장소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놓은 페이지도 있어서 이 모든 비극적인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 소설같은, 명예로운, 동시에 독자를 슬프게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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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행의 기록입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지도와 주소 등의 정보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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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가이드]를 통해 얻은 팁(Tip)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여행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저자가 단순히 유적지를 소개할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유적지를 찾아가보고 우리가 꼭 알아야할 역사의 순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집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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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남아있는 유적지는 찾아가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많이 어렵겠지만,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적지와 박물관은 방학 또는 주말에 꼭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실천하기 쉽게, 지도와 주소, 사진자료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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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총평해보자면, 1. 이 책은 우리가 꼭 알아야할 역사를 생생하고 현장감있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2.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책입니다. 3.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유적지를 직접 찾아가보도록 권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 다만, 당시 시대상황에 관한 서술과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기록이 조금 더 풍부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작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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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만세 운동이 일어난 지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4월 11일에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그 일도 백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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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운(弼雲)이라는 호를 지닌 이항복의 10대손 이회영 선생. '한 번의 죽음으로 천 년을 살다'는 이회영 선생 전기이다. 선생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하다 고문으로 순국했다. 이회영 선생의 둘째 형 이석영 선생이 집안 어른 이유원의 양자로 갔다.
이석영은 당대 권력자이자 갑부였던 이유원으로부터 물려받은 깨끗하지 못한 재산을 신흥무관학교 운영자금으로 내놓았다.(신흥무관학교는 일제의 방해로 문을 닫을 때까지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서간도에서 1911년 개교한 이 학교는 경희대학교의 전신이다.)
이회영 선생은 개방적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이회영 선생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파견을 준비했다. '난잎으로 칼을 얻다'는 말이 있다. 난을 쳐서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한 이회영 선생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회영 선생의 묵란에 제시(題詩)를 쓴 분이 일창 유치웅이다. 이 분은 심우장 현판 글씨의 주인공이다.
이회영 선생은 제자 윤복영을 위해 부채에 난을 치고 난이증교(蘭以證交)라는 글씨를 써주었다. 선비의 절개와 기품을 상징하는 난을 사귐의 증거로 삼는다는 뜻이다.(심우장 현판은 위창 오세창 선생의 글씨로 잘못 알려져 있다.)
이회영 선생 집안은 경술국치에 망명을 결정했다. 이회영 선생은 임정(臨政) 설립을 반대했다. 파벌 싸움이 있게 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은숙 여사는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의 밥과 빨래를 했고, 베이징 시절 없는 살림에도 찾아 오는 손님들을 서운치 않게 대접하느라 늘 마음 졸였다.
여사는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 마르크스가 생각난다. 비교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회영 선생은 조선에서는 엄청난 부자였지만 타국에서는 가난한 투사였을 뿐이다. 육십을 훌쩍 넘긴 선생은 일제의 고문에도 동지들에 대해 어떤 발설도 하지 않았다.
이회영 선생은 양명학을 공부했다. 후에 선생은 아나키즘을 수용했다. 선생은 아나키스트 사상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정확히 이해했다. 선생은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누구나 평등하게 대했다. 선생의 막내 동생(6형제 중 막내) 이시영 선생은 1948년 7월에서 1951년 5월까지 초대 부통령직을 수행했다.
남산 백범 광장에 이시영 선생 동상(좌상)이 있다. 김구 선생 동상(입상)도 있다. 환국 후 다른 길을 간 두 분이 화해하도록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의원이 함께 세운 것이다. 이은숙 여사의 '서간도 시종기'로 인해 이회영 선생의 삶과 사상이 알려졌다고 할 수 있다.
여사가 이 책을 쓴 것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것도 7년에 걸쳐서였다. 1부는 이회영 선생 기록이고 2부는 관련 코스 답사이다. 코스는 셋이다. 1) 우당 기념관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까지, 2) 덕수궁에서 남산 백범 광장까지, 3) 명동에서 국립서울현충원까지이다.
이 책으로부터 많은 것을 새로 배웠다. 딜쿠샤 표석에 시편 127편 1절이란 표기가 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란 구절이다.
남대문로에 상동교회가 있다.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이회영 선생이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이 결혼식이 양반 최초의 신식 결혼식이다. 당시 상놈의 교회로 불리던 곳으로 양반 신자가 많았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와 달리 중인 이하의 신도가 대부분이었다.
선생은 파격적이게도 자신보다 여덟 살 어린 전덕기 목사에게 주례를 부탁했다.(28 페이지) 전덕기 목사를 이야기하려면 상동교회를 세운 스크랜턴(이화학당을 세운 스크랜턴의 딸)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홉 살에 고아가 되어 남대문시장에서 나무와 숯을 파는 작은 아버지 집에서 살던 전덕기가 선교사이자 의사인 1892년 스크랜턴 집에 고용되었다.
스크랜턴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정성껏 돌보고 공손하게 대접했다. 특히 이화학당을 세운 어머니 스크랜턴은 하인과 다름없던 전덕기를 가족처럼 돌보았다. 전덕기는 이에 감명을 받고 1896년 기독교인이 되었다.
청년 전덕기는 독립협회에 가입해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교류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은 외국인 선교사가 세웠지만 상동청년학원은 전덕기 목사가 구국운동을 위해 세운 중등 교육기관으로 신흥무관학교와 같은 군사훈련 커리큘럼을 운영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세 번째 코스의 마지막은 주한 중국대사관이다. 이회영 선생과 위안스카이의 인연을 따라 찾은 곳이다. 망국 후 중국 망명한 이회영 선생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기 위해 위안스카이를 찾아가 결정적 도움을 받았다. 인연과 사연을 따라 잘 구성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리뷰어클럽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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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인데도 여간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책을 만났다.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 줄거리가 무겁고 문장마다 시간의 간격이 크기 때문이다. 그물코의 크기가 너무 커서 웬만한 물고기는 다 빠져나가서 그물이 휑하듯이 행간의 얘기가 휑하고 곁가지의 얘기도 많다. 얼마나 기록을 찾기가, 그의 발자취를 찾기가 어려웠는지를 짐작이 가게 한다. 아니 그 당시가 어른의 인생사 몇 줄 남기기도 어려울 정도로 나라가 위태했고 일제의 만행이 잔악했는지 상상하기 어려움이 가득하다. 국사에서 배우는 우당은 문장도 아니고 몇 단어에 불과한 까닭을 알게 한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군사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다. 그 시대의 얘기는 그저 어른들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군사정권도 아닌 몇 해 전에는 회사 포인트로 예스24에서 노무현 자서전이랑 노무현 관련 책들이 결재가 안 된 적이 있었다. 잠깐이나마 그 때 공포정치의 무서움(?)을 체험했다. 그런데 외세에 의한 죽음의 공포정치는 상상이 안갈 정도이다. 그들의 압제는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고문방법이 72가지나 된다고 한다.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이 침묵하고 인내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6형제를 포함한 집안 전체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조국과 의를 위해서 나라가 망한 해의 마지막 달에 압록강을 건넜다.
“삶 또한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 또한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둘을 함께 할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할지라.” ---------- (p11)
6형제는 ‘불효는 불충’이라고 주장하는 유학자 가문에서는 용기를 내서 모든 재산과 인생을 받쳤다. 가문의 미래를 걸었다. 그들은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의 흔적을 찾아서 기억하고 지금이라도 기록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여정 따라서 그곳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정의 시작은 필운대이다. 중명전, 상동교회, 서간도 삼원보, 북경, 텐진의 시절이 그려진다. 의무와 고난을 감내하는 무섭고 무서운 여정이었다(p61). 그리고 뤼순 감옥에서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용기와 고뇌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2부에서는 우당기념관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덕수궁 중명전에서 북한산 둘레길 2구간에 성재 이시영 묘소, 명동 집터에서 주한 중국대사관까지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코스를 가이드하고 있다.
이회영 선생은 일제로부터의 해방뿐만 아니라 모든 독재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던 것입니다(p113). 우당은 독립에 그치지 않고 새 나라의 비전도 제시하고 무한경쟁의 다윈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갈파한다. 양명학을 배운 우당은 개방적이고 혁신적이면서 일의 성패나 이해관계보다는 옳고 그름, 그리고 과정을 중시하기에 당대의 사대부와는 생각과 행동이 여러 면에서 달랐다. 집안의 노비를 풀어주고 아랫사람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이런 사상의 밑받침으로 독립운동의 방향은 외교, 계몽운동, 의열투쟁까지 모든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하도 처량하여 눈물이 절로 난다(p78). 물려받은 재산이 현재 가치로 천억이 훌쩍 넘었지만 신흥무관학교 운영과 독립자금으로 조국의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그리하여 독립운동 기간 내내 가장 괴롭힌 것은 일제 이외에 가난도 있었다. 서간도에서는 옥수수 알을 며칠씩 불려서 밥을 했고 북경의 가난한 동네에서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해서 주소가 길고 많다. 결국 아들과 두 손녀가 전염병으로 가족 곁을 떠난다. 추위와 굶주림은 아사직전까지 갔다. 하루에 겨우 한 끼로 독립의 그날을 기다렸다. 아들 규창은 만해의 승복으로 교복을 만들어 입었을 정도이다. 고단했던 삶의 애기는 이은숙 여사의 자서전 ‘서간도 시종기’, 5남 규창의 ‘운명의 여신’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6형제의 절의는 참으로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될 것이니 우리 동포의 가장 좋은 모범이 되리라(p55). 그의 행동하는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기록도 없고 보여 주기만 할 뿐 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넘어서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백년이 지난 지금 그의 정신을 생각하니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그의 묘소는 6.26 때 포탄으로 사라져서 지금 현충원의 그 묘는 빈 무덤이라는 것에 한 번 더 숙연해 진다. 이육사의 광야(曠野)는 현재의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미래에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를 기원하고 있다. 끄트머리 연의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우당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 땅에서 안주하며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게 된 시대에, 그의 삶에서 무엇을 배우고 행동할 것인가는 오로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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