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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 로베르토 볼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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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rella distante :: Roberto Bolaño Ávalos 2010년 노벨 문학상에 페루 출신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가 과거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는 전력만으로 나는 그의 수상이 탐탁치 않았다. 상의 권위와 무관하게 그동안 진보적이고 인본적인 작가들을 선정해 온 노벨 문학상에 신뢰를 아끼지 않고 있었는데, 우익적 이념을 가지고 문학계에 영향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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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rella distante :: Roberto Bolaño Ávalos

2010년 노벨 문학상에 페루 출신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가 과거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는 전력만으로 나는 그의 수상이 탐탁치 않았다. 상의 권위와 무관하게 그동안 진보적이고 인본적인 작가들을 선정해 온 노벨 문학상에 신뢰를 아끼지 않고 있었는데, 우익적 이념을 가지고 문학계에 영향력도 적지않은 작가에게 전통적 영예를 안겼다는 것은 그 신뢰를 배반 당하는 감정과도 같았다. 하지만 내 개인적 배신감은 지하에서 이 소식을 들었을 볼라뇨에 비하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르겠다. 안그래도 붐 작가 세대를 경멸하다시피 하는 볼라뇨에게 대표적인 붐 작가 중 하나이자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를 이룩한 칠레를 칭송하는 요사가 얼마나 같잖았을까. 아마도 현존하고 있었다면 요사의 수상 소식에 볼라뇨다운 비난과 조소를 날렸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이미 그가 쓴 [아메리카 나치 문학] 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은근히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미를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보수 성향을 띤 가상의 작가들의 연대를 나열한 이 책은 말이 가상이지, 라틴 문학계를 빠삭히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빗대 은유한 작가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그 신랄함이 매우 구체적이다. 이는 실존 인물들을 풍자한 호르헤 보르헤스의 소설 [불한당들의 세계사] 의 맥을 잇는데, 그 작품과 [아메리카 나치문학] 을 비교하자면 그래도 보르헤스는 참 인정 많은 작가구나, 라고 느끼게 될 만큼 볼라뇨의 독설은 가차없다. 풍자 수준이 아니라 아예 언급된 작가들을 광대로 끌어내려 보는 독자로 하여금 폭소를 터트리게 만들 지경이랄까.

그것의 연장 선상에 [칠레의 밤] 이 있고, 또 그 가운데에 [먼 별] 이 있다. [칠레의 밤] 에선 보수적인 오푸스데이 신부이자 시인인 우루티아를 화자로 삼으면서도 그를 비루하게 만들어 버리고, [먼 별] 에서는 [아메리카 나치 문학] 의 마지막 장의 등장 인물, 칠레 공군이자 전위적인 예술가였던 라미레스 호프만을 다시 재등장 시켜 이야기에 살을 붙힌다. 시인으로서의 호프만을 ([먼 별] 에서는 카를로스 비더) 가장 열렬하게 칭송하는 평론가가 이바카체, 바로 우루티아다. 이렇게 볼라뇨의 이야기들은 보르헤스적 상호 텍스트로 연결이 되어 등장인물들이 설령 허구라 하더라도 좀더 사실적이고도 현장을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거기에 자신의 얼터에고인 아루트노 벨라노를 주변 인물로 투입하여 볼라뇨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닌 허구, 실제일지도 모를 이야기로 생생히 되살아나는 것이다.

덕분에 볼라뇨를 아는 독자들은 책을 읽기도 전에 중심 인물인 카를로스 비더가 결코 성공적인 캐릭터로 끝나지 않게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아메리카 나치문학] 에서 비더의 이야기인 <카를로스 라미레스 호프만> 의 내용은 [먼 별] 의 다이제스트판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두 소설을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라면 [먼 별] 을 먼저 읽는 쪽이 좋다.) 독자의 관심은 비더가 과연 어떤 우익적 캐릭터였냐에 맞춰지지만, 곧 볼라뇨가 이 인물을 재집필 한 목적이 <비더를 과연 예술가라 부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임을 깨닫게 된다. 볼라뇨가 그를 [아메리카 나치 문학] 에 포함시키고 이후에 찜찜해(?) 하며 결국 [먼 별] 을 다시 집필하게 된 것은 그가 워낙 분류하기 어려운 괴짜 캐릭터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분명 우익 정권의 명을 받아 좌파 인사들을 수없이 살해한 냉혈한 살인마지만, 그렇게 살해한 이들의 사진을 찍어 자신에게 명을 내린 장군들을 초대해 사진전을 열어 경악시키고 급기야 추방된 그의 기행에는 아예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곤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연기로 하늘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시를 쓰는 퍼포먼스를 하며 유명세를 얻은 비더는 이 괴이한 곡예 말고도 게임 시나리오를 쓴다든가, 포르노 영화를 찍는 등 온갖 장르에 심취하며 스스로 전위 예술가임을 자처한다. 또한 자신의 정체를 철저하게 감춤으로써 일부러 신비적인 인물로 비치게끔 해 추종자들을 거느린다. 그에겐 정치성은 물론 윤리 의식이나 정의조차 없다. 그저 자기 행위 예술에 빠진 도취자일 따름이다. 이런 화려한 행적을 보이는 비더에 비해 그저 일개 시 창작 교실을 운영했던 무명 시인 후안 스테인과 그의 라이벌 격인 디에고 소토의 행적은 매우 대조적이다. 후안 스테인은 주변으로부터 성질 더러운 볼셰비키 유대인이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좌파 인사를 돕거나 투쟁의 현장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디에고 소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심하게 안주하며 살다가 어느날 솟구친 양심에 의해 남을 대신해 죽는다. 이들에게 빚진 마음을 안고 칠레를 떠난 화자, 즉 볼라뇨는 여기에서 예술가의 정체성을 자문한다.

작가가 정치성을 갖느냐 마느냐는 그 개인의 판단이고 독자 역시 그들을 비판할 수도, 혹은 오로지 문학가(예술가)로서만 개별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 점에 있어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호불호가 오로지 이데올로기만으로 갈리는 유연성 없는 꼰대와도 같다. 이문열의 소설은 거들떠도 안보고(모 진보 매체에서 이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요사를 칠레의 이문열로 소개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MB 정부에 독설 대신 아부와도 같은 발언을 한 황석영을 변절자 라며 치를 떨었다. 심지어 존경해 마지 않던 박완서씨가 의원 선거 때 나경원을 지지한 사실에 아연실색하며 (당시에는) '노망' 이라는 표현도 거침없이 썼었다. 한 때 [일본은 없다] 시리즈로 베스트셀러에 승승장구했던 전여옥의 책은 기름 붓고 불살라 버렸을 정도이니, 나 자신도 나의 작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매우 감정적이고 균형잡히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는 있다.

그러나 칠레와 같은 나라에서 '침묵하는 좌파' 가 되고 싶지 않아 (비록 해외로 도피해서라도) 자국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신자유주의에 물들어 언제부턴가 '팔리는' 책만 쓰는 붐 세대 작가들에게 쓴소리를 하며, 자신의 모든 작품을 연결하여 오로지 하나의 이야기, 스스로의 소신만을 줄기차게 쓰다가 짧은 인생을 마감한 볼라뇨가, 그리고 그 '로베르토 볼라뇨' 라는 작가를 가진 칠레가 미칠듯이 부럽다. 우리나라에 이만한 소신을 가진 참여 작가가 있었던가? 작가는 고사하고 미네르바 사건 이후 자유 의사조차 마음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우리가 되지 않았나. '침묵하는 좌파' 라는 최소한의 정체성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진정한 좌파 지식인 앞에선 입도 뻥끗 못할 정도로 내 처지는 비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우익 작가들을 경멸함으로써 죄책감의 면죄부를 얻으려는 비겁함이 고작인거다. 언제가 되든 '쓰는' 작가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쓰게끔' 해주는 독자없이 '한국의 볼라뇨' 는 요원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덧 :: 각주의 내용마다 '여류시인' 혹은 '여류작가' 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는데, 일제의 잔재이자 성차별적인 그 단어를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남류작가' 라는 말이 없는 이상 '여류' 라는 호칭은 이제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굳이 작가의 성을 남녀로 구분해야 할 때라면 '여성시인', '여성작가' 라는 단어로 대체해도 좋지 않을런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YES마니아 : 로얄 q****e 2010.10.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먼 별, 너와 나의 거리를 가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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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너와 나의 거리를 가늠하다             토요일 저녁 하늘에는 초승달이 있었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달의 궤적은 빠르게 이동했다. 맥주집 테라스에서 감자튀김에 겨우 두 번째 잔을 비워냈을 뿐인데, 초승달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에 대해서 이제는 좀 알 것 같다고 자신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누군가는 친구이기도, 연인이기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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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너와 나의 거리를 가늠하다

 

 

 

 

 

 

토요일 저녁 하늘에는 초승달이 있었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달의 궤적은 빠르게 이동했다. 맥주집 테라스에서 감자튀김에 겨우 두 번째 잔을 비워냈을 뿐인데, 초승달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에 대해서 이제는 좀 알 것 같다고 자신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누군가는 친구이기도, 연인이기도 어쩌면 작가나 유명인사, 가족, 직장동료여도 상관없다. 먼 발치에서 출발한 객관적 물음표는 점차 그 대상에게 가까워지면서 주관적 느낌표로 변해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느낌표가 대상에 닿는 순간에야 나는 깨닫는다. 그 앎은 자신감이 아닌 자만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객관적 물음표 시절보다 못한 앎이었다는 것도. 

 

볼라뇨의 소설, <먼 별>의 표지를 떨어내자 초승달이 떠있었다. <아이스링크>에 이어서는 두 번째로 보는 초승달이었다. 겨우 한 작품을 읽고 나서 나는 볼라뇨에 대한 아는 체를 했었지만, 앞서 말했듯 역시 자만이었다. <먼 별>은 <아이스링크>와는 닮은 듯 또 달랐다. 세 남자의 목소리보다는 어딘지 더 담담했던 '아르투로 벨라노'의 회상과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내가 카를로스 비더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1971년이나 1972년 무렵이었다." - 11p

 

 

 

 

 

 

개인적으로 칠레의 역사에 대해서는 깊게 공부한 적이 없어 잘 몰랐다. <먼 별>에서도 그 시절에 대한 묘사를 구구절절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저 '쿠데타', '숨어 있는 사람', '숨을 사람'이라는 단어들로 시대의 색채를 짐작했고. 칠레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인들과 군인들은 그 짐작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책의 겉표지처럼 시대는 뿌옇고 어두웠다. 그래서였을까? 소설 속 주인공인 '아르투로 벨라노'에게는 그가 그렇게 알고 싶어 했던 '카를로스 비더'의 진실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추적할 단서라고는 오로지 '비더'가 별처럼 빛났던 순간들뿐. 그 빛을 따라가 보아도 이미 진짜 '비더'는 그곳을 떠난 지 오래였다.


이는 '벨라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혹은 시작했던, <먼 별>속 다른 시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대에 맞서 투쟁했거나 혹은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위해 살았거나, 모두가 저마다의 빛을 잠깐씩 발하고는 사라질 뿐이다. 옛 동료들의 반짝임 속에 오히려 빛나지 않았던 '벨라노'의 평범함이 내 눈에는 편안했다. 원래 같은 밝기로는 그 빛을 가늠할 수가 없게 마련이다. 역사 속 철저한 주변인들, 어두운 밤을 올려봐야만 했던 수많은 시민들의 눈을 '벨라노'는 대표한다. 덕분에 나는 '벨라노'와 '카를로스 비더'와의 거리, '벨라노'와 70년대 칠레와의 거리, '벨라노'와 '문학'과의 거리 등, <먼 별>을 통해 수많은 거리들을 상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재판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자취를 감춰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연쇄 살인범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국내 문제들이 너무 산재해 있다. 칠레는 그를 잊는다." - 151p

 

 

 

 

시간이 지나면 초승달은 내려가고, 다시 해가 떠오르게 된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시대는 없다. 권력의 축은 결국 움직이게 된다. 결말에 이르러 <먼 별>은 시대가 빚어낸 개인의 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바뀐 시대의 국가는 직접 나서서 심판하지 않았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내비쳤을 뿐, 결국 심판을 내렸던 것은 국가가 아닌 어느 개인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의문의 누군가) 그렇다면 그 죄는 과연 여전히 유효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비더'를 심판하려 했던 자는 그 자체로 정의로웠다 할 수 있을까? '루이스 타글레'와 '카를로스 비더'는 동일한 개인인가? 

 

이와 같이 볼라뇨의 소설, <먼 별>은 시대를 거쳐간 개인을 '문학적'으로, '정치적'으로 분리하고 또다시 이어붙이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삶은 믿는 대로 사는 것이다. 어차피 빛을 따라간 곳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그 빛의 과거일 뿐이니까. 평생토록 붙어있지 않는 한, 별은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그 진실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가늠하고 또 가늠해야 한다. 너와 나의 거리도, 나와 이 시대의 거리도.

g******x 2014.09.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먼 별] Estrella Distante (1996)
"[먼 별] Estrella Distante (1996)" 내용보기
3.0   190페이지, 25줄, 22자.   동일 작가의 글이 죽 꽂혀 있기에 하나쯤 읽어줘야겠다는 압박감이 생겨 빌려왔습니다. 와서 목록을 작성하려고 했더니 이미 이 작가의 것을 하나 빌린 적이 있네요. [제3제국] 그런데 이 책을 펼쳐서 읽으니 동일 작가라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라틴 계열에서는 좋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으나, 또 우리 나라에서도 어떤 분들은 좋아하실지
"[먼 별] Estrella Distante (1996)" 내용보기

3.0

 

190페이지, 25줄, 22자.

 

동일 작가의 글이 죽 꽂혀 있기에 하나쯤 읽어줘야겠다는 압박감이 생겨 빌려왔습니다. 와서 목록을 작성하려고 했더니 이미 이 작가의 것을 하나 빌린 적이 있네요. [제3제국] 그런데 이 책을 펼쳐서 읽으니 동일 작가라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라틴 계열에서는 좋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으나, 또 우리 나라에서도 어떤 분들은 좋아하실지 모르겠으나, 제게는 질색인 서술방식입니다. '젠장, 내가 왜 빌려왔담.'을 반복하면서 읽어내려 갔습니다.

 

뭐 재미는 없었습니다. 줄거리는 뒷부분에 있는 [옮긴이의 말]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실 줄거리를 이루는 내용은 사이에 박아놓은 글을 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저랑 거리가 먼 작가. 그나저나 작가의 활동기간이 고작 10년이네요. 어쩌면 일찍 죽었기에 더 각광받는지도.

 

140731-140731/140731

k****8 2014.10.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