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핑크의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라는 이 책은 내가 교회와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가장 속시원하고도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해 준 책이다. 한스 큉의 <교회란 무엇인가="">(분도)와 더불어서 내게 교회론의 뼈대와 체계를 세워준 책 가운데 하나이다. 특별히 교회가 점점 세속화되어 가고, 이 세상의 논리를 쫓아가느라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 때에 로핑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바들은 정말로 나에게 복음처럼 다가 왔다. 특별히 세속적이고, 타락한 사회에 대항하여서 교회가 "대조사회"(Kontrast-gesellschaft)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은 정말로 피부에 와닿는 감동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개인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이 현대사회에서 로핑크는 교회는 "서로가 함께"(알렐론)를 실천하는 공동체이며, 형제애를 실천하는 공동체이며, 사회적 장벽들이 교회 안에서 모두 지양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만민을 위한 징표가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주장하는 내용이 앞뒤가 착착 맞게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그런 책은 아니지만, 책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인싸이트 - 충실한 성경 주해에서 비롯된 - 는 다른 어떤 경건서적 못지 않은 "은혜"와 "감동"을 느끼기기에 충분했다. 예수께서 바라셨던 공동체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 오늘날 우리의 공동체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성경적인 대답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고, 충분한 시간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교회란>예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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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회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일까?' 이러한 고민과 질문은 많지만 정작 우리가 그리는 교회의 모습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의 모습이라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은 거의 없는 듯하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일치된 그림이 없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는 있지만, 신약시대의 교회가 실제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적다. 튀빙엔 대학 가톨릭 신학부에서 신약성서학 교수로 재직했던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에서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탁월하게 밝히고 있다. 예수님께서 세우시길 원하셨던 공동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자신이 곧 하나님나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보여지는 예수님의 선포와 사역의 중심에는 '하나님나라'가 있었다. 즉,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자신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하나님나라는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저자는 예수님께서 세우기 원하셨던 공동체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연속상에서 생각해야만한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12제자의 구성의 "예언자적 표징행위"로 파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빛이 되어야 했다. 하나님나라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만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도리어 어둠으로 쫓겨나게 될 운명에 처해졌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거룩한 남은 자들이나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언제가는 충만한 숫자로 모여 이루어져야하는 종말론적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민을 위한 "구원의 보편적 징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탄생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선취를 맛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 교회에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경험되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 모든 차별은 지양된다. 모든 장벽은 무너진다. 하나님의 영은 화합의 영이며, 평화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다. 로핑크는 다른 성서학자들이 많이 주목하지 않았던 한 단어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공동체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밝힌다. 이는 "서로"라는 단어이다. "ἀλλήλων"은 개역개정에서 '서로, 피차, 각각'으로 번역되어지는데, 주로 '서로'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이 단어의 용례를 살피면서, 공동체의 특징을 "서로 함께"를 실천하는 것에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며, 온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을 받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로핑크는 신약성서의 사랑은 보편적 인류애가 아닌, 거의 예외 없이 공동체 내의 형제애를 뜻한다고 말한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은 대조사회 혹은 대척사회로서 존재한다.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는 세상과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화되어 그분의 진리 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다. 여느 사회의 거짓과 허위와는 날카롭게 대조된다. 교회의 거룩함은 세상의 거짓을 폭로한다.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는 빛으로 밝히 드러난다. 교회는 스스로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로 인하여 거룩해진다. 용서받은 백성은 죄가 없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 희망이 자라나는 교회의 모습으로 세상과 차별되어진다. "십자가와 고난의 역사라고는 또 다시 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되 또한 그분과 함께 일으켜지기에 거듭 새삼 부활절을 경축할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말한다(244)." 교회론에 대한 다양한 책이 있지만, 로핑크의 이 책은 다른 책이 꼭 한번은 참고하는 책이다. 즉, 교회론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부제에서 보여지듯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차원'을 분석한다는 것은 다소 생경한 경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원초적 교회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재 교회가 배우고 닮아야 하는 부분은 계승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이론이나 사상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대안이나 응답일 것이다. "삶의 자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본질적인 부분은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지금 현재 이 땅에서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가 많아지길 기대하게 된다. |
| 저자는 하르낙과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한 개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사상을 반격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공동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한다고 고쳐 잡는다. 에수님께서 원하셨던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길 원하셨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대로 앞으로 천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부름받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부름받은 공동체인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귀한 모임, 십자가의 피 값으로 산 주님의 몸, 아름다움 모임, 교회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작은 교회이든지, 큰 교회이든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보이지 않는 완전한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 아닌가? 교회마다 뚜껑을 열어보면 아픔이 많다. 아픔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다. 마음이 서로 상해 있고 참된 형제애가 무너져 있다. 얼른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금들이 너무 많이 그려져 있다. 교제권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모습들이 더러운데도 잘 포장되어져 있다. 가면을 쓰고 있다.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미화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먼저 자신에게 있는 좋은 부부, 성격 중에서도 좋은 부분을 최선을 다해 동원해서 자신을 포장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성격을 통해 자신을 가리려고 하다가 잘 되지 않으니, 가면을 쓰기까지 한다. 참된 사랑이라기 보다 '척'하는 모습, 과연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까? 그러다가 가면이 벗겨지는 날은 서로가 무섭다. 하나님의 대조사회를 이루어야할 교회가 심각한 세상과의 일치, 아니 더 앞장서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만이 이러한 모순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주님의 멍에를 가볍게 해야할 것이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일이 오늘날 교회엔 부족하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권면하고 있다. 이 마음을 품으라고, 오늘날 교회가 품어야 할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나부터 품어야 겠고, 늘 점검해야겠다는 각오는 해본다. 하나님의 나라가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고, 아직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섬기는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최선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다해 도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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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교수님 수업 시간에 여러번 추천 받은 책이다. 제목부터 아주 흥미로워서 언젠가 꼭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한마디로 아주 유익한 책이다. 여러번 읽어도 좋을 듯하다. 복음서의 내용을 새로운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곳이 많아 좋은 주석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해석이 아주 수긍이 간다. 정말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 이 말은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보지 못하고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다만 어투가 살짝 고어체며 문어체라 읽기가 조금 힘든 것은 있다. 하지만 크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을까?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길 원하셨을까? 그리고 우리의 현재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은 과연 그것을 닮아 있는가? 정말 중요한 질문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역설적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그 사람을 한꺼번에 자신의 백성으로 삼지 않으셨다. 그는 먼저 한 사람을 택하셨고, 그로 인해 한 민족을 구성하셨다. 그리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셔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만드셨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로 하여금 모든 민족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통로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먼저 12명의 제자들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명하셨다. 제자들의 공동체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세상으로 나갈 사명을 주신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구원할 계획을 가지지 않으셨다. 이것이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이다. 여기서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양태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미루어 짐작할 것이다. 여호와를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가는지가 그들에게는 아주 궁금할 것이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인 로핑크가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세상의 그것과는 아주 판이하다. 정말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조직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지만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전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공동체, 지배구조가 없고 보복이 없는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 백성 안의 권위는 오로지 섬김에서만 자라나야 한다. 진정한 권위는 지배를 단념하고 무력해졌을 때라야 빛이 난다. 무엇보다 사랑이 공동체이다. 신약성경에서의 교회는 바로 세상과 날카롭게 맞선 대조사회로서의 공동체이다.
읽고 바로 서평을 쓰지 않아 내용이 벌써 가물거린다. 꼭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내용이 아주 깊어 저자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로핑크의 다른 책들도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세상의 조직과 별 다름없는 교회 내의 구조 때문에 요즘 마음이 상한다. 담임 목사는 꼭 기업의 총수같이 떠 받들어지고, 그 앞에서 다른 부교역자들은 눈치를 보기를 원한다. 담임 목사의 말은 성서의 말씀보다 더 권위를 갖는다. 세상과 다를 것이 뭐가 있나는 의문이 든다. 섬김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본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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