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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갔다 오세요.
그가 탑승한 ‘CMA CGM 페가서스’호는 1만 1,388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9만 8,246마력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으로, 어지간한 파도는 그냥 뚫고 지나가 버린다. 그가 전작 「기계비평」에서 탑승했던 ‘그랜드 머큐리’호는 1만 8,900마력이었으므로 규모가 5배 이상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정은 더 길어졌으되, 더 무난해졌다. 전작에서 겪은 것과 같은 생존의 위기는 없었다. 해적이 곧잘 출몰하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도 경보만 실컷 듣고 별일 없었다. 집채만 한 파도에도 약간의 요동이 있었을 뿐이다.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거나 선원 간의 내분도 없었다. 그에게 찾아온 위기는 수에즈 운하에 다다르기 전, 한점의 땅뙈기나 배 한 척조차도 찾아 볼 수 없는 인도양의 망망대해를 일주일 넘게 마냥 떠다니는 와중에 겪게 된 극도의 무기력감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서 유동하는 실존적 고뇌는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앉아 책장을 넘기는 독자에게 반의반의반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원래 정적인 고뇌란 제3자에게 오롯이 전달되지 않는 법이다. 솔직히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기왕 치킨 한 마리 값을 치르고 읽는 책인데, 더 스펙터클한 위기가 휘몰아치기를 기대했다. 저자는 별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평작업에서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에서의 항해라는 맥락에 돛을 내리고 전작과 유사한 주제의식이 반복된다. 보통사람들은 기계문명의 최정점을 볼 수 없다. 그것은 아주 특수한 공간에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그 안에 실존적 인물과 삶이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모르거나 의식적으로 외면한다. 하지만 기계는 현대사회의 기저이자 조건이다. 그러므로 기계를 안다는 것, 그리고 숙고한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영준의 기계비평론이다. 하지만 이영준은 이 같은 기계비평론의 정언명령을 따라 사명감으로 그 작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그저 기계가 좋아서 그것을 보고, 찍고, 읽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기계비평가가 된 것뿐이다. 모름지기 업이란 그래야 하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