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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사과를 두 개 가진 사람이 행복할까요. 사과를 한 개 가진 사람이 행복할까요? 물론 한 개가 되었든 두 개가 되었든 그걸 깨물어 먹으며 사과를 먹는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겠죠. 행복은 조건의 문제이기보다는 향유의 문제죠. 행복을 향유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많은 공감이 가는 글이다.
대추 한 알, 마지막 사랑 등의 시로 유명한 장석주 시인이 지난 5년간 탑 클래스에 연재한 칼럼을 엮은 글들이다.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는 지친 마음과 영혼을 안아주는 ‘힐링’을 주제로 한 시 에세이다. 사랑에 대한 기쁨과 슬픔, 이미 저버린 하루에 대한 아쉬움, 못다 한 것들에 대한 후회처럼 우리 마음에 까끌하게 남은 감정을 치유해주는 말들이 담겼있다.
참으로 시가 있고 그 시의 내용을 섬세하게 이야기를 그려준다. 시를 읽으면 그 마음의 편안함을 주었던 그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바쁘다는 이유로 접하지 않는게 아쉬움이 많았다. 많은 공감이 가는 글들이 있다. 우울하거나 기쁘거나 할때마다 펼쳐 볼 수 있는 좋은 에세이집이다. 각자 다른 시인들의 시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엿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시와 글들을 접한 시간들이였다.
그 중 제일 관심이 갔던 시들이다. 정호승 님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은 착불로 온다.박후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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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시 읽기 [오늘은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장석주, 21세기북스, 2012 책의 부제가 ‘서른 살을 위한 힐링 포엠’이다. Healing Poem은 치유의 시를 말한다. 저자 장석주는 “말과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시에는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며 휴식과 위안을 주고, 실제로 통증을 줄이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언어는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시’대신 ‘언어로 이루어진 어떤 행위나 결과물’을 집어넣어도 이 명제는 성립한다. 음성언어로 이루어지는 상담이나 강연(설교)과 문자언어로 이루어진 소설 성경뿐만이 아니라 어려운 고전에서도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좀 더 나가면 영화, 그림, 음악을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있다. 詩는 무엇이 다를까? 문학 예술 치유를 이야기하면서 자본주의적 논리를 앞세우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시는 경제적이며 효과적이다. 시집보다 더 싼 책이나 영화는 없으니 값이 싸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짧은 시간에 어디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이 詩다.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은 시를 어렵다고만 생각한다. 그건 어려운 시만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들과 몇몇 시인들마저 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위치에 놓으려하는 시도의 결과이다. 시집을 보면 뒤편에 비평가들이나 시인의 해설이 붙어있다. 독자는 자신이 아는 만큼 느끼며 시를 읽었지만, 마지막에 붙어 있는 해설을 읽고 절망한다. 해설은 정답이 아니다. 비평가 김태환은 “비평가를 결혼식에서 의무적인 덕담을 건네주는 주례에 견주는 비유법이 대중적 호소력을 얻고, 작품집 뒤의 해설을 책값을 비싸게 만드는 사족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느끼는 독자가 늘어난다. 비평은 인기 없는 문학을 구원하려다 스스로 신뢰를 상실하고, 신뢰의 상실은 비평의 효력을 감퇴시키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빠져든다.”라며 자신의 책 [문학의 질서]에 써놓았다. 이러한 문학과 비평의 불안한 동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문학이 생겨나면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 책도 해설의 형식으로 쓰였다. 치유를 위한 시가 나오고, 저자가 시인의 언어를 빌려 와 해설을 한다. 그 해설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치유 경험을 써놓은 것에 불과하다. 치유를 받고 싶다면, 독자 자신의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처음부터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저자의 서문을 읽어보고, 차례를 펼쳐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찾아가며 읽던지, 눈길이 닫는 제목의 시를 읽던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손길이 가는 페이지에서 이야기하는 시를 읽으면 된다. 그 시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해설을 읽지 말고 다른 시를 찾아라. 어떤 시에서 작은 울림이 생기면 그때 저자의 해설을 읽으면 된다. 저자의 해설과 내 느낌이, 무엇은 같고 다른지를 해설에서 읽으면 된다. 치유가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치유 받기 위해서는 작은 울림을 큰 울림으로 만들어야 한다. 외로움을 느낄 때면,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이렇게 자신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시 한편 읽고 치유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치유 받고 다시는 상처를 입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시인 장석주의 힐링 포엠 컬렉션일 뿐이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선 사람에게 좋은 안내서이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만들어야 한다. 2012.05.02 ` -------------------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기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책에 처음 나오는 시 ([수선화에게], 정호승, 열림원, 1998 중에서) ------------------------ 자기연민 ` 나는 결코 야생의 것들이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작은 새는 가지에서 얼어죽어 떨어질 것이다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며, ` D.H 로렌스 [제대로 된 혁명] 중에서. -------------------------------------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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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하는 수많은 생각들을 함축 시켜 놓은 시라는 장르는.. 언제 보아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좀 덜 읽히는 것 같은 느낌. 시를 이해하려면 작품 외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의 지식도 좀 있어야 하지만- 나는 작가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 작가의 생활상 같은 것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접하는 시는 아무래도 수박겉핥기밖에 될 수가 없다. 물론 시라는 장르는 읽는 이가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 시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나름대로 파악하면 그게 다인 거지만, 아는만큼 보인다-라고.. 아쉽긴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작가의 상황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에세이스트, 그리고 시인. 저자는 시인이라서 시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걸까, 아니면 작품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시를 잘 이해하는 걸까. 아마도 둘 다 이겠지만,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쪽으로의 해석들도 흥미로웠고, 저자의 말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문체의 고급성,이라고 해야하나 무튼 글 하나하나를 써감에 있어서도 함부로 내뱉는 듯 보이지 않아서 더더욱 신뢰가 갔는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총 47개의(제대로 센 거 맞겠지?;;;) 시의 원문이 소개되어있고, 각각의 시마다 저자의 코멘트가 적혀 있는 식이다. 그리고 그 시를 읽은 저자가 붙인 제목도 또 따로 붙어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시를 설명할때 이런저런 또 다른 시들을 차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건 정말 시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인데, 이런 방식은 하나의 시를 읽으면서 또 다른 시를 발견하는 기쁨도 가져다 준다. 예를 들거나 다른 이야기를 잠시 꺼낼 때 내보이는 시가 원문이 다 실린 작가의 또 다른 시일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작가의 시일 수도 있고, 작가와 연관이 된 시일 수도 있고, 저자가 좋아하는 시일 수도 있다. 시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서 그런지 새로운 시를 정말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한 개의 시로 여러개의 시를 읽게 만드는 참 신기한 책.
다만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흑백의 사진들은 연관성이 전혀 없는데 왜 들어가 있을까.란 의문점은 가지고 있다.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나쁘지는 않을텐데 굳이 들어가 있을 곳이 아닌데 들어가 있는 사진들도 더러 있어서...
서른살을 위한 힐링포엠이라는데, 나는 아직 20대인데도 불구,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머리가 복잡복잡했었는데, 집중해서 이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맑아진 느낌.
이 책 덕분에 묻어뒀던 시집도 꺼내들고 시집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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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 하나는 어서 마흔 살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현 상황이 너무도 불안하기에 충분히 나이 들어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여유에 눈을 뜨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시절로부터 10년이 훌쩍 흘렀다. 서른이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현실이라는 파도를 넘나들며 표류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10년 전 안정을 꿈꾸었던 그 아이의 삶이 어떠한지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글의 전개에 애를 먹고는 한다. 말로는 충분히 제 생각을 피력할 자신이 있는데 펜만 들면 벌벌 떠는 것이다. 그런 이들은 ‘길이가 긴 글이 잘 쓴 글’이라는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문장력도 뛰어나야 한다. 그렇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때로는 짧은 단어 하나로 사람을 울리고 또 웃기는 게 가능키도 하다. 말보다 침묵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이끌어내는 장르로는 시가 제일이지 싶다. 저마다 독창적인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 글은 앞서 언급했듯 ‘길이’로 승부를 걸면 어김없이 예선 탈락 감이다. 허나 제약 속에 담긴 무궁무진한 세계를 알고 나면 길이가 전부는 아님을 깨닫게 된다. 누가 어떠한 생각을 하며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글이 시다.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는 그런 시를 다루었다. 저자는 월간 ‘탑 클래스’에 지난 5년간 연재해온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시는 짧으나 해설이 길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시를 읽은 후 저자의 덧붙임을 통해 마침내 한 편의 시를 나는 완성 짓고야 만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시인이 하고팠던 모양이다, 비로소 시를 향해 다가서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저자의 긴 해설이 정답은 아니라고 감히 말해보고 싶은 이유 모를 반항 심리에 시달린다. 한 번은 저자에 의존적이었으니 조만간 시간을 내어 이번엔 내 멋대로 읽어보리라 다짐도 한다. 해설은 제한 채 오로지 시만을 읽으면서, 그 안에 내 경험, 내 느낌, 내 모든 것을 투영해 보고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각각의 시가 머금고 있는 고유의 생동감을 좀 더 내 것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시름시름 앓는 영혼들의 마음을 쓰다듬는 효과를 시가 지녔다고 믿는 저자의 의도에도 왠지 부합하는 독서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게 힐링(healing) 아니겠는가.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효과는 동일하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리 되지가 않았다. 욕심은 지나치고 현실은 바닥이고, 두 영역 사이의 현격한 차이에 좌절하는 내 모습이 이 책에 담긴 많은 시들로부터 엿보였다. 시 ‘그래도 살아볼 만한 인생’에서는 막힌 하수도를 뚫고는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떠난 심부름길. 비 피하다 병맥주를 마시고 뜬금없이 자스민 한 그루를 사고 나니 아내로부터 받은 4만원은 사라지고 없다던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노임을 받지 못한 설비 기사의 입에서는 거친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아내와 그런 아내의 손을 잡은 고운 눈썹의 아이는 아마도 영원히 시인의 편일 것이다. 삶이 초라할지라도 나와 발 맞추어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게 인생이다. 돈 가져다 주는 것 하나도 ‘아직 멀고 먼’ 그래서 해결치 못하는 삶이라 하여 자책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시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인다’는 고기들의 파닥거림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생존을 향한 그 몸부림을 ‘육탁(肉鐸) 같다’고 표현했다. 제어가 힘들 정도의 우울함이 한 번 시작될 때면, 난 처음에는 일종의 저항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이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어딘지 모를 바닥에 닿기를 기다린다. 가장 낮은 곳에 이른 후에는 다시금 올라가기 마련이라면서. 안타깝게도 생존의 문제는 그보다 더 독해서, 바닥을 치고 난 후에도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 즉 죽음을 맞닿드리게 된다. 도다리 광어 우럭 등으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아 차리는 일은 가능하다. 아, 앞선 시와는 정반대로 울고파진다. 많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데도 굳이 이 둘을 언급한 까닭은 세상을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현격히 다른 것이 인간이요, 모두가 다른 가치관에 입각해 세상을 그려내고 있음을 말하고 팠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아마도 시인들과는 또 다른 당신만의 시선이 그리고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눈물로 웃음으로 시를 쓰지 못하면 또 어떤가.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당신은 당신이 구축한 그 세계를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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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을 위한 힐링포엠이라는 서브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던 책.
예전부터 뭔가 시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많았었다. 함축적인 면도 많고, 읽고 나면 무슨뜻일까 싶어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기에.. 그래서 시는 조금 멀리했던 경향이 있었던 듯.. 그런데 올해 서른이 되고 뭔가 변화가 생기게 되면서 책을 읽음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그와중에 눈에 보인 서른 살을 위한 힐링 포엠이라는 문장에 끌림을 받았다.
그렇게해서 읽게 된 "오늘, 우울하거나 명랑하거나"는 제목에서부터 요즘 사춘기를 넘어 오춘기 육춘기가 온 나를 위한 책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책.. 목차에서부터 뭔가 마음에 들었다. "외롬과 시림이 식초보다 아프다", " 한없이 서 있는 뒷모습에게", "꿈이 꿈을 떠나고 노래가 노래를 잃었을 때", " 닳고 닳음에도 다 사연이 있더라",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등 각 각의 시에 붙여놓은 서브식의 제목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각 챕터들은 시로 시작을 하고 지은이는 그 시에 대한 해석을 해준다. 시는 뭔가 심오한데 그 해석을 바로 해주니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 힐링이라는 이 단어는 어느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이 책은 아주 많은 도움은 아니지막 적게나마 힘든 나에게 힐링이 되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에 지친 그 누군가를 위한 이 책 한번쯤 가볍게 읽어봐도 좋을 듯 싶다.
시 한편.. "외롬이 시림이, 식초보다 아프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에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지지 말자.
-황인숙, [강], [자명한 산책], 문학과 지성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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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주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자신을 깨닫게 해주는 부드러운 메세지들.
큰 파란벽에 기대어 쉬고 있는 자전거 한대.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라는 제목이 손길을 잡아끈다.
서른살을 위한 힐링포엠. 서점에 가보게 되면 서른을 위한 책들이 무수히 많은걸 보면서,
도대체 서른이 뭐길래 이럴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했는데 몇 개월후로 다가온 서른은 예전과는 다른 나로 변화시키곤 했다.
그렇다고 서른서른을 강조하는 책들을 읽자니 막상 인정하고 싶지않은 마음도 너무 커서 꺼려진다.
하지만, 시로써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부드럽게 천천히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 했다.
지은이 장석주님의 서문글 중
"시는 느낌의 생동이요, 영감과 상상력의 생동이다.
그런 시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눌리고 찢긴 마음을 펴고 아물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시를 읽으며 그 시에 대한 나의 감성을 되돌아 본다. 시집을 읽다보면 문득 드는 궁금증은 내가 느끼는 마음과
시인이 직접 시를 쓰며 느꼈던 감정들은 동일할까?
매번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글에 녹아있는 시인의 삶이 때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궁금증을 알았을까 시 하나가 소개될 때마다 시인들과의 에피소드를 조심스레 풀어놓는다.
그리고 조근조근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익숙하지 않은 시일 때 시인의 세계를 보여주어 나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 처음으로 나온 시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외로울때 가장 위로가 될만한 시.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역시나 이시로구나 싶었는데 지은이의 글을 읽으며 뻔한 내용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시작이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도 너무나 좋아하는 정호승님의 대표시인데. 역시나 어렵고 외로울때는
이 시가 큰 위로가 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외로움은 모든 위대한 정신의 운명이다"라고 말한다.
외로움이 "안식, 아름다움, 집중의 장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위대한 시나 그림, 음악과 같은 예술의 창조는
외로움에서 나온다. 외로움은 예술 창조를 낳는 정금의 시간이다.
모든 그리움은 외로움에서 배태된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순간에는 외로움마저 감미로워진다.
본문 글 중
![]() 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갑절로 아름답게 하고,
좋은 것들은 두 배로 더 좋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시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것,
기쁨을 주는 음악들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허를 기쁨으로 바꾸고,
기분을 화창하게 하고,
메마른 감정을 적셔 생기를 더하게 한다.
![]() 위로를 주는 책이라고 직접적으로 나열된 내용들이 아닌, 아름다운 시들과 함께하는 이 책은
힐링포엠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으며 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갑절로 아름답게하고, 좋은 것들은 두 배로 좋게 만든다.는 말처럼
두 배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물론 내가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이 더 좋게 다가왔겠지만,
꼭 처음부터 읽어야하는 부담스러운 책이 아니고, 내 마음 울적할때, 가끔 틈이 나는 시간에 옆에 가만히 두었다가
마음에 드는 시, 또는 시인을 골라서 하나씩 골라 읽어보면 기분을 달래줄 수 있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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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힐링이라는 표현을 이곳저곳에서 곳잘 듣는다. 어쩌면 요즘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힐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의 내가 힐링이 간절해서 더 그 단어가 귀에 쏙 들어오는 것도 같다. '서른 살을 위한 힐링 포엠'이라는 부제에서 서른을 넘겼지만 삼십대의 내가 읽으면 딱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힐링 포엠이라고 한글로 적어서 뭔고 했더니 다른 뜻은 없고 그냥 Healing Poem 즉, 치유의 시를 말한다. 실연의 아픔이 있을때 유행가를 듣고 격한 공감을 일으킨다고 하듯 마음이 다쳐서 힘들때 시를 읽으면서 입으로 귀로 그리고 마음으로 깊은 공감을 일으킬 꽤 괜찮은 시들을 모아서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치유를 도와주고 있는 책이다.
굳이 거창하게 치유라고 하지 않아도 지금이 무척 우울해서 치료가 필요한 긴급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피곤한 일상속에 잠시 여유를 내서 마시는 달달한 커피처럼 제법 아늑하고 기분좋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사실 시는 내게 많이 어렵다. 한 번에 해독이 안되고 몇번이고 읽어서 조금씩 암호를 푸는 기분으로 읽는 것이 시인데 다행히 이 책은 시와 함께 저자의 설명이 곁들여져서 그렇게 긴장하고 읽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줄 시로 다가와 설사 오늘이 조금 우울했던 하루라도 살짝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다시 찾게 만들어주는 이 책이 그래서 반갑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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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시적 치유 에세이집
확실히 올해 가장 이슈가 되는 단어는 "힐링"이다.
예능부터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영화, 책까지 어느 장르를 불문하고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소통이 가까워졌지만 오히려 그 넓어진 소통이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가끔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 주문을 하고 저마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심히 본다.
"현대인은 외롭기에 더 소셜네트워크를 열심히 한다." 작가님의 말에 완전 공감이 된다.
5년 동안 월간 '탑 클래스'에 연재한 글을 4장으로 묶어서 우리의 심적아픔을 보살펴 주는 책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님의 시부터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이수명님의 시까지
47편의 따뜻한 시와 에세이를 통해 마음이 공허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힐링이 된다.
개인적으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을 잃었네]가 가장 가슴에 와 다앟다.
시와 에세이를 통해 시의 내용을 좀더 쉽게 이해 할수 있어서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시집을 사본 지도 읽어 본지도 오래 되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시집에 좋은 글귀가 있으면 꼭 메모해서 인용을 많이 했는데..
이 책을 통해 마음의 치유도 되지만 옛 시절의 추억을 꼽십어 보는 시간이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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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른살을 위한 힐링포엠.... 요즘 티브이에서도 차인표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볼 수 있었던 힐링캠프가 대세이듯이... 힐링...이라는 단어... 내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고, 이 책 속에 시들이 나의 마음을 힐링시켜 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들이 있었나봅니다. 소개된 시들은 내게.. 다분히 어려운 면들이 많았고, 시를 해석한 내용들을 보고서 조금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해석한 내용으로도 어려움이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 같다는 생각에 역시 어려움을 느끼게 되더군요. 아직 나는 함축적인 시를 소화할 만한 소양을 지니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삼십대인 나는... 이 책을 읽고 힐링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들었으니까요. 조금은 더 쉽고 조금은 더 밝은 내용이 저에게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책에서는 여러 시인들과 그들의 시가 소개되는데, 저는 오히려 좋아하는 한 작가의 시를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는것, 시를 읽는 데에도 자기의 취향이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여러 취향의 내용들이 섞여 있는 것, 그것도 어려운 내용들이 있어서 마음을 힐링시키며 쉽게 물 흐르듯 읽어내리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더군요. 내가 독서에 대한 마음의 양식이 더 쌓이고, 책 읽는 것을 편식하지 않게 될 즈음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때쯤이면 여유를 가지고 내 맘을 힐링시키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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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많았다. 서른살이 넘으면서부터 부쩍 눈길이 가는 게 바로 ‘시’였기 때문이다.
왜 일까? 그 동안은 너무 바빴던 것 같다. 고딩이 되면서는 대딩이 되기 위해 달렸고, 대딩이 되고 나서는 직딩이 되기 위해 달려왔다. 직딩이 되고는 어느 정도 내가 권한을 갖는 책임이 되기 위한 직딩이 되기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온지 어느 시간 부터는 내가 달리는 것인지 달리지 않는 것인지 모호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시’는 그 관성의 법칙 속에서 헷갈릴 때부터 나에게 와 준 것 같다. 증폭되는 공기 속에서 좌표를 잃었을 때, 바로 그 때.
서른살을 위한 힐링포엠이라는 부제. 각 각의 시에 붙여놓은 부제라고 볼 수 있는 제목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시는 뭔가 심오한데 시인이 찝어준 그 앵글부터 이해를 시작해보니 한 문장 한 문장 진실이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족집게 과외는 좋았으나 시험을 보고 나서는 유익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집어준 포인트는 좋았으나 그 해설이 와닿지 않았고 이해를 위한 설명보다는 사변적인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읽고 내 안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고 난 후 확 기분이 잡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해설 부분이 없었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깊이 있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아닌가 싶다. 정보의 홍수와 빠른 트렌드가 그 주 목적일 것이다. 그 속에서 오늘날의 ‘시’란 무엇일까? 그 대답을 찾기엔 난 너무 무지한 것이 많고, 그럴만한 주제가 안 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을 집어든 일인이다. 시의 설명과 그 무엇이 오히려 또 다른 이해와 난제의 시작이라면 도대체 시집을 고를 것이지 이 책을 집어들 이유란 무엇인가? 저자의 프로필을 보니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직업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쓴 책마저 멀어져서야 되겠는가?
선별한 명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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