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중국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였던 루쉰에 대한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저자는 19말과 20초의 중국 정세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당시를 살았던 루쉰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만화를 통해 재미있고 유익하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루쉰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사상이나 인물을 알리는데 있어서 독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것을 택하는 것이 좋다는 걸 잘 아는 사람 같다. 일반적인 도서로 접했다면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을 만화를 통해 재미있게 전달해 루쉰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고 과연 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잘 일깨워준 점은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이라 하겠다. 루쉰이란 인물은 중국 근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위안스카이처럼 청의 후원을 등에 업은 것도 아니고, 장제스처럼 쑨원의 국민당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마오쩌둥처럼 스스로 공산당을 만들어 리더가 된 것도 아닌데 한 개인 그것도 소설가가 소설 몇 편으로 잠자고 있던 중국을 깨우고 중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총 1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중국의 근대사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 점’이다. 루쉰이 태어난 해는 1881년이고 사망한 해는 1936년이다. 내가 이렇게 루쉰의 생년과 몰년을 언급한 이유는 이때가 한창 중국이 근대화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다. 이 말인 즉슨 루쉰을 이야기할 때 중국의 근대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엔 루쉰의 일대기와 더불어 중국의 근대사가 많이 담겨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주변국의 근현대사를 잘 아는 사람들이야 이런 역사가 별로 어렵지 않을 테지만 역사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은 이에 대해 잘 알기 어렵기에 이 책엔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중국 근대사의 의의 그리고 그것이 끼친 영향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중국의 근대화는 당시 조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청이었던 중국은 서양 열강들에 의해 강제로 근대화되고 조선과 비슷하게 각종 이권을 빼앗기며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과 달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가 형성되어 외세의 의한 변화가 아닌 중국인들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해 결국 국민당 정부는 물론이고 공산당 정부가 중국에 들어서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때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건 이미 국권을 빼앗기고 난 후에 이름 그대로 독립투쟁을 위한 임시적인 정부였기에 중국인들이 만든 정부와 비교하기는 것은 맞지 않다. 김구의 임시정부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국민당이나 공산당과 달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엔 세상을 통제하거나 뒤집을 만한 힘이 없었기에 비교하기가 난감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잘 만들어진 소설 한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제대로 보여준 점’이다. 처음 루쉰의 인물 평전을 접했을 때 난 왜 중국의 일개 소설가를 평전까지 만들어가며 책을 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학창시절 [아Q정전]을 통해 루쉰이란 이름을 들어보긴 했지만 그렇게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 작품도 요약본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리 대단하고 위대한 작품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아Q정전]이 어떤 배경 하에 탄생했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그리고 중국인들에게 어떠한 파급효과를 주었는지를 알게 되고서야 비로소 루쉰의 [아Q정전]의 얼마나 가치 있는 책이고 얼마나 위대한 책인지 알게 되었다. 그전에 루쉰의 [광인일기]를 언급해야겠다. [아Q정전]이 루쉰을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에게 알린 작품이라면 [광인일기]는 중국인들에게 루쉰이란 작가가 세상에 존재하고 그가 얼마나 글을 통해 풍자를 잘하고 잘못된 관습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즉 중국인들에게 루쉰의 존재감을 알린 첫 작품이 바로 [광인일기]라 하겠다. 루쉰은 열 몇 장밖에 안 되는 이 단편소설을 가지고 중국인들의 오랜 풍습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중국인들에게 단번에 깨닫게 해주었다. 이게 쉬운 일 같아 보이지만 당시 중국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루쉰의 [광인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게 몇 장 안 되는 소설을 가지고 몇 억 명이나 되는 중국인들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사람이 얼마나 잘 변하지 않는 존재인지는 20살만 넘어보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아니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기도 하니 한번 몸에 배인 습관이나 익힌 관습이 얼마나 벗어버리기 어려운지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특히 어떤 사상에 대한 관념은 누가 아무리 옆에서 충고하고 조언을 해준다고 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단 한편의 짧은 소설로 그 많은 사람들의 사상과 습관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도 근대시절 계몽운동을 하고 이런 저런 신문화 운동을 했지만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그 이유는 위로부터 강제로 계몽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고 어려운 말로 사람들을 깨우쳐주려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루쉰은 [광인일기]를 통해 당시 중국인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자학적으로 묘사해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강제가 아닌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도 전통의 폐해를 비판하고 계몽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중국인들 뇌리에 강하게 인식시켰다. 이에 힘입어 중국인들은 1919년 5.4운동을 멋지게 성공시켰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중국은 앞으로 나아갔고 정신이 깨인 사람들이 점차 과거 안 좋았던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지금의 중국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공산당에도 큰 영향을 끼쳐 공산당을 만든 마오쩌둥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인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기에 루쉰의 문학 활동은 자국은 물론이고 그 주변국들에게도 좋은 작용을 했다고 본다. 조선에도 루쉰만큼의 훌륭한 자질을 가진 문학도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루쉰에게 영향을 받아 이런 위대한 소설가 나와 조선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 신문화를 받아들이는데 크나큰 영향을 끼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진보 내지 공산당을 지나치게 미화한 점’이다. 루쉰의 행적과 그의 행보를 보면 그가 보수가 아닌 진보주의자였다고 것을 알 수 있다. 진보적인 소설을 써서 우매한 동족을 깨우치고 위안스카이 정부와 장제스 정부와 맞서 싸운 점도 그가 얼마나 진보적인 경향을 지닌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진보적인 행보를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우매한 동족을 올바르게 깨우쳐주고 서양열강들로 인해 좌절감과 패배감에 젖어있던 동족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었지 결코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즉 루쉰은 지금의 진보를 주장하는 이들처럼 자기 이익과 사상을 위해 투쟁이나 하고 비난이나 하려고 진보를 택했던 것이 아니다 이 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루쉰이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당시 진보적인 사상을 추종했던 자들의 사상적 우두머리 혹은 정신적 지주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마치 공산주의자의 시초인 칼 마르크스처럼 취급하는데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루쉰이 말년에 공산당을 택하고 지지했던 것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부패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공산당을 보면 사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그리 썩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장제스를 비롯한 국민당을 이끌었던 자들이 자본주의에 미숙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던 것뿐이다. 전제군주제만 하던 나라가 갑자기 공화제를 하려니 어찌 미숙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마오쩌둥과 그의 추종자들은 그걸 문제 삼아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우매한 농민들을 부추겨 공산당의 세를 불린 후 결국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무너뜨려 대만의 섬나라로 쫓아버렸다. 사실 자본주의라고 해서 부패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자본주의를 낳은 미국이 깨끗하다고 보는가? 자본주의를 택해 5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는 한국정부가 깨끗하다고 생각되는가?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21세기의 자본주의 국가도 이럴진대 자본주의 초기였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승만 정부를 떠올려보라. 그게 어디 자본주의 정부였나? 독재정부였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도 비슷했을 것이다. 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기에 이런 저런 문제가 좀 있었던 것인데 자본주의체제를 문제 삼아 그들을 악의 축 취급하고 중국에 공산당 정부가 세워진 것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 공산당을 더 욕하지 과거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더 욕하진 않는다. 이것만 봐도 공산당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역사에선 만약이란 없고 존재하지도 않지만 만약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의 공산당을 완전히 없애고 지금까지 유지했다면 한국은 남북으로 갈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옛 고조선 내지 옛 고구려 땅을 협상을 통해 수복해 과거의 영토를 영유하며 초일류국가로 발돋움 했을지도 모른다. 괜히 마오쩌둥이 공산당 정부를 만들어 중국 땅을 지배해 김일성을 꼬드겨 북한에 공산당 정부를 만들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것은 불행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국민당 정부가 무너지고 공산당 정부가 중국을 지배하게 된 것은 한국에겐 재앙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 점을 배제하고 역사를 논하는 건 옳지 않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왜 이 책에선 이와 같은 중요한 문제는 다루지 않고 그저 루쉰의 진보적인 업적만 이야기하고 마오쩌둥의 공산당을 두둔하고 미화하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독자가 한국 역사를 모르는 바보로 아는 것인가? 아니면 진보사상에 빠져 중국공산당이 저지른 그동안의 만행과 21C에도 한국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인가? 기왕 위인전기를 쓰면서 당시 역사를 다룰 거였으면 공평한 시선으로 다뤘어야지 한쪽으로 잔뜩 기울어진 시선으로 역사를 평가하고 보여주는 건 아니었다고 본다. 이점은 저자는 물론이고 편집자 모두 반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학의 힘은 위대하다. 그리고 만화의 힘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위대하다. 이 책은 그런 진리를 일깨워주는 도서다. 루쉰을 통해 소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아무리 힘든 시기를 살아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신을 물론이고 동족에게도 도움이 되는지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 꼭 읽어보기 바란다. “군자는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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