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기억에서는 잊혔는지 몰라도, 상처받은 사람의 기억에서는 잊히지 않을 일. 인간은 누구나 비슷한 것 같다. 나의 아픔과 고통, 상처를 더 잘 기억하기 마련이니까.
어린 딸 다양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하던 윤희. 도시의 삶에 지치고 현실에서 치이는 여러 상황에 아팠던 윤희는 시골의 삶을 누리는 친구 지선에게 가는 중이다. 몇 년 전에 시골로 가서 살기 시작하던 지선은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아이가 아토피로 힘들었는데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한 아토피를 시골과 자연의 생활로 낫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지선 역시 도시에서 살면서 시골로 이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생활을 모두 바꿔야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지. 그렇게 옮긴 생활이 현재 지선 가족의 일상을 만족시켜줬다. 그런 지선에게 윤희도 잠시 어깨를 기대려고 한다.
지선의 농장을 찾아가던 윤희는 숲에서 길을 잃는다. 운전을 잠시 멈추고 생각하던 중에 뒷자리에 앉아있던 다영이 사라진다. 갑자기 이 숲길에서 다영이 어딜 간 거지? 이상하다. 다영을 찾아 헤매던 윤희는 숲의 위쪽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다영을 발견하고 야단치지만, 오히려 다영은 엄마를 원망하고 멀리하며 소리친다. 다 기억한다면서, 엄마가 자기를 또 버리려고 이곳에 온 거냐면서 울던 다영. 도대체 다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던 윤희는 내리치는 빗줄기에 멍해지면서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은 왜 윤희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던 것일까.
힘들었다. 윤희도 그랬지만,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은 온다. 어떻게 그 시간을 극복하며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또 살아간다. 곧 좋아질 거라는 긍정의 생각은, 사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이상하게 안 좋은 쪽으로만 결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 틈을 비집고 좋은 생각으로 오늘의 힘겨움을 버텨나가야지 싶기도 하다. 윤희에게도 비슷한 시간이었으리라. 도시의 삶이 그녀를 조급하고 힘들게 했던 거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책임져야 할 일도 많았다. 아이도 키워야 했다. 몸은 힘들고 정신력으로 버티던 나날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그렇게 지쳐갈 때마다 아이를 외면했다. 아이의 간절한 시선을 못 본척했다. 그러다가 해서는 안 될 행동까지 하게 됐다. 곧 후회했지만, 누굴 탓하랴. 하지만 그때의 일을 아이가 기억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이 아픔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운전대를 돌려 가려던 길로 가는 게 맞는 건데, 그때는 이미 늦은 일이 되어버렸다.
한 사람의 기억에 머문 충격적인 일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남아서 아프게 한다는 걸 새삼 보여준 작품이다. 아마 그 기억이 좋은 일이었다면 웃으면서 간직하면 되겠지만, 대개 이런 기억의 흔적은 고통스러운 게 많다. 윤희에게 그때의 일은 현재 그녀가 살아가는 순간마다 상처가 되어 소환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녀 스스로 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그녀의 바람을 듣기라도 한 듯, 타의로 기억이 지워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기억은 무엇일까. 그 기억으로 또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까.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작가는 조심이 기억에 담아두면서, 또 슬며시 꺼내면서 아픔이 되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이런 아픔으로 오늘을 살아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아픔을 겪는 이를 지켜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내 마음, 내 생각과 다른 길로 가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유는 다르지만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를 지켜본 적이 많아서인지 이 아픔의 충격을 알 것도 같다. 병원에서 해결해주지 못하는, 마음을 치료하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도.
짧은 글 속에 한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 다 담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과 아픔을 그대로 경험하는 이의 삶이 보였다. 이제 고통스러운 기억이 지워진 시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렇지 지워진 기억으로 당신은 행복한지 묻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