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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건, 도무지 쉽게 쓰여지지 않는다는 거다. 글을 쓰려고 흰 백지, 아니 요즘은 컴퓨터로 주로 쓰니까 워드프로그램 창을 띄워도 깜박이는 커서따라 내 눈도 깜박깜박하고 있을 때가 더 많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어떻게 쓰면 조금 더 맘에 들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잠깐 딴짓을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보면 주로 밤에 글을 쓰는 나의 경우엔 어느새 자야할 시간이 된다. 쓰질 못했는데 계속 그러고 있을 수도 없으니... 아까운 시간만 또 흘러간 셈이다. 그만큼 글이라는 건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얼마만큼 집중해서 쓰느냐에 따라 글의 품질이 상, 중, 하로 나눠지는 게 아닐까? 물론 내 마음에 따라 매겨지는 품질일 수도 있지만. 여튼 글은 어떻게든 시작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깜박이는 커서만 깜박깜박 쳐다볼 뿐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자세를 잡고 앉아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온갖 것들의 유혹에도 지지 않고 글을 쓰려면 일단 뭐라도 타자를 쳐야한다. 쉴 새 없이 머리에서 흘러나오는대로 쓰고 또 써야지 겨우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그러고 나면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어색하거나 이상한 부분등을 내 기준에 맞게 내 마음에 들게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대개의 경우 하루 정도는 지나서 다시 읽어보고 최종 수정을 가해 글을 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 보는 글의 경우엔 그닥 상관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되는 글은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서평단 당첨이나 블로그 활동 등 서평을 의무적으로 올려야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신중, 또 신중해진다.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지도 블로그 기준으로 따지면 어느덧 8년 정도가 된 것 같다. 마냥 읽기만 했던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게 된 후로 책 내용은 깡그리 잊어버려도 그때 내가 남긴 글을 소환해 읽어보면 그때의 느낌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어떤 책은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읽는 건 어떻게든 읽지만 쓰는 건 가끔 정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느낌이다.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책도 있지만 어쨌든 쓰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책은 젊은 작가들의 글쓰기를 향한 진심어린 조언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 "아무도 조언을 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p11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지못해 쓰는 글과 진심으로 쓰고 싶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써내려간 글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애써 외면해도 쓰는 이가 더 잘 알 수 밖에 없다. 진정으로 책과 작가에 매혹되어 느낀 표현을 아낌없이 쉼없이 써 내려가는 경우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이 책에 매혹되었을까? 공감가는 좋은 조언과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 푹 빠져들어 온전히 매혹당하진 못한 느낌이다. 분명 좋은 말들이 참으로 많다. 몇 가지를 인용해보면... [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쓰려고 하는 바람 때문에 글쓰기를 사무치게 싫어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잔혹한 진실은 또다른 형태의 기쁨이다. 익숙해져라. 태양은 떠오르기 위해 지는 법이니까. ]p42 [ 우리가 입밖으로 내뱉지 않은 말이 우리가 하는 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자. 그러니 침묵 역시 공부하고, 침묵이 글 속에서 힘을 발휘하게끔 해야한다. 실은 침묵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내는지 곧 알게 될 테니까. 입 밖에 내지 않은 말이라 하더라도 끝내 그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p63 뉴욕의 헌터 칼리지 MFA과정을 통해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답게 무척 세련되게 쓰여진 글이 아닐까 싶다. 다만, 뭔가 직접 소설같은 걸 써나갈 때에야 비로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도 좀 든달까? 어쨌든 이 책에서 강조하고 가장 공감이 가는 건, 자기자신에게 몰입하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것에 푹 빠져야 한다. 그럼 마침내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다. *** 글로써 글쓰기 교육을 수강한 기분이다. 앞서 저자가 말했듯이 글은, 특히 자신의 글에 있어 아무도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는 없다. 다만, 이런 글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글에 대해 되돌아보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자신이 쓰는 글의 스타일은 어떠한 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고 이런저런 부분을 가다듬을 수 있을테다. 글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한 번 쯤 읽어볼 만하다. 덧붙여 너무나도 좋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푹 빠져들지 못했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자는 들어가면서 설교 역시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는데 '~해보자, ~말아라, ~했는가' 등 어쩐지 조금은 설교같이, 충고같이 느껴지는 어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독자가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글'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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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귀한 편지를 받았다. 칼럼 매캔의『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는 릴케가『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 말부터 꺼내 놓는다. “아무도 조언을 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p. 11)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p. 11)
이 책은 작가가 되는 방법을 망라한 지침서가 아니다. 설교 역시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보다는 내가 제자들과 기분 전환 삼아 이따금 그러듯, 공원을 거닐다가 들려오는 속삭임에 가깝다.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젊은 작가의 귓가에 들리는 속삭임으로 상상하고서 이 글들을 썼다. (p. 15)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젊은 작가가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속삭이는 책이 아닐까 싶다. 사실 속삭인다기보다는 명령에 가깝다. 그래도 상관없다. 작가의 진심은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책의 구조는 단락마다 소제목을 두고 유명 작가의 명언이 나온다. 그리고 편지가 이어진다.
작가의 역할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일이다. -아나이스 닌 (p. 54)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명 작가에 대한 설명이 간략히라도 있으면 좋겠다. 나올 때도 있지만,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 네이딘 고디머의 경우에는 나딘 고디머로 검색해야 저서가 나온다. 벤 마르커스는 검색해도 도저히 누구인지 모르겠다. 영어명도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쯤에서 예상할 수 있겠지만,『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많은 작가들의 이름과 마주하게 된다. 칼럼 매캔이 이름이나 명언만 외웠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 이들의 작품들을 읽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칼럼 매캔은 젊은 작가에게도 속삭인다(혹은 명령한다). 읽자. 읽자. 읽자.(p. 108) 뒤이어 제임스 조이스를 읽자고 말하지만, 이런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p. 113) 쓰자. 쓰자. 쓰자.
작가의 삶에서 가장 큰 해악은 글로 쓰이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글로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 자신과의 경쟁을 피하는 꼴이다. 이것은 단순한 논리이다. 그러나 원고가 백지 상태라면 가슴팍을 발로 차이는 셈이나 다름없다. 흰 여백이 너무 많으면 좋지 않다. 백지는 백지이다. 백지는 끝까지 작가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p. 95)
읽고 쓰라는 게 젊은 작가에게 뻔한 조언으로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다음 대목을 읽어 보자.
글 쓰는 삶을 넘어서서, 살 가치가 있는 나름의 삶을 찾자. 희망하는 습관을 갖자. 세상이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더라도 나에게는 한 줌의 기쁨을 허락하자. 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증거를 만들도록 노력하자. (p. 92)
이 대목이야말로 나이 든 작가가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최고의 조언이 아닐까 싶다. 절대 뻔할 수가 없다. 작가도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칼럼 매캔은 절대 잊지 말라고 속삭인다.(이번에는 정말 속삭이는 듯하다) 안타까운 점은 ‘한 줌’이 ‘한줌’으로 되어 있다. 띄어쓰기가 간혹 걸린다.
작가는 글쓰기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하거나 글쓰기에 대해 말을 하거나 계획하거나 분석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에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사람이다. (p. 33)
이 책은 어떻게든 엉덩이를 붙이게 만든다. 덕분에 나도 4년이나 떨어져 있었던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나는 젊지도, 아직 작가도 아니지만 말이다.
좋은 문학의 관건은 새로움이 영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는 새로운 시간을 만든다. 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여실하게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만든다. 작가는 단순히 시계를 만드는 시계 제조공이 아니라 시간까지 만들어 낸다. 그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빚어낸다. 상당히 막중한 책임이다. 이 점을 잊지 말자. (p. 40)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은근히 많다. 글을 쓰면서 계속『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칼럼 매캔에게 보내는 답장으로 이 글을 마쳐야겠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 덕분에 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살만 루슈디의 명언을 가져다 쓸 생각입니다. 괜찮죠?”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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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s to a Young Writer
너에게
내가 글을 쓸 때, 늘 '너'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많은 경우 너를 잊었다. 내가 쓴 글은 갈 곳을 잃고 끝내 내게만 머물렀다. 물론, 나를 위한 글이기도 했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은 내 기대와는 달리 한참 모자랐다.
나에게
너무 자책하지 말아라. 그래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있었다. 다만, 서툴렀을 뿐이다. 다만, 나 자신을 완전히 발가벗겨 온전히 내다 바칠 준비가 덜 됐을 뿐이다. 고무적인 건, 그 온전함을 향해 무너질 수 있는 마음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uksama79/221327906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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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작가를 한 번쯤 꿈꾸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되기 위해 온 마음과 몸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칼럼 매캔의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꼭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 작가로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나태한지를 깨달을 수 있고, 하루하루를 얼마나 충실히 보내야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글쓰기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끊임없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얼마나 마음에 닿아 콕 박히는지,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예리한 조언들이 가득하다.
작가가 된다는 것.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 있을까?
우리는 어떤 것을 써야 할까? 무엇을 써야 할까? 하는 막막한 기분이 들때가 많이 있다. 때때로 아는 것에서 시작해 글을 쓰는 것이 쉽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우리 머리 속에서 안다는 것의 한계는 명확해서 바로 벽에 부딪히기 쉽다. 그럴 때, 저자는 '알고자 하는 것을 써보라'고 한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한 발 나아가라고 한다. 그럼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시도를 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아는 것을 쓰지 말고, 알고자 하는 것을 향해 쓰자. 허물을 벗고 밖으로 나오자. 위험을 무릅쓰자. 이렇게 하면 세상이 열린다. 또 다른 곳으로 가라." - p.29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불타는 열정이 가득한, (마음이 혹은 몸이) 젊은 작가들에게 중요한 조언들이 가득하다.
이 책은 글쓰기 비법 혹은 기술을 가르쳐 주는 책은 아니다. 도리어 작가는 무엇인가, 작가는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글쓰기에 임해야 하는가 하는 '작가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혹독한 조언이 쓰여져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 강의 첫 수업에서 "나는 글쓰기에 대해 가르칠 게 없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고 한다. 릴케의 말처럼 글쓰기는 바로 누군가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토해 내는 작업이기에, 바로 자신과의 싸움의 인내의 결과이자, 자신만의 즐거움을 표현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조언을 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
저자는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한다. 실패하라, 실패하라, 실패하라. 읽자, 읽자, 읽자.
끊임없이 읽고, 실패하는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심금을 울리는 본질이 중요한 것처럼, 어떻게 쓰느냐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글에 대한 안 좋은 평도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갖고, 희망을 품는 습관을 가지며, 타인으로부터 온갖 이야기를 빼어내려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신념을 갖고 글을 쓰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고 말한다.
그의 글은 젊은 작가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유려한 문체로 물 흐르듯 펼쳐져 있다. 의식의 강의 흐름처럼 내달리듯 서술하는 이야기들은 문학작품 같기도 하다.
"문장들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어 내는 걸 지켜보자. 기쁨을 표현하려면 행간에서 말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듯, 문법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숨 가쁘게 흐르는 광기 어린 문장이 필요할 수도 있다. 반대로 슬픔을 표현할 때에는 말수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 예리하고 어둡고 고독한 느낌이 필요할 수 있다. " - p. 65-66
이 책은 저자 칼럼 매캔이 젊은 작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작가로서 글쓰기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할지, 작가로서 성장하기에 어떤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할지 기본적인 마음자세를 조언해주고 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한 그의 조언은 따뜻한 어머니의 조언이라기보다 엄격한 아버지의 조언같다. 온 몸 가득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엄격하고 냉정하고 날카롭다. 그러나 그의 조언들은 작가로서 삶을 위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임이 분명하다. 젊은 작가들이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그들이 작가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글을 쓰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 글은 읽는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긴장과 열정을 불어 넣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든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진실함이 묻어 있는 글로 가득찬 이 책을 읽고 또 읽어 마음에 되새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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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잡고 감동받을만큼. 너무 좋아서 밑줄 쫙쫙 그을만큼. 문장에 메모를 하거나 크게 감동적인 문구를 찾진 못했다. 정말 편지다. 읽어나간다. 조언한다. 대화한다. 내가 읽은 이책의 느낌이다. 작가또한 이책은 작가로.글을쓰기위한 전문적 지식과 방법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알려줄거란 기대를 접으라고 들어가는 글에서 이미 풀어놓고 시작한다. 마음을 비웠다.쉽게 그저 편지처럼.편지라고 생각하고 읽어간다. 글을쓰는 작가들이 단어하나 남지 않고 자리를 일어난다고해도. 그 과정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 수많은 단어를 나열하고 하나씩 지워가며 전부다 지워버린다해도 그 과정을 지나온 자체가 고되고 값진시간임을 말한다. 글을 쓰려면 모르고도 쓰고 알고도 쓰자. 결국 몰라서 쓰다보면 많은 질문을 던지게되고 그 질문을 찾다보면 많은 답을 얻게되는 그래서 그저 써내려가는 그 인내를 먼저 칭찬하고싶다. ■글 쓰는 삶을 넘어서서,살 가치가 있는 나름의 삶을 찾자. 희망하는 습관을 갖자.세상이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더라도 나에게는 한줌의 기쁨을 허락하자.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증거를 만들도록 노력하자. -책속에서- ■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글을 쓰므로 인해서 가치가 얻어지는 그런 삶을 꿈꿀수있다는것. 그 모든 글에 행복을 섞어 요리할수있다는건 어쩌면 두근거리는 마법이다. 노래는 못한다. 글도 잘쓰지 못한다. 아무때나 노래하면 고성방가로 끌려갈지 모르지만 펜과 종이하나 들고서 글을 쓴다는건 세상 어딜가도 허락되는 행복한 경험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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