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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3시 반이면 그는 어김없이 산책에 나섰다. 동네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시각을 유추했다. 그의 이름은 칸트다. 대학자의 삶에는 예외 란 게 없었다. 얼마든지 예측가능한, 참으로 무료했지 싶은 삶을 닮아 그가 남긴 저서는 하나같이 어렵다. 오로지 제목만 알고 있는 <순수이성비판>을 떠올리게 만드는 ‘순수꼰대비판’을 만났다. 꼰대. 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린 시절엔 익숙함이랄 게 없었다. 뭐든 리트머스 종이마냥 빨아들였고, 옳고 그름의 가치에 눈 뜨기 전이었으므로 일단 저지르기가 용이했다. 그 시절에도 난 조심성이 무척이나 많은 아이였으며, 남 눈치보기 참으로 바빴다. 그럼에도 지금보다는 한결 너그러운 자세로 세상을 그리고 내 자신을 바라봤던 것 같다. 삶은 고단하다. 그 고단함 중에는 끊임없이 나를 재단토록 만드는 무언가도 존재한다. 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저 행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런 나를 “틀렸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릇된 나의 태도는 금방이라도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만치 불길한 무언가가 되어 내게 날아들었다. 깊은 깨달음의 한숨. 입 밖으로 말을 내기에 앞서 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를 남겼다. 행동은 누군가가 먼저 나서기 전까지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존재감이 없었지만, 속으로는 단단함이 지나쳤다. 그렇게 나는 어떠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 할 꼰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더는 아이돌의 정체 불명 랩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면 꼰대인 걸까. 취향은 각자가 다르다. 10대라 하여 화려한 퍼포먼스에 모두가 열광하진 않는다. 고요한 발라드 안에 침착하는 10대도 어딘가엔 존재할 것이다. 다름이 틀림으로 돌변하지 않는 한, 다름이 곧 꼰대의 조건은 아니다. 내 다름이 남에게 인정 받지 못한다 하여도, 그 사실만으로 내가 꼰대임을 인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판단의 잣대가 외부에 있음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 나는 타인의 시선을 백분 활용하곤 했다. 너무 이른 시점에 철이 든 게 원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모난 정 돌 맞는다는 이야기에 너무도 몰입했던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꼰대에 관해서 만큼은 판단의 잣대를 외부로 옮겨야 할 듯했다. 본인은 절대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괴로워한다. 소위 고문을 당한다고 하는데, 고문의 주체는 자신이 행하는 게 고문인지 시혜인지를 헷갈려한다. 애정어린 표정을 지어가며 세상을 그리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고맙게도 상대는 그런 나의 조언을 고개 끄덕여가며 받아들인다. 속내는 알 길 없다. ‘너나 잘 하세요!’를 외치고 있을지도. 편견이려나. 저자는 한문 선생이었다. 남들은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도 백 점을 받던데, 나에게 한문은 수학과 더불어 도통 범접할 수 없는 존재와도 같았다. 난해함이 하늘을 찔렀다. 어찌 이런 꼬부랑 그림을 글씨라며 읽어대는지. 때론 수염을 곱상하니 기른 훈장의 모습을 글자들로부터 떠올리기도 했다. 시대에 적응을 거부한 고집불통.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근 쇄국주의자의 모습을 읽기도 했다. 그들이 꼰대였을까. 저자가 꼰대인지 아닌지 난 알지 못한다. 그의 이야기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도 그랬다. 아니, 매순간 꼰대인 사람은 없다. 어떠한 맥락에서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 꼰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외라곤 허락 않는 교사의 행동,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워 편애했네 마네를 논하는 평생교육시설 수강생들, 더 나아가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단 하나뿐이라는 식의 설교로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사람들까지. 일부 이야기는 읽기가 무섭게 눈살이 찌푸리고야 말았다. 그들은 진정 꼰대였다. 한 편으론 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만 달라도 수용을 어려워하는 나, 강하게 드러내진 못할지라도 싫음을 온몸 가득 머금은 채 상대를 대하는 내 모습이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철학을 논한 책은 아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드러낸 책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저 높은 하늘 어딘가에서 저자를 내려다보고 계실 아버지. 함께 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마지막 순간마저도 한 마디 살가운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분명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가겠다고 말했음에도, 대입 실기 시험 내내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 순간 다름 아닌 꼰대였다. 다른 시선으로 아버지를 대할 수 있기 위해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이 듦이 마냥 서글프지만은 않은 이유라고, 그의 말이 어딘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는 꼰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꼰대가 될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모든 건 상대적이니까. 꼰대가 없으면 또 다른 모습의 이들이 꼰대 취급을 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갈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