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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사는 낭만
낭만은 아름답다. 하지만 낭만을 현실로 옮기기란 아름답지만은 않다.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는 낭만은 복음서를 읽는 많은 신자들이 가진 꿈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꿈을 쌓아올리기 위해서 여러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야 할 테고, 모인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하고, 적절하게 소득을 분배해야 하고, 그러면서 하늘의 은혜를 흠뻑 누리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미움과 다툼 없이 사랑으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을 꺼다. 이게 쉬울까? 아니 쉽지 않다.
하지만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낭만을 현실에 이루어내었다. 쉽지 않은 일을 이루었다. 그의 집념과 노력을 넘어선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도처에서 그에게로 몰려왔고, 20세기 초 광기를 가졌던 독일의 망령에서 벗어나 멋드러진 공동체를 이루었다.
“우리가 공동체로 살고, 공동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사실이다.” 에버하르트는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그에게 이 문장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의 신앙고백과 같았다. 이미 우리는 공동체로 살고 있다는 것. 그는 공동체성의 근거를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가져와 현실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
“선의 궁극적 신비에 대한 믿음,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이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믿음이 공동체를 세우는 토대이고, 작동원리이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그 안에 살면서 결국 거룩하게 된다. 사랑과 일치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 공동체가 된다.
「공동체로 사는 이유」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 소망이 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진리라 한다면,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 것’은 진리이다. 그 구성이 조금 느슨하든, 철저하든, 어떻든 간에 주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고, 공동체로 살게 하시며, 공동체가 되게 하신다.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곱씹어보자. 공동체가 소망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공동체로 사는 낭만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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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요즘 들어 공동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교회에 일하고 있는 나로서, 공동체는 익숙한 말인 동시에 많은 고민을 던져주는 단어였다. 교회 공동체 속에서 일을 할 때마다 말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됩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삶으로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나의 모습과 교회 공동체 속에 속한 타인을 볼 때마다 과연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교회 공동체로 엮여 있는 게 하나님 나라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런 고민들을 해결해주는 책을 만났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만들어 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쓴 ‘공동체로 사는 이유’는 제목처럼 왜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공동체가 아니면 살지 못하는 존재이다. 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는다면 모르겠지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공동체 속에 속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공동체의 원천을 하나님에서 찾는다. 하나님 자체가 힘의 원천이고 공동체의 근거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은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만이 참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으며, 장벽이 없고, 소유 앞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위기라고 이야기되고 있는 한국교회, 한국의 교회 공동체들이 이 책을 꼭 함께 공동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개인이 혼자 읽고 감명받는 것으로 끝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공동으로 이 책을 읽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 공동체 속에서 참 기쁨과 사랑을 받지 못해 상처받은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다시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고, 받은 상처까지 성령으로 치유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세상의 고통과 아픔, 개인의 눈물이 책을 통해 제발 닦아지면 좋겠다. 토마스 머튼의 해설이 주는 여운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랑의 생활을 경험하고, 이 힘으로 함께 수고하여 세상을 변화시킨다면, 이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p.125)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교회가 많아지길, 공동체가 많아지길, 꼭 그렇게 변화되길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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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공동체가 보여 주어야 할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전 세계의 공동체를 찾아 저 먼 곳까지 방문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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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력’에 이끌린다. 그것이 미적인 것이 되었든, 심적이 되었든 우리는 끌려간다. 초중세 교회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매력적인 얘기가 나온다. 다른 이름으로는 ‘공동체’다.
공동체, 매력적인 이름이나 불편한 이름, 어쩌면 그것은 지구 온난화를 마주하는 나의 입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내 한몸 바쳐 이루고 싶지만 내 희생이 (에어컨 버튼 대신, 덜 시원한 선풍기나 부채를 펴야 하는) 더 크기에 쉽지 않은 그런 일 말이다.
그러나 이 일들을 해낸 이들이 있다. 그 얘기를 이 작은 책에 그러나 꽉 채워 놓았다. ‘공동체는 아름다워 보이나 쉽지 않다. ‘공동생활에서 허약한 사람들의 온갖 나약함과 우유부단함은 뜨거운 사랑의 힘을 통해 극복된다. 교회의 성령은 각 사람 안에서 전투태세를 취하고, 새 사람의 견지에서 그 사람 안에 있는 옛 사람과 싸운다. 81쪽’
나보다 약한 사람, 그리고 내 것을 주장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당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책을 읽다 나의 ‘공동체’가 생각났다. ‘BROSE HOUSE’ 버클리에 있던 나의 형제들, 서로의 연약함을 안고, 월요일 하우스 디너로 서로를 섬기던 이들, 그 사랑을 책에서 다시 떠 올리게 해주었다.
‘공동체를 우리의 사랑 위에 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많은 사랑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랑이었다. 먼저는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심, 그것을 매일 부대끼며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연약하지만 구하며 나아갈 때 허락해주셨었다.
책 속에 있는 사진을 보며 다시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래, 이게 공동체지. 이것이 공동체의 행복이지. 매력적이나 어려워 보이는 공동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그저 잔디 위에 잘 자란 풀처럼, 이 흙 냄새 나는, 사람 냄새 나는 책을 들고 같이 한 걸음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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