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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대한민국의 주류는 도시인이다. 특히나 21세기로 넘어와서 대부분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노동하며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두 소설가의 존재는 각별하다. 김종광 그리고 한창훈. 김종광 작가는 농촌에 관해, 한창훈 작가는 바다에 관해 쓴다. 농토와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엄연히 있음에도 도시인 눈에 잘 안 보인다. 김종광과 한창훈의 글로써 그나마, 타자의 경험을 주체의 각성에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한창훈 작가와의 인연은, 한겨레 문학상 작품을 읽어가면서였을 테다. 『홍합』을 읽으며 뭐 이런 대단한 이야기가 다 있을까 싶었다. 바다와 그렇게까지 밀접하게 살진 않았으나, 드미트리는 바다가 보이는 영도에서 자랐다는 점도 한몫했을 터. 그리고 얼마 안 있어 2008년인가 2009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창훈 작가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은 기회가 있었다. 문학은 소외된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땅에서 섬 사람들이야말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난 바다에 관해 쓴다, 는 말씀에 크게 감동했다. 사인해주는 시간에 드미트리에게 "소설가가 될 인상이야."라고 덕담(?)까지 해주셔서 완전 사로잡혔더랬다. # 1 『꽃의 나라』 이후 오랜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제목은 『네가 이 별을 떠날 때』. 여기서 '네'는 어린 왕자다. 맞다. 생텍쥐페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 어린 왕자 말이다. 어린 왕자는 순수한 영혼 - 과연 그 순수함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 의 상징처럼 사용되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섬에서 태어나 뭍으로 나와 배를 탔고, 가정을 이뤘고, 배우자를 잃은 뒤,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반복되던 중, 어린 왕자가 그 앞에 나타났다.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 앞에 나타난 때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나 똑같다. 호기심이 많고, 인간의 삶에 관해 물어본다. 삶, 죽음, 전쟁 기타 등등. # 2 주인공인 나는 은퇴했고, 배우자를 잃었다. 자식이 있긴 하나, 그 자식도 결혼한 마당.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다. 어린 왕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궁금한 걸 물어본다. 이 두 인물이 풀어가는 이야기라, 이야기만으로는 긴장이 없다. 소설에 깔린 전반적인 분위기는 차분하다. 한창훈 소설가의 초창기 작품에서 자주 등장했던, 욕설 푸짐하게 풀고 화끈했던 등장인물이 이 작품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에서 작가가 천착하려는 바는 섬사람들이 경험하는 구체적인 삶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반의 보편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착하는 주제가 전쟁이다. 가장 극단적인 폭력, 동족 살상인 전쟁. 어린 왕자와 대화하며 나는 이렇게 말한다. "희망이라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어. 그런데도 우리 지구인은 그 말을 너무 많이 써."라고. # 3 『홍합』이 시원한 소주였다면,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는 따뜻한 녹차랄까. 보름달이 비치는 바다, 그 앞에서 초겨울에 읽으면 더 좋았을 법한 소설이다. --- 아이들의 특징은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걱정은 어른들의 일이다. (13쪽) 우리 세대의 고향은 애증을 동시에 준다. 사랑하자니 거기에서 받았던 상처가 크고 미워하자니 마음껏 뛰놀았던 시공간이 있으니까. 어쨌든 몸과 마음이 생겨난 곳이니까. (182쪽) 어른 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겠으나 가장 단순한 방법은 부모의 부재다. 어른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187쪽) 어쩌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우리 종족이 우주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 아닐까. 그러니 탄생의 경이로움이 무심한 일상으로 가라앉아가는 것이지. 다들 그게 인생이라고 말하는 거겠지. (189쪽) 내리느 비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들으며 생선회에 술을 마셨다. 이럴 때 세상에 술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섬마을은 비가 오면 잔뜩 가라앉은 곳이 된다. 그것만으로 고즈넉한 풍경이 된다. 하지만 내가 그 풍경의 일부분이 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대도시의 야경이 아름답지만 야근을 하는 사람들은 고달픈 것처럼. (196쪽) "희망이라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어. 그런데도 우리 지구인은 그 말을 너무 많이 써." (239쪽)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해. 국민들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다른 나라 재산을 빼앗거나 무기를 팔아먹기 위해서지. 하지만 모든 전쟁은 정의와 평화를 이유로 내걸어." "뭐야,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잖아." 나는 멈칫했다. 공연히 아이의 관심을 전쟁으로 돌려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안 때물일 거야. 우린 완벽하지 못해. 너처럼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이야. 그래서 그렇겠지만 우리는 별의별 짓을 다 해. 아주 착한 짓부터 아주 못된 짓까지. 정말이지 인류가 안 하는 짓이 뭐가 있을까. (24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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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배 위에서 아득하게 먼 수평선만을 보며 살아온 남자, 은퇴 후 아내와 함께 다시 밟아보리라 생각했던 고향땅에 결국 혼자 돌아온 남자 앞에 소행성 B612에서 온 아이가 나타난다. 맞다. 생텍쥐페리의 그 '어린 왕자'다. 아이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쏟고 남자는 정성스럽게 대답한다. 음악과 노래의 차이를 이해하고, 전쟁을 이야기하고, 바닷속을 함께 돌아다닌다. 그렇게 남자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 관계에서 위로받고 치유되는 자는 오히려 남자다. 아이보다 남자가 살아온 이야기에 나는 더 마음이 동했다. 깨진 얼음 사이에 빠져 죽을 뻔한 여섯 살의 남자를 끌어내준 소몰이 소년, 마작에 정신 팔려 할아버지의 숨이 끊어진 후에야 낯을 내민 남자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실종과 이후의 삶, 항해사 시절에 만난 동료들, 사막으로 도망친 무단 잠입자, 평범한 아내와의 결혼과 뱃사람의 결혼 생활, 딸아이의 결혼과 동시에 몹쓸 병을 얻어 결국 세상을 등진 아내, 한 생명을 보내면 새로운 생명이 온다는 것을 반증하듯 생명을 잉태한 딸에 대한 이야기까지.
헛헛한 마음으로 마지못해 돌아와 대충 수리해 기거한 고향섬, 남자는 소설 말미에 다다라서야 그곳이 마음껏 울고 싶은 공간을 갖고 싶어 돌아온 곳이라고 고백한다. 사방이 물인 바다에서 긴 세월을 보냈으면서 정작 남자에게 있어 호곡장(好哭場, 울기 좋은 곳)은 고향섬이었던 것이다.
바닷가 출신 필자의 짠 내 나는 산문집 다음에 읽은 소설이라서 그런가. 소설 속 남자와 필자를 자꾸 동일시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남자가 여러 번 언급했던 어린 왕자의 눈빛 -무언가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을 필자도 분명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또렷한 눈빛으로 바라본 바다와 내면의 바닷속, 그 안의 각종 생명체들에 대한 묘사들은 볕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표면처럼 눈부시다. 고백하건대, 나는 한창훈이라는 작가가 좋다.
[책 속에서]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되는 게 아니라 별이 죽어서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 우리의 전생이 별일 수 있다는 게 말이 될까. "여기는 내가 본 별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러니 죽은 별들이 모이는 곳일 수도 있잖아." 사람들은 노래한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우리가 지치지도 않고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는 이유는 고향 생각 같은 것이었나.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별의 죽음 다음이라고 치면 우리의 죽음 다음은 뭘까. 도대체 뭘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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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거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 아늑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6살 이후부터 엄마 자리를 대신해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시험을 마치고 일찍 오라는 할머니의 신신당부를 무시하고 떡볶이집도 들르고 한참을 시끌시끌 떠들다. 다늦어서 집에 들어서는데.. 골목 초입부터 허연 화환이 주르륵 서있다. 아니 사람 다니는 길에 무얼 이리 복잡하게 세워두는 지.." 얘?! 너 네 할미 가신 거 모르냐?" "예?!"
큰 걸 잃었는데 열일곱 삶에 참 큰 걸 잃었는데. 내가 잃은 게 무엇인지 도통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어쨌든 슬퍼하는 게 도리라 생각되어 계속 울었다. 그냥 울려고 마음만 먹으면 주르륵 눈물이 흐르는 나이니까. 수년 동안 얼굴 한 번 못 봤던 큰어머니가 툭 밀친다. "얘! 어린애가 무슨 청승을 이리 떨어. 심부름이나 해." 잊히질 않는다.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청승을 떤 건 맞는데. 그 와중에도 눈을 흘기게 했던 큰어머니의 매몰찬 한마디가 잊히질 않는다.
친구는... 참 많이 서러웠을 것이다. 나를 두고 간 엄마를 그리도 매몰찬 사람을 만들다니, 분한 마음에 더 크게 울지만, 내심 시원하다. 어떻게 분풀이를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렇게 쿡 찔러주면 감정이 쏟아질 구멍 하나가 생기는 느낌이 든다. 아, 이제 울어야겠다. 내가 왜 우는지 몰랐는데 이제 소리를 좀 쳐도 되겠구나.
비록 자주 보지 않아도..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안도감이 존재의 귀함을 하찮은 일상으로 둔갑시키곤 한다. 그러다 더 이상 나와는 같은 하늘을 보지 못한다는 게 왜 그토록 깊은 상처가 되어 돌아올까.
어린 왕자가 이별을 떠났을 때 생텍스가 느꼈을 감정.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니까."
작가는 일만 번 바다를 걷고 나서야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일만 번쯤 생각해보는 이별이란 결국 또 사랑인 것이다. 누군가의 사람들. 안타까운 사람들. 가련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애달픈 사랑. 몇 번을 더 펼치게 될지 모를 이 얄팍한 한 권의 책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생에 일면도 없을 저 먼 나라의 안타까운 아이의 존재까지도. 아득하나마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나의 바다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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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창훈 작가나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표지가 너무 예뻐서 덥석 사버렸다.
책 살때 같이 구매한 책갈피도 넘나 예뻤던 것!
책을 구매 할 때도, 그 이후로도 책에 대해 전혀 검색해보지 않고 그냥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보게 된 작가 소개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볼 때 51점만 되면 100점 주자, 땅은 원래 사람 것이 아니니 죽을 때까지 단 한 평도 소유하지 않는다." 는 작가님의 신념이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에 대한 기대감이 솟구쳤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도입부부터 이런 재치 넘치는 부분이...
"아는 사람 중에 통통한 잉어가 가슴에 안기는 꿈의 주인공이 있다. 잉어 태몽은 명성과 재물복 가진 아들 탄생의 예언이라는 해석이 세상에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동사무소 호적부도 그런 것은 보장해주지 않는다. 천재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부모에게 잠깐 선사했던 그는 고만고만하게 전락해갔고 어른이 된 다음에도 낚시꾼과 백수 중간쯤 되는 인생을 살다가 종내 민물고기 매운탕집을 차려서 그나마 태몽이 영 엉터리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p.9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쓴 소설이라 이것이 작가의 실제 이야기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사실성 있게 진행된다.
그러다가 주인공 앞에 나타난 '어린왕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행성 B612에 살고 있는 그 어린왕자가 외딴섬에 나타난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퇴직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과 순수한 어린왕자가 만나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스토리가 진행된다.
동화같은 스토리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동화처럼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세상의 일들은 늘 미래에서 준비된 채 때를 기다린다. 느닷없이 그 상황을 만난 우리는 그것을 과거로 보내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p.127
"아저씨는 왜 가만히 있어?" "같은 별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데 왜 아저씨는 그냥 있어?" p.220
어린왕자를 세상에 내놓은 생텍쥐페리는 2차 대전 때 비행중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는 죽음으로 몰고 간 전쟁이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같은 별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냐는 어린왕자의 말을 듣고 우리는 반성을 많이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슬퍼졌다. "세상 물정을 알아간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고 그런 일들에 익숙해져단가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스스로 되풀이하는 것. 그게 어른이 된다는 소리였다." p.230
80년 만에 지구에 다시 온 어린왕자는 많이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사람들은 속물이 되어간다. 그의 눈에 비친 지구는 얼마나 슬픈 모습이었을까.
어린왕자 책이 동화 같지만 마냥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 듯이, 이 책도 동화 같은 전개이지만 동화라기에는 슬픈 내용들이 담겨 있다.
단순히 표지가 예뻐서 산 책이,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할 줄이야... 앞으로 한창훈 작가의 저서들을 관심 있게 찾아 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