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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샘물, 그리고 화덕에서 에코라이프를 살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본질적 삶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전기와 석유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마도 살 수는 있겠지, 인류가 문명이 발달하게 되면서 석유와 전기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서 삶이 편안해지고 있다. 굳이 그것을 거부하면서까지 에코라이프를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일까? 햇빛과 샘물, 그리고 화덕에서 펼쳐지는 일상이 그립다. 전기와 석유를 사용하기보다는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한다. 자연에 깃들어 농부로 살아간다. 가축을 먹기 위해 기르고 도살하는 데 동참하지 않는다. 화학섬유나 화학염색된 의류를 입지 않는다. 공장 제품을 사용하기보다는 직접 내 손으로 만들고 나누어 살아간다. 고무, 비닐, 플라스틱과 같은 화학 제품을 사용하기보다 자연에서 얻은 것을 사용한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되도록 물물교환을 실천한다. 임금노동자를 거부하며 직업을 갖지 않는다. 모든 건전한 대안은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며 퇴보보다는 진보를 생각한다. 나 자신의 작은 행위 또는 지구에 대한 미약한 실천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퍼져나가는 향기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
농사에 충실한 삶을 살기를, 여유롭고 열려있는 삶을 살기를, 반짝이는 빛이 아니라 은은하지만 당당한 빛을 내기를, 쌓아 두고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교환하기를, 누군가와 같이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을 가지기를, 고여 있지 말고, 늘 흐르며 변화하는 삶을 살기를. 마음공부를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다. 먹고사는 문제 또한 배제할 수가 없다. 경제적인 문제가 생활의 발목을 잡기 시작하면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극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돈을 가지고 캠핑을 떠나는 것이랑 돈이 없이 캠핑을 떠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새로 옮길 보금자리가 없어 동가식서가숙하는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닌 것이다. 숲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숲의 친구들이다. 숲은 어느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고, 누군가 혼자 차지할 수도 없다. 산을 사서 귀림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자연에 대한 소유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이자 어리석음이다. 단지 자연에 의탁했다고 돌아갈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온전히 내 보일 때 숲은 우리 곁에서 친구가 되어 준다. 단지 숲에 깃들어 살면 된다. 세상 사는 아름다움은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서 나온다. 내 주위를 비우고 덜어내야 한다. 그러 채우려고만 할 때는 공간이 사라지게 된다. 비우고 비우려 하는 미덕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진 물건들은 생각보다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언젠가 사용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곁에 쌓아 두는 버릇이 생기면 나중에는 사람을 위한 집이 아니라 집을 위한 집이 되어 버린다. 사는 공간을 비워낼 때 여유가 생긴다. 꽉 채워놓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가 없다.
P240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이 숲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전기 없이 사는 게 과연 우리의 최종 목표였을까. 우리의 목표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때 느끼는 행복을 되찾는 것'이지 않았을까. 결국 우리의 기준은 전기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동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아닌가가 되어야 했다. 숲이 깨우쳐 준 소중한 가치를 품고서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나무, 흙, 돌로 집을 짓는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기둥 사이를 대나무로 고정해서 그 사이에 흙을 발라 벽을 만든다. 창호와 문은 재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한다. 스티로폼이나 본드 종류, 비닐이나 시멘트 같은 화학자재는 쓰지 않는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고 언젠가 집이 무너지더라도 모든 건축자재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짓는다. 자급에서 자족으로 가는 삶을 지향하다. 무소유의 개념으로 많은 것을 덜어내고 비워내면서 족함을 실천한다. 생각보다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어눌한 욕망으로 타인에게 기대어 행복감을 구하려는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되게 된다. 스스로의 삶에 충살하면서 내공을 쌓아가는 수련에 몰두해야 한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겪어 나가는 것이 살이 삶이다. 이제는 우주론적 관점에서 일상을 바라보게 된다. 숲은 자연이다. 자연은 생명이다. 생명은 우주의 블랙홀 속에 잉태되어 있는 에너지다.
《안녕, 동백숲 작은 집(하얼, 페달 공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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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동백숲 작은 집 /저자 하얼, 페달/출판 열매하나/발매 2018.11.29.
P11 전기가 없던 숲속 집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오고 이웃집에서 전기를 얻어 쓰기 시작했다. 냇물에 하던 빨래는 태양광 세탁기가 대신하고, 화덕에 요리를 하지만 가스레인지를 겸용하기 시작했다. 촛불을 밝히면 밤에 작은 전구가 빛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변화해 왔다.
소비를 지속해야만 유지되는 삶은 불편이다. 내 손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자급자족하는 삶에 접근하자. 욕망을 억제하고 욕구를 줄이고 산다. 여기저기 묻은 숯 가루, 재, 흙투성이 얼룩과 구겨진 옷매무새와 더불어 산다. 패션도 소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본으로 유행을 굴린다.
웅이 님은 본인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을 직접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무 숟가락이었다. 나무를 만질 때는 어떻게 칼을 잡고 뭘 주의해야 하는지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를 만지기 전에 항상 나무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귀 기울여 먼저 듣고 나무가 대답을 해준 다음에 천천히 깎아도 괜찮다.
작지만 직접 농사를 짓고 그 농산물로 요리를 한다. 나무로 만든 숟가락과 접시 또한 쓰임을 다 하면 다시 땅으로 돌려보낸다. 나무 숟가락을 쓰다가 닳으면 아궁이로 들어가 한 줌의 재로 변하고, 그 재는 다시 밭에 뿌려진다.
P153 그는 원래 아랫마을 빈집에 살림을 꾸렸는데, 샘터에 물을 뜨러 매일 이곳으로 오다가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옹이 님은 이곳에서 자라던 삼나무를 베어 귀틀집을 지었다. 남자 혼자서 1년이 걸렸다. 삼나무를 통재로 껍질만 벗겨서 서로 직각이 되게 교차해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 대나무로 틀을 짜서 흙을 다져 넣었다. 가운데 부엌이 있고 양쪽으로 불을 때는 일곱 평짜리 세 칸 집이었다. 지붕은 기와로 올렸는데 작지만 위풍당당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우리는 특히 그의 생태적인 삶에 놀랐다. 숲에서 홀로 7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화학제품이나 석유제품, 전자제품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설거지와 세수는 밀가루로 했고 이는 죽염으로 닦았다. 세수한 물은 밭에다 뿌리고, 무명이나 삼베로 만든 옷은 오래되어 헤지면 불에 태운다고 했다.
P240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이 숲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전기 없이 사는 게 과연 우리의 최종 목표였을까? 우리의 목표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때 느끼는 행복을 되찾는 것'이지 않았을까? 결국 우리의 기준은 전기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동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아닌가가 되어야 했다. 숲이 깨우쳐 준 소중한 가치를 품고서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P295 우리를 둘러싼 그 나무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무들은 우리에게 이런 걸 바라지 않을까.
- 농사에 충실한 삶을 살기를.
- 여유롭고 열려 있는 삶을 살기를.
- 반짝이는 빛이 아니라 은은하지만 당당한 빛을 내기를.
- 쌓아 두고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교환하기를.
- 누군가와 같이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을 가지기를.
- 고여 있지 말고 늘 흐르며 변화하는 삶을 살기를.
P297 한편으로 우리는 늘 변화하는 삶을 살 것이다. 고정된 모습을 고집하지 않으려고 한다. 삶은 지금 이 순간도 늘 흐르고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좋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을 좋은 일로 귀결시키는 것 역시 우리 몫일 테니까.
우리는 동백 숲에 왔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안녕, 동백숲 작은 집(하얼, 페달 공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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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 모습 자체가 의미 있어." ㅡㅡㅡ 동백숲에서 우리 부부는 '욕망을 억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을 바꾼다'는 마음으로 살자며 서로 다독이곤 했는데, 집 짓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쓰고 싶은 것을 못 쓰면 그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뭔가를 하지 못해 아쉬워하기보다 다른 것을 찾았다. ㅡㅡㅡ 오늘 마주 하는 햇살의 싱그러움을 너에게 전하고 싶다. 밤마다 노래하는 작은 풀벌레, 이른 새벽을 여는 새들의 소리, 흐르는 그대로 온전한 냇물, 뿌리내림을 후회하지 않는 나무들, 흔들려도 불평하지 않는 풀잎. 모두가 너의 선생이자 친구일거야. ㅡㅡㅡ 누군가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이유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알아가는 건 앓아가는 것이고, 앓아가는 건 앎에 다다르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앎에 다다르는 건 마침내 아름다움을 만나는 길로 이어진다. ㅡㅡㅡ 우리 역시 여전히 서툴고 미숙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은 보고 배울 수 있는 존재이니 조금 서툴러도 괜찮지 않을까. . . 환경단체에서 일하던 부부가 자연을 헤치는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기 위해 동백숲으로 들어가 생활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라고 내 짧은 문장력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만큼 꽉 찬 책이랄까. 사실 그냥 숲에서 사는 가족의 이야기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따뜻함과 뭉클함, 자연에 대한 소중함, 교훈들이 가득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연속에서 자급자족하고, 그 속에서 배우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책 속에 소중히 담겨 있다. 농사를 짓고, 산에서 찻잎과 열매 등을 채취하고, 나무로 수저를 깍아 만들고, 친환경 옷을 직접 만들고, 화덕에 음식을 하고, 전기와 가스 없는 생활, 계곡물에서 세제없이 빨래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에서 아이를 낳았던 일들까지..모든게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담겨있다. 내가 환경에 관련된 일을 했다고 해서 과연 저런 선택들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마 절대 못할 것이다. 도전한다 해도 전기 없이, 따뜻한 물 없이, 에어컨이나 TV, 핸드폰 없이 하루도 버틸 수 없을것이다. 그런 일들을 부부는 몇년동안 지속했다.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생긴 후에도 아이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법, 자연을 존경하는 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게 했다.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전기, 가스, 석유 모든것들이 환경과 자연을 망가트리고 우리의 건강을 헤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조금의 불편함도 견디지 못해, 문명의 혜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연을, 환경을 짓밟고 있다. 그러한 나의 생활을 반성하게 하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해보자는 마음을 들게 하는 책인데다, 어쩜 부부가 글도 그렇게 사랑스럽고 예쁘게 쓰는지... 어찌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읽는 동안 내내 동백숲에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동백숲에서 6년간 살아가며 아름다움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굳어 있지 않고 자유롭게 펼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또 한 곳에 고여 있지 않고 늘 변화하듯 춤추는 삶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배웠다는 하얼과 페달 부부. 6년간의 동백숲의 삶을 뒤로 하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환경과 자연을 위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그들을 응원한다. . 자연은 신비롭다. 우주는 오묘하다. 그 위대하고 거대한 깊이 앞에 우리는 오늘도 흘러간다. 춤추듯 자유롭게. 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도 그렇게 춤추듯 자유롭게 감사하며 자연을 아끼며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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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67 《안녕, 동백숲 작은 집》 하얼과 페달 열매하나 2018.11.29. 나무일을 하다 보면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던 나무가 우리 집 아궁이에서 하룻밤 만에 태워지는 과정을 그려 본다. 씨앗으로 땅 위에 떨어져 여린 뿌리를 땅 속에 내릴 때, 높고 큰 나무들 사이로 어린 가지를 뻗어 햇빛을 받으려 했을 때, 어둡고 깊은 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조용히 산짐승들의 휴식처가 되었을 때…… (52쪽) 화덕 요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처럼 대해야 한다. 그래도 장작불이 있으니 늘 요리가 즐거울 수밖에 없는데 이 매력에 한번 빠지면 가스나 전기로 요리하는 게 오히려 밋밋하고 심심하다. (138쪽) 예전에 나주 사시는 어르신께 대나무 짜는 걸 배우러 오갔던 적이 있다. 어르신은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대나무 바구니가 다시 빛을 발할 날이 오리라 믿고 기다리신다고 하셨다. (270쪽)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처음에는 이것저것 낯설 테지만, 어느새 자동차를 둘러싼 여러 가지를 배워서 하나하나 익숙하게 다루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모는 자동차를 웬만큼 알 무렵에는 다른 사람이 모는 자동차도 곁눈으로 알아볼 테고요. 나무를 심고 돌보는 사람은 처음에는 아직 모를 테지만, 한 해 두 해 흐르는 사이에 손수 심어서 돌보는 나무를 찬찬히 헤아리기 마련입니다. 나무 하나를 어느 만큼 알 즈음, 다른 나무를 알아보기 마련이요, 해가 흐르고 흐르는 동안 온갖 나무를 고이 사랑하면서 아끼는 손길로 거듭납니다. 《안녕, 동백숲 작은 집》(하얼과 페달, 열매하나, 2018)은 숲에 깃들어 새롭게 살고프던, 그렇지만 영 서툴거나 엉성해서 늘 부딪혀 넘어져야 했던 젊은 가시버시가 남긴 이야기입니다. 책이름처럼 젊은 가시버시는 이녁이 깃든 숲을 떠납니다. 스스로 숲을 그릴 수 있다면 어디이든 숲이 될 터이니, 알뜰살뜰 가꾸던 동백숲도 숲일 테고, 아이하고 새롭게 디디는 자리도 숲이 되어요. 하나도 모르기에 서툴기 마련입니다만, 하나도 모르기에 무엇이든 새로 지으면서 즐길 만합니다. 영 엉성하다 보니 이래도 망가지고 저래도 넘어집니다만, 영 엉성하기에 무엇이든 새로 배우면서 누릴 만해요. 처음부터 자동차를 잘 다루는 사람은 없어요. 처음부터 손전화를 빈틈없이 다루는 사람은 없지요. 처음부터 시골살림을 잘 가꾸는 사람도, 처음부터 숲살이를 환하게 보듬는 사람도 없을 만합니다. 생각해 봐요. 요새는 모두 도시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라는데다가,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맡긴 몸이 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곧장 입시지옥이라는 굴레에 허덕입니다. 이런 판에 어떻게 숲살림이나 숲바람을 헤아릴 수 있겠어요. 낯설기에 더욱 새롭게 마주하면서 나무하고 속삭입니다. 모르기에 더욱 씩씩하게 만나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처음이기에 더욱 반갑게 골짝물에 풍덩 뛰어들고 시원하면서 달디단 물맛을 보고는, 이제야말로 삶다운 삶을 여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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