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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지도를 제작하다
"무의식의 지도를 제작하다" 내용보기
정신분석학은 심오하고 어려운 느낌이 드는 학문이다. 정신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고 그러한 추상적인 개념을 분석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분석한다는것에 굉장히 의구심을 표하고 그것을 심리학이 비과학적이라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과학은 이성을 토대로 한 추론과 탐구에 기반을 두는데, 꿈에서의 인간과 스토리는 지극히 비이성
"무의식의 지도를 제작하다" 내용보기

 정신분석학은 심오하고 어려운 느낌이 드는 학문이다. 정신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고 그러한 추상적인 개념을 분석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분석한다는것에 굉장히 의구심을 표하고 그것을 심리학이 비과학적이라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과학은 이성을 토대로 한 추론과 탐구에 기반을 두는데, 꿈에서의 인간과 스토리는 지극히 비이성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심리학에서의 꿈분석은 해몽가가 하는 꿈 해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심리학은 엄연한 과학적 학문이다. 그가 소개하는 수많은 사례들은 그의 이론을 '반드시 그렇다'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높은 확률로 그러하다'라고 말할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이트가 신경증적 환자들의 사례 위주로 이론을 수립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심리학의 지표가 되고 있는 이유이다. 몇몇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그러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 대한 반박으로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과학기술의 개발로 이제 더이상 가장 작은 물질의 구성 요소는 원자가 아니게 되었으며 철썩같이 밑고 있던 천동설도 지동설에 의해 진리가 아님이 밝혀졌으므로 과학적이라는 것이 실은 과학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본 책 말미에 적혀있던 몇몇 구절이 인상적이여서 소개하고자 한다.

 

 < 무의식(그것)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자신의 인식과 의지에 갇히지 않고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인식과 의지가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사건의 바다로 우리를 뛰어들게 한다. 우리는 바다의 파도와 깊이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 속에 뛰어들어 헤엄을 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건들의 흐름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사건의 바다에 뛰어들어 삶을 헤쳐 나간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렵기 때문에 바다에 뛰어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자기가 아는 만큼만 익숙한 경계 안에서 헤엄치는 사람들도 있다. '자아'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삶의 바다에서는 뛰어들지 않거나 아는 만큼의 경계 안에서만 행동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타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바다에 던져져 있다. '나'의 삶은 언제나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 있으며, 알든 모르든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애써 부정할 수는 있어도 거부할 수는 없다. 무의식의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은, 그 무한한 사건들의 바다에 대한 지도를 만드는 작업이다.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서 일렁이는 사건들의 파도와 깊이, 흐름의 방향과 강도, 온도와 밀도에 대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

 

 인간관계에 대하여 회의감을 느끼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특히 와닿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자타의 관계없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동물이고 그 사회 속에서 맺는 관계들에 의해 심리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사회는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문명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 영향은 커질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잡고 사회집단에 파급을 일으키는 정신역동을 분석하는 정신분석학은 그 미래가 더욱 밝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사회현상들의 원인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 사회적 억압에는 경찰이나 군대, 법원이나 감옥 같은 조직에서 행하는 물리적 억압도 있지만, 사회적 지각 의식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언론 매체와 여론에 대한 통제도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나 생각 혹은 욕망이 사회적으로 지각되거나 의식되지 않도록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통제하는 작용 말입니다. >

 

 세월호 참사 및 유병언 사건, 이러저러한 사건 사고들로 시끄러운 요즈음 우리나라 사회에 큰 교훈을 주는 한마디가 아닌가?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나도 정보화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무지해지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사람들의 지능이 고도화될수록 대중들을 속이는 방법 또한 더 교묘해지고있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대중매체 및 사회에 의하여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고, 그 영향력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돈을 쓰라고 은밀하게 부추기는 광고 매체들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지금 유병언의 사체가 가짜라는 말이 돌고 있는데, 그것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흔들리는 사회의 분란을 잠재우기 위해 대중매체를 이용한 눈속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 전세계의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매체가 전달하는 '가짜 시체'로 유병언은 죽었다고 철썩같이 밑게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 시체가 가짜라면 유병언은 살아서 아무도 모르게 이름을 James로 바꾸고 호화스런 별장에 숨어 잘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꿈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잠재된 사고(욕망, 정서)에 일정한 형상을 입혀서 그것이 행위로 표출되지 않고 지각적 표상으로 만족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불안 꿈은 무의식적 충동과 정서가 폭풍처럼 휘몰아쳐서, 미처 꿈을 형상화 작업으로 변형할 수 없을 때 꾸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의식적 충동과 정서가 아무런 억압 없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도 않겠지요. >

 

 프리드리 니체는 "꿈에서는 직접 도달할 수 없는 태곳적 인간 본성이 해당하는 부분이 작용한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살아가면서 한번쯤 내면에 숨겨진 본능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와 오랜 불화를 겪은 나는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꿈이 있다. 나는 방과 후 엄마를 보기 싫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꺼진 아파트 계단에서 몇분씩이나 서성이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다. 엄마에 대한 증오는 아직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나의 굴레이기도 하다. 그 꿈의 내용은 이러하다.

 

 내가 집에 들어가자 마자 풍기는 기괴한 분위기에 나는 압도당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현관과 마주한 화장실의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알수없는 불안함에 휩싸인채로 화장실로 다가가서 문을 연다. 그곳에는 외할머니가 온몸에 칼로 난도질을 당하여 욕조에 잠겨있다. 나는 기겁하고 뒷걸음질치다 거실에 엄마가 정신이 빠진 채로 앉아있는 모습을 곁눈질로 쳐다본다. 꿈속의 내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엄마의 짓거리라는 것을 알고서는 현관문을 박차고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동네에 있던 정육점과 슈퍼를 지나 경찰서로 나는 미친듯이 달린다......... 얼마나 그 거리가 길게 느껴지던지.. 꿈에서 깬 뒤 나는 땀이 식으며 느껴지는 기분나쁜 오한을 떨쳐내기 위해 뒤척였다.

 

 유아들은 오이디푸스기를 잘 넘겨야 성숙한 인격 형성을 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갈등은 이성 부모를 흠모하고 동성 부모를 적대시하는것으로, 이 갈등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의 부모는 그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동성 부모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가 나의 무의식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의식은 부모에게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었기에 그러한 욕망을 억제하였고 그것은 나도 알지 못하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쩌면 그 꿈에서 나의 엄마 또한 그 오이디푸스기를 잘 헤쳐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 지금 힘들어'라는 무의식의 응석이 꿈에서 드러난 것임을 이제서야 느꼈다. 그 당시의 나는 또다시 반복된 엄마와의 갈등으로 무척이나 힘든 생활을 했었다.

 

 숨어있는 나를 직면하는 것. 이것은 매우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어렵고도 하기 싫은 과정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무의식의 나를 꺼내보는 것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나는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심리학 전공을 결정하게 된 계기도 공부를 하면서 그러한 과정까지 거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학부생으로서 공부를 많이 한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러한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그 과정의 반은 지나지 않았나 싶다.

 

t******7 2014.07.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