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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야기는 동화 이야기가 아니다. 동화 이야기의 결말은 모두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의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역사적인 혁명이 행복한 결말을 맞은 적은 없었다. 사악한 용을 물리친 용감한 영웅의 뒷이야기를 제대로 파고든 적이 없는 우리는 혁명의 영웅들이 대업을 달성하고 난 그 뒷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혁명가들은 어떤 식의 경제정책을 펴 나갔는지, 어떤 식의 외교정책을 추진했는지 말이다.
일반 대중이 체 게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도 그런 동화나 신화 속의 영웅의 이미지가 강하지 정치가나 행정가로서의 모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러던 참에 헬렌 야페의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가 번역출간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과거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에 나오는 젊은 시절의 모험가 면모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을 목표로 밀림에서 게릴라로 투쟁한 전사로서의 모습을 넘어 행정관료·정치경제학자로서의 체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은 1959년 쿠바혁명 이래 1965년까지 게바라가 경제관료로 일하며 쿠바 경제 재건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마련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게바라의 최측근으로 그와 함께 일한 50명의 인사를 포함해 60명을 인터뷰했고, 또 프레젠테이션과 세미나에서 수집한 12건의 구술 자료를 참조했다.
쿠바의 사회주의 기초를 닦아나가는 과정에서 체 게바라와 그의 동지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구체적인 기획을 확립하였는지 알 수 있다. 게바라는 1961년 산업부장관이 되자 제철, 조선, 섬유, 발전, 기계, 제지공장 등을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혁명가들은 곧 이른바 혁명의 역설에 봉착하게 된다.
"혁명의 역설은 사회주의가 약속한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방법들, 다시 말해 높은 노동 강도, 효율성, 낭비와 나태의 척결, 엄격한 노동 규율을 그대로 차용한다는 것이다."(13쪽)
일단 쿠바 혁명가들은 토지개혁을 정치경제적 독립과 사회정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으로 간주했다. "쿠바는 토지개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진정한 토지개혁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조치가 아니다. 진정한 토지개혁이란 토지를 많이 소유한 사람들에게서 토지를 빼앗아 가난한 인민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나누어 주는 것이다. 진정한 토지개혁은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정치적 세력균형을 바꾼다. 그것은 더 광범위한 사회 변혁의 시작일 뿐이다. 진정한 토지개혁은 이른바 개혁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통째로 뒤흔드는 혁명적 조치다."(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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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체 게바라 평전>을 통해 남미 사회주의 혁명의 대명사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공적이고도 사적인 면모를 알게 되었다. 체 게바라는 혁명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된 지 오래다. 체 게바라는 티셔츠나 모자에 이미지가 새겨질 정도로 “푸르고 신선하다”. 얼마 전에는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 사후 채취된 지문, 일부 친필 원고 등이 거액으로 경매된 소식이 전해질 정도로 “죽지 않은” 인물임이 여실히 입증되었다.
이 책은 저자인 헬렌 야페가 영국 런던정경대학교에 제출한 박사논문을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고 논문답게(?) 딱딱하다거나 무미건조한 자료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책은 아니다. 쿠바 혁명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했다면 십중팔구는 난해한 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은 “실천”, 즉 체 게바라가 1959년부터 1965년까지 경제관료로 일하며 쿠바 경제 재건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마련했는지를 집중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체 게바라가 실무책임자로서 쿠바 경제를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는지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미덕이고 강점이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회주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왜, 어떻게”이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열강과 동유럽권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를 끌어안은 채로 제3의 길을 모색한 독창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체 게바라가 걸은 길은 그만큼 역경이었고 전대미문의 고난이었다. 쿠바의 저생산, 저발전 상황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체 게바라는 소련의 교조주의를 비판했다. 심지어 소련이 뼈를 깎는 강력한 정책 변화를 수행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로 회귀할 수도 있다고 예견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쿠바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식과 새로운 사회관계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산 능력과 노동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유화와 중앙계획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경제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의지하는 “자율재정 시스템”의 도입으로 구체화된다. 쿠바는 개혁주의적인 자본주의를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입한 경제 정책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보면서 체 게바라의 시도를 “실패”라는 한 마디로 규정짓는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 논리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저자는 “게바라의 지도 아래 쿠바 경제는 안정을 되찾고 산업을 다각화했으며 성장을 달성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리는 회색 지대에 있는 것 같다. 쿠바의 취약한 경제구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쿠바 억제정책,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 이 모든 것을 함께 고려했을 때 진정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 이전에 이처럼 쿠바 경제사를 내재적으로 분석한 책은 없었다. 또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각종 자료와 혁명 동지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접목시키고 있는 것도 이 책의 미덕으로 꼽을 수 있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인데도 무리 없이 읽힌다. 번역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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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를 생각할 때 알면서도 품게 되는 편견이 있다. 그것은 그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운동에 뛰어들었고 예상처럼 실패했기에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 체를 우리는 티셔츠와 포스터에 새겨 기념하였다. 그렇지만 그 인생의 짙은 질감만을 기억하려 하였기에,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그림과 사진 속에 고정되어 있는 투사로서의 정물화된 이미지만 쉽사리 떠올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체에 대한 좁은 시야를 넓혀 주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고마운 점이다. 이 책은 관념과 이상뿐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활동했던 운동가 체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지면 속에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있던 새로운 나라 쿠바를 위해 분투한 체의 행적이 정교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 속에서 체는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며,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내기 위해 대수학, 삼각법, 기하학, 미분 방정식 등 닥치는 대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적용하는 사람이다. 61년에서 65년까지 100건이 넘는 공장 건설 지원 계약을 체결했고, 스스로 자발적 노동에 뛰어들어 사탕수수 거두기 경쟁을 하기도 한다. 강도 높은 자기비판을 가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동료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갖고 못살게 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같은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었다. 미국의 경제봉쇄, 유산계급의 해외도피 가운데 그들은 저자가 말하듯이 모두 일하면서 배우는 (Learning by doing)혁명가로 살아야 했다. 행동가로서의 체의 면모뿐 아니라 정교한 마르크스 이론가로서의 체의 모습도 살펴 볼 수 있다. 그는 기존 소비에트 경제 시스템에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 가치법칙’을 뛰어넘기 위해 독자적인 예산재정시스템을 고안하여 도입한다. 또한 도덕적 인센티브를 통하여 사회주의 건설 과정의 생산성과 의식을 함께 높일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기존 소비에트 경제 시스템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쿠바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고심했다.
저자는 다양한 장면과 그림들을 모자이크 맞추듯 체 게바라를 중심으로 하여 풀어나가고 있다. 이는 또 쿠바라고 하는 신생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사를 자연스럽게 개관해 나가는 큰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 작지 않은 이야기의 밑바탕은 체와 함께 활동 했던 주요인물 60명에 대한 상세한 인터뷰와 현지 쿠바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각종, 자료, 신문, 잡지 등의 방대한 자료조사를 기초로 하고 있다. 저자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설명을 통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체의 시도들은 실패한 것이 아니며, 그의 주장과 노력들은 앞으로 더욱 유의미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체의 다양한 시도들, 그리고 쿠바의 사회주의 이행에 대해 성공 혹은 실패로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림자처럼 가려져 있었던 체의 5년 간의 행적을 그가 살아간 시대와 함께 건져 올려준 저자의 열정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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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들으면 나는 제일 먼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자기시대를 고민하고 그 시대의 고민을 자기의 꿈으로 삼아 혁명의 길로 나서는 한 젊은이의 모습이다. 80년대 한국사회에서도 있었을 법한 낭만과 순수의 이미지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에게 체 게바라는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사회주의 혁명가의 모습이었다. 라틴아메리카를 횡단하며 나환자들과도 스스럼없이 함께 어울리던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 아니라 험악한 산악에서 직접 전투를 하며 소위 ‘해방’을 위해 싸우는 게릴라 전사의 모습이 그것이다. 체 게바라는 쿠바혁명(1959)에 성공한 후 권력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게릴라 전사로서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투철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권력지향적인 여타의 혁명가들에서는 볼 수 없는 진정성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회주의와는 관계가 먼 서유럽에서도 한때 ‘체 게바라’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의 삶에 엿보이는 진정성과 유토피아적인 낭만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발간된 책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에서는 기존에 통념으로 알던 체 게바라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쿠바경제의 새로운 토대를 쌓은 정치경제학자, 체 게바라가 바로 그것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순수한 청년도 아니고 혁명투사나 게릴라도 아니다. ‘싸움꾼’ 체 게바라가 지적인 정치경제학자라니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체 게바라의 새로운 면모, 바로 여기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
1959년 혁명이후 쿠바가 직면한 근본문제는 저발전 상태의 쿠바가 자본주의적 메카니즘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주의 체제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식과 사회적 관계를 창출할 수 있는가였다.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이 책은 쿠바의 이러한 근본 문제를 체 게바라가 실제적인 정치현실에서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가를 경제사적인 맥락에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정부에서 산업부흥부장, 쿠바국립은행총재, 산업부 장관 등 경제 분야의 중책을 역임했는데 이때 ‘체 게바라’가 보여준 지식인이자 정치 관료의 모습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이 시기에 체 게바라는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 화폐개혁, 경제관리시스템인 예산재정시스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물질적 인센티브가 아니라 도덕적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등 다양한 정책과 개혁을 시도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현실적 함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회주의는 현실에서 이미 종말을 고한 체제이자 정치이데올로기다. 더구나 쿠바라는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섬나라에서 그것도 1960년대에 시험했던 사회주의 건설사가 2000년대의 현대 한국사회에 어떤 실질적 함의를 줄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런 의문을 한번쯤 가져봄직하다. 사실 나도 서평을 쓰기 위해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이런 철지난 책을 왜 출판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쿠바를 소개하는 TV방송을 보면서 다시 이 책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4월 21일 토요일 KBS 1TV 「특파원 현장보고」에서 선진국 수준의 의료체계와 실력을 갖춘 쿠바를 소개한 적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가난한 나라, 독재의 나라 쿠바가 바깥 세상에 자랑하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가, 야구, 그리고 의료분야라는 것이다. 시가나 야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빈국인 쿠바의 의료분야가 세계의 자랑거리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아나운서의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정치적으로 독재의 나라,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 쿠바….그러나 세계는 가난하게 살지만 부자로 죽는 이 나라의 의료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쿠바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지만 암과 같은 중병이 걸려도 의료비 걱정없이 선진국 수준의 의료시설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음을 빗댄 말이다. 쿠바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꿈꿀 수 없는 모순가득한 일이 쿠바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말에 쿠바나 체 게바라를 얕잡아보던 나의 통념은 통째로 흔들렸다. 7만 3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시에는 쿠바의 의사들이 자원봉사에도 나서는가 하면 후진국 출신의 학생들에게 의학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대학도 있다. 쿠바의 의료 서비스는 국제주의 이념에 입각해 연대적이고 인도주의적라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이 방송을 보면서 나는 아직 체 게바라가 완전히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정치체제로서 사회주의 쿠바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체 게바라가 심어 놓은 자본주의적 의식과 구분되는 ‘새로운 의식’은 충분히 다시 생각할 가치가 있고 흥미로운 꺼리라고 생각한다. 흔히 유물론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물질이 의식을 결정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최상의 의료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의식이 생성될 수 없다. 그런데 쿠바는 정치적 독재국가에다 가난한 나라임에도 이러한 ‘새로운 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하는 이유이고 이 책의 가치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는 체 게바라의 다양한 사회주의적 정책이 소개 되고 있다. 그러나 상기한 내용과 관련하여 우리가 특히 관심있게 읽어야 하는 부분은 체 게바라가 물질적 인센티브가 아니라 도덕적 인센티브를 통해 자본주의적 의식과 구분되는 새로운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다. KBS에서 소개한 쿠바의 모습은 체 게바라의 이러한 시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책에 보면 “우리나라의 의식 수준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수 도 있습니다(p.524-525).”라는 내용이 있는데 KBS 특파원 현장보고의 내용을 볼 때만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체 게바라의 노력이 최소한 바탕이 되었을 쿠바의 이런 역설적인 모습은 자본주의라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기 성찰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적인 측면 이외에 타락한 자본의 정의롭지 못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사고와 대안에 대한 논의가 한참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인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적 사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이 책은 한 사회주의자가 자본주의적 메카니즘에 포박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고군분투하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들에게 1960년대의 여러 정황들과 아직 다하지 않은 ‘쿠바의 역설’은 현시대를 인식하고 성찰하는데 필요한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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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의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은 기억이 생생하다.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의 진면목과 쿠바 혁명의 여정을 상세하게 전달한 좋은 책이었다.
이번 책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은 전작과는 달리 체 게바라의 구체적 정책과 실천을 다루고 있다. 체 게바라는 혁명정부의 산업부흥부장으로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를, 국립은행 총재로 화폐개혁을, 산업부 장관으로 예산재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런 행정 정책을 설명하면서도 당시 구체적인 상황과 배경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자칫 어렵고 딱딱할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체 게바라의 혁명 동지 6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가미하고 있어 생동감이 있고 독서의 흥미도 유발한다.
특히 체 게바라가 소련에 대한 추종이 아니라 비판적 수용의 입장을 취한 점, 그리고 당시 동유럽의 지도자들과도 치열하게 교류한 점도 부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체 게바라가 견지한 독자적 노선의 특징이 자세하게 그려진다. 국유화와 중앙계획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경제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용인하는 “자율재정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어쩌면 체 게바라는 폭력적인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목격하면서 사회주의를 일방적으로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이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끌어안으면서 이상적인 사회주의를 구현하려 한 시지프스였는지도 모른다.
체 게바라의 “인간 중심의 대안적 경제관리시스템”도 주목할 만하다. 소련 경제체제의 변질 이유를 “노동자 계급의 집단의식을 기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개인들의 최대한의 발달을 목표로 하는 사회, 또는 각인의 자유로운 발달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달의 조건이 되는 사회”를 위해 인간이 사회와 발전의 중심이 되는 “인간의 최대한의 발달”을 모색한 것이다. 이런 노력을 “역사의 승자” 입장에서 결과론적으로 “실패”라고 규정짓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체 게바라가 혼신의 힘을 기울인 혁명이 남미는 물론이고 서구사회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역사에 남긴 그의 족적이 무의미한 것은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체 게바라의 새로운 면과 역동적인 활동상을 부각하고 있는 좋은 책을 만났다.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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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학도로서 흥분가운데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마르크스주의에 무지한 한 사람으로서 이내 좌절감 가운데 이 책을 덮고 싶어졌다. 좌절감은 곧 저자 헬렌 야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책의 끝에 다다랐을 때 뭔가 책의 중심줄기를 잡은 느낌였고, 서둘러 서문, 서론으로 돌아와 이 책(논문)의 주제와 의도를 다시금 제대로 파악했다.
한 사회의 개발, 특히나 정치경제학적인 발전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지구상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그것도 게바라의 경제학자로서의 면모에 관한 책이라니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책 첫머리에 나오는 '의식과 생산사이의 관계', '굶주림 속에서도 도덕적 인센티브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쿠바의 모든 동지들'이란 말들은, 나의 호기심과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이 책을 읽을 충분한 '인센티브'가 되었다. 당연히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중심 질문은 '저발전국에서 어떻게 하면 경제 성장과 함께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평등을 달성할 수 있는가? 외부에서 봉쇄된, 그리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최선인가?'(p.519-520) 였다.
그리고 각론으로 들어갔을 때, 두가지 사실이 머리를 찌끈거리게 했다. 첫째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내가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원하는 만큼의 이해와 비판을 하며 읽을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의 중심질문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너무 길게 풀어놓는 듯한, 혹은 게바라가 어떤 정책을 폈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핵심을 간결하게 전달하지 않고 너무 길~게 풀어나가 지리해지기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는 나의 무지가 한 몫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논문인데 말이다. 논문이라, '게바라의 인생극장' 같은 가슴뛰는 이야기 전개 같은 것은 기대도 않고 있는데 말이다.
앞서 말했듯, 책을 다 끝내고 다시 서론을 읽고서, 나는 나의 흥분에 압도되어 처음부터 책에 대해 잘못 접근한 것을 깨달았다. 서론에서 저자는 이 책은 혁명이후 쿠바의 경제구조, 그 중에서도 게바라의 기여를 살펴볼거라고 얘기한다. 그리고는 분명히 밝히길 '이것이 수반하는 이론적 문제들을 모두 다룰 의도는 없다. 단지 후속 논의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을 제공하고자 할 뿐이다. 다시 말해, 혁명 직후 쿠바 혁명가들이 직면했던 엄청난 도전들과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했던 피나는 노력을 상세히 보여줌으로써 게바라의 관념론이나 쿠바 경제의 부실관리로 쿠바가 실패했다고 하는 단순한 주장들을 벗어던지려는 것이다.'(p.25) 라고 서술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 경제, 사회를 건설하는 이론적 문제들을 모두 다루지 않는다 (나는 사실 이것에 좀 짜증이 났었다). 그리고 게바라의 경제정책이 가져왔던 분명한 효과를 서술하지도 -아니, 서술할 수도 없다- 않고, 사회주의의 유용성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혀놓고 있지 않다. 대신, 혁명직후, 모든 것이 황폐해져 있고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던 도서국가의 현실을 풀어놓고 있으며, 이의 해결을 위해 쏟았던 게바라와 그의 동료들의 피나는 노력을 자세히 서술한다. 그 노력들이 옳았는지 틀린 것인지, 혹은 최선이었는지 아닌지는 주된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쿠바의 사회주의 경제학을 단순히 실패했다고 하는 쿠바학(cubanology)의 주장에 반박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담겨있다.
자서전이 아니므로 가슴뛰게할 감동의 스토리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조금은 무미건조 할 수 있지만) 경제 혹은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깊은 고민과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땀냄새는 충분히 담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책이나 제도 자체가 아닌, 그것을 세워가는 과정가운데 보여지는 게바라의 모습을 엿보는게 재미가 있기도 했다. 저자의 말 그대로, 상품화된 이미지와는 다른 조금 까다롭고 엄격한, 간혹 예민하면서도 빈틈이 없는.... 모습이 의도적으로 부각됐다 할지라도, 이는 혁명기를 지내온 리더에게서 응당 보여질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경제부처 수장으로, 정치 리더로서의 게바라에게서, 흔히 우리가 반하는 혁명가로서의 게바라의 모습을 동일하게 볼 수 있었다. 즉,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크나큰 이상을 가지면서도 현실에 굳건하게 두 발을 디디고서 열심히 투쟁하는, 강철의지를 가진 진정한 행동가이자 신념과 진정성을 가진, 지도자이면서 시대의 한 구성원이였던 게바라의 면모를 economist (경제학자)였던 그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경제학자가 아닌 게바라가, 쿠바의 경제사에 크나큰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진정 혁명을 꿈꾸고 삶을 던진 그의 진정성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경제전문가들보다 뛰어난 통찰과 혜안, 그리고 자신의 좁은 전문 분야를 넘어서 문제 해결과 목표 달성을 위해 전 분야를 아우르는 접근과 시도들은 게바라이기에 가능했고, 혁명을 갓 지나온 쿠바 사회이었기에 가능하지 않나 싶다.
한번 더 일독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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