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을 매우 잘 하고 싶었던 나는 나름대로 결혼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잘 한다'는 게 사람마다 다 뜻이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진실한 결혼생활을 의미했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시절 공부를 시작했다가 끝내지 못했던 김홍전 목사님의 [혼인, 가정과 교회]도 혼자서는 다 읽었고, 존 파이퍼 목사님의 [결혼 신학]은 둘이서 끝까지 다 읽은 책이다. 그리고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던 [이 질그릇에도] 역시 결혼생활이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좋은 그림을 그려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 때도 안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 중고등학생 어린 아이들이 서로 사귄다고 하면서 붙어다니는 것이 나는 영 못마땅하고 조마조마하다. 나의 중학교 시절 나와 친구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성이 마비가 되어 있나 싶을 정도로 타인에 대한 바른 존중감 같은 게 없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왜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또 배우려 들지도 않았다.
정신적으로는 완성되지 않은 그 아이들이 몸은 성인과도 다름 없으니, 한 때의 충동으로 잘못된 길을 걸어갈까봐 걱정이 앞선다. 남녀의 차이를 간단히 심리학적으로 다루거나, 육체적인 아름다움으로만 비추는 대중매체들이 가치관을 형성할 나이인 아이들에게 너무 가까이 있다. 그러니 '피임법이나 잘 가르쳐라'하는 씁쓸한 말들이 당연하다는 듯 오가기도 한다.
10살이나 어린 내 동생에게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르다고 말 한 적이 있다. 동생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만이 아니라 의지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방을 향해 떨리는 마음이 사라져도 꼭 같이 진실하게 대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책임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감정을 눌러놓는 것이 더 낫다고도 했다.
책임이라니. 책임지는 것이 싫어서 결혼 안하고 연애만 하는 사람도 있는 요즘에. 그러면서 나를 고루한 사람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책임감을 안고 결혼이라는 하나의 약속 안에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기쁘다.
미우라 아야꼬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이야기하며 했던 말을 나는 깊이 공감한다.
나와 내 남편은 약속된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약속을 잘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 한 것이다. 연애시절 남편은 자주 이야기 했다. "나를 믿지 말아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위에 세워진 약속이 우리의 결혼이었다.
결혼 후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의 남편을 만들어 온 모든 것을 내가 받아들이겠다는 것과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을 낳은 부모님, 관계된 형제와 친구들, 그의 현재와 미래 뿐 아니라 과거까지도. 남편 역시 나의 그릇된 과거의 삶과 현재의 모자란 내 모습을 보고도 나를 받아들여 주었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깨는 몇 배로 더 무거워졌지만 그런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가정 생활은 행복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신혼 초에 사람들이 물었다. "결혼하니까 행복해?" 우리는 이 질문에 얼른 "응"이라고 대답했다. 머뭇거리면 오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이 질문은 곤란했다. 행복이 결혼의 목적은 아니었다.
행복이 결혼의 목적이 되어버리면 목적으로 가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오히려 다른 기준을 세우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미우라 아야꼬 말대로, 가정은 사랑을 배워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결혼이라든지 진실한 사랑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보다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정을 곁에서 지켜보거나, 이와 같은 책을 통해 실례를 만나는 게 낫다. 겉으로 보기에만 좋아보이는 것은 소용이 없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지켜보면 그들에게는 분명 '오래참음'이 있다.
나도 다시 한 번 이 책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보았다. 내 욕심에 이끌리는 생활을 하면 안된다. 우리가 서로 결혼하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사랑을 흘려보내는 가정이 되게 하자고 했었다. 우리 집에는 사람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도 했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마련한 전세집이라 비록 작고 볼품은 없어도 나름대로 꾸며놓고는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수중에 조금만 돈이 없어도 마음이 옹졸해지고, 처음엔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이 집안이 조용해졌다. 임신한 탓에 쉬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런 핑계를 대자니 어쩐지 마음이 개운하지가 않다. 베풀기 보다는 정말 많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물질이란 것은 필요하면 주실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욕심부리지 말고 베풀며 살자' 마음을 다시 고쳐잡는다. 질그릇으로 지어진 내가 부러 황금잔이 되겠다고 몸부림치지 말자고. 또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이 '이익'이나 '돈'을 먼저 배우지 않도록.
|
|
서울에서 시골로 자주 내려가는 나에게 기차여행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기차안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하였다. 쉽게 읽혀지는 내용과 잔잔한 감동으로 여행하는 동안 좋은 벗이 되어주었다. 미우라 아야꼬의 결혼생활은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된 나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남편 미쓰요와 아야꼬는 몸이 약하였으나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주었다. 특히 남편 미쓰요가 몸이 아파 요양중인 아야꼬를 5년이나 기다려주어 결혼을 한 것과 둘다 몸이 아파 집에서 쉬면서도, 단가를 지어 서로 나누며 사는 모습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 미쓰요가 미우라 아야꼬를 영적으로 도와주고 인도하는 모습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소설 빙점 역시 남편 미쓰요의 믿음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으로 남게된 것 같다.
가정의 가장을 그리스도로 두고 가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미우라의 가정을 통해 '나도 이런 가정을 이루고싶다...'란 비전을 갖게된다. [인상깊은구절] "아야꼬, 하나님은 우리가 훌륭해서 써 주시는 것이 아니야. 성서에도 있듯이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에 지나지 않아. 이 질그릇도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실 때는 반드시 써 주시지. 자기 자신이 하나의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해야 돼." |
| 미우라 아야꼬의 결혼편이다. 결혼 후의 생활을 아주 담담하게 전어 내려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 『빙점(氷點)』을 쓰게된 삶의 배경이 아주 자세히 나와 있고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다시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우직스럽고 바보스러울 정도의 남편 미우라의 삶 속에서 보여지는 영적인 가장의 모습은 나의 가장의 모델을 상당히 제시하고 있다. 분명히 난 미우라 아야꼬의 남편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내가 본을 받아야 하는 면이 많이 있다. 나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아름다운 결혼"이라는 부분이다. 결혼 생활과 부부관에 대한 저자의 성경관이 분명히 나와 있다. 아직 미혼인 나같은 청년에게 결혼관의 지침서가 어느 정도 돼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이성관과 결혼관은 정말 그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가정의 부모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러하기에 앞으로 내가 가정을 갖고 자녀를 낳았을 때 나와 나의 배우자의 삶이 나의 자녀에게 결혼관과 이성관을 심어준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걱정이 앞서기도 하다. 먼저 나의 영적 바른 치유와 삶의 복음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다. 관연 내가 성경적 가정의 본을 보일 수 있을까. 이 책에 말대로 한 가정의 가장을 "그리스도"로 둔다면야 문제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가장을 "그리스도"로 둘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이 더없이 나에게 필요하리라 생각이 된다. |
|
내용이야 정말 검증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굳이 흠을 잡자면, 번역이다.
1976년도 번역 그대로라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국민학교'라는 표현이 맞으니까 - 번역자의 나름의 번역 기준이 문제이다.
분명히 1960년대 일본의 이야기인데 중간 중간에 '김치'를 언급하고 있는 번역을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일본식의 짠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해보이는데 왜 번역자가 '김치'라고 번역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왜 편집자가 '김치'라는 표현을 허용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편집 별이 2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