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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는 공교롭게도 모두 크리스찬들이다. 내가 공교롭다고 하는 것은 깊은 신앙심을 가진 그들에 비해서 나는 바람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며 연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종교는 숙제와 같다. 믿음을 갈구하고 있으나,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한없이 세속적인 모습의 나, 열심히 다니면 다닐수록 마음속에서 고개를 드는 삶을 향한 수많은 질문들, 대답을 듣지 못한 그 질문들은 아직도 현재진형형이다. 종교인이라는 사실을 떠나 교회에 가장 불만은 이분법적 사고이다. 교회에 복종하면 착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나쁜, 뿌리 깊은 근본주의적 사고는 믿음이 깊은 사람일 수록 강하다. 그러나, 인류사에서 종교는 끊임없는 논쟁을 일으켜왔고, 모든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였다. 물론 종교의 순기능도 있지만, 사실 종교가 개입된 나라치고 잘사는 나라가 없다. 미국에서 기독교를 믿고 기독교속에서 자란 저자 필 주커먼은 어느 날 덴마크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수많은 미국인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없는 사회'는 혼란스럽고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덴마크와 스웨덴을 본 순간, 그들이 하나님이 없이도 더 도덕적이고 민주적이고도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지인이 미국에서 1년간 공부를 하고 왔는데 같이 공부하던 박사분 한 분이 장파열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병원에 가서 진료한 번 못받고 한국 가서 치료한다고 그냥 끙끙 앓다가 죽었다는 말을 하며 미국이 참 무서운 나라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게다가 경찰의 법이 곧 생명의 법이라 경찰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바로 총맞아 비명횡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경찰이 길가다 잡으면 꼭 두손을 번쩍 들라는 충고도 해주었다. 이라크 전쟁당시 전쟁을 해도 좋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부시대통령의 유명한 말도 있듯이 미국에서 무신론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확률은 알타에다 조직원이 대통령에 선출될 확률과 비등하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무슨 종교를 믿든 절대 표현하면 안된다고 한다. 하나님을 언급해도 그 정치가는 정치생명이 끝난거라나......그런 분위기에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종교가 없는 사회는 '선함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며 사회가 파멸할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오히려 종교의 부재가 대단히 안정적인 사회적 건강과 안녕뿐만아니라 감탄사가 나올 만큼 도덕적 질서가 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책을 통해 밝힌다. 서문에 저자는 이 책이 가장 비종교적인 지역에서 살면서 발견하고 경험하고 새로이 배운 것들에 관한 사회학적 분석임을 밝혔는데 유독 무신론자가 많고 비종교인이 많음에도 덴마크인들과 스웬덴인들은 자신의 삶의 만족도가 꽤 높은 데다가 대부분의 삶은 무척이나 예의바르고 도덕적이며, 이타주의적이며 합리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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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문명화되고 정의롭고 안전하고 평등하고 인간적이고 번영하는 사회를 만든 것은, 가장 종교적인 나라가 아니라 가장 세속적인 나라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저자는 덴마크와 스웨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종교나 신앙이 없어도, 부유하고 ,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들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전통에 기인한 이유일 뿐이며, 하나님의 축복때문은 아니라고 하며, 내세를 믿지 않기에 오히려 현재 삶에 더 충실하고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인터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뿌리깊은 루터교가 모태신앙이다. 이들의 삶의 바탕은 어쨋거나,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하나님의 뿌리 깊은 역사가 잠재되어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종교는 유럽의 종교처럼 뿌리 깊기보다는 오히려 유입경로에서 변질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덴마크와 스웨덴을 보고 종교가 없기 때문에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듯 하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하였다고 , 니체가 사탄이라고 말하는 우를 범하는 것처럼, 저자가 신은 없어도 지구촌 한 편에는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사는 사회, 이상적인 사회가 있으니, 신을 굳이 믿을 필요는 없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책의 단면만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끊임없이 "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 즉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다고 하였듯이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무의미가 된다. 그러나 무의미한 현실에서 어떻게 유의미한 진리를 찾을 것이며 무한한 시간속에서 어떻게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시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겠으며,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현실과 삶에서 참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종교를 뛰어넘어, 이론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임을 이미 백년전에 니체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말고 현실에서 찾으라는 뜻의 '신은 죽었다' 라는 실존주의 철학을 남겼다. 신에 의지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모든 철학이 가르쳐주는 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의 제목 《신 없는 사회》역시 얼핏 보면 종교가 없이도 우리 사회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우리의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속에 녹아있음을 말한다. 행복한 삶이란, 내세의 기약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 충실할 때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유토피아는 완성되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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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교들에서는 저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을 주관하는 신들이 있고, 악마들도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로 내세가 있고 신이 있다면 왜 종교들마다 말하는 내세의 모습이 저마다 각기 다를까?
그리고 자기들 신앙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협박하는 종교들도 많다. 그렇다면 종교나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은 모두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 기억으로도 우리나라 인구들 중 약 절반 가까이가 종교가 없는 무교론자인데, 그 사람들이 모두 자살하거나 정신병에 걸려 고통받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으니까.
이 책, <신 없는 사회>는 미국의 사회학자인 필 주커먼이 1년 동안 유럽에서 제일 종교성이 낮지만 복지국가로 국민들의 행복도와 만족도가 높은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살아보고 그 나라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바를 엮어서 낸 책이다.
<신 없는 사회>에서 필 주커먼은 사람은 신이나 종교를 믿지 않아도, 행복하고 평화롭고 도덕적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은 자연의 일부고,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뿐이라는 스칸디나비아 국민들의 소박하고 행복한 윤리관을 말한다.
종교가 있다고 해서 사람이 도덕적이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역대 대통령(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을 비롯해서 수많은 정치 권력자들이 독실하다 못해 아주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지만, 모두 부정부패 추문에 휩쓸려 욕을 먹고, 잘못된 정치로 나라를 망가뜨린 오명을 쓰지 않았던가?
아시아에서 3백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제외하면 우리만큼 기독교 교세가 강한, 종교 열풍이 강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OECD 국가들 중에서 국민들의 행복도가 제일 낮은 나라로 꼽혔다. 그렇다면 종교를 믿어도 삶이 불행한데, 구태여 종교를 믿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참된 행복과 평화는 죽어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사람은 누구나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종교에 속박당하는 노예로서 사는 것은 매우 불행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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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신 그리고 종교. 우리의 사회에서는 서로의 신과 종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의 종교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기에 다른 종교나 무신론자에 대한 관용이 부족하다. 서로의 종교에 대한 토론은 없고, 주장만이 있을 뿐이고 자신의 종교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거대교회의 목사의 교회사유화와 일부 승려들의 파렴치한 행위들, 그래도 믿음은 계속된다. 왜? 인간의 죽음이 있는 한 종교는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인간인 우리들 누가 신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신 없는 종교는 없을 것이다. 그럼 종교 없는 사회는 없을까 종교적인 국가의 미국인 사회학자가 바라본 비종교적인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 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종교들은 현세와 내세의 삶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종교적인 믿음 없이 더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환경이 조성되었을까? 무엇보다 믿음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와 사회적 긴장관계를 보면, 보통 종교의 부재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예로 공산국가인 북한, 알바니아, 구소련 등을 꼽지만, 이들 국가는 독재자가 자유를 억압하여 무신앙을 강요했다. 또한 중국에는 다양한 믿음과 종교가 있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종교의 힘이 약하지만 잘 살고 있다. 종교나 신의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고, 죽음이나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당신은 하느님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미국은 90% 이상, 덴마크는 51%, 스웨덴은 26%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양한 질문을 한 결과 덴마크와 스웨덴은 가장 비종교적인 국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사회건강 지표가 높아 안전하고 견실한 사회로 보여진다. 무엇보다 이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이다. 최근 이슬람모독만평사건에서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런 이상을 이용해서 상대를 고의적으로 도발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믿는다. 이 책은 다양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종교나 신,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쉽게 이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은 합리적 회의주의자들. 우리나라와는 달리 덴마크나 스웨덴 사람들은 부모들에게 종교적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부모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또 이들은 죽음을 자연의 일부나 생물학적 현실로 받아들이고, 지상에서 살아가는 시간도 충분히 길다고도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남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 남한테 하지 말라고 믿기에 강요를 회피한다. 덴마크 문화는 한마디로 아주 윤리적이고 대부분 무신론자들이지만, 루터교의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과거 빈곤할 때는 신앙심이 높았지만, 현재 복지국가인 스칸디나비아는 종교의 위안 욕구가 감소하여서인지 회의적인 종족과 합리적인 회의주의자의 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 또한 점점 획일화 되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느 루터파 목사의 아내의 말에 의하면, 하느님을 믿는다는 신앙이 이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낙인처럼 따라다니고, 종교적인 예술활동도 아주 비판적으로 본다. 이런 사회에서 종교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이방인’으로 여겨져 주위 사람들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또한 종교인들을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새로운 차별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런 점들을 보면 신앙이 곧 인간 조건의 자유스러운 부분, 필수적인 부분, 선천적인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하는 자세. 대부분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중요하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걱정도 적고, 인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깊은 호기심이나 관심이 별로 없다. 하느님을 안 믿으면서 교회에 왜 가느냐? 훌륭한 전통이기에, 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신론자’라는 표현은 너무 강하고 부정적이라며 기피하고 싶다. 죽음은? 모르겠다. 죽음에 대해서는 죽어서 땅에 묻히면 그만, 피할 수 없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면 그게 걱정스러운 일이다.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와는 달리 종교를 믿던 할머니는 벌을 받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심리적인 측면(선천적)이 아니라 사회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 죽음과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사람들에게 종교는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종교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원하고, 사람들은 그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아닐지. 하여간 삶은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삶에는 아무런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행복하게 사는 생이 즐거운 것 아닐까?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보통 종교에 대한 연구에서 범하는 실수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과 걱정이 보편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신과 멀어진다는 것. 종교에 대한 다양한 연구는 있었지만, 신의 부재나 부족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종교에 대한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존재이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결혼은 낭만적이고 초자연적인 것들을 믿지만, 그것들이 하느님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잘 알지 못한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것 같다. 아이를 그냥 좋은 사람으로 키우려고 한다. 내가 종교를 믿지 않아도 내 가치관이 전부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내가 지키는 가치들을 가지고 내 삶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 중 가족은 인생의 큰 의미이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교회를 공동체로 생각하고, 하느님을 믿지 않지만, 교회를 계속 지키고 싶어 한다. 솔직히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는지 부처님을 믿는지 잘 모른다고 말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세상에 ‘뭔가 다른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기고, 믿음이 부서진 극적인 경험 같은 걸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그냥 저절로 조용히 사그라들었다고 느끼고 종교적인 믿음은 어린애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문화. 세속주의자가 사는 법. 세속은 ‘세상의, 세상에 관한’ 등을 뜻하지만, 그 개념이 모호하다. 종교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믿음의 부재에 대한 설명은 관심이 없었다. 지구상에 5억에서 7억 5천의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비신자가 있는데도, 대부분 세속주의적인 삶과 세속주의적 사람은 다루지 않는다. 세속주의적인 사람들의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꺼림과 삼감, 무엇보다 종교는 화제가 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로 덴마크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가장 당혹스러운 단어 중 하나이다. 믿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친족끼리도 종교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종교는 화제가 되지 않음, 종교라는 주제가 기본적 관심 없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노골적인 세속성을 보여준다. 일부는 온화한 무관심, 하느님을 믿지 않지만, 종교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종교는 커다란 위안을 줄 수 있고 종교도 합리적인 방식이라면 지지할 수 있다. 철저한 무관심, 하느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겠다 등으로 볼 수 있다. 세속주의자로 사는 이유. 서유럽에서는 무엇보다 종교의 힘이 감소했다. 그 이유는? 게으른 독점이 아닐까. 지배적인 종교와 국가가 종교를 지원하면 종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증가한다. 하지만 이런 독점은 점차 홍보 감소, 종교에 대한 흥미도 감소하게 된다. 보통 다양한 종교가 있고 규제는 없고, 종교간 경쟁하면 관심은 증가한다. 아마 북유럽에서는 루터파 교회의 독점으로 인해 흥미와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 안전한 사회, 특정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전에 확신이 없으면 종교에 더 가까워지는 경향을 보인다. 보통 가난, 질병, 무질서 등 불안정적인 삶에서는 종교에 가까워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사회의 안전도가 높으면 종교성은 줄어든다. 또 너무 적게 가진 사람들이(가난한 사람들) 소수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여겨진다. 일하는 여자들, 여성들이 자신의 삶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임금노동에 참여가 많아짐(덴마크 여성들은 세계노동시장에서 고용비율 높음, 여성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직장 일에 관심을 더 가짐으로써, 다른 가능성은 문화적 방어욕구의 결여, 국가적,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이 위협을 받을 때마다, 그 집단의 종교성이 강화되나, 이 지역은 외부 세력에 의한 억압과 지배가 적었다. 최근 이민자들의 강한 이슬람 신앙은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교육, 미국에서도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과 대학원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들간의 종교적인 믿음에서 차이가 많았다. 또 사회민주주의자의 영향력, 사회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함에 따라 공립학교 등에서 기독교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사회과학적으로 가르치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주요 공직에 기용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게 한다. 현대 사회가 더 세속화될수록 신자들은 갈수록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문화적 종교. 유대인들도 많은 사람이 성경이야기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지 않는다. 독실한 유태인은 미국 유태인 중 약 6%, 이스라엘 유태인 중 약 14%에 불과하다. 유대인과 스칸디나비아인 비슷하다. 두 집단 모두 오랫동안의 종교적 전통에 소속감을 유지, 자기들 종교의 다양한 관습과 축제에 참여 하지만 자기네 종교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의 비율은 지극히 낮다. 문화적 종교는 인간이 초자연적인 것이나 다른 세상의 것, 영적인 것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구축한 개념, 의식, 경험, 제도를 일컫는다. 왜 종교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믿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종교적인 분위기의 행사에 참여하는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말고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유가 있다. 자기정체성과 집단정체성, 사람들이 참여하는 명목상의 종교활동들 참여하지만, 초자연적인 신앙을 거부한다. 세례는 문화적인 종교의 훌륭한 사례이고, 교회(국민적인 정체성의 상징)와 문화적 종교의 관계를 보면 교호는 공동체의 기념물이고, 성경은 좋은 책으로 고대로부터 내려온 품위 있는 도덕과 가치관의 저장고, 중요한 역사서, 지혜와 통찰력으로 가득 찬 중요한 이야기를 모은 훌륭한 책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데도 자신을 무신론자(부정적, 상대를 심하게 비난하는 말로 들림)로 규정하는 것을 꺼린다. 한마디로 인지적 부조화(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서 불편해지거나 긴장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문화적 종교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종교를 다시 생각하다. 모르텐(덴마크인, 신앙인)이 본 미국, 정말로 종교적인 나라다. 모든 게 교회 중심이고 이해하기 힘들고 충격적이었다. 미국인들은 왜 이토록 종교적인가? 역사 속 강력한 기독교 신앙, 이민문제(이민자들은 새 땅에 도착하면 민족적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 때문에 종교에 의지할 때가 많다.), 미국의 인종적, 종족적, 계급적, 문화적 다양성, 미국에서 종교는 친밀한 공동체 의식을 제공하고,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킨다. 정교분리, 수정헌법 1호, 종교적 마케팅과 고객, 사회의 안전성(미국의 빈곤률이 가장 높다.)과 불안 요인들이 많기에 종교에서 위안을 얻으려 한다. 또한 부가 널리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하기에 불만과 걱정이 많다. 이런 미국의 모습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미국은 자기 종교를 ‘드러낸다’는 점과 기독교 신앙에 적극적이긴 하지만 합리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종교를 믿는 건 상관없지만, 나라를 다스리면서 종교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결정하면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 같다. 여기 교회들은 자유시장 같은 분위기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싶지 않다. 삶의 궁극적인 의미란 그저 개인이 만들어 가는 것에 불과하다. 종교에 대한 사회학 이론(종교가 인간의 본성)에 반기를 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는 북유럽에 대한 지식이 적다. 특히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복지국가라는 정도, 볼보나 아바를 아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문화나 종교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부럽다고 해야 할까?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바라보는 종교는 우리나라 같은 종교의 백화점인 나라에서 받아들이는 종교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종교간의 화합보다는 대립이 더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자신과 같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무신론자와 같이 개종을 시켜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불행하기에 더 종교에 의지하고, 다양한 종교들이 있기에 종교적인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이들 국가처럼 행복한 조건이 종교를 멀리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도 경제의 발전과 함께 점점 종교는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종교나 신에 대한 믿음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상대방을 존중하려는 배려나 태도를 주목할 만 하다. 나의 것을 강요하지 않는 문화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인간의 불행은 위안을 필요로 하고 이런 위안을 종교가 제공해 주기에 더욱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복지국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세계는 점점 발전하여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불행들을 몰아내는 그날을 기다리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에 의해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개인의 신념과 종교를 서로 존중하며 인정하는 마음과 실천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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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소식
나는 종교를 기회의 문제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친구들은 뱃속에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다녔다. 일요일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나갔다. 그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종교를 가진 것이 아니라 환경 속에서 종교를 수용할 기회를 가지고 태어난 쪽에 속했다. 친구들을 보면서 나 역시 부모님이 무신론자가 아니었다면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중고등학교는 불교학교를 대학교는 기독교 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고나서 부터 종교는 내게 학문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교일지라도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선 긍정적인 편이었다. 아무래도 신이란 일단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부재한다고 믿는 쪽보다 손해를 덜 본다는 지극히 계산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듯하다. 물론 가끔 신에 의지해 남몰래 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은 없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있어 종교는 일상으로 체화될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단지 신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학문과 철학, 그리고 문화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와 신, 그리고 죽음, 삶의 의미 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치를 하나 배울 수 있었다. 바로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돌이켜보면 종교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만큼 많이 받아 온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종교가 없다고 당당히 답해왔지만 우리 사회는 어쩐지 확실한 종교가 있는 사람을 더 신뢰 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신론자라는 어감도 불신이나 부정적 인 의미로 전달되는 듯 했다. 특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모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비종교인을 대할 때 교화나 전도의 대상으로 보곤 한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생의 어느 시기에 위기가 닥쳤을 때 종교의 필요성을 운운하며 위로나 의지의 방편으로 대안을 제시하곤 한다. 또 보편적으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말년에 더 행복하게 살아가며 죽음을 맞이할 때 더 편안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죽음이 두려워 질 때, 상실감에서 헤어나고자 할 때 종교는 일반적인 해법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없으면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종교가 없으면 개인은 타락하고 사회가 혼란에 빠지며 국가는 재앙이 닥친다고 주장하는 미국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을 똑바로 지칭한다. 종교는 인생을 충분하게 할 순 있지만 인생을 충분하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종교를 믿지 않아도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그들을 반박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다. 체험, 삶의 현장과도 같은 이 책은 저자만의 소중한 증거물이다. 저자는 그런 나라에서 직접 살아보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이 책이 지루하지 않고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은 저자의 체취와 발자취가 묻어나는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나라 미국은 종교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툭하면 애국심을 앞세우며 태연하게 전쟁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때 단결 전략으로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것이 종교적 메시지이다. 지난 시절 미국은 전쟁에 참여할 때 마다 자신들은 세계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 말해왔다. 그런 자신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신의 계시라며 정당성과 초월성을 부여해온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정작 세계에서 가장 신을 믿지도 않고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는 나라가 가장 평화롭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을 향한 짜릿한 일침. 하느님을 믿는 것과 세계평화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 교회를 다니는 것과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역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 그것은 미국사회의 주류가치를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되는 우리 생활 정서에 간만에 날아든 고마운 소식이었다.
놀라운 만남
많은 영역에서 미국사회를 복제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저자도 언급했듯이 아직 미국만큼 종교적인 나라는 아니다. 종교적 다원성이 지켜지는 나라이고 비종교인, 무신론자를 사회에서 배타하는 분위기는 미약하다. 하지만 상하, 수직적 체계에 익숙한 조직과 학교, 가정에서 원하지 않는 종교를 억지로 수용해야 하는 일은 의외로 빈번하다. 대학 친구의 부모님은 배우자도 당연히 같은 종교인이길 바라셨다. 친구는 처음부터 같은 종교를 가진 남자와 만나야 했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에 있어 아픔이 많았다. 종교가 없었던 또 다른 친구는 결혼 후 시어머니와의 종교적 갈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친구의 남편은 공부중이고 마침 친구가 아이를 가졌을 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동안 생활비를 주지 않으셨다. 나 역시 결혼 후 시어머니를 따라간 어느 지방의 절에서 백배의 절을 올린 적이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초창기엔 영문도 모르고 그렇게 계절마다 절기마다 절에 따라다닌 기억이 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절에 가는 날이 일주일에 한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며느리에게 종교의 권유 차원을 넘어서 강요를 하는 시집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집 사람이니 같은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근대적인 발상이지만 우리네 시집문화라는 것이 생각만큼 현대화되지 않아 종교 갈등은 고부갈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등장하는 덴마크와 스웨덴은 어쩌면 모든 인간, 특히 여성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이상향의 나라가 아닐까 싶다. 여성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혼전성교, 낙태, 동성애 결혼이 합법적으로 허용된 나라이다. 빈곤과 질병, 범죄와 전쟁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이다. 교육수준이 높고 투표율이 가장 높으며 최빈국에 가장 많은 기부를 하는 나라이다. 친구나 애인, 가족, 동료들 사이에서 종교 때문에 인간관계의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는 나라이다. 할아버지와 섹스에 대해선 자유롭게 대화하지만 종교는 개인적인 일로 여기며 서로 물어보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 나라이다. 저자는 일 년 동안 덴마크와 스웨덴에 살면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꺼려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질문을 일삼았다. 그 결과 대부분 종교가 무엇이냐 묻는 것은 그들에게 살면서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남의 종교가 무엇인지 남들은 왜 교회를 가는지 혹은 가지 않는지 전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하느님을 믿는다거나 교회를 다니는 것은 조직이나 사회에서 소외당할 조건으로 기능한다. 미국과 정반대이다. 예수의 부활이나 동정녀의 출산, 내세와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다윈의 진화론을 배웠기에 그것은 허위사실이고 아이들에게 믿으라 가르치는 것은 그릇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도 원하면 목사가 될 수 있고 목사라는 직업에 특별한 권위의식은 서로가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이건 내 추측인데 그래서 종교인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국민들은 아주 옛날부터 교회세를 내왔고 늘 그래왔듯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한다. 별 고민 없이 자기 자식에게 세례를 받게 한다. 믿음을 행하는 종교는 철저한 개인의 선택일 뿐이고 생활 속에서 전통이나 풍습처럼 편하게 받아들인다. 가장 놀라고 신기했던 건 사람들이 종교를 믿지 않아도 오로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낭만적인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장례식도 마찬가지다. 우리 문화에서 결혼식 장소로 교회를 택하는 사람들은 특정 종교인에만 해당하는 관행이 아닌가. 특정 종교에 해당하는 구속력이 없으므로 특정 종교가 행하는 배타성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을 보면서 오랜 세월 제사를 지내온 우리 풍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모여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종교적 행사가 아니라 장례문화로 보아야 하듯 그들의 교회결혼식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종교가 공동체적 연대감을 조성하고 개인의 상실감을 치유하며 사회의 봉사를 유도한다. 그런데 왜 가장 종교적인 나라 미국은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 덴마크와 스웨덴보다 부유하지도 평등하지도 민주주의적이지도 않은 것일까. 종교가 부재하는 세속적인 사회에선 개인의 이기심과 그에 따른 범죄와 타락, 혼란에 빠져들기 쉽다고 하는데 가장 세속적인 덴마크와 스웨덴은 왜 그 반대인 것일까. 덴마크나 스웨덴은 자신들이 비 종교적이라서 나라가 행복하다 말한 적이 없는데 왜 미국은 종교 없는 나라는 불행 할 것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저자는 종교의 부재가 사회의 혼란이 아니라 외려 사회적 건강과 안녕, 도덕과 질서, 행복과 풍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비교적 비종교적이라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부 보수파 종교단체는 조폭과 연대하여 이권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고 최근엔 스님들도 도박과 룸살롱 출입을 일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MB가 다닌 소망교회는 이 정권에서 주요 핵심인력들을 배출하는데 기여해 왔다.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들이 덴마크, 스웨덴 같은 비종교적 국가라는 것이 아이러니한 기록이다. 종교적 가르침을 가장 잘 수행하고 있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들이니 이제 우리는 종교와 도덕을 원인관계로 연결 짓지는 말아도 되지 않을까?
무심한 대답
종교에 대한 질문이 재미가 없듯 이들은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도 시큰둥했다. 나는 그들이 답한 재미없는 답변들을 떠올리며 삶을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이 책을 덮고 비로소 삶을 의미 있다고 여기고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꼭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인터뷰 대상자들 중 거의 충격에 가까웠던 대답은 삶의 의미가 꼭 있어야 하느냐는 무심한 답이었다. 그들에게 삶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며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의미이고 살아가면서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중요하지 그런 질문 자체는 크게 의미 없다는 것이었다.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죽은 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생명은 자연의 모든 것처럼 똑같이 끝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지금의 삶 자체에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지 죽음이나 그 이후를 생각하는 시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죽음이 그다지 두렵지 않으며 그것이 언제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말했다. 그렇다고 그들 누구도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 중에는 외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신자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떤다는 호스피스의 인터뷰는 종교에 대한 반전에 가까웠다. 천국에 가지 못하고 혹시 지옥에 갈까봐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믿지 못한다니 소름이 끼쳤다. 다음 세상이 있다고 믿는 것이 마지막 까지 욕심이 될 수 있다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종교상식과 정반대되는 실례라 이도 충격이 적지 않았다.
통계상으로 보면 전 세계 무신론자는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다음으로 많은 수치라 한다. 믿는 사람만큼 믿지 않는 사람도 많으며 종교는 인간에게 선천적인 것도 필수적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는 새삼 종교의 필요성을 폄하하거나 근본적으로 반론하려 이 책을 쓴 것 같진 않다. 단지 종교가 없어도 신을 믿지 않아도 인간은 타락하지 않고 사회는 안전할 수 있으며 국가 또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의 의미를 종교에서 찾지 않고 죽음에의 두려움을 신에 의존하지 않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 만족하고 주변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곧 삶의 의미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생이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는 아마도 미국사회가 많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덴마크나 스웨덴 같이 종교 없이도 최상의 사회를 유지하는 국가가 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을 덮기 전 나는 공교롭게도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을 읽은 바 있다. 도킨스는 늘 종교를 반대하는데 앞장서온 과학자였다. 그는 진짜 마법이란 허구가 아닌 진실이며 진짜 기적은 종교가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라 강조했다. 신화적 상상력도 의미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과학적 증거들로 가득한 우리 사는 현실이라며 그 현실을 과학이 가진 고유의 마법이라 칭하고 있다. 종교나 신화보다 더 경이로운 세계인 현실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마법인가 하고 말이다. 종교의 절대성을 냉철하게 해체시켜 서구세계에서의 교회가 가지는 물리적, 심리적 폭력을 고발하고자 했던 영국 철학자 러셀은 ‘신념’이란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러셀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을 때 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신이 있다는 증거가 없으니 믿게 된다는 논리가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꿰뚫은 일침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혹시 신이 보이지 않고 증명할 수 없기에 초자연적인 것이라 믿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발견
과학자들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초자연적인 사건’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을 싫어한다. ‘초자연적’이라 치부해버리면 자연적인 설명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되 버리고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주장을 접하고 나면 나는 늘 차동엽 신부같은 종교인의 주장을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종교인들은 당연히 신의 존재와 사후 세계에 대해 과학자와는 반대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진화론은 인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성되었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도 태초에 창조주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화론이 반드시 창조론에 배치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 246, <잊혀진 질문>
차동엽 신부는 신앙에 바탕을 준 종교와 합리성에 바탕을 둔 과학이 서로 보완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언젠가부터 우주 대폭발, 빅뱅이론이 끼어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우주가 먼 과거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존재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차동엽 신부는 창조주의 치밀한 설계 없이 단지 우연히 빅뱅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이처럼 질서정연한 우주가 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까 우주 밖에 있는, 아마도 자연계를 초월하는 어떤 존재가 우주를 존재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 분이 신이라는 설명이다. ‘저절로’ 생겨났다는 우주에 대한 해답을 필연적으로 생기게 했다는 창조주 하느님으로 바꾼 것이다.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은 신을 믿더라도 전지전능한 존재로서의 초월적인 대상이라기 보다는 필요 할 때 내가 일상에서 기도하면서 떠올릴 수 있는 친근한 존재로 여기는 듯 하다. 또 국가의 사회적 유산으로 전수되어온 기독교의 가치관들은 소중히 받아들이면서 내 삶에서 종교를 최우선시 하지는 않는 주체적이고도 이성적인 태도를 발전시켜 온 듯하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이상향이 아닌 현실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이 책은 과학자와 종교인의 상반되는 시각, 그리고 철학자의 논리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바로 종교를 가족적, 전통적 문화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절대가치로서의 신념이 아닌 상대가치로서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나약한 인간이니 만큼 때론 초자연적인 존재에 삶의 한 순간을 기댈 지라도 그 무엇도 내 삶은 초월하지 않는 태도의 가치관이 매우 현실적인 대안으로 여겨진다. 어떤 교리든 이웃을 도우고 가진 것을 나누는 공동체적 가치는 얼마든지 실천하고 현재의 내 삶에선 이성과 합리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것. 평생가도 겪어 보지 못할 기적에 기대고 현실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환상에 의지하지 않고 과학이 해석하는 실재의 현실을 더 믿고 그 안에서 진실을 찾는 삶. 그러한 삶이라면 비록 신이 없더라도 얼마나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인가. 내 삶은 초월적인 신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내가 사는 현실 속에서 발견하는 진실로만 이루어진다. 내가 사는 곳 너머, 내 인생 너머의 초자연적인 현상과 존재는 지금의 나를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서 나를 나답게 말해주지도 않는다. 지금 여기, 이곳에서 가장 진짜인 내 삶이 존재한다. 행복은 저 언덕 너머 파랑새가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닌 바로 여기 두근두근 가슴 뛰는 내 삶 속에 살고 있다. 신(神)없는 나라가 신(興)나는 나라가 아닐까. 신을 버리니 새삼 내 삶이 더 커 보인다. 당연히 그 삶의 주인공도 근사해 보인다. 내 안에 삶이라는 새로운(新) 신(神)이 있다. 이제 나는 가장 오래 그리고 분명하게 믿을 수 있는 내 삶만을 믿어(信)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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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친구들은 모두 교회를 다녔다. 그들은 나를 교회로 이끌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취했다. 약속 장소를 교회 주변에 잡아놓고 교회 일이 안 끝났다며 교회로 오라는 적도 있었고, 교회에 물건을 두고 왔다며 잠깐만 들리자는 적도 있었다. 교회에 들어가선 목사와 교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왜 하느님을 믿지 않느냐며 교회에 나오라는 말을 듣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들의 종교가 개신교(혹은 천주교)라면 종교를 갖지 않는 것도 나의 종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한 마음을 가진 그들이 좋았다. 종교의 유무가 친구의 조건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종교를 인정했으나 그들은 나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을 보는 시선은 같았지만, 종교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었다. 지금 내 주변에 신자들은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다.
『신 없는 사회』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종교적인 국가 미국에서 태어난 필 주커먼이 비종교적인 국가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덴마크와 스웨덴 사회를 관찰하고 연구한 후 사회의 발전은 종교적인 믿음과 무관함을 밝힌 책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서구 세계에서 진화론을 믿는 인구 비율이 가장 높았음에도 스스로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견진성사를 하고 교회세를 내지만 그것은 종교적인 믿음이 아닌 전통과 관습, 그리고 낭만이었다. 현실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종교를 믿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우리 집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가 많이 보인다. 세다가 포기할 정도다. 2005년 인구 센서스 집계에 의하면 불교 22.8%, 개신교 18.32%, 천주교 10.94%라고 한다. 무교의 비율은 46.48%라고 한다. 1994년엔 통계적으로 본다면 무교의 비율은 49.9%였다. 통계로 보면 대한민국은 신 있는 사회 쪽에 더 가깝다. 책엔 2007년에 발표된 세계평화지수가 실려 있는데 덴마크 3위, 스웨덴 7위, 미국 96위였다. 한국은 나와 있지 않아 따로 찾아봤더니 32위였다. 2011년 세계평화지수는 덴마크 1위, 스웨덴 3위, 한국 68위, 미국 73위다. 신을 믿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평화 지수 순위는 뒤로 밀린 이유는 뭘까? 신 있는 사회가 불행한 사회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신 있는 사회가 반드시 행복한 사회를 가져다주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필 주커먼는 ‘종교의 부재가 사회에 방해되지 않는 것 같다(58쪽)’고 말했다. 신이 없는 나라들이 모두 행복지수가 높은 건 아니라는 반대 의견에 대해 저자는 그 나라들에 종교가 없는 것은 무신앙의 강요, 독재의 결과였지 자유 의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신 있는 사회가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신이 없는 사회가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신의 뜻을 잘못 받아들인 인간들의 문제는 아닐까. 필 주커먼은 덴마크, 스웨덴의 종교를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N.J. 디머래스가 정의한 문화적 종교로 보았다. ‘문화적 종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적 전통에 일체감을 지닌 사람들이 종교 안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진심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확연히 종교적인 현상에 참여하는 현상(261쪽)’을 말한다. 나 역시 점잖은 불가지론자이다.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여러 종교가 공통으로 설파하는 인류애의 실천에는 깊이 공감한다. 그릇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내게 가져다줄 이익 때문에 고민이 될 때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기도 하며, 절망의 순간에 눈을 감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신 없는 사회』를 통해 행복한 사회는 신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부처님은 세상 만물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고 하셨다. 정확한 원인을 말할 순 없지만 내 주변에 그들이 있는 것은, 내가 그들과 인연이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진호는 『시민K, 교회를 나가다』의 후기에서 ‘지금’과 ‘여기’에 대한 해석은 설교의 출발점이고 또 종착점이다(265쪽), 라고 했다. 신을 믿든, 진화론을 믿든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재를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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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이 가진 이성의 잠재력을 믿고, 그 잠재력이 궁극적으론 선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믿는, 말하자면 이상주의자다. 동시에 어떤 종교도 믿지 않을뿐더러, 어떤 막연한 초월적 존재의 존재도 믿지 않는, 단호한 무신론자이기도 하다. 이성을 쫓는 입장에서 보자면 신이라는 건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종교를 혐오한다거나, 신을 믿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폄훼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성에 대한 믿음이 나의 신념이듯, 신에 대한 믿음도 각자의 신념일 뿐이다. 나는 종교를 가진다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에 대한 내 생각을 짧게 설명하자면, ‘필 주커먼’의 책, 『신 없는 사회』 전반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종교는 꽤 훌륭한 도덕관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내가 혐오하는 건 신을 믿는 사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종교를 강요하는 종교적 보수주의자들, 그러니까 근본주의자들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 대단히 세속적인 사람으로서, 이러한 나의 사고방식이 궁극적으로 인류 사회를 파멸로 몰아갈 거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은 피곤하다 못해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그러니까 『신 없는 사회』라는 제목의 책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 올 수 밖에 없었다.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드는 현실 속 유토피아’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문구인가! 나는 합리주의자요, 개인주의자인데다 이상주의자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이 책은 여전히 종교라는 원인으로 전쟁과 테러,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거리와 라디오, TV에서 종교적 구원과 징벌에 대한 이야기가 끝도 한도 없이 쏟아지는, 평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어쩐지 대단히 종교적인 이 시대에, 이상하리만치 종교에 영 관심이 없어 보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두 나라,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종교에 대한 그들의 자세, 그리고 삶과 죽음, 신이라는 형이상학적이고 막연한 수수께끼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팻 로버트슨이나 제리 폴웰 같은, 유명 목사들이 소리 높여 말하는 것처럼, 동성애와 낙태가 인정되고, 교회를 나가지 않을뿐더러, 신을 믿지 않는, 대단히 세속화된 사회가 분노한 신의 징벌 앞에 파멸을 맞이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1970년대에 이미 합법적인 낙태를 허용했을 뿐 아니라 낙태의 권리에 대해 대단히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뿐 아니라, 동성애에 대해서도 매우 개방적이고 수용적이다. 덴마크는 동성애자의 결혼을 최초로 허락한 나라이며, 스웨덴은 동성애 부부의 인공수정 비용까지 지원해준다. 만약 팻 로버트슨이나 제리 폴웰로 대표되는 소위 복음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종교적 죄악’이 필연적으로 사회질서의 파괴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면, 덴마크와 스웨덴이야 말로 모범적인 반례가 아닐 수 없다. 제리 폴웰이 9.11 사태가 발생했을 때, TV프로그램에서 “하느님은 조롱을 참지 않으신다.”고, “이교도들, 낙태 찬성론자들, 여성주의자들, 그리고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이 일이 일어나는 데 일조했다.”고 단언했지만, 글쎄. 조롱을 참지 않으시는 하느님은 덴마크와 스웨덴에 대단히 무관심하신 걸 보아하니 별로 그게 죄악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멋진 점은 이 책 속의 사례들이 단순히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 속의 사례들은 동시에 종교가 우리의 본능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는 주장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아 끝없이 방황한다는 주장들, 그리고 우리가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산다는 주장들에 대한 반례들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건 나에게도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철학을 전공하면서,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우리의 삶의 의미에 대해, 죽음의 의미에 대해, 사후 세계에 대해, 신에 대해 정말로 수도 없이 생각해왔다. 종교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온갖 삶의 양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그런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며, 솔직히 말해 그런 질문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이 사례들은? 덴마크와 스웨덴의, 이 세속적인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얼마나 초연한지, 솔직히 말해서 망치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것이 그렇게 혁신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연하다고 웃어넘기기엔, 너무 쉽게 간과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더욱 의미심장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신앙을, 종교를, 종교인을 비난할 마음은 개미 눈곱만큼도 없다. 종교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며, 개인의 문제로 남아있는 한 그것은 합리주의와 무신론에 대한 나의 사상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가 개인의 신념을 넘어, 모든 사람들을 복종시키려 한다면 나는 결코 그걸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저 신앙 없는 자들의 나라, 덴마크의 전 총리가 말한 것처럼,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이고, 반드시 개인적인 문제여야 한다. (중략) 개인적인 신념보다 종교적인 법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천 년 전의 계명과 경전에 개인적인 신념이 복종해야 하고, 사회 전체가 종교적 명령에 따라야 한다." 나는 결코 그러고 싶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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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읽으며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예를 들어 기독 광신도가 내가 보고 있는 책 제목을 보고 혹시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불신지옥 예수천국! 을 외치는 그 아저씨들 말이다. 하지만 다행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신 없는 사회>는 신성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사회학과 교수인 '필 주커먼'이, 왜 어떤 나라에서는 신이 없는 세상 즉 세속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지를 사회학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평소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내가 관심 있었던 소재이기도 하고, 인터뷰가 많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일단 내가 신을 믿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바닷속에 가라앉을 때 왜 신은 가만히 있었을까? 왜 악한 사람들이 항상 착한 사람들을 등쳐먹고 떵떵거리며 사는 걸까? 왜 삶은 항상 고되고 아픈 것일까? 그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면 신은 너무 가혹하고 변태적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별개로 세계는 종교적 열정(그것이 정말 열정인지 광기인지는 모르겠다)으로 점점 더 들끓고 있다. 신성한 의식, 영적인 의식 그리고 죄악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단다. 그래, 뭐 어떤 이유에서이건 간에 종교가 번성한다 치고, 그런데 왜 세상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걸까? 지금쯤이라면 천국에 한 계단 정도는 가까와지고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저자인 필 주커먼도 비슷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차량 뒤에 성경을 찬양하는 범퍼 스티커를 붙이고, 주님에 대한 예배와 기도를 권하는 광고판이 어디에나 눈에 띄고, 지도자들마저도 자신의 신앙을 공공연하게 고백하는 신성한 미국이라는 나라는(조지. W. 부시는 2004년 하느님께 조언을 구한 끝에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왜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세속적인 나라들보다 행복하지 않는 걸까?
하느님을 믿지 않는 나라에서는 사탄으로 인해 범죄율도 높아야 하지 않나? 하지만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국가의 범죄율이 미국 보다 훨씬 낮다는 것은 동네 개들도 아는 사실 아닌가. 믿음이 없어도 사람들은 건실한 법을 만들어 지킬 수 있고, 도덕과 윤리로 이루어진 합리적인 제도를 잘 따르고 있었다. 성경을 공부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예의 바르게 대하고, 학교와 병원도 문제없이 잘 돌아갔다. 그것이 바로 신이 없는 사회인 덴마크나 스웨덴의 현주소이다.
필 주커먼은 2005년 5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 덴마크에 체류하면서 신을 믿지 않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분명 교회를 다니지만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신을 믿냐"는 질문 자체에 당황하고 불편해 한다는 것.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물어보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혹시 북유럽 국가가 엄청난 복지국가여서 사람들이 너무 행복하고 편해서 그런걸 아닐까? 그렇다면 나중에 늙어서 죽음을 앞둔 때에는 종교에서 위안을 얻으며 심리적 안정을 구하려 다시 종교에 회귀하지는 않을까?
"의미야 사방에 있죠. 저 위에 하느님이 있어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우리를 꼭두각시처럼 가지고 논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이지 끔찍하기 짝이 없어요. 나는 사람들한테 정말로 의미가 필요한 것 같지 않아요. 자신의 의미는 자기가 만들어내는 거죠. 그걸 할 수 없다면 먼저 자기 인생을 정비해야 할 거예요."
-티나(스톨홀름 출신의 서른아홉 살 여성)
필 주커먼이 인터뷰를 한 호스피스 여성에 의하면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죽음의 순간에 (천국에 가지 못할 것 같다는)걱정과 불안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나도 전적으로 티나의 말에 동감한다. 인생은 인생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도덕을 지키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또 사랑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한바탕 인생을 잘 마무리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이제 나의 영원한 불명증의 화두였던 '죽음 이후의 아무 것도 없음'에 대한 걱정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신의 존재가 오히려 죽음 이후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죽음 이후는 없다. 그냥, 지금 잘 사는 것. 그것이 '신 없는 사회'가 주는 선물인 듯 하다.
한편, 덴마크 같은 세속주의 국가에서의 종교는 '문화적 종교'로 분류할 수 있다. 세례도 받고 교회도 가지만 그건 그냥 문화적 행사, 전통에 의한 행위일 뿐 신의 존재를 믿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 받듯이 일상에 안착한 작은 문화행사인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기독교이다. 이미 기득권 세력에 너무 깊게 동질화 된채 비정상적으로 커져버린 한국의 기독교는 '문화적 종교'의 상태를 넘어 '문제적 종교'로 변질되었고, 이제는 그 본질마저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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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섹시했다. '신 없는 사회'! 책 제목 하나만으로도 읽고 싶게 만드는 이 놀라운 작명센스! 이 책은 '종교가 없으면 사회는 큰 혼란이 생길 것'라는 주장에 대해 스웨덴과 덴마크 사회의 사례를 들어 반박하고 있는 책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종교 없이도 사회는 얼마든지 잘 굴러갈 수 있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덴마크와 스웨덴이 문자그대로 '신 없는 사회'는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상황으로 놓고 보았을 때, 비교적 매우 비종교적인 사회인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미국인들처럼 자신들의 신앙을 드러 내는 것을 꺼려하고, 일상 대화에서도 '종교'라는 주제가 화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이에 대해 저자는 여러요인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사회학 이론에 근거해서 대표적인 세 가지 요인을 들고 있다.
1. 국교인 루터교가 게을러서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종교에 기대지 않아도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3. 가정의 종교심을 지탱하는 여성들의 임금노동율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종교심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발생한 결론적인 현상을 저자는 '문화적 종교'라고 지칭한다. 즉, 종교행사에 참여하고는 있으나 종교의 교리나 경전에 대한 신앙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저자는 이 책을 다분히 미국의 종교상황을 의식하며 썼음이 매우 분명하다. 미국과 같이 종교가 사회 의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사회에 대한 대안적 청사진을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저자는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명시적으로 북유럽 국가의 종교정책이 좋으니 이를 따르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미국이 처해 있는 종교상황을 북유럽 국가들의 종교상황과 비교하여 봄으로서 은근한 자아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종교 상황 역시 미국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보았을 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종교가 사회에 공헌하는 바는 그 교리가 드러날 때가 아니라 그 정신이 드러날 때라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는 사람들 보다 예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범이 이 사회에는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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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화적 종교인 기독교 모태신앙인인 내 정체성 윤곽이 잡혔다. 30대 중반에 읽게 되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나니 과거 기독교적 가치관을 존중하며 따르고 싶어하는 반면 초자연주의적인 이야기는 믿기 힘들었던 내 모습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나를 문화적 종교인이라고 한다면 그 동안의 내가 믿지 못해 괴로워 하던 대부분의 문제-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있고 사실 예수가 하느님이다 라던지,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줘서 악을 선택하게 하는지 등-가 해결된다. #기독교 가치관 vs 초 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종교의 부재가 반드시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과 '실은 대단히 인상적인 사회의 건강과 안녕, 감탄할 만한 도덕적 질서와 연관성’을 밝히고자 했다. 특히 두번 째 내용은 기독교가 내세우는 가치관이며 여기에 초자연적인 내용이 추가되며 신격화 된다. 그리고 대부분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 가치관과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분리 되어 초자연적 존재에 자신의 믿음을 치중하는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적 가치관이 축소 되고,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강한 기독교인들의 행태는 사회보다는 개인적인 이익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지금보다 더 잘살게 해달라거나, 내 자식 수능 잘보게 해달라고 수천명의 학부모들이 등에 자식 이름표를 걸고 기도 한다거나, 그 사람이랑 잘 되게 해 달라거나, 가해자가 죄 사함을 피해자가 아닌 하느님께만 받는다거나. 저자 폴 주커먼이 인터뷰와 관찰로 밝혀낸 스칸디나비아인들은 그 반대다. 초 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보다 '기독교 가치관'에 더 충실하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 '문화적 종교인'이라는 형태로 남아 더욱 더 도덕적이고 인상적인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게 특징이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초 자연적인 보상자”로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이에 특정 종교인은 '인간의 기본적인 종교적 욕구'가 있다고 주장 하기도 한다. 죽음을 두려워 하기에 종교를 찾고 그에 따른 삶의 의미를 모색해 나가는 거라고.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죽음과 삶의 의미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다. 그들은 죽음 이후를 궁금해 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고 심지어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행위’의 비율도 매우 낮다. 그러니까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기본 전제부터 부정하고 삶의 의미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가치관에 따라 문화적 종교인과 일반적 종교인(하나님도 믿는)으로 나뉜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낮은데 이는 그들이 세속화 된 이유 중 하나인 ‘안전한 사회’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 된다. # 그들이 세속화 된 이유
# 불가피하게 생각해 본 '남한의 개신교'. 저자는 비종교적 국가에 한국을 넣었다. 북한을 뜻할지도 모르겠다. 남한의 개신교는 기독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한의 일부(하지만 대형교회) 개신교 목사들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발전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부재한 북한 사회를 단순 비교하며 감정적 호소 소재로 활용한다. 현재는 한국적 개신교라는 특수 모델로, 자본주의 자영업 프로세스와 비슷하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전제로 하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비중이 더 크며(이는 교육수준이 낮고, 도시보다는 시골로 갈 수록 심화됨) 이를 개인의 행복/개인적이익 과 접목해 변질된 부분이 많다. 극단적이지만 대표적인 예는 영화‘밀양’ 주제로 대두된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천국간다’가 있다. 타 종교와 비신자에 대한 타협이 불가해 인상적인 사회의 건강과 안녕, 감탄할 만한 도덕적 질서와의 연관성이 낮다. 물론 모든 개신교 교회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가 경험했거나 소문으로 듣거나 한 곳들이다. 그래서 나는 2013년 천주교로 개종했다. 여기도 깨끗하다고 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 가치관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