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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톨스토이에 대해 잘 모른다. 이 책을 접하기전 톨스토이의 사색노트를 접한것 뿐 그에 대한 것은 거의 모른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처음에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참회록..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어떤 행위에 대한 뉘우침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톨스토이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그런 러시아의 대문호가 무엇을 뉘우칠것인가. 물론 책을 읽어나가면서 톨스토이가 그렇게 평탄한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게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가 참회록이라....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톨스토이가 왜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인지 알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참회록이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한 고찰이었던 것이다. 나는 왜 사는가, 나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영원불멸의 가치로 귀결되는 이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고서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그에 만족하며 살아가든지 아니면 그런 생각을 안하고 살던지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지만 톨스토이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삶에 있어서 중대한 하나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삶에 있어서 명성이 높았던 50세때 그의 사상의 혼란을 야기하는 대전환점이 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평가하는 이유는 이 책에 내용에 있어 톨스토이의 진솔함 때문이다. 어떤 위대한 사상을 포장하는 그런 말보다도 이 책에는 나약하거나 너무 솔직한 것이 아니냐할 정도로 톨스토이는 솔직하고 그런면에 있어서 인간적으로 톨스토이에게 믿음이 간다. 솔직히 나는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관심도 많지는 않지만 또 어떤 책을 평가해보는 것이 이것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럴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톨스토이의 이러한 경험이 나와 매우 흡사해서 내가 이 책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외면적인 내용보다 내면적인 그의 고찰과 고뇌는 나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여 나 자신도 깜짝 놀랄때가 있다.
여하튼 좋은 책이다. 자신의 삶을 생각할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내가 목숨을 끊지 않은 것은 내 고찰이 옳지 않다는 어렴풋한 자각이 그 원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생존이 무의미하다는 자각으로 인도해 간 여러 성현의 사상과 내 사상의 도정은 참으로 의심할 여지 없는 확실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러면서도 나의 내부에는 여전의 내 판단의 진실성에 대한 어렴풋한 회의가 남아있었다. |
| 나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로 이 생에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버거웠다. 굴곡 없는 시간들을 살아왔다 믿었지만 작은 선택 앞에서도 주춤거리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말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전혀 모르겠노라고. 만족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 마다 각기 그 기준이 다르지만, 난 어쩌면 세상에 너무도 날 끼워 맞추려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세속적인 무언가에 거칠게도 물어버린 나머지 조금만 뒤로 물러설 듯 싶으면 그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명문대를 나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권력에 대해 설교하셨었다. 내가 조금만 더 어른이었다면 그 말씀 하나하나에 주의 깊게 귀 기울여 지금쯤 어딘가에서 떵떵 거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성공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거부하고 싶었던 것은 성공의 한 쪽 끝에 연결되어 있는 타락이라는 끈을 알기 때문이었다. 난 기독교인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교회를 다녔다. 나의 신앙이 신실한지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난 흔들릴 때마다 신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하지만 난 내가 믿는 신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세상이 싫다. 평소에는 온갖 악을 온몸에 묻히는 삶을 살다가도 오로지 형식 속에서 자신은 깨끗함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식 그 자체였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짓밟고 그것이 선과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신앙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성공을 꿈꾸는 그 행위가 타인에게는 일종의 상처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이었다. 그것도 아주 뜨거운. 모든 잘못이 한 줄기의 눈물로 지워지진 않음을 잘 알지만, 탁한 영혼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는 뜨거운 자극이 필요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말로만 쫑알대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보듬어 안고 가슴에 품는,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하지만 정신은 황폐해져 있는 이들,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전혀 질문치 않는 모습. 어쩌면 난 그런 삶을 동경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멋지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체 그저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서고픈 마음에서 끊임없이 자학했고, 그 와중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은 실로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용기 없어 죽지 못하는 삶이었다. 버티다 보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떠한 의미도 존재치 않는 삶이었다. 난 그런 삶에 대해 반성해야만 한다. 맹목적인 신에 대한 섬김과 내게 주어진 교육의 기회를 통해 남을 외면했던 순간들로 인해 나 역시도 황폐해졌음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한다. 부유하진 않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민중들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봤던 톨스토이가 그러했듯이,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민중, 그 단어가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해서 난 고민해야만 한다. 스물 넷. 내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음에 괴로워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항상 난 타인과의, 그것도 아주 뛰어난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성장해왔기에 만족을 알지 못했다. 내게 존재하는 것들을 읽지 못했기에 나는 항상 번뜩이는 욕심으로 괴로워해야만 했다. 아마도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유한함 속에서 거대함을 꿈꾸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속에서 놓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음을.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결코 성공은 아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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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책을 처음 접한 건 "부활"이었다. 딱딱한 필독도서라고만 생각해와서 그 동안 읽지 않았는데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잠시도 눈을 땔 수 없었다. 그 후로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그의 자전적 소설인 "악마"는 작가로서의 톨스토이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톨스토이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자신에게 그렇게 솔직할 수 있으며, 솔직함에 그치지 않고 반성하며 자각할 수 있는지. 많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참회록"은 더 그러하다. 톨스토이의 성장과정부터 낱낱이 공개하며 그의 사고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도 보여주고 그 어느 책보다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들어내고 참된 것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 나는 솔직히 작가 톨스토이보다 인간 톨스토이를 더 존경하고 사랑한다. 위대한 사람 뒤에 감추어진 나약한 인간의 모습, 부족한 인간의 모습은 실망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뒤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참회록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인상깊은구절] 그런 무익한 일을 하면서도 우리가 매우 중요한 인간이라는 자긍심을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또 그러한 활동을 정당화할 논거가 필요해졌다. 그리하여 우리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다'는 이론이 안출되었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보한다. 그 진보는 문화에 의한다. 문화의 정도는 책과 신문, 잡지의 보급으로 측정된다. 우리는 책을 쓰고 신문, 잡지에 집필하는 데 대해서 금전으로 보수를 받으며 또 존경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유익하고 우량한 인간이다. 이 이론은 우리 모두가 같은 의견이었다면 매우 훌륭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 의견을 밝히면, 언제나 이에 대한 정반대의 의견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발표되게 마련이므로 당연히 이것도 우리를 움찔하게 만들었어야했다. 우리는 금전으로 보수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패거리들 한테서 칭찬받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광태는 정신병자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 없다는 것을 지금 나는 똑똑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그저 막연한 의심을 품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미치광이가 그렇듯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을 미치광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
| 톨스토이는 대문호로 알려 있으나 그에 버금가는 사상가요, 철학가이다. 그는 신학을 연구하는 틈틈히 예술가로서의 자기 위치를 정립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형은 조소를 했다고 한다. 그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막연한 자괴감에 바지기 시작하면서 다시는 기도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도의 내면없이 형식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허례허식을 발견한 때문이다. 그는 종교를 부인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 안에서 우리 모두를 유토피아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신앙을 모색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사회의 흐름을 간과한 채 탁상공론만을 일삼는 문인들과의 삶을 비탄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진정한 나아갈 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사유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진정한 깨달음을 준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