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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생에 몇 번의 연애가 허락된다 해도 나는 단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방금 전 그 길이 첫 번째 길이었다고 해도 그 다음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런 확고한 생각이 조금 황당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길 위에서 어떤 구간이 가장 옳은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사랑도 원래 영감처럼 아슴아슴 떠다녀 붙잡기 힘든 것이다. 영감이 찾아오지 않으면 머릿속은 죽은 바다나 다름없다. 그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쳐야만 외로운 세상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p.99
남자가 혼자 운영하는 카페에 첫 손님으로 뤄이밍이 온다. 어떤 응대도 주문의 절차도 생략된 작은 카페의 침묵 속에서 뤄이밍은 커피를 마시고, 30분도 안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뤄이밍은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앓아 누웠고, 곧 옥상으로 올라가 자살을 시도한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등장했고 그 상황은 조용히 마무리되지만, 이후 동네 전체가 남자에게 한 목소리로 조용한 분노를 게워 낸다. 평소 살갑게 맞이했던 가게 주인의 태도가 냉랭해지고, 노점상들은 지나가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그가 지나가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남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현장을 빠져 나와야 했다. 뤄이밍은 대형 은행의 고위 임원으로 남몰래 선행을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남자와 그의 아내 추쯔는 5년 전 뤄이밍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뤄이밍이 취미로 사진을 가르쳤는데, 추쯔가 그에게 사진을 배웠던 것이다. 남자의 아내 추쯔는 그의 곁을 떠났고, 남자는 바닷가 마을의 황량한 변두리에 와서 홀로 카페를 열었다. 뤄이밍의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경찰이 남자를 찾아와 묻는다. 뤄 선생에게 무슨 원한이 있느냐, 복수를 하러 온 거냐, 뤄 선생은 털끝 하나 건들지 마라 등등... 이 장면으로 미루어 추쯔가 사라진 것이 뤄이밍과 무슨 연관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남자의 태도는 어딘지 석연치가 않았다.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그녀를 원망하는 것 같지는 않고, 뤄이밍을 찾아가 따지고 분노를 퍼부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오히려 찾아온 그에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의 카페에 낯선 여자가 찾아온다. 아버지의 병세가 걱정스러워 직장에 휴가를 내고 고향에 내려온 뤄바이슈, 그녀는 뤄이밍의 딸이었다. ![]()
매일 벚나무에 소금물을 부을 때 뤄이밍의 머릿속은 또렷했을 것이다. 벚꽃이 그를 병들게 한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시드는 벚꽃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뤄이밍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욕망의 부추김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신을 심연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을. p.291
아내를 잃은 한 남자, 남편을 떠난 뒤 실종된 여자, 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 그리고 그의 딸, 이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매우 독특하게 전개된다. 뤄이밍의 딸은 자신의 아버지가 남자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등장한다. 아빠가 왜 자학증에 걸려 자신을 못살게 구는 것인지, 아빠가 무슨 죄라도 지었다면 속 시원히 말해달라고, 침묵은 아빠에 대한 복수처럼 보이니 침묵하지 말라고. 정말 이상한 것은 남자의 태도이다. 다니던 건축 회사를 그만두고 인적도 드문 해변에 작은 카페를 열고 아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지만, 그 이상의 적극적인 행동은 없다. 아내를 빼앗아간 이에 대한 복수의 마음이나 자신을 버린 아내에 대한 분노의 마음도 없어 보인다. 그렇게 이야기는 남자와 뤄바이슈의 대화를 통해 전개되고, 아내인 추쯔와 뤄이밍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만 등장한다.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인물의 주변을 묘사해 그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왕딩궈의 방식은 매우 낯설지만 이상하게 슬프다. 게다가 나는 이토록 지독한 사랑의 방식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렇게 치열하지 않은 형태로, 담백하게 쓰여진 사랑 이야기로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가 바로 왕딩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추천 때문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판밍이라는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해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아마도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처연한 슬픔과 행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특별한 생의 의미들 때문일 것이다. 왕딩궈는 이 작품의 프롤로그에서 '내가 쓰려고 한 것은 슬픔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극중 아내를 잃은 남자는 '비극이 희열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뤄바이슈에게 말한다. 추쯔와 뤄이밍에 대한 이야기가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한 남자의 모든 걸 바꿔놓은 엄청난 변화가 시작된 사건의 발단이 그렇게나 작은 일이었다는 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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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은 현재, 과거, 회상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 된다. 이 소설의 상징은 벚꽃의 만개와 사라짐 사이에서 해석된다. 인물의 감정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을 통해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독자에게 상상을 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이다.
《책 소개》 처음에는 3인칭 시점으로 썼다. 첫 장을 완성할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치고 리듬도 빨랐다. 인물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고 타인의 고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배후에 숨어 인물들의 인생을 조종하는 초연한 시건을 만들어냈다. 한달 뒤 첫 글자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남의 이야기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모두 내 슬픔으로 바꾸었다. 겉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잃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녹록치 않은 인생에서 사랑을 빼앗기고 이상이 무너지고 미래가 박탈당한 순간의 이야기다.
나와 추쯔는 작은 전기주전자를 산 뒤 이벤트에 당첨되어 수동 카메라를 받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추쯔가 사진 촬영에 매료되면서 그들 앞에 다른 길이 펼쳐진다. 추쯔는 사진반에서 자원봉사로 사진을 가르치는 뤄이밍을 알게 된다. 그는 부자였고 이 지역에서 존경받는 어른이었지만 결국에는 돈을 무기로 사랑을 빼앗음으로써 하룻밤 사이 소설 속 나의 인생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일어난 그 사건이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나를 완전히 파멸시켰을 때도 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바깥세상은 화기애애한 곳이어야 했다. 작은 마을은 여전히 한 영웅이 발산해낸 영광의 빛에 취해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온전히 살아남아 이따금씩 그 갈채 뒤에 숨겨진 조롱을 느끼고 이따금씩 타인의 고통이 가져다 주는 괴로움을 경험해야만 이 세상에 영원히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인생의 씁쓸함을 아는 사람만이 커피의 묵직한 향기를 폐부로 받아들여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고독한 영혼을 깨워낸 뒤, 터져 나오려는 신비로운 탄식을 욱여 삼켜 비루한 식도와 목구멍 사이에서 수줍게 맴돌게 할 수 있었다.
그때 뤄이밍은 뭐라고 했을까? 어떻게 생긴 흉터인지, 아프지는 않은지 물었을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인생을 송두리째 잃는 것이다. 요즘은 추쯔의 은밀한 부위에 대한 애틋함은 점점 옅어지고 있지만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슬픔이 차오른다.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여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에 혐오감마저 든다. 그녀의 젖가슴이 나를 배신했는지에 대한 의심보다는 그 시커먼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내가 상상하는 뤄이밍 선생님은 추쯔의 사진 속에서 본 벚나무와 그녀가 무심코 했던 말들, 즉 그의 수업 광경이나 그녀를 쳐다보는 눈빛, 오래된 합원식 가옥, 나무로 된 회랑 같은 것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뤄이밍의 집에 들어설 때 작은 질투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게다가 그곳은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다웠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 이토록 아름다운 집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고, 앞으로 남은 생에서 이보다 더 고상한 집은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집주인은 겸손했다.
적은 꿈속에서 파멸시키고 벚꽃은 침대 옆에 흐드러지게 피었네.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든 추쯔를 기다릴 거예요. 그녀에게 아직 들려주지 못한 얘기가 있어요. 염소 이야기요. 그 염소를 내가 미워하는 아버지에게 드릴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도둑맞았죠. 결론은 이렇게 간단해요. 한마디로 하면, 내 이야기는 염소 한 마리의 이야기예요. 남자의 슬픔은 그렇게 작아서는 안 돼요. 너무 작으면 인생에 파고 들어왔을 때 영원히 뽑아낼 수 없으니까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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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한적한 바닷가. 그곳에 작은 카페를 연 한 남자가 있다.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지만, 바다를 보려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하는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카페. 분위기 좋고 커피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 멀리서도 찾아온다지만, 도대체 누가 이런 장소에 카페를 낼까.... 궁금해진다. 그 카페에 첫문을 연 남자. 지역 유명인 뤄이밍이다. 카페 주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면 뤄이밍은 30분도 안되어 가게를 떠나고. 투신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뤄이밍은 침묵에 빠지고. 마을 사람들은 가게 주인을 냉랭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나마 있던 손님들도 점점 줄어들고, 큰돈을 벌기 위해 연 카페는 아니지만. 그녀를 기다리려면 카페를 계속해야 하는데... 남자의 걱정이 늘어가던 그때.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가 카페를 찾아온다. 그렇게 시작된 남자의.... 아니. 네 사람의 사연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한다.비극적으로 가족을 잃고 혈연 단신으로 살아온 남자는 처음 사랑을 느낀 여인과 결혼했다. 그녀의 이름은 추쯔. 너무나 순박한 그녀의 모습을 사랑한 남자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약속했지만, 집보다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녀의 외로움을 걱정하던 남자는 우연한 기회에 함께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고. 은퇴 후, 사진 봉사를 하던 뤄이밍을 만나게 된다. 그의 집을 찾아 사진을 배우고, 차를 마시고, 사진을 찍으며 함께 하는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지만, 추쯔는 뤄이밍과 불륜에 빠지고 남자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떠난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 남편을 떠난 뒤 실종된 여자, 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 그리고 그의 딸.막장 드라마에서나 볼듯한 소재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진한 커피향처럼 깊고... 넓게 퍼지는 슬픔'. 인물들의 감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런 문장이 되지 않을까.달콤하지 않아도, 계속 입안에 머금게 되는 씁쓸한 맛. 우리네 인생의 맛이 아닐까.행복한 미래가 사라져버린 지금도 자신을 떠난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의 사랑은 사랑일까. 미련일까. 자책일까.그 사랑의 색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그의 기다림이 그를 살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길의 끝에서 계속되는 그의 기다림. 그의 바램이 커피향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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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 저자 왕딩궈 책이 도착했다. 이 책은 대만 소설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슬픈 소설이 아닌 슬픈 소설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할 텐데 저자는 슬픔을 쓰려고 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잃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녹록지 않은 인생에서 사랑을 빼앗기고 이상이 무너지고 미래가 발탈 당한순간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 이야기는 단지 슬픔이 아니라고 말한다. 남자 주인공은 추쯔와의 사랑, 이별 이야기를 남자 시선으로 풀어나가는데 절망감, 슬픔, 욕심 등등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글 솜씨에 감탄하게 되는 경이로움을 느낄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나’로 표현되며 추쯔라는 사랑한 여자와 추쯔에게 카메라를 가르쳐주던 뤄이밍,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 이렇게 네 명 주요인물이 나온다. 네 명의 각각의 사연은 세세히 다 나오지 않지만 분명 그들에겐 그들의 사정이 있을 거라 짐작이 되는 내용들과 캐릭터인데 , 진부할 수 있는 내용을 저자의 탁월한 말솜씨로 살려낸다. “사랑하는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나기 직전, 내 앞의 세상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고 눈길이 가 닿는 곳마다 온화하고 우아했으며 날씨도 이상하리만치 쾌적했다. 숲의 신선한 공기가 시시각각 몽환적인 꿈속으로 날아드는 것 같았다” P88 주인공이 바이슈한테 말하는 구절 중 추쯔를 만나기 직전을 표현한 말인데 그 순간을 놓치지않고 예리하게 표현하는 저자의 방식에 반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때의 순간을 독자도 함께 느끼고 있는 전달력이 강한 소설이다. “바닥에 물방울이 흩뿌려저 있고 아침햇살이 내려앉은 그녀의 옆얼굴은 땅에서 피어난 꽃 같았다” P130 주인공이 꽃집에서 일하는 추쯔를 아침에 보고 가면서 느낀 감정을 표현한 구절로 저자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생생하고도 아름답게 한구절 한구절 여운을 주고 우리에게 상상력을 선물해 준다. 이 소설은 분명 살아있는 소설이다라고 감히 말한다. 대만 소설이 생소해 처음엔 기대반 걱정반으로 읽었는데 첫장 프롤로그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장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한순간에 읽었다. 그저 다음장에 표현된 저자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이 책에서만 느껴지는 분위기를 모든 사람들이 느끼길 바라며 흔해빠진 소설을 읽느니 이 아름다운 소설 한권읽는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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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카페에 낯선 사내가 들어온다. 문옆 의자에 앉는 이 남자는 주문할 생각이 없다. 카페 주인 또한 아무말없이 분쇄기에 원두를 갈아 커피 한잔을 내어준다. 적막한 고요함 속에서 손님은 담배 한개피를 다 피운뒤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집 옥상에서 자살시도를 한다. 그 후 주인공 '나'의 카페에 자살을 기도한 남자의 딸이 찾아오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주인공과 남자의 딸 시선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주인공 "나", 아내 추쯔, 은행임원 뤄이밍,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 주인공 나는 불운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모없이 홀연단신으로 살던 암울했던 그에게 한송이 벚꽃과 같은 존재가 다가왔다. 그녀의 이름은 추쯔. 영원한 행복을 꿈꾸며 추쯔를 위해서 사는 '나'에게 불행이라는 단어가 다시한번 다가온다. 백화점에서 산 주전자 경품행사에서 수동카메라를 받게된 추쯔는 취미로 사진을 가르쳐주는 뤄이밍에게 사진을 배우다가 이 둘은 불륜관계가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추쯔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추쯔는 그날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진다. 추쯔를 다시 만나기 위해 뤄이밍이 사는 집 근처에 카페를 차리고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나'가 운영하는 카페에 추쯔가 아닌 다른 여자가 찾아온다. 그여자는 바로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기 위해 매일같이 카페에 찾아온다.
책을 읽는 내내 4명의 주인공 중 불륜상대인 추쯔와 뤄이밍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와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나'의 애달프고 지독한 사랑에 연민이 느껴진다. <적의 벚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극찬때문에 많은 스포라잇을 받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극찬이라는 수식어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도 아니고,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 읽다가 고생한 기억이 너무나서...ㅋㅋㅋㅋ 왕딩궈의 적의벚꽃도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문체나 스타일이 비슷하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극적인 요소나 반전이 없더라도 이야기 자체에서 주는 힘이 느껴진다. 글자 하나하나에 음표라는 꼬리가 달려,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고, 이 문장들은 하나의 글이 되어 새로운 선율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든다. 스릴러 소설처럼 한번에 훅 읽어내려가기 보단 글 자체에 의미를 두고 여유롭게 음미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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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나는 여러 작품의 주인공들을 만난 것 같아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때론 설레기도 한다. 마침 소개팅에 나가 내가 좋아하는 이성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ㅋ 어쨌든 예전에는 좋아하는 작가 이외에는 무관심하였던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여 자겠다는 생각이 올해에 문득 들기도 하였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일본뿐만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자인 무라카미하루키가 인정한 대만한 작가 (왕딩궈)라는 작품을 만나게되었다. 나는 이작품을 읽기전 약간의 부끄럼기만 하였다. 왜냐면 중국어 전공을 하였으면서 한편의 중국 작품을 읽지도않았기때문이다. 심지어는 몇년전에 입소문이 났던 13.67(찬호께이) 작품도읽지않았어,나름 지인들을만나면 대화가 않통한적도 많이있다. 그때는 일본소설 에 빠져있터라 그럴수있다.
아무튼 올해부터라도 중국작품을 많이 접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특히베스트 셀러.... 이번처음으로 접한 중국소설은 대만소설인데 이작품의문고부터가 의문?을 가게만들었고, 뭔가 슬픈면서도 감동의 물결을 줄것같은느낌이라고나할까? 그리고 덮고 나면 당분간 이작품이 남아있을것같아서 그리고 이작품에더 기대하였던것은저자가독자들에게 던진 문구였다. " 나는 슬픔을 줄려고 쓴 작품이아니다라는 문구에나도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시게되었고, 곧장책을 펼치기시작하였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이렇다.나,아내,뤄이밍,딸(뤄바이슈)이렇게 4명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한남자의 가족들은 남들과 다른것없이 화목하게 지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게된다. 그리고 몇일후.... 아내는 남편몰레 바람을 피게된다. 그남자(뤄이밍)는 그마을에서 명만이높고 주위에있는 마을주민들에게 좋은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아내는 그남자( 뤄이밍) 을 사랑을나누다가 몇일후 실종이 되었고, 아내(추쯔)의 남편은 아내가 실종된 사실을 모르고 회사를 다니던도중 본인이 스스로 일에 너무 힘든 나머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되고 , 소소하게 커피숍을 차리게된다. 그리고몇일후 그는 아내가 오지않자 여행 을 가겠지 하며 ,,, 하루하루를 아내를 기다리게되지만 결국 아내는 오지않게되자, 남편은 실종신고를 해야되나 망설이다가 ,, 더기다리게된다. 그리고 몇일후 아내가아닌 의문의여성(뤄아바이슈)가찾아오는데.....
이작품을 덮고났어많은 생각이들었고 한페이지넘길때마다 울음을 멈출수가없었고, 분고하기도하였다. 이작품을 영화로 제작하였으면 좋겟다라는 생각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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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언급한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가 바로 왕딩궈이여 그 총체가 《적의 벚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올해의 소설 선정 2016년 타이페이국제도서전 대상 수상 화려한 찬사와 상을 한 몸에 받은 대만작가 왕딩궈의 첫 장편소설 《적의 벚꽃》. 하지만 거의 접해 보지 못한 대만소설이라 섣불리 책을 펼칠 수는 없었다.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나에 따라다니는 그림자같아 이젠 익숙해 질만도 한데 여전히 선입견과 걱정으로 천천히 읽었다. 프롤로그부터 글의 무게감에 빨리 읽을 수는 없었다. 천천히 되새기며 읽었다.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프롤로그는 그의 인생을 압축해 놓은 글에서 소설 《적의 벚꽃》이 나올 수 있는게 당연한 결과라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나', 추쯔, 뤄이밍, 뤄바이슈 이렇게 4명의 운명같은 삶을 이야기로 써 내려갔다. 이름이 없는 나를 중심으로 사랑, 이별, 슬픔, 복수. 진부한 스토리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소재지만 왕딩궈의 글로 진부함을 쓸어버리고 장엄하고 비밀스럽고 압축적인 전개로 나를 책에 집중하고 매달리게 만들었다. 현재 '나'는 인적이 드문 시골 바닷가 변두리에 커피숍을 오픈했다. 그리고 '나'를 떠난 아내 추쯔를 기다리면서. 그 마을에는 대형 은행 고위 임원에서 은퇴하고 조상 대대로 물러 받은 멋진 집에서 이름만대면 모두 존경하는 부와 명예를 가진 한마디로 걸어다니는 성인 취급을 받는 뤄이밍이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나'의 커피숍을 방문 한 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자살까지 시도하게 되었다. 경찰까지 커피숍에 오게 되면 의심을 받게 된다. 그 후 한 낯선 여자의 방문. 그녀는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 아빠의 잘못을 알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후의 전개는 '나'의 과거 기억을 회상하는 것으로 전개된다.'나'는 추쯔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하고 그녀를 위해 직장도 갖게되는 소박하지만 꿈이 있었던 '나'의 삶이 드러난다. 그 삶을 지탱해 주는 추쯔라는 사랑이 있었다. 그 후 '나'에 닥친 불행까지. 작가는 이 과정을 직설적으로 드러 내지 않았다. 특히 그에 닥친 슬픔의 서술에서는 여러 주변 상황과 '나'의 심리묘사를 고려하고 짐작하게끔 읽는 사람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고 있다. '나'의 절실한 슬픔과 사랑을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독자는 온전히 '나'의 슬픔에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소설의 결말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 읽기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낯설움에 망설었던 책이지만, 망설임은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집중력으로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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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 적의 벚꽃 / 왕딩궈 지음
이 책이 궁금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언급한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찬사에 있었다. 도대체 어떤 글이길래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걸까 궁금해졌다.
카페가 들어서기 마땅치 않은 장소에 카페를 오픈한 주인공, 물론 찾아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재산도 많고 평소 선행으로 명망이 자자했던 '뤄이밍'이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신 후 집으로 돌아가 자살 기도를 하고 그의 딸 뤄바이슈가 카페에 들러 주인공에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물어보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한몸에 받던 뤄이밍이 카페를 다녀간 후 자살을 시도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주인공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한두명뿐인 손님에도 이익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주인공. 오히려 그는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교통사고로 중증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학교의 허드렛일을 하는 힘없고 가난한 아버지, 그랬기에 즐거울 수 없으며 서글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채로 자란 주인공, 성인이 된 어느 날 비오는 캐노피 밖에 서 있던 그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캐노피의 작은 공간을 마련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던 추쯔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슬픈 기억의 보상을 받는 듯 새로운 인생으로 도약하게 되는 시작이 되었지만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은 백화점에서 산 주전자로 인해 비극으로 치닿게 된다. 주전자를 사며 경품이벤트에 당첨돼 받은 수동카메라로 사진찍는 것에 재미를 붙인 추쯔는 어느 날 무료로 사진 찍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를 듣게 되고 그렇게 '뤄이밍'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후 주인공과 추쯔는 뤄이밍이 사는 별장에 들러 사진찍는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되고 뤄이밍과 추쯔의 사진에 대한 열정 때문에 주인공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쌓이게 된다.
주인공은 일 때문에 추쯔를 홀로 남겨두고 출장을 가 있는 날이 많았고 생각지 않게 일이 빨리 끝나 집에 들렀던 날 추쯔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추쯔를 사랑했기에 더이상 묻지 않았던 주인공은 자신이 온 흔적을 되돌려놓으며 다시 공사중인 임대주택으로 돌아가고 다음번 방문에서 그동안 행하지 않았던 과격한 사랑의 행위에 놀란 추쯔는 집을 나가게 된다.
모든 것은 주전자를 사며 당첨된 카메라 때문이었다고하지만 카메라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주인공과 추쯔는 계속 행복할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들었다. 가난했기에 가난을 피하고자하는 욕망과 가난한 사람에게 사기에 가까운 짓을 하면서도 양심을 지키고 싶은 주인공의 양립적인 마음에서 인간적인 면과 그럼에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하고 꿈틀대는 인간의 욕망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부와 가난, 양심을 어기고 싶지 않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주인공의 고민 속에서 충분히 추쯔를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간과하며 추쯔를 외롭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게 과연 주전자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딱히 해답을 내릴 순 없을 것 같다.
이야기는 어린시절과 현재를 오가며 어느 순간 뤄바이슈에게 이야기하듯 흘러가는데 글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추쯔의 절절한 묘사가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묘하게 엄청난 분노감이나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고 눈물이 차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절제된 문장으로 다가와 눈물로 흘러내리지 못한 먹먹함이 더 오랫동안 가슴속에 머물렀던 작품이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나서 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었을때처럼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린 듯한 느낌이 이 책에서도 느껴져 꽤 매력적이고도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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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를 바 없는 해한가의 한적한 카페. 그 카페는 떠나간 자신의 아내를 기다르는 한 남자가 홀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 날 방문한 첫 손님은 뤄이밍이었다. 침묵 속에선 그 어떤 응대도 주문의 절차도 생략되어있었다. 뤄이밍은 커피를 마신지 30분도 안되어 몸을 일으켰다. 그 뒤 뤄이밍은 담배 한 개비를 피운뒤 집으로 돌아가 앓아눕는다. 뤄이밍은 옥상으로 올라간 뒤 신비한 지령을 받은것 처럼 곧장 난간을 넘었다. 그것을 근처에 사는 부인이 보고 새된 비명을 지르고 이웃들이 뛰어나오고 이장은 구급대원을 끌고 달려온다. 며칠 뒤 남자가 동네에 장을 보러갔을 때 평소 살갑게 맞이했던 가게 주인의 태도가 냉랭하게 변해있었고, 길가에 앉아 있는 노점상들도 일은 하지만 고개를 들어쳐다보지 않았다. 남자가 장 보기를 마치고 그들의 시야에 벗어난 뒤에야 그들은 고개를 외로 꼬고 자기들 끼리 수군거리시작했다. 마치 동네 전체가 한 목소리로 조용히 분노를 게워내듯. 남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현장을 빠져나와야했다. 뤄이밍은 노숙자에게 음식을 던저주거나, 산타처럼 돈을 나눠주고, 남 몰래 기부를 하는 등 바닷가 마을에서 선행으로 유명했다. 그는 겸손했지만 금융업계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대형 은행의 요직에서 대만 중부 전체의 대출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다. 남자가 뤄이밍을 처음 만났던 날은 5년전으로 그 때 뤄이밍은 한 사진 교실에서 자원봉사로 자신의 아내인 추쯔를 가르쳤다. 벚꽃이 피기전 추쯔는 남편의 곁을 떠난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계속 찾아 허메었으나,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우울한 그림자를 밝게 비추어주고 인생의 묵직함을 덜어주던 사람이 아내인 추쯔였다. 그래서 그에겐 그녀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했고,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며 그는 홀로 카페를 열었다. 뤄이밍의 갑작스런 자살 시도는 작은 마을의 커다란 사건이었고, 이후 경찰 두명이 남자에게 찾아와 이것 저것 질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찰들은 아무것도 건진게 없이 돌아간다. 소나기가 퍼붓던 어느 날 서른 살쯤 되어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폭우속을 뛰어들듯 택시에서 내려 카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녀는 다름아닌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였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증오하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인적이 드문 해한가에 카페를 열어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소설의 시작과 끝은 현실에, 소설의 중간은 과거에 머물러있다. 그 과거는 남자의 어린 시절 부터 추쯔를 만나 추쯔가 그를 떠나기까지의 사건을 열거하였다. 이 소설을 읽기는 쉽지가 않았다. 문장 하나 하나른 은유적 표현으로 처리하면서 고전적이며 서정적인 느낌을 불어넣는데, 이로인해 은유적 표현이 들어간 문장은 호흡이 길어지는데 고전소설 같이 묵직한 문체의 글이 합해지니 가독성을 낼 수 없었으며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에서는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적의 벚꽃의 주인공인 그는 부모님의 죽음에 상처 받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권력과 돈의 법칙에 순응하며 잘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첫눈처럼 찾아와 흐드러지게 핀 벚꽃 같이 핀 여자가 추쯔였다. 추쯔는 빛이되어 그의 우울한 그림자를 비춰주고, 인생의 묵직한 무개를 덜어주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추쯔가 필요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아름답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도 계절이 지남에 따라 진다. 결국 추쯔의 사랑도 마찬가지었고, 추쯔는 그의 곁에서 떠난다. 나는 이 씁쓸한 비루한 사랑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추쯔와의 추억을 들여다볼수록 그 순수한 사랑의 끝이 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추쯔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는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채 언젠가 따스한 봄날 피었던 벚꽃같은 그녀를 계속 기다리며 다시금 자신의 곁에서 흐드러지게 만발하길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미완성으로 끝나버린 이 이야기는 사랑을 애틋함을 잘 담아내고있어 향이 깊은 커피처럼 결코 짧지만은 않을 여운을 남겨준다. 그의 문체, 돈과 권력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는 무척 고전적이며, 떠나간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원망없는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은 마치 90년대 멜로 영화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적의 벚꽃의 끝은 파멸이다. 하지만 그 끝에 있는 파멸은 단순한 아침 드라마에 있을 듯한 가벼운 것이 아닌 조금 더 무게가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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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슬픔의 덩어리들을 품고 산다. 그리고 문학은 그런 덩어리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내속의 아픔을 달래기도 한다. 소설 속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 없이 등장한다. 소설은 그런 '나'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진술보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을 요한다. 마치 미완성된 그림에 색을 입혀가고 있는 느낌이지만 색의 조화를 이뤄내기가 어려운 느낌이랄까.
'나'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 장애인 어머니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로 인해 인생의 깊은 절망과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온다. 인생의 아웃사이더 같던 그가 직장에서의 소속감도 느끼게 되고 게다가 비루하기 짝이 없다고 여긴 자신의 영혼에 영감을 불어넣어 줄 반쪽을 만나게 된 것이다.
추쯔가 바로 나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영감이었다. -p.99
그러나 그에게 다시 삶의 비극이 찾아온다. 과연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지진이었을까, 주전자였을까. 아니면 추쯔의 웃음소리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의 가슴 흉터였을까.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낳게 한 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데 추쯔도 그중 하나였다. 지진의 충격을 떨치지 못하던 아내를 위해 쇼핑을 나서지만 그녀는 주전자 하나만 산다. 그러면서 함께 받은 이벤트 복권에서 카메라가 당첨되는 행운을 누린다. 다행히도 사진 찍는 일에 몰두하자 서서히 그녀는 생기를 찾아간다. 그때 만나게 된 뤄이밍 선생은 그가 아버지였으면 하는 바람이 잠깐 스칠 정도로 선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었지만 그의 가정을 파탄 나게 한 적이 되고 만다.
추쯔가 사라져 버리자 그는 인생을 더 끌고 갈 수가 없다. 모든 걸 포기한 채 바닷가 마을 귀퉁이에서 카페 문을 열어놓고 그녀를 기다리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뜻밖의 남자 뤄이밍과 카페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날 이후 자살을 시도한 뤄이밍으로 마을은 뒤숭숭해지고 갑자기 등장한 그의 딸 뤄바이슈로 인해 분위기가 묘해진다.
사람의 일생에 몇 번의 연애가 허락된다 해도 나는 단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 p.99
나와 추쯔. 뤄이밍과 뤄바이슈. 이들의 캐릭터조차 불분명해서일까. 그들의 관계보다는 각자가 지닌 슬픔의 근원에 더 치중하게 된다.
때때로 찾아오는 아버지의 기억은 '나'를 침하시킨다. 정지된 순간들과 못다 한 기억들조차도 추쯔와는 나눌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짐작뿐인 추쯔의 상처에 자신의 아픔을 더 얹고 싶진 않았으리라. 그만큼 그녀를 아꼈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해서일까. 주는 법이 너무나 서툴러 보인다. 일을 통해 얻는 인생의 법칙보다 사랑을 이해하는 일은 영원한 숙제 같다. 그가 그의 모든 것을 그녀와 나누었더라면 어땠을까. 서로의 아픔을 물어봐 주고 헤아려주는 일이 먼저였다면 분명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뤄이밍은 선의를 실천하는 자로 동네에서 많은 이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남의 여자를 탐한 죄책감에 자살을 시도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찍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였던 그에게 추쯔의 미소는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딸 뤄바이슈는 그의 일기장 속에 잠깐 머물러 있던 존재였다. 갑자기 나타나 인질이 되어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무엇을 용서받겠다는 것이며, 또 그의 영혼을 불러낼 방법을 찾을 거라는 말은 또 무엇인지 의구심이 내내 들었지만 그의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데는 성공한 인물로 보인다.
아픈 기억을 눌러놓고 사는 이들은 그 기억에 묶인 채 떠밀리듯 살고 있지만 우리는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덮으며 적당히 아닌 척 살아간다. 슬픔은 크기와는 상관없이 슬프기에 슬픈 것이고 때때로 드러나는 슬픔을 위로받기 위해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간다. 한 번도 아니고 그는 두 번씩이나 인생을 강탈당한다. 생에서 자신의 일부분을 잃어본 사람들은 그 나머지 인생을 온전히 살수 없으며 더구나 일상이 없는 이들에게 미래가 그려질 리도 없다. 그녀가 돌아온다고 예전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의 남은 이야기보다 사라진 그녀가 더 걱정스러웠다. 대체 그녀는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처량하게 집을 나서던 그녀의 뒷모습만 내내 잊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