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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
방상근 글 / 조환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천주교는 처음에느 서양 학문의 한 부분으로 양반들에
의해 연구 되었습니다. 점차 서민층과 여성들도 천주교를 믿게 되면서 정부에서는 천주교를
금하게 합니다. 천주교의 인간 평등과 내세 사상이 당시 유교 사상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천주교를 금지한건 아닙니다.
흥선대원군은 외세와의 관계 속에서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쳐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고 서양과의 통상 수교를 반대하는 정책을
굳건히 하게 됩니다.
조선 후기는 근대로 넘어오기 바로 직전입니다. 그만큼 우물안 개구리 였던 우리가 다른 나라를
보게 되었고 그들과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낀것도 이때부터 입니다.
천주교가 마침 이때 등장한 것도 이런 사회적인 현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주교의 특징은 서구적인거 외에 가장 중요한 평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까지는 신분이 나눠진 시대였습니다.
양반과 평민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신분에 따라 차별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17세 이후 신분제가 흔들리면서 여기저기 움직임이 생깁니다.
개항 이후 서양의 근대 문화가 더해지면서 1894년에는 법적으로 폐지되는 상황이 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새로운 사회가 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그러나 곧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우리 민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당시에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19세기 후반부터 서양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과 함께
과학 기술을 비롯한 서양의 근대 문물이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근대 문화가 수용되면서 문학, 예술, 종교등에 새로운 움직임이 생깁니다.
그리고 박해를 받고 힘들었던 천주교도 자유로운 선교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선 대원군도 이해가 갑니다.
그 시절에 그럴수 밖에 없었던 현실...그러나 천주교 박해에서 많은 분들이 죽었다는건
정말 큰 슬픔입니다.
이런 아픈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우리는 미래를 어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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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에는 신앙에 대한 믿음을 누구나 자유롭게 갖을 수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유교적인 가치관과 천주교의 교리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고, 유교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천주교는 오랫동안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신앙의 자유도 얻게 되기는 했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원고 홍봉주는 어려서부터 천주교를 접하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되었고,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을 도왔고, 베르뇌 주교를 모시고 살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홍봉주는 흥선 대원군을 상대로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 고소장을 내기로 합니다. 원고 측 변호사 나신상과 증인 정하상, 윤지충, 홍낙민, 김대건 신부까지 만날 수 있고, 피고 측에서는 변호사 조선왕과 증인으로 정순 왕후, 홍낙안, 이항로, 권돈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를 보면서 천주교 박해에 대한 각자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 대원군이 정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를 박해하고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희생시켰습니다. 대원군은 천주교를 올바른 학문이라고 인정하지 않았고, 법으로 금지했지만 국법을 어겨가면서 천주교를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사신들이 선교사로부터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얻어 오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해, 신유, 기해, 병오, 병인 박해를 받은 100년간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최초의 조선인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는 점에서 병오박해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김대건 신부까지 증인으로 나와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들이 마카오에 개설한 '조선 신학교'에서 공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천주교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도 순교를 하였지만 서양 선교사들도 많이 순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박해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역사속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교과서 속 역사 이야기를 한국사법정에서 들여다보면 서로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바가 다르므로,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천주교를 무차별하게 탄압한 흥선 대원군이 행했던 천주교 박해가 왜 일어났는지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의 전래와 조선의 변화 천주교가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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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 17세기 조선에 처음으로 소개된 천주교는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초기에 천주교에 대해 관대하던 조선은 천주교가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자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였지요. 척화비를 세운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였으며 박해는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ㅂㄱ해로 이어졌습니다. 순교자 홍봉주는 천주교를 무차별하게 탄압한 흥선 대원군을 한국사법정에 세워 천주교 박해의 잘못을 따지고자 합니다. 천주교의 전래와 조선의 변화 그리고 천주교가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알아볼 수있어요. 1784년에 조선 왕국의 한 사신의 아들이 수학을 배우기를 원하다가, 서양 선교사로부터 교리를 듣고 또 수학에 관한 책들을 얻으려고 베이징의 성당에 찾아왔어요. 서양 선교사들은 그 조선 사람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면서 틈틈이 그리스도교의 기초 교리를 가르치는 데 마음을 썼으며, 주교의 진리를 깨닫고 영세를 청했으며, 사신으로 온 아버지의 승낙과 공의를 얻어 세례를 받았어요.
천주교의 유물로는 미사를 위해 사용하는 성작, 향을 피우는 그릇인 향로, 순수한 밀을 재료로 해서 만든 제병 즉, 밀떡을 담아 두는 성합, 성당 안에서 성체를 담은 성합을 넣어 두는 감실이 있답니다. 천주교는 기존의 가치와는 다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거은 평등 의식이다. 모든 사람이 천주의 자녀라는 평등 의식은 천주교를 접한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음에 틀림업다. 따라서 평등이 근대 사회의 중요한 개념이라면, 천주교의 허용은 우리 사회를 또 다른 시대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유교적인 가치관과 천주교의 교리는 상충되는 면이 많은데, 유교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천주교는 그 다름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그 결과 오랫동안 박해가 일어났던것이다.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천주교는 처음에는 서양 학문의 한 부분으로 양반들에 의해 연국되었고, 이후 서민층과 여성들도 천주교를 믿게 되면서 정부에서 천주교를 금하게 되었다. 천주교의 인간 평등과 내세 사상이 당시 유교 사상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문화가 수용되면서 외국 문학의 번역이 이루어졌으며,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 온 천주교도 자유롭게 선교 활동을 할 수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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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역사서에 관심 많은 엄마와 딸이기에 이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시리즈를 여러번 접했었는데 이번에 새로 개정판은 더욱 더 알찬 구성이 눈에 뜨였습니다.
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는 근대사에 가장 역사적인 사건인 천주교의 전파와 그로 인한 갈등을 소재로 다루는 이야기로 원고 홍봉주가 흥선대원군을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흥선대원군이야 아이들 역사에서 근대사 인물 중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는 인물이 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홍봉주가 누굴까 하고 보니 1866년 순교한 집안 대대로 천주교를 믿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흥선대원군의 병인 박해가 너무나 가혹했고 도둑질이나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은 신자들의 명예를 복원하기 위해 흥선 대원군을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건데, 읽다 보니 일단 그의 주장에 솔깃해졌습니다.
책을 몇 장 넘기니 중고등 교과서에서 이 내용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여주는 페이지가 보이네요. 한국 근대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쪽으로 교과서 개편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아이들이 근현대사를 어려워 하기에 좋은 부교재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내용의 깊이는 만만치 않으나 너무 딱딱하지 않게 법정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점은 늘 시리즈를 읽을때마다 느끼는 이 책은 가장 강점이고 새로 개편된 편집은 아이들에겐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교과서와의 연계성 역시 무시할 수 없을듯 합니다. 종교문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를 종합 정리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천주교 유물을 따로 본 적은 처음인듯 한데, 이 책 한권을 통해 시대의 모습과 다양한 사진 자료를 통해 역사적 장소, 건물, 물건에 대한 설명역시 본 내용 못지 않게 재미있 습니다. 사진 자료가 예전 시리즈에 비해 확실히 많아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격적인 역사서를 즐기기 시작한 아이에겐 역사의 다른 관점을 느끼게 해주는데는 이 시리즈만한 책을 아직은 보지 못한것 같고, 늘 그렇듯 책을 처음 대했을때 홍봉주의 주장에 대해 승소?판정을 하려 했던 마음은 책을 읽으며 천주교 박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의 시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기에 위정자는 위정자대로의 주장과 종교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흑백논리로만 충돌헀던것이 아닌가 하며 적당한 타협이 있었다면 우리의 근현대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새롭게 바뀐 편집도 맘에 들고 알찬내용, 체험 정보,역사 논술코너까지 어디하나 버릴데 없이 알찬 역사서입니다. 아이들이 근대사를 단순히 암기해서 어렵고 재미없게 느낀다면 이 책이 그 생각을 바꿔 줄 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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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는 한국사법정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세계사법정》을 읽기시작한지 일년이 넘었고 그간 한권 두권 모아왔던 시리즈가 벌써 50여권 가까이에 이르렀다. 책을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용돈을 모아 사기도 했고 어른들께 선물로 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리즈 모으기에 무척이나 열중했던 결과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이 책들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공개해 함께 책읽기를 하기로 엄마와 약속했다. 오랜만에 재판에 참관했으니 열심히 집중해야겠지? 오늘 법정에 설 사람(?)은 홍봉주 VS 흥선 대원군 이다. 홍봉주는 잘 모르는 사람이고 흥선대원군은 조선 제26대 왕(재위 1863∼1907)인 고종황제의 생부로서 살아있는 가운데 아들을 왕으로 올린 유일한 사람이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법을 어겼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천주교 박해 사건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천주교를 믿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중 홍봉주는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3대에 걸쳐 순교한 집안의 사랑이었다. 그의 영혼은 역사공화국에 와서도 그것을 잊지못하고 분하게 생각하던 홍봉주는 흥선대원군을 만나서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천주교 신자를 처형한 곳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지나간 일이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행한 일이라고 한다. 결국 홍봉주는 평소에 안면이 있던 나신앙 변호사를 찾아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하고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고소하게 된다. 앞으로 재판은 어떻게 진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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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재판의 논쟁이 된 천주교, 천주교는 어떻게 17세기에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그리고 중국에 간 사신들이 이곳에 와 있던 서양인 선교사로부터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얻어오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 신앙이라기 보다 학문으로 먼저 들어온 것이네~) 천주교를 접한 양반들은 처음에는 서양학문의 한 부분으로 이를 연구하였는데 정조때에는 몇몇 학자가 신앙으로서 천주교를 믿기시작하였고, 그중 이승훈이라는 사람이 청나라에서 서양인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온 뒤에 천주교회가 창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도 오랜 세월이 흐른뒤 천주교는 전국으로 확대되어져 나갔다.
천주교가 전국으로 확대되면 천주교를 믿는 사람도 수십, 수백배로 불어날것은 당연지사. 교회가 설립되고 5년 후인 1789년에 신자수가 100여명이었던 것이 1800년에는 1만 명, 1865년에는 2만 3,000명까지 늘어났으니 참 대단한 변화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관점에서 보면 예로부터 조선에 뿌리박혀 있던 유교정신을 무시하고 국법을 여겼으며 종굑적인 진출, 경제적인 침탈, 국토침략의 순으로 조선을 빼앗으려 들 서양 세력의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천주교를 의심할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가 된다. 그것은 유교를 중시하는 당시의 지배 계층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었고 탑압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단순히 지금의 시선으로 판단하기엔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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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선대원군이 한 행동이 최선이라고 할수있을까? 당시의 시대가 그를 그렇게 몰아갔다 하더라도 그로인해 억울한 피해를 당한 많은 백성들의 서글품은 어떻게 풀어줄것인지? "하느님이 만인의 아버지라면, 세상 사람들은 비록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차별은 있지만 모두 평등하게 형제가 된다." 라는 것은 당시의 신분제도 하에서 용납될수 없는 사상이었다. 피고 흥선대원군의 조선왕 변호사는 유교를 중시하는 조선에서 유교의 가치를 부정하는 천주교가 부정하다 하였고 원고 홍봉주의 나신앙 변호사는 그러한 비판은 천주교에 대한 무지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항변한다. 과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의 담당 판사 공정한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또한 배심원들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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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홍봉주가 흥선대원군을 생다로 제기한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왕 그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다. 다만 처벌의 수위가 합당했느냐의 부분에 있어서는 일부 피고의 책임을 인정한다.
<내 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피고 흥선대원군이 천주교 신자들을 의심한 이유는 어느정도 이해하나 홍봉주와 다른 신자들에게 가한 천주교 박해로 인한 정신적 피해 보상 및 손해 보상 청구를 기각한다. 다만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그들에게 사과를 할 것을 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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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부터 이어오던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이 60권으로 완결을 지었다. 조선중기부터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중간 중간 리뷰없이 넘어간 부분이 꽤 많아서 다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번에 다 읽기는 힘이 들듯하고 차근히 읽어내려서 역사에 맥을 잡아보려고 생각을하고 읽으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물론, 그 전에도 역사공화국을 심하게 편애했지만 말이다. 역사를 좋아해서 고등학교때도 역사만 파고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역사공화국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정사가 아닌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뿐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 교육이 그런면도 없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를 맹신했었던것 같다.
<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는 제목만 보고도 떠오르게 되는 인물이 있다. 흥선 대원군 그리고 척화비. 흥선 대원군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가? 살기 위해서 바보처럼 살았다는 인물. 어떤 이들은 그를 개혁의 아이콘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우리의 세계화를 막은 인물이라고도 한다. 척화비만 두고 생각을 한다면 분명 그는 세계화를 막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 사회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사엔 가정법이 없다. 물론 알고 있다. 타임슬립을 이야기하는 허구속에서 조차도 이야기들은 역사속 나비의 날개짓도 건들지 않게 움직인다. 허구일 뿐인데도 왜 그럴까? 돌맹이 하나에 위치를 바꿔서 지금 세상이 좋아진다면 옳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정말 지금 세상이 풍요로워질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사는 지금 세대가 아닌, 우리 다음 세대가 또 판단할 문제이니 말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여름이면 양화진에 간다. 성경학교에서 수련회기간에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양화진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양화진은 조금은 익숙한 곳이다. 이곳이 어떤곳인가? 조선후기 천주교박해의 산역사를 보여주는 곳이 이곳이다. 워낙에 많은 신자들의 머리를 잘랐기에 '절두산'이라 불리는 곳. 그곳이 양화진이다. 이 곳에서는 왜 그런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근대라는 개념은 개항이후에 우리 역사에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리고 근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평등이다. 모든 인간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것이 인류가 실현해야할 보편적 가치일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속에서 그러한 시기는 그리 길지가 않다. 서구에서는 산업 혁명과 시민혁명 이후의 일일것이고, 우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항 이후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개항 이전 조선사회는 어떠한 사회였을까? 신분제가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였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한국사 법정 44권에서는 3대에 걸쳐 순교를 한 풍산홍씨 홍봉주가 원고로 나온다. 물론 피고는 고종의 부친으로 1873년 정치에서 물러날 때까지 천주교를 박해했던 흥선 대원군이다. 17세기 조선에 처음으로 소개된 천주교는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조선초기엔 천주교를 서양학문으로 여겼기때문에 관대했었지만, 천주교가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자 사교로 규정하게된다. 척화비를 세운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였으며 박해는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로 이어졌다. 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을 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는데, 천주교와 서양을 동일시 하게 보는것은 시점의 차이가 있어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주의 사랑은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조선사회에서는 힘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겁이 났을 것이고, 권력에 중심에 있기를 원한 흥선대원군은 더욱 박해를 가했을 것이다. 병인박해때 서양 선교사 9명이 순교를하게 되는데, 이는 청나라에서 서양인들을 처형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서 정부 대신들이 흥선 대원군을 비나하면서 그의 정치적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한점 만 보고도 알수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하게 되고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이 타결되면서 선교사들은 호조만 지니면 조선 국내를 자유롭게 다니며 가르칠 수 있는 권리와 치외법권을 보장받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문호 개방, 개화 정책 추진, 서양국과의 조약 체결 등 조선이 근대 사회로 진입하면서 얻어진 성과이지만, 여기에는 100년 동안 교회를 유지하려던,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신자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