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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인간들은 달랐다. 백 년 동안 십만 권의 책을 읽은 사람도 있고, 나라와 직업과 가족과 성별을 바꾼 사람도 있고, 줄곧 여행을 다닌 사람도 있지만 모두의 결론은 하나다. 죽음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유령에 불과하다는 것. 죽음이 있기에 역순으로 삶의 의미가 생겨났고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일’ 같은 커다란 꿈을 품게 된다. 가장 굵은 나이테로 내 몸에 남아 있는 열다섯이 그렇게 알려주었다.” (pp.16~17)
김성중 / 이슬라 / 현대문학 / 157쪽 / 2018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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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의 『이슬라』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역설적으로 ‘죽음이 사라진 세상’을 그린 독창적인 소설이다. 죽음을 앞둔 84세의 ‘나’와, 열다섯 살의 나이로 백 년을 살아온 또 다른 ‘나’의 이야기가 액자식 구조로 교차하며 펼쳐진다. 작가는 “죽지 않는 삶”이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죽음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시간은 흐르지만 누구도 성장하지 않고, 누구도 소멸하지 않는다. 영원히 같은 상태로 머무는 인간들은 점차 무기력과 절망에 빠지고, 삶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서 작가는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욕망 - ‘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는 살아있음의 실감이 사라지고,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다. 주인공 ‘나’와 이슬라가 그 절망의 세계 속에서도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려 하는 과정은 이 소설의 가장 큰 감정적 축이다. 작가는 인간이 끝내 찾아야 할 의미가 죽음의 부정이 아니라, 유한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애착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슬라가 “죽음을 낳는 자궁”으로서 본분을 자각하고 다시 죽음을 세상에 불러오자,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비로소 살아난다. 죽음의 귀환은 절망이 아니라 재생의 시작이다. 김성중은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이 있기에 삶은 반짝인다”는 진리를 문학적으로 증명한다. 『이슬라』는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인 소설이다. 읽고 나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오히려 ‘살아있음’의 감각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