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 서치라이트는 한 마디로 !! 혈액순환 개선에 도움이 되는 책!! 이라 할 수 있겠다.
피가 거꾸로 솟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어느 순간 혈압이 확 올랐다가.. 어떤 순간 눈물이 막 나다가... 어느 순간 소름이 끼치며 갑자기 무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비랑가나의 본래 뜻은 “용감한 전사”라는 의미.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방글라데시 정치 지도자, 세이크 무집이 독립 후 연설에서 “당신들은 우리들의 어머니, 용감한 비랑가나입니다”라고 칭송의 의미로 이야기했으나 대중들에게는 ‘창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환향녀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원래 뜻과는 다르게 ‘화냥년=창녀’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비랑가나들에 대한 '공식적인 추앙'은 '비공식적인 멸시'가 추동한 것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 정부 공식 통계로 9개월의 분쟁기간 동안 20만 명이 넘는 여성이 파키스탄 군인에게 강간당했다. 그리고 이들 중 2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임신했다. 그런데 남편들은 전시 강간을 당한 자신의 부인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족들로부터도 외면 당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랑가나들은 그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쏟아낼 수 있는 회담,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살아낼 수 있는 연대와 전범재판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 힘 없이.......사람들에게 잊혀진다.
책에 나온 그대로 ‘분노’라는 감정은 비랑가나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작가는 201p에서 아누라다라는 예언가의 말로 인류의 불행을 간단히 정리한다. < "전쟁이 끝나면 남자는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여자들은 타락한 걸로 치부되고 ‘창녀’가 되어버린다."> 대학생이던 주인공 매리엄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파키스탄 군에 붙잡혀 ‘비랑가나’가 되고, 강간, 감금, 폭행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 그 장면들을 읽으며 ‘분노’와 ‘절망’과 ‘슬픔’ 등을 절절하게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냥 ‘그곳에 있었고’, ‘여성이었기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어처구니없는 많은 사건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지금 울고 싶은 사람, 아픈 사람, 그냥 이 시대를 살아 내고있는 사람... 들에게 읽어 볼 것을 권한다.
432p에 “우리는 욕심으로 사람을 죽인 적도 없고 누구를 공격한 적도 남의 재산을 빼앗아본 적도 없어요. 우리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있다.
마음으로 답을 되뇌어 보면서... 1971년에 있었던 질문과 답이... 2019년에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
|
남부 아시아의 인도 북동부에 있는 방글라데시는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할 때 파키스탄으로 독립하였다. 같은 이슬람교를 믿지만 벵골족이라는 이유로 무시와 핍박을 받아온 동파키스탄은 1971년 3월 26일 유혈 독립전쟁을 통해 서파키스탄(지금의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독립하였다. 세계 제일의 인구조밀국으로 외국 원조가 정부 재정지출의 반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궁핍한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다.
이 책은 1971년 독립전쟁의 상처를 28년 후에야 들여다본 이야기다. 모든 말은, 해석은, 항상 늦게 도착한다. 대부분은 진실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강자 입장의 자의적 해석으로 오곤 한다. 방글라데시의 비랑가나도 그렇다. 도대체 말도 안 되고 기가 막혀서 읽기도 불편한 폭력을 마주하는 일은 아무리 겪어도 신선한 절망이다.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용기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닮고 싶기 때문이다.
진짜 나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도망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왜 주저앉았나? 왜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게 되었나? 어쩌다가 그나마도 닥치고 침묵하게 되었나 나를 안다는 것은 어떠한가? 아는 것은 고사하고 ’모른다‘라는 것을 알기까지도 너무 오래 걸렸다. 게다가 거기서 그만 멈춘 채 멍청해진다. 나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가수 설리(본명 최진리)가 떠나고 다시 멍청하다. 뭘 좀 알고 싶은데, 멍한 정신을 차릴 새가 없다.
화가 나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나쁜 습관은 스스로에게도 그러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멀어졌나 보다. 나에게 난 화인지, 남에게 난 화인지, 아는 화인지, 모르는 화인지, 알지 못한 채로. 어떤 문제는 개인적 화이고 어떤 문제는 구조적 화인가 어떤 문제는 가벼운 피해이고 어떤 문제는 무거운 피해인가 그것은 다른가? 누가 정하는가? 왜 나는 답을 못하고 주저하는가? 나에게 묻는다. 또!
* 비랑가나와 ‘피해자 되기’
우리가 우리의 과거 역사를 여성의 입장에서 이렇듯 철저하게 까발려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한 사람의 아시아 여성으로, 역사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멀리 떨어진 나라 방글라데시의 1971년 독립 전쟁 당시 강간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저자 샤힌 아크타르가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한 전쟁 동안 군인들에 잡혀가 강간을 당한 ‘비랑가나’ 여성들의 숫자는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다. “전쟁 동안 20만 명의 여성들이 강간당했다고 공식적으로 언급이 되었지만 이 부분은 여전히 전쟁의 그늘로 남아 있고 우리는 진실을 모르고 있다.” 이 말인즉슨 상당수의 비랑가나가 ‘침묵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침묵하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리고 샤힌 아크타르는 이 소설에서 바로 그 침묵을 언어로 바꿔서 우리에게 전달한다. - ‘지워진 역사, 찾아낸 상처’ (옮긴이의 말 중에서)
**
피해, 피해자, 피해자 도우미(advocacy), 페미니즘. 이 네 가지 개념과 관계에는 정확한 지도가 없다. 분명한 것은 한 가지다. 피해는 그 자체로 진실이 아니라 투쟁으로 획득되는 개념이며, 이 과정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약자가 겪은 피해가 그대로 인정된다면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저절로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 되기’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로서 위치성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젠더는 피해 여부를 가리는 가장 치열한 격전장이다. 젠더로 인한 고통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깊이 숨어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놓치고 있는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 정희진,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 중에서
|
|
방글라데시는 1971년 12월, 9개월간의 전쟁을 끝내고 독립한다. 전쟁 동안 파키스탄군에 의해 강간당한 여성들을 의미하는 ‘비랑가나’는 문자 그대로는 ‘용감한 여성들’이라는 뜻, 전쟁이 끝난 후 방글라데시 건국의 아버지인 세이크 무집 총리에 의해 국가가 인정하는 전쟁 영웅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가족과 사회의 모진 냉대와 모욕 속에서 변질되고 퇴색된다. 마치 한국에서 ‘환향녀’가 ’화냥년‘으로 바뀐 것처럼 ?저자 샤힌 아크타르가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한 전쟁 동안 군인들에게 잡혀가 강간을 당한 ‘비랑가나’ 여성들의 숫자는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다. (공식적으로만 20만 명, 확실한 통계는 아니다) (P, 7) ?이 책은 내가 이프북스 출판사에서 서평단을 활동하면서 관계자에게 직접 제안한 책이다. 다른 좋은 책들도 많이 있었지만 읽었던 것들도 많았고 이 책의 정보를 미리 검색했을 때 알 수 없는 울림을 느꼈다. 평범했던 벵골 여성들의 가슴 아픈 역사는 마치 한국의 위안부 여성들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군인들에 의해 강간을 당했던 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물론 전반적인 역사도 중요하지만 나는 질문이 이 소설의 맹점인 듯 했다. 전쟁으로 인해 가정 먼저 희생된 자국민 여성들은 과연 국가가 어떻게 보살펴줄까? 소설을 읽으면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자연적으로 찾을 수 있다. 국가는 같은 나라의 사람들은 적군에게 강간당한 여성들에 대해 무자비 했다. 적군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여성들을 국가가 임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거나 아이를 해외로 입양 시키는 절차를 명령하였고 같은 나라의 국민들은 비랑가나를 말그대로 ’창녀‘ 취급하면서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버림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많은 비랑가나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창녀가 되거나 제대로된 국가적 처후를 받지 못한 채 생을 이어갔다. 사실 파키스탄 군인들이 여성들을 강간하던 시기에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식사나 물,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씻는 것은 물론이고 갈증과 허기는 일상이었으며, 강간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온 몸에는 상처투성이었다. 자국민에서 만들어진 민간 부대에서 그녀들을 발견했을 당시 거의 뼈대만 있는 앙상하고 정신을 반쯤 놓은 상태의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의 전통 옷도 재대로 걸쳐입지 못한 반 나체 상태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끔찍했던 사실은 비랑가나의 가해자가 비단 파키스탄 군인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국가는 가족은 남편이나 아버지 같은 남성들은 비랑가나 여성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 밖에 남성중심적이거나 가부장적인 부분도 언급된다) 누군가가 내게 누가 이 여성들을 이렇게 만들고 버렸느냐라고 내게 묻는다면 당연히 ’남성‘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도 약자들이고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도 약자인 셈이다. 한국의 위안부 처럼. 읽는 동안 고통과 분노로 힘들었지만 이러한 모순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해져야 하기에 휴식을 취하면서 계속 읽어나갔다. 이 이야기 속의 비랑가나는 전쟁에 자신의 몸을 희생을 한 것이 아니라 희생 당한 것이 맞다. 많은 국가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같은 나랑의 여성들을 이용하거나 버렸을 거라는 생각에 치가 떨린다.
|
|
<작전명 : 서치라이트> 북리뷰 이 책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군 성노예(바랑가나)의 삶을 살아야했던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500 페이지의 책을 다 읽고 나니, 분노와 망연자실함을 넘어서, 이제는 차라리 초연하고 결연한 기분마저 든다. 내가 이 책을 선뜻 펼치기 어려웠던 이유, 그리고 책을 들고서 평온하게 읽을 수 없었던 이유도 우리가 국적과 시대만 다른 쌍동이 같은 처지의 여성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한국의 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처음 뵈었던 것은 20년 전쯤의 수요시위에서였다. 바람도 매서운 날 흐트러짐도 없이 꼿꼿이 앉아서 허공에 주먹질을 함께 하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앞에 나와 발언하는 시간에도 활동가분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시기는 했지만, 여전히 서슬이 퍼런 생생한 분노와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일본 대사관을 향해 꾸짖고 항의 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정말 다시 생각해봐도 일군 성노예, 그 범죄는 너무나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믿기어려운 일이었다. 여성에게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전쟁은 원래 참혹하고 우리 안의 악마를 광장에 불러내 놓는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여성과 아이들을 한겹 더 지독한 지옥을 경험하곤한다. 내가 초반에 느낀 이 책의 주인공 매리엄은 마치 82년생 김지영처럼 때로는 답답할 만큼 수동적이었다. 자신의 재능과 소명을 알고 스스로의 성장에도 야심이 있는 교육받은 여성이었지만, 전시에도 그리고 평화로운 때에도 그녀는 계속 누군가의 누나이고 애인이고, 보호받는 자로 등장한다. 정치적 계략과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무리의 앞에 서며, 영웅이 되고, 작은 공동체의 부족처럼 군림하며 세상을 나눠 갖는 자들은 모두 지정성별 남성으로 등장한다. 매리엄은 기적적으로 마지막까지 생존하지만, 남성들과의 관계 안에서 곤경에 처하고, 구원되는 듯 하다가 다시 시궁창 속에 버려지는 부침의 과정을 겪는다. 그래서 책 중반에 등장하는 여성들과의 관계는 읽는 여성인 나에게 그나마의 안도의 시간을 선사한다. 좁은 수용소에 갇혀있는 너인지 나인지 모를 자매들의 등장. 그리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머니와의 관계, 예지 능력을 가지고 매리엄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 그리고 이 책을 쓰는 후대의 연구자와 주인공과의 아주 가깝다고도 할 수 없는 무심한 심리적인 거리 등. 여성들과의 관계에는 초점을 맞추어보면, 이야기 거리가 무궁 무진하다. 이 책을 읽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나의 상황에 따라서 이 소설의 내용 중 더 초점이 또렷하게 맞춰지는 지점이 그때마다 달라지는 것이 읽는 동안의 묘미였다. 낯설고 긴 사람이름들,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들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지명 등 고유명사들에 적응을 하고 나면 읽는 나의 머리 속에는 더욱 스피티 하게 한편의 숨막히는 영화가 전개되지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앞부분에 편집자가 제시해 둔, 등장인물에 대한 안내가 큰 도움이 되었다. ) 여기서 또한번 짚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작가인 샤힌 아크타르의 필력이다.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조사를 대체 얼마나 충분히 하면 정보가 차고 넘쳐서 저절로 서로 응집되어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이 깊이를 마련하게 되는가 말이다. 숨가쁜 전쟁 상황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서술하다가도,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이국적인 그 현장의 배경과 분위기를 그림처럼 읊어준다. 내밀하게 묘사하는 순간 순간들이 너무 생생해서 읽는 나의 머리 속에는 '백년동안의 고독'처럼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출연하는 모든 사람들의 서사를 심층까지 저 바닥까지 고개를 들이밀어 묘사하곤 하는데, 그 줌인, 줌아웃의 속도감에 멀미가 나기도 감탄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대체 이 현란하고 굽이치는 생경한 이국의 소설을 어떻게 한글로 번역해낼 수 있었을지, 나에게 이런 어려운 미션이 사는 동안 떨어지지 않기를 잠시 바래보기도 했다. 저절로 두번을 읽게되는 소설이었다. 군 성노예라는 한 생의 분노로 부족할 여성들의 비극의 역사를 생생하게 가까이 들여다보고 제대로 분노하고 싶은 분들에게 권한다. 당신이 이 책의 풍성함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이 책은 내내 마법같은 경험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 샤힌 아크타르의 필력 엄청나다.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조사를 대체 얼마나 충분히 하면 정보가 차고 넘쳐서 저절로 서로 응집되어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이 깊이를 마련하게 되는가 말이다. 숨가쁜 전쟁 상황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서술하다가도,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이국적인 그 현장의 배경과 분위기를 그림처럼 읊어준다. 내밀하게 묘사하는 순간 순간들이 너무 생생해서 읽는 나의 머리 속에는 '백년동안의 고독'처럼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출연하는 모든 사람들의 서사를 심층까지 저 바닥까지 고개를 들이밀어 묘사하곤 . 저절로 두번을 읽게되는 소설이었다. 군 성노예라는 한 생의 분노로 부족할 여성들의 비극의 역사를 생생하게 가까이 들여다보고 제대로 분노하고 싶은 분들에게 권한다. 당신이 이 책의 풍성함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이 책은 내내 마법같은 경험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
|
작전명 서치라이트는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독립전쟁과 여기서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작전명 서치라이트 책은 나에게는 어려운 책이었다. 평온하다고 할 수 있는 일상에서 이 책을 펴면 나는 당시 방그라데시의 전쟁사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폭력들이 일상처럼 난무하는 곳에 나의 감정을 던지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해서 책이 알려주는 이야기와 나를 분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후기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책을 읽으며 지옥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계속해서‘역사적 사실’로 구분 지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으로서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가부장제의 역사는 어쩜 그렇게 반복되는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착취하고, 착취당한 여성들에게 ‘자발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그들에게 ‘창녀’라는 낙인을 덧붙이는 걸 보며 역겨웠다. “당신들은 우리들의 어머니, 용감한 비랑가나입니다.”라며 칭송하며 낙인찍는 방식까지. ‘민간 외교관’으로 칭송되었던 미군 기지촌 여성들, ‘화냥년’으로 불려졌던 여성들과 역겹도록 같았다. 남근질서는 범국가적으로 여성을 한결같이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참담했다. 이 책은 단지 그때 방글라데시의 여성들은 이랬구나,라는 개별적인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토록 많은 여성을 강간하고 죽이고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남성들과 반대로, 전시성폭력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창녀'라는 낙인에 갇혔던 여성들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다가가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전쟁 속에서 반복적으로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까지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1970년대에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착취당했던 20만명의 여성들과 2019년의 우리들이 연결되어, ‘비랑가나’가 되었던 여성들이 기억되고, 또 더 많은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길 소망한다. |
|
작전명 서치라이트는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독립전쟁과 여기서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작전명 서치라이트 책은 나에게는 어려운 책이었다. 평온하다고 할 수 있는 일상에서 이 책을 펴면 나는 당시 방그라데시의 전쟁사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폭력들이 일상처럼 난무하는 곳에 나의 감정을 던지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해서 책이 알려주는 이야기와 나를 분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후기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책을 읽으며 지옥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계속해서‘역사적 사실’로 구분 지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으로서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가부장제의 역사는 어쩜 그렇게 반복되는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착취하고, 착취당한 여성들에게 ‘자발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그들에게 ‘창녀’라는 낙인을 덧붙이는 걸 보며 역겨웠다. “당신들은 우리들의 어머니, 용감한 비랑가나입니다.”라며 칭송하며 낙인찍는 방식까지. ‘민간 외교관’으로 칭송되었던 미군 기지촌 여성들, ‘화냥년’으로 불려졌던 여성들과 역겹도록 같았다. 남근질서는 범국가적으로 여성을 한결같이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참담했다. 이 책은 단지 그때 방글라데시의 여성들은 이랬구나,라는 개별적인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다가가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전쟁 속에서 반복적으로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까지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1970년대에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착취당했던 20만명의 여성들과 2019년의 우리들이 연결되어, ‘비랑가나’가 되었던 여성들이 기억되고, 또 더 많은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