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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휘발유를 만들려면 물을 섞는다고 했다. 그런데 물을 많이 섞으면 차에 시동이 안 걸리니 진짜 휘발유를 물보다 더 많이 넣어야 된다고 우스갯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진짜 같은 가짜, 진짜에 가깝게 그럴듯하게 만들어야 되겠지. 진짜에 버금가는 아류들로. 진짜에 가까운 가짜, 얼마나 많을까?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래서 '본가/명가/원조' 이런 말들이 접두사처럼 붙는다. 진짜 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아무리 이런 단어들을 붙인다고해서 진짜일까? 하물며 페미니스트 책 읽기를 달마다 해왔는데, 2월은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이다. 진짜를 표방하지만 이 진짜도 시간이 흘러 깊숙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 편견과 수없이 부딪히고 타협하게 되고 결국은 정치화되고 도구화의 이슈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속적인 연대와 목소리를 내어왔지만 페미니즘은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의 토대 위에 있음을 느낀다. 가부장제 틀 속에서 오랫동안 지탱해왔던 억압과 편견들은 얼마나 공고한데.
처음보다 읽기는 수월해졌다. 하지만 글로 적는데 애를 먹는다. 읽고 이틀이 지났다.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책에서는 1장 '진짜'는 없다 편에서 책 제목과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구나 하며 읽었다. 그러나, 2/3/4장에서는 생각과 다르게 여자의 몸에 대한 우리사회 시선이 이분법적으로 적나라하게 나눠져있음을 이야기한다. 차별과 폭력의 수단과 결과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래서 읽는 내내 답답했구나 싶다. 장소를 향한 폭력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여자라서. 거기에 있으면 안 되었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 남자였으면 달라졌을까? 그럴지도. 같은 공간인데, 다른 자리에 있는 아내와 여자들, 미친년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렇게 보는 시선은 다르지 않다.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순간은 당연한 권리를 요구했거나, 그저 내 생각을 말했을 때 페미니스트라 불렸다. 낙인의 의미로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너무도 쉽지만 '진짜' 페미니스트는 너무도 숭고하여 셀 수 없이 많은 판관들의 인증을 거쳐야 한다." 페미니스트라 말한 적 없다. 그냥 예전에는 말하지 못했던 당연한 권리를 이제서야 요구했고,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잘못된 부분을 잘못됐다고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쳐다본다. '전에는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달라졌다고.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리고 심중에 낙인을 찍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곁눈질로) 페미니스트인가 보다. 왜 사람들은 바른 말, 옳은 말 하는데 불편해할까? 페미니스트의 의미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바로 알면 페미니스트에 대해 낙인찍는 것 없이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일텐데..... 이런 점이 아쉽다. 그래서 진짜 페미니스트는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없이는 당연히 없겠구나 생각이 든다. '불편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라서 좋아요' 뭔가 평가를 받는 듯한 이 말 속에 우리 일상 속 페미니스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같은 여자들이라도 관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도대체 불편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뭘 하는 인간인가? 자문한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칠 즈음 곧장 이런 반응을 보인다. 당신은 남성을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당신은 다른 것 같다고 말이다. 이에 나는 나야말로 누구보다 진짜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덮어놓고 짐작했던 모습과는 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불편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선호하는 이들은 사회 개혁보다는 페미니스트 재교육에 관심이 많다. 페미니스트 감별사가 되어 페미니스트를 얌전하게 길들이려 한다. 진정한 페미니스트 또는 선량한 시민임을 증명하도록 강요받지만, 증명한다고 이해받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해는 불공정하게 돌아간다.
이유야 어떻든 '진짜와 가짜' 페미니스트 논쟁은 소모적이라 생각한다. 늘 강요받고, 이해받지도 않는 불안정한 위치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은 제 위치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한다. 진짜는 없더라도 페미니스트가 불편하지 않다면.... 그건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다시 페미니즘에 대해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 될 듯 하다. 페미니스트는 탄생할 때마다 밟히기 때문에 매번 새로 태어난다. 언제나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죽은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인가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가 새로운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 목소리가 밟혀지지만 묻혀지고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계속......... 용기있는 사람이 세상을 조금씩 천천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전통적인 페미니즘도 여러 부침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렇게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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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이 책은
이 책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는 <완벽한 페미니즘이라는 환상>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각성을! !
저자는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모든 종류의 예술을 사랑한다. 미술과 예술경영을 공부한 후 문화기획과 문화교육 분야에서 일했다. 개별 작품보다 작품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예술과 정치 관련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왜 ‘진짜’는 없다는 걸까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라는 제목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앞부분에 1장을 우선 집중적으로 읽었다. 제목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그 뒤에 글들이 제대로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였고, 그 말들이 의미하는 바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10쪽)
<“‘진짜’ 페미니스트를 강조하지만, 때로 ‘진짜’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언어다. (……) 페미니스트 감별사가 되어 페미니스트를 얌전하게 길들이려 한다. 태도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내용을 무시할 수 있어서다. 나에게 공손하기만 하다면 너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너의 말을 교양 있게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27쪽)
‘진짜’라는 말을 앞에 붙이는 순간, 페미니스트에는 여러 갈래가 생기고, 그 중 어떤 것은 진짜가 되고, 어떤 것은 진짜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어느 것은 다른 어느 것을 비난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를 자연 어느 것을 배척하게 되고, 비난하게 되는 우스운 일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결론에 이른다.
<“하나의 진짜 길만 있는 사회보다는 여러 종류의 다른 길이 있는 사회가 옳다. 물론 ‘잘못된’ 길에 이르거나 위험한 길에 다다를 수 있으며, 길을 더럽힐 수도 있다. 때로는 막다른 길에 이르러 다시 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반복하며 길을 알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도 그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 실패를 쌓아 균열을 만들 권리가 있다. 실패조차 하지 못하면 영원히 고립된다. 완벽하지 않아서 부정당할 필요는 없다.”>(42쪽)
이런 논리는 비단 페미니스트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민주 사회의 어떤 가치에도 적용이 가능한 논리다. 해서 저자의 이런 시각, 마음에 들었다.
부지불식간에 저절로 이렇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오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차별, 가부장제 의식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해서 이런 글을 읽으면, '아, 그렇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말에 익숙해져 있었구나' 하는 반성이 일게 된다
<“조국을 버리고 사랑하는 남자와 뜻을 함께한 여자”로 가네코를 소개하는 방식은 성차별적이다. 조국을 버리고 남자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와 뜻이 맞는 남자를 만난 것이다. 게다가 ‘박열의 연인’은 그의 인생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 누구의 여자라는 시각에 갇혀서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아주 편협하게 그릴 수 있으며, 대부분 여성의 삶이 이러한 편협한 틀에서 기록된다.> (60쪽)
사회현상을 들여다보는 방법 .
저자 소개하기를 ‘예술사회학 연구자’라 하는데 ‘예술 사회학’이란 게 어떤 분야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 책을 통하여 그 지향하는 바와 어떻게 사회문제에 접근하는지, 그 맛은 볼 수 있었다.
저자는 각종 예술을 매개로 하여 사회 현상을 분석한다. 우리 드라마, 외국의 드라마, 영화, 소설, 등등. 해서 그런 작품들을 통하니, 오히려 사회현상이 잘 들여다보인다.
예컨대, 여행을 하는 경우다. 남자가 여행을 떠나는 경우, 성장을 위한 모험, 자아 찾기, 새로운 세계의 발견으로 결론이 나지만, 여성의 여행은 다르다. 여성들의 경우는 대개 안전하게 돌아오지 못한다. ‘남성없이’ 집을 떠난 여성들에게는 비극이 일어난다.
이런 경우는 일상생활에서도 여성이 각종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 출퇴근시를 비롯하여 일상을 영위하는 가운데 성추행, 성폭행을 비롯하여 살해되는 경우 등 - 저자는 영화 몇 편을 예로 들어 그 위험을 강조한다. <테이큰>, <몬스터>, 그리고 <델마와 루이스>.
영화에서 집을 나선 여인들은 제대로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납치되어 아버지에 의해 구출되어 돌아온다거나, 연쇄 살인범이 되기도 하고, 절벽 위로 차를 몰아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런 영화, 작품들이 백마디 말보다 훨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저자는 그런 것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다.
새롭게 깨닫는 것들
편안할 ‘안(安)’자는 집에 있는 여성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집에 여자가 있어야 남자가 편하다는 의미다. (143쪽)
안데르센의 동화 두 편, 새롭게 읽을 수 있었다. <나무 요정> (11쪽) <눈의 여왕> (206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정답을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자꾸 통제한다. (47쪽)
누군가가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주장할 때 그 권리가 자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동안 ‘특권’을 누려왔다는 뜻이다.( 67쪽)
다시, 이 책은? - 이건 과하다
저자의 글에 100 %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이해가 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하면서 나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읽을 수 있었는데, 다음의 글들은 너무 과하다 싶어, 기록해 둔다.
<36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전직 외교관은 자신의 책에 아예 “하루 세 끼 식사는 중요한 로비 수단”이라는 장을 둘 정도로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가지 궁금증은 해소 되지 않았다. 집으로 종종 손님을 초대했다던데, 그 음식은 누가 만들었을까?> (195쪽)
인용문에서 말하는 전직 외교관의 직급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만약 대사라면 대사관으로 손님을 초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대사 부인이 음식을 만들었을 것인데 대사관에는 대개 요리사가 있어, 음식 만드는 것을 전담하고 있으니, ‘그 음식을 누가 만들었을까?’ 라고 묻는 그 의도와는 다른 상황일 것이다. 또한 그 밑의 직급이라 할지라도, 외국에서 외교를 하는 경우까지 ‘여성의 안사람화’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너무 과하다 생각이 든다.
나혜석 <말년에 가난했으며, 가족에게 외면받았고 자식과도 만날 수 없었으며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무연고로 죽었으니 그의 삶을 ‘불행’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세계 여행을 한 나혜석에게 무슨 여한이 있을까 싶다. 그는 돌아다녔고, 말했다. 그의 인생을 ‘불행’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가부장적 시선이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고, 설치고, 나대면 이렇게 불행해진다는 교훈을 주고 싶어서다.> (206쪽)
나혜석의 비참한 말로는 다 알려진 사실인데, 그것을 ‘불행’하다 하는 평가가 가부장적 시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나혜석의 말로에 대하여 뭐라고 해야 하나? 저자 말대로,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세계 여행을 한 나혜석이니, 여한이 없겠다,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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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찐이야’라는 노래부터 ‘찐-‘을 접두어로 많이 사용한다. 한동안 인싸라는 말도 쓰더니, 인싸중에 ‘찐’인 핵인싸라는 말도 사용하고, 왜들 그렇게 그 중에서 내가 더 진짜이고 더 앞서간다고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찐이야’라는 노래도 내가 이름이 수진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내 노래라며 들어보라고 해서 들어봤었다. 또 인싸라는 말을 누가 사용하길래 예전에 지식인을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고, 또 누가 핵인싸라고 해서 찾아보니 인싸중의 인싸가 핵인싸라는 걸 알게되었다.
요즘 인싸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데, 유행이 지난 것인지 아니면 인사이트가 하도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이트라서 거기서 만들어진 용어인 인싸가 없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면서 작가가 했던 말중에 인종차별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운동이 인종 분열을 조장할지 걱정하지 않으면서, 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성대결이라는 이야기는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진짜 페미니스트인지 판단을 하려고 나선다는 것이다. 내가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데 내가 진짜인지 아닌지 너가 진정한 페미니스트라고 말할수 있는지 타인이 평가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인종차별이 있는지 여부를 백인에게 물어볼지 흑인에게 물어볼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나오는 답인것처럼, 페미니즘 관련하여 남자들이 여성상위시대가 왔다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에스페란토 배우면서 함께 노래배우는 교실에서 함께 사용한 식기들을 남자들은 설거지 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하거나 내가 했었다. 어느날은 나에게 어떤 남자분이 턱짓으로 설거지 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심지어 난 내가 먹고있던걸 다 먹지도 않은 상태였다. 돌아보니, 어떤 내과 의사선생님이 본인의 컵을 설거지 하고 있었다. 그 분이 하시는게 싫어서 다 먹지도 않은 나에게 턱짓으로 설거지를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어느날은 여자들 중에 가장 나이많으신 분이 설거지를 하려고 하는 순간 어떤 분이 ‘왜 선생님이 그런일을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런일은 누가 하는 것일까? 그런일을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평화를 지향하는 평등한 언어라고 하면서 누구의 평화를 지향하고 누구와의 평등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이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없이 했던 말들이 떠오르고, 마음속으로 담아두었던 일들도 하나씩 떠오른다. 내 남자친구는 친근하게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를 잘 한다. 식당에서 식당 이모님들과도 허물없이 이야기하는걸 보면 언제 봤다고 친한척이야 하고 생각이 든다. 그런 후 나중에 우리 언니에게 말하면서, ‘내 남자친구는 아줌마같아,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엄청해’ 라고 말해버렸다. 말한 1초도 안되어 내가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인건지 싶었다. 아줌마같다니, 아줌마같다는 것이 어떻다는 것이길래, 난 그러한 성격을 아줌마같다고 정의내리고 말로도 내뱉었다. 언니에게 너무 미안했다. 생각이 제대로 박혀야 주둥이도 제대로 놀린다고 생각한다. 배우고 생각해낼 것들이 많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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