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작가 칼리 출판 열림원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왔어요. 사랑 누구나 하는 것이지요. 저자가 말하는 아이들만 할 줄 아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에 관심이 갔어요. 그리고 작가는 싱어송라이터라는 부분도 책이 서정적이지 않을까 기대감도 갖게 하였구요.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는 여섯 살 브루노의 시점으로 이야기 해나가고 있어요. 고작 여섯 살의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내야 한 브루노가 겪는 슬픔, 상실감, 그리움 들을 담고 있어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이기도 하다는 군요. 병으로 젊디 젊은 엄마를 너무나 어린 나이에 잃었어요. 엄마는 고작 서른 세살이었고 브루노는 여섯 살이었어요. 사람들은 엄마의 장례식을 브루노가 너무 어리다고 보지 못하게 했지요. 브루노는 기억해요 엄마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었던 그 순간 그 장면을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거예요. 엄마의 장례식은 끝났고 남겨진 아빠, 형, 누나들 그리고 브루노. 여섯 가족이었지만 이젠 다섯 명만 남았어요. 브루노 뿐만 아니라 아직 어린 형, 누나들도 엄마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빠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선술집에서 싸움까지 벌이고 그 장면을 브루노가 보게 되지요. 형은 그냥 돌아갔지만 브루노는 아빠를 두고 그냥 돌아올 수 없었어요. 그 곳에서 아빠를 데려가야만 했지요. 아빠까지 잃을 수는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학교에 새로 전학온 알렉. 푸른 눈을 가진 아주 잘생긴 친구였어요.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 둘은 바로 그날 절친이 되어버려요. 앞으로 자라면서 이 둘이 어떤 관계로 발전하게 될지 호기심이 생겨요.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담겨있는건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는 의문으로 남네요. 엄마라는 존재는 언제불러도 눈물이 나는 단어라고 하잖아요. 엄마가 곁에 있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요. 그런 엄마를 잃은 아주 아주 어린 꼬맹이 브루노의 마음을 공감할 수도 있고 안타까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도 만드는 이야기였어요.
|
|
한 아이가 엄마를 잃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엄마만 잃은 것이 아니였다. "엄마는 내가 삶에서 너무도 필요로 하는 사랑을 모두 앗아갔어요" 라고 말한다. 프랑스 싱어송라이터인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회고하며 여섯 살의 브루노를 통해 자신이 느낀 상실감과 이별의 아픔, 죽음에 대한 생각과 사랑의 갈망 등을 투영하여 토해내고 있었다. 섬세한 감정 표현과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브루노에게 어느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도, 엄마가 잃은 상실감에 대해 알려주지도 물어봐주지 않는 부분이 아이의 이후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잘 담아내고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아요. 대체 언제까지 돌아가신 채로 있을 거예요? (40p)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브루노에게 친구이상의 존재가 생겼다. 알렉이라는 친구이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서 엄마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받으며 생활하며 브루노에게도 여러 일들이 일어나면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작품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브루노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그리고 자신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였던 알렉과도 점차 떨어져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과 지속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은 읽는 내내 먹먹함을 주었다. 겪어보지 않고는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상실감이 아닐까? 단순히 소중한 사람이 곁에 없음이 아닌 엄마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겪은 어린 브루노의 엄마에 대한 부재는 엄마를 잃은 그 이상의 삶을 송두리째 잃은 것같은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돌아가신 채 있을 거예요?"라는 이 말은 작품을 모두 읽은 지금도 머릿 속에 오래도록 맴돈다.... |
|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죽음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사고로 돌아가신 외숙모의 죽음. 그냥 내 주변 사람들이 너무 슬프게 울어서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외숙모가 다시 돌아왔으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외숙모의 옷과 소지품을 태웠던 장면이 떠오른다. 또 하나의 기억은 친구의 아버지의 죽음이다. 나름 친한 친구였는데(그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키도 컸고 활달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 가족은 꼭 이사를 갔다. 사람들 또한 그 집에 가길 꺼려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브루노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여섯 살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을 경험한 아이 브루노의 이야기다. 어리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브루노의 상처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크다. 어른들의 어리다는 생각과 배려가 엄마와 이별할 시간조차 빼앗아가버린 것이다. 아이는 죽음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소중한 엄마였기에 일상을 엄마와 공유하고자 한다. 브루노뿐 아니라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 엄마를 잃은 슬픔이 힘겹기만 하다. 특히 아빠가...
브루노는 엄마의 부재가 주는 어두운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 알렉네 집이나 외할머니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 브루노에게도 사랑은 찾아온다. 엄마의 죽음으로 카롤의 잠깐 주어지는 관심이 좋다. 하지만 브루노는 카롤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보다는 아이가 하기 극단적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해 카롤과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이 책은 아이의 입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에 폭행이나 성추행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인지가 없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이 주는 충격이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엄마의 죽음은 아이에게 죽음이 그리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 같다. 그의 연장선상에서 브루노의 잘못되고 극단적 행동들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행동들에 대해 어른들은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 어쩌면 브루노가 너무 어리기에, 또는 아이가 너무 큰 상처를 경험했기에 그냥 두고 보는 것 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더 무서워졌다. 브루노의 삶이... ㅠ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
헤어짐에 관한 책..
브루노라는 아이에게 닥친 이별 이야기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이별의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큰 이별인 엄마와의 이별을 시작으로 잠깐이지만 친한 친구와의 이별,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와의 이별, 반려견 그리고 반려묘와의 이별, 친한 형과의 이별, 럭비공과의 이별 등 수많은 이별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별의 사건을 얼마나 자주 마주할까? 어떤 분들은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키우던 동물과 이별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친한 친구나 친척들의 떠남을 경험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돌이켜보면 무수한 이별이 있었다. 그런데 '산 사람은 산다'는 말 때문일까? 지금은 또 아무렇지 않게 지내곤 한다. 마치 이 책에 나오는 부르노의 가족들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좀 예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는 이별한 대상과의 추억을 얘써 잊어야하는 사회에 살아왔음을 느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에'라는 논리에 갇혀서 말이다. 그래서 어린 부르노에게도 끊임없이 어머니를 잊으라 한다. 그 추억을 소중히 간직해줘야 할 가족들이 말이다. 하지만 6살 브루노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엄마를 부른다. 그리고 속으로 엄마는 절대 죽지 않았다는 말을 되뇌인다. 어린 부르노는 아직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 부르노에게 가족들은 폭력을 가하고 브루노는 반항한다. 그것이 이 책은 이것의 반복을 보여준다. 잊어! 싫어요! 잊으라고! 싫다고요! 너 왜 그러니? 나한텐 왜 그래요?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을 꼽자면 생일 날 일곱살이 되기 싫어했던 브루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여섯살의 브루노로 남아 있어야 서른 셋의 살아있는 엄마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계속 여섯 살이면 좋겠어요. 여섯 살이 좋아요. 내가 여섯 살일 때는 엄마가 아직 살아 있었으니까요. (p 138)
이 책은 제목이 참 독특하다. 오직 아이들만 사랑을 한다. 추측해본다. 브루노만이 엄마가 살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 감정은 오직 아이들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브루노가 짝사랑하는 카롤과의 춤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것이 아마도 브루노에겐 엄마와의 재회로 비쳐졌기 때문에 이 가사가 나온게 아닌가 싶다 p 74)
엄마는 죽지 않았어요.
이 한 마디가 어른과 아이를 갈라놓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슬픈 어른동화이다. 아이였을 때의 잃어버린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동화책말이다. 비록 해피엔딩은 아니지말 말이다. |
|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모두 알고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종종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괴로워한다. 이미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죽음은 죽는 그 당사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죽음은 죽는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누군가의 죽음으로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즉 누군가가 죽었을 때 죽는 그 사람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겠지만 그 사람의 죽음이후 그 사람을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죽음은 시작이다.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는 주인공 브루노가 엄마가 죽고 난 뒤 그의 삶을 브루노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단순히 아이들이 조금은 의아했다. 제목은 따뜻한 느낌을 주고 순수한 느낌을 주는데 책 표지가 너무도 어두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동안 '아이들'에게 가졌던 선입견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 선입견으로 인해 '아이들'은 단순히 사랑을 할 때도 마냥 따스하고 순수하고 밝고 희망적인 사랑만을 할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이 책은 주인공 브루노가 엄마의 죽음이후 어떠한 일들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들이 생각처럼 희망적이고 밝게만 성장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주인공 브루노는 죽음을 대면하기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엄마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아직 여섯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에게는 엄마의 죽음만으로도 힘든데 어른들의 생각으로만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채 엄마를 떠나보내게된다는 가혹한 현실을 겪는다. 엄마의 슬픔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해서일까? 그 이후 그는 무엇보다도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다. 어느날 알렉이 전학을 오게되고 브루노는 알렉을 처음엔 질투했지만 점차 절친한 친구사이가 된다. 그러다 브루노는 절친 알렉과 떨어져 생판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여름을 보내게된다. 사실 브루노가 여름 캠프에 가게 된 이유는 아빠가 브루노가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이유였기에 브루노는 어른들의 이런한 행동에 부당함에 분노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여름캠프를 보내고 돌아온 집은 브루노에게는 다른 시련들이 찾아오고 그는 처음으로 '세상을 떠났다'라는 것의 의미를 깊게 깨닫게 되고 그는 엄마의 죽음을 처음으로 온맘을 다해 체감하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이들도 사랑을 하는 구나 그리고 아이들도 누군가를 사랑했듯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임의로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것을 막지 말아야한다는 것 모두 다 때가 있고 그 때를 놓치면 쌓이고 쌓여 터지게 된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른들이 알지못하는 아이들의 섬세하고 미묘한 심리와 아이들의 사랑에 대해 아이들의 슬픔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어른의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는 아이의 시선, 그 시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하는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였다. " 슬픔이 나무가 되어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고통으로 나를 굳게 해요. 내 가지에, 내 나무줄기에, 주위의 풀에 눈물이 어려 있어요. 왜 나는 더 많이 울지 못할까요?" 그들은 아무것도 불태우지 않았어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불태우지 않았어요.
|
|
브루노는 어릴때 엄마를 잃었어. 자기의 전부였던 엄마. 엄마를 잃은 브루노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망가져 갔던걸까, 회복되고 있던걸까. 책을 읽어나갈수록 나는 그 아이가 망가져가는것만 같아서 안타까웠어. 카롤에게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브루노. 개미들을 죽야만했니. 탓할 무언가가, 슬픔을 잊을만한 자극이 필요했던 거니. 엄마를 잃는다는 게 어떤것인지, 여섯살 그 나이에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모르니까.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과 외로움. 그렇게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단어만을 나열한다고 알 수 있을까. 그 절망감을. 94p 삶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아요. 삶은 그 어떤 변명도 받아주지 않아요. 삶은 그런거예요. 그렇게 지나가는 거예요. 머리에 이가 생겼던 브루노. 그 어린아이가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할아버지가 머리에 붙은 이를 하나하나 떼어냈어. 할아버지의 손길이 내 머리에도 느껴졌어. 나는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아아 이렇게 따뜻한거구나라고 느꼈어. 브루노는 몸이 아프다면 할아버지 집으로 오라고 했어. 상처받은 마음을 나는 치유받고 싶어. 갈수만 있다면 나는 가고 싶었어. 102p 할아버지가 병을 낫게 해줄 거예요. 할아버지가 여러분의 병을 쫓아내줄 거고, 여러분은 상처입은 몸에 깃든 병으로부터 벗어나 회복될 거예요. 학교에 있을 때 브루노는 행동하고 말을 하고 슬픔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방학이 왔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알렉을 보내고 브루노 자신도 캠프에 가게 되면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들이 마구 늘었어. 어째서일까. 더 큰 관심을 얻고 싶은걸까. 하지 않는 건 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이만큼 상처입었어, 라고 말하는 걸까. 164p 아가야, 귀여운 아가야. 이제부턴 다 괜찮아질거야. 약속할게. 꼬마 브루노. 오늘 밤엔 내가 네 엄마야. 사실 나는 알아. 브루노. 너의 그 절망감은 다 모르지만 나는 알것같아. 너의 그 행동들 말야. 어릴때 어린아이는 더 크게 세상을 삐뚤게 바라볼 수 있거든. 세상이 작으니까. 내가 아는 세상이 내가 아는 감정이 전부니까. 나는 말야 브루노 네가, 네가 느낀 그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 나는 네가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 |
|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유명한 가수의 자전소설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방황했던 그 어린날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 예술가들은 상실을 겪은 경우가 많은 걸까요. 특히 연예인들은.
상실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나 봅니다. 어머니가 떠나는 것을 그 아이는 보지못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아픔은 계속 그 아이의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잘생긴 아이였지만 더 잘생긴 아이가 전학왔습니다. 처음에는 그 미모에 질투했지만 나중에 그 아이가 쟤는 내 친구예요라는 말 한마디에 친구가 되었습니다. 친구의 집은 황폐해진 그 아이의 집 대신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신에게 멀어진 거 같아 거칠게 대했습니다. 평소라면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의 흔적이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거 같습니다.
그런 그 아이를 그 아이의 친구가 위로하였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아이는 친구에게 진한 키스를 하였습니다. 모두가 멀어졌지만 그 아이가 사랑하던 아이는 그 아이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이 책은 어머니를 잃은 아이의 방황하는 하루하루를 쓰고 있습니다. 자전소설이라는 것과 마지막의 감사인사를 봤을 때 어린시절의 회고록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 갑작스런 이별을 경험하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을 보니 그 감정의 조각들이 아프게 다가오긴 하였습니다. 마지막 즈음 아이는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있어요? 하나님은 어디있어요? 하나님은 어디있어요
아름답고 슬프게 다가오는 이 책.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잘 읽었습니다. |
|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엄마의 장례식에 갈 수 없었던 브루노, 흔히들 그렇듯 어른들은 어린아이라 엄마를 잃는 상실감이 어떨지 무심코 흘려 넘겼을지 모릅니다.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매일 아침잠을 깨워주고 “사랑해”라는 인사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고, 매 끼니 식사를 차려줄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는 의미도 됩니다. 언제라도 엄마가 있던 곳에 달려가면 만날 수 있었던 엄마, 아니 엄마는 항상 시선을 아이에게 맞추고 기다리는 존재였기에 아이는 엄마를 신경 쓰지 않고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가 세상을 떠나갔으니.... 어린아이라고 엄마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의미를 모르는 것일까요
엄마가 불에 타네요. 나는 겉창 뒤에서 엄마가 불길 속에 사그라져 재가 되는 모습을 보고 있어요. 아무것도 이해가 안 돼요. 나는 여섯 살이에요. -p. 29
서른 셋의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하직한 마레유. 죽음이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기에 어린아이는 감당할 수 없다 여긴 어른들의 판단에 6살 브루노는 엄마의 장례식을 창문 뒤에서 훔쳐보는 걸로 대신하게 됩니다. 엄마의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들에게 장차 어떤 일들이 펼쳐지게 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얼마 전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4세의 어린아이가 장례식에 다녀와서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너무 어린아이라 죽음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헤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를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잠시 아이를 맡아야 했던 나로서는 아이에게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죽게 되는데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말로 위로를 대신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안심했고 더 이상 잠을 자면서 흐느끼지도, 고장 난 수도꼭지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알렉의 방으로 말하자면, 정말 마법 같아요. (...) 거기서 우리는 밤에 별을 봐요. 여행을 하고, 하늘을 날아요. 우리의 삶은 아름다울 거예요. 우리는 죽지 않을 거예요. -p. 49
브루노에겐 엄마, 브루노 아빠에게는 아내를 잃는 슬픔이었지요. 아내의 장례식을 마친 아빠는 두 팔에 아이들을 끼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슬픔을 감당치 못하고 술에 빠져 살아갑니다. 아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른이라도 중심을 잡고 남겨진 아이들이 더 이상 외롭거나 아프지 않게 보듬어 줘야 할 텐데, 브루노의 아버지 또한 엄마처럼 세상을 떠나게 되다니.... 남겨진 아이들이 감당할 감정의 몫은 어찌하라고.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알아요. 오직 아이들만 멀리서 우리를 태워버리려고 천천히, 부드럽게 다가오는 사랑을 감지해요. 오직 아이들만 사랑이 떠나갈 때 외로움의 깊은 절망을 끌어안아요. 오직 아이들만 죽을 만큼 사랑해요. 오직 아이들만 숨쉴 때마다 온 마음을 걸어요. 아이의 마음은 시시각각 폭발해요. -p.74
이별에 대한 상처는 결국 또 다른 만남으로 치유가 된다고 했던가요? 알렉이라는 남자아이가 전학을 온 후 브루노는 호감을 느끼고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온화한 엄마와 형제들과 또한 엄격하고 냉정한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고통받는 알렉의 아픔을 알게 된 브루노는 알렉의 상처를 보듬고 이해해 줍니다. 사람이 힘들 땐 남의 고통을 외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브루노와 알렉은 어려울 때 더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칼리
열림원
,
,
,
여섯 살이 어린 칼리는 아픈 엄마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체험을 해야만 했다. 보통 여섯 살이라면, 어린 아이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십상이겠지만 그래서 엄마의 장례식 자리에도 참여 할 수
없지만, 칼리는 알고 있었다. 다만,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시간이 지나도 그토록 그리운 엄마가 왜 다시
돌아오지 않는지 모를뿐. 어린 칼리는 마치 고요속의 시계 초침이 온 힘을 다해 움직이며 소리를 발산하는 것처럼, 엄마의 죽음 이후로 그 아픔을
철절히 경험하고 있다.
물론, 칼리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그 시간을 기록하지만
아이들이 이토록 상실을 아파한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그걸 간과하고 있었구나 싶다. 나 역시 어른의 관점으로 어린 칼리의 고통을 대면하고 있는
것.
![]()
![]()
울고, 눈물이 가득차고, 흥건해지고, 비워내고, 자꾸만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어린 칼리.
칼리만 그랬을까?
칼리의 아버지는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며 어린 자녀들을 양 팔에
끼고 돌아오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예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선술집에 자신을 내어 맡긴다. 아니 허물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를 열두살인
산드라 누나가 겨우 가족들을 지탱하고 있다. 산드라 누나도 칼리와 동일한 눈물이 차오르겠지만 연신 훔쳐 내며 가족들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사실 산드라 누나가 가장 오랫도록 힘든 당사자가 아니었을지... 어린 산드라..
![]()
![]()
아빠를 먼저 보내드리고 아니 엄마가 먼저 떠나시고 뒤이어
아빠가 떠나신 자리에 나는 어린 칼리였으며, 어린 산드라 누나였다. 동공이 흔들린다고 하는, 나의 전 존재가 흔들린다고 하는 그 아픔을 우리는
소리내지 않고 그렇게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아니 그 시간이 나를 찌르는 칼이 되어 아픔을 감당해 내고 있는것이다. 그게 삶이며 죽음이 아닐까.
인간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지나가며 삶을 끝맺어야 하고,
누군가와 이별하게 되어있으므로.
아를레트 뷔장 아주머니도 항상 우리 곁에
있어줘요. 성실한 아주머니는 우리의 뗏목을 떠나지 낳죠. 아주머니의 삶은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돼요. 가끔은
아주머니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저녁에도 우리 집에 있어줬으면 할 때가 있어요. p.94
아를레트 뷔장 아주머니는 칼리의 엄마도 아니며, 엄마를
대신할 수도 없는데 칼리는 아주머니가 옆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랜다.
그 눈물은 나를 끌고 가 말을 전부
빼앗아버렸어요. 그래서 작은 위로의 말 한디 입 밖에 낼 수 없었죠. 그 말들은 더이상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p.129
엄마가 떠나신 직후에 전학 온 급우인 절친한 친구가 된
알렉. 그가 어느 날 오래 키웠던 개가 죽어 엄마의 부재로 고통을 호소하는 칼리처럼 알렉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아픔을 호소 한다.
그런 알렉에게 칼리의 존재는 어떤 위로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어린 칼리는 안다. 그렇지만 지금 알렉에게 그저 곁에 있어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칼리, 칼리에게 아를레트 뷔장 아주머니는 동일한 자리에 서 있는 것.
몇달 전, 혼자 보았던 [프리다의 그해 여름]이라는 영화와
내용이 겹쳐 놀랐다. 프리다도 여섯 살에 유일했던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경험 한다. 외삼촌 집에서 생활하게 된 프리다는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여섯 살의 그 상실의 시간을 살아 내고 있다. 누군가 그의 상실의 깊이를, 응어리를 조금만 감지한다 해도 고마울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에 살아갈 남은 시간 동안 앞으로 다가올 이별을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닫지 않기를 바래 본다. 어차피 인생은
죽음으로 끝을 맺어야 하고 나 역시 내 자리를 내어주고, 누군가의 곁을 떠나가야 하므로..
from. 오렌지 자몽
|
|
◆리뷰/서평내용 : ->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 브루노가 느끼는 상실의 슬픔, 사랑에 대한 갈망을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문체로 담아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창문 뒤에 숨어 몰래 장례 행렬을 지켜보는 6살 아이의 그 심리가 어땠을지 감히 상상이 안되네요. 그렇게 읽기 시작한 소설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잔잔하게 한 편의 시와 같지만 힘있는 작가의 표현력에 내가 브루노가 된 것처럼 마음이 아파오고 무거워졌어요. 브루노는 오직 알렉만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데 여름 방학 아버지가 한 달 동안 여름 캠프에 보내버려요. 알렉만이 자신을 치유해주는데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알렉을 잃게 될까 두려움을 느끼는 소년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어요. 부당함을 표현하게 위해 무언의 시위를 하는 브루노의 행동들이 안타까웠네요. 몇몇 에피소드들이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아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만 고정관념을 버리고 작품을 대하면 단지 상실의 고통과 사람에 대한 갈망을 조금 충격적으로 묘사했을 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브루노는 자신이 겪은 상처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충실하고 순수하게 슬퍼하고, 분노해요. 저 또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불문율처럼 금기가 되었는데 그 당시 어린 저는 어른들의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자라면서 슬픔을 공유하고 상처를 더듬는 과정을 겪으니 치유가 되더라고요. 브루노도 환부를 더듬는 과정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아닐까?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