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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침에 읽은 트위터 한 줄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다" 표지에 씌여있는 한 줄의 이 글은 바로 저희 집 큰 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제 마음이기도 하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고 관련 사항들이 줄줄이 뜨면 그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카피해서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과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정말 못마땅한 모습이에요. 요즘엔 손에 들고 다니는 각종 기기들이 자신의 지적 수준을 말해 주기라도 하듯 아직 일반폰을 사용하는 저를 비웃으며 "엄마는 스마트 하지 않아~" 하는 중의적인 표현까지 하더라구요. 웃기고 있네!
진정한 지식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저는 진정한 지식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독일 유명 시사주간지 <슈피겔> 16인의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지식과 교양이라는 말이 제 귀를 솔깃하게 했답니다. 정치, 경제, 역사, 철학, 과학, 일상 등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진정한 지식! 호기심과 기대를 한아름 안고 읽어내려 갔습니다.
3장 흥미로운 지식을 찾아서 중 <지식 오류의 역사는 오늘 날에도 계속된다>의 제가 본문 중 가장 인상적이고 재밌게 읽었던 부분인데요, 읽으면서 어이없는 일에 웃음도 나왔고, 아!! 그런 뜻이 있엇구나 하며 새로운 사실에 놀라기도 했답니다. 지식 오류가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아 손해본 사람이 없는 것도 있지만. 인류사에 커다란 커다란 영향을 끼친것도 있어서 참 흥미로웠네요. 일반적으로 시금치는 철분함량이 높다고 주부들은 가족들을 위해 늘 '철분'을 강조하며 먹기 싫어하는데도 억지로 먹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스위스 한 생리학자가 시금치의 철분함량을 잘못 발표한거였다고 하네요.ㅎㅎ코코아 가루보다 낮은 함유율을 가진 시금치~ 그렇지만 뭐 시금치 먹어서 손해볼거 없지만 어쨌든 오류라는 사실.
현재 우리는 중세에는 지구가 평평한 접시같다고, 네모난 상자 같다고 생각했다고 알고 있지요.하지만 라인 하르트크뤼거 교수는 중세적 세계관은 어불성설이라고 하네요. 15년간 연구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2천년 전부터 과학자들과 선원들은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수는 "13세기에 지구가 접시 모양이라고 믿었다는 것은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한 계몽주의가 꾸면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이후 지구가 평평하다는 오류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거라네요.
구글이나 위키피디아 등의 검색엔진에서 손가락으로 간단히 짧은 시간동안 검색하고 그것이 마치 진리라고 믿고 인용하지만 그 진리들은 마치 화폐처럼 사라졌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도, 때론 폐기처분되기도 한다는 설명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었던 사실이 미래에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일수도 있는 거지요.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얻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지식에 이르는 올바른 길이 어떤 것인지 알쏭달쏭합니다.
하지만 딱 한가지 느껴지는게 있습니다.누가 그랬다더라~하는 카더라 통신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검색으로 얼기설기 짜맞춰서 마치 자기가 다 조사하고 쓴 글인듯 포장하는 것은 그 말로가 눈에 뻔합니다. 쭉정이요 텅빈 캉통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겠지요. 단편적인 사실 하나라도 자신이 직접 자료를 찾아 글을 읽고 자기 것으로 소화를 한 정보여야만 진정한 지식이 된다는 것, 여과하지 않고 연계하지 않고, 이용하지 않고,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나에게 지식은 요원할 겁니다. 뉴스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면해야겠기에 열심히 지식을 쌓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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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것이 진리인가>라는 책을 꽤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사실 오늘날처럼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올바른 것들은 어떤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인지를 구분해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의 표지에서도 태블릿 pc를 손에 들고 있지만 그 중 어떤 것들이 진정한 지식인지 고뇌하는 학자의 표정을 살펴볼 수 있다. 현대인들도 다 이와 같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과거에 비해 인터넷이란 도구를 이용해 지식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지식을 선별해 내는 능력이 더 요구되어지는 것 같다. 무조건적으로 인터넷에서 본 것들을 지식으로 취급해버리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책은 흥미롭다. 지식 자체에 대한 탐구를 볼 수 있는 것 같아 다소 어렵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지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이지만 지식 측면에서 살펴보니 새롭고 다소 어렵기도 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들 중 다소 어렵거나 생소한 내용이 나오는데 옆에 상세하게 따로 설명해 놓아서 지식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지식의 양은 끝도 없구나를 다시 한 번 느낀 순간이다. 처음들어 보는 내용들이 어찌나 많던지... 정말 나의 상식을 테스트해보고 싶은 순간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책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상식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있다. 다소 어려운 지식을 앞부분에서 접하고 중간 부분은 언어를 습득하기에 좋은 시기는 언제인지 등등의 현실적이고 어렵지 않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책이 술술 익힌다. 그러다가 맨 처음 어려웠던 시작과는 달리 퀴즈를 통해서 지식이란 꼭 어렵고 딱딱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똑똑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좀 더 현대사회에서는 똑똑하고 지혜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많은 지식을 지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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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수첩에 여러 권의 책을 메모해두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꽤 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인터넷 원숭이들의 세상>... 책의 장점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다음의 또 다른 책을 읽게 하는 힘, 또 다른 지식에 대한 탐구심을 자극하는 힘.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매일 듣고 보는 단편적인 정보들로써 우리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읽고 체험하고 그것을 연결시키는 그 모든 것들이 비로소 지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출판평론가분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분이 질문을 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냐고. 그분 말씀이, 어느 한 책을 읽으면 다음에는 또 그 분야의 책을 읽으라고, 그리고 다음에도 또 그 분야의 책을 읽으라고 말이다. 그러면 어느샌가 그 분야를 섭렵하게 되고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넓어질 거라는 것이다. 그때 그 말을 듣고 크게 공감한 기억이 있다. 이 책 역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는 그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고 내가 지금 제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연계되지 않은 흩어진 정보를 가지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책 표지에 “인터넷과 SNS의 시대,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과 교양”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지식과 교양은 인터넷과 SNS를 끊는 순간, 시작되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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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과정, 흔히 우리가 지식이라 불리는 사고의 축적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우린 지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주변에 지식 아닌 것이 없고 지식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또한 매일 새로운 지식이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와 지식에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해소한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떤 효용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지식은 개인의 삶의 철학이 반영되고 서로 간에 충분한 공유와 교감을 느낄 수 있어야한다. 지식은 무조건적인 정보의 합체가 아니다. 지식엔 내면화과정이 필연적이다. 지식은 삶의 궁극적인 문제에 질문을 던져야하고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우린 지식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지식에 대한 편협한 생각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면 너와 내가 다르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물건은 무엇일까? 혹 네이버 지식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하는가? 인터넷은 마치 만물상자 같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지만 이를 지식이라 부르기엔 뭔가 부족하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존재하지만 어떤 것이 자신에 적합할지 감을 잡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를 지식이라 사용하는 네티즌들의 지식향연이다. 그들에게 지식은 복사하거나 붙이는 대상일 뿐이다. 지식에 필연적인 내면화과정이 생략되었다. 지식은 파편화되고 개체로서의 의미조차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이 과연 진정한 지식인가’ 본 책은 지식이 난무하는 시대에 올바른 지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독일의 대표주간지 슈피겔지의 전문가 16인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통해 지식에 대한 날카로운 혜안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지식은 트위터의 글이 아니며 페이스북의 트윗이 아니다. 지식은 사회의 지표이자 문화의 정수로 그 사회가 존재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린 이러한 지식이 어떻게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진정한 지식에 대한 깊은 고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를 구분 짓는 두 가지의 특징을 꼽으라면 창의력과 상상력일 것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다원화의 중심이다. 지식에 지식을 더한 새로운 지식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추구한다. 인간의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도 이러한 지식을 적절히 활용한 대가다. 그런데 우린 어느 순간 지식의 일방통행을 강요하고 있다. 지식이 한곳으로만 쏠린다면 지식은 더 이상의 효용가치를 잃어버린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도 지식의 양보다 질이다. 과거 어느 시기보다 양적인 팽창이 늘어났듯이 질적인 성장역시 중요하다.
그들은 질적인 성장이 지식의 보편화를 이룰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지식의 보편화가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선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지식을 수학적 공식과 같이 보편화한다면 경계설정에 대한 오류가 줄어들까? 지식이 어떤 방향을 추구하든 지식은 지식으로서의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한 생각이 지식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지식이 갖는 본연의 모습은 관념에 대한 질문이다. 사고의 전환, 발상의 전환, 지식은 우리들이 가진 사고의 틀에 유연성을 부가한다. 본 책은 지식의 역사로부터 미래를 위한 기초적인 지식까지 지식의 모든 범주를 다룬다. 지식은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다. 전문가들이 전하는 지식의 향연엔 지식인으로서 인간이 바라는 지식의 미래를 만날 수 있다. 지식은 역사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지식을 추구한다. 지식의 원천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지식은 인류를 위한 최고의 수단이자 가치로 세상을 이해하는 필연적인 신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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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화원장 크라우스 디터 레만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지식의 전자화는 축복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의 생산과 보급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는 지식의 전달력을 강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확한 표현이다. 예전에는 지식이란 특정 계층에게만 속하는 것이었고 이후 활자와 인쇄술의 발달로 보편적 지식이 확대됐지만 여전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따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즉각적으로 원하는 정보들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얻어지는 정보의 지속성과 신뢰성이다. 여과되고, 연계되고, 이용되고, 발전되어야 비로서 지식이 될 수 있다! 책의 표지에는 "당신이 아침에 읽은 트위터 한 줄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다"란 문장이 적혀있다. SNS를 통해 얻은 정보들을 지식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말이 낯설게 다가왔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현재 우리 생활 속 정보들은 피상적인 정보에 머무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술과 네트웍의 발달은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모니터를 통해 눈으로만 읽혀지는 정보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성은 있다. 책은 독일
유명 시사주간지 <슈피겔>지의 16인의 전문가들이 '나누어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배움, 지식을 향한 길.', '흥미로운 지식을 찾아서'라는 주제하에
정치, 경제,
역사, 철학, 과학, 일상 속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지식의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진정한
지식이란 무엇인지에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식에 대한 정의변화부터 지식의 내면화
과정, 아이들의 정서함양과 외국어를 배우는 적절한 시기나 방법, 서번트 천재와 같이 다양한 예시들이 소개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의 오류에 대한 지적도 흥미있다. 사용하기 불편하게 제작된 사물에도 일단 사용방법에 익숙해지면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듯이 한번 주입된 지식 역시 그것이 오류라 판명이 나더라도 쉽게 고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어릴적 뽀빠이 만화를 보며 먹기 싫은 시금치를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있는 데 시금치에 든 철분의 함량이 아몬드보다도 낫다니...이런 실망스러움이 있나. ^^ 그외에도 중세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오류인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믿던 이야기들, 근거없는 의료지식으로 오히려 환자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든 잘못된 의료지식들을 통해 우리가 흔히 지식인들이라고 부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지식의 오류가 많았음은 눈여겨 보게 된다.
진정한 지식이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앞서 보여주는 지시의 오류는 지식이란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여과와 검증의 과증을 거치지 않으면
이내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인터넷과 SNS를 끊고 자신만의 내면화과정을 거쳐볼 것을 제안한다. 물론 너무나 익숙해진
인터넷과 쉽사리 이별 할 수 는 없는 일이지만 넘쳐나는 정보들을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구분해내고 사유화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식의 다양성 뿐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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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생기며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것들을 좀 더 쉽게 기록하여 남길 수 있었고, 그 후 금속활자라는 인쇄술이 생기면서 지식의 보편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과 SNS의 시대이다. 쉽게 정보와 사진과 온갖 미디어를 인터넷에 올리고 공유하는 그런 시대지만..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부르지.. 지식의 바다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정보와 지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고.. 이 책은 지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지식을 습득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거기에 대한 답을 나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여전히 지식에 갈증을 느낀다."
책에 인용된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의 말인데.. 인터넷과 SNS의 시대에 사람들은 점점 머리속에 지식을 쌓고 사고하는 것보다는 검색이라는 쉬운 도구를 사용하여 정보를 얻고는 한다. 책 말미에 등장하는 정치,경제,역사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살펴보는 나의 교양과 지식을 풀면서 모르는 문제를 만날때마다 검색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특히 많은 분량의 문제는 아니였지만 분야가 나뉘어져 있어서 내 지식이 생각보다 편협한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검색을 통해 얻는 정보로 답안을 다 채울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은 나의 지식이 아님이 분명하다. 나 역시 박학한 무지에 빠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게 되는 집단지능.. 특히 구글등의 검색사이트에서는 다수가 본 정보라던지 많은 추천을 받은 정보가 먼저 노출되기 때문에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얻게 된다. 그래서 집단지능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사람들의 사고가 획일화 되고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기까지의 수많은 연구와 논란이 사라질수도 있다는 것이.. 그래서 모두가 함께 오류를 범할수도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물론 당장 인터넷을 끊을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검색을 함에 있어서도 먼저 노출되는 답을 보고 '이거야'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글을 찾아보기 위해 노력하고 사고하는 과정속에서 진정한 지식을 얻을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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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은 광고가 거의 없는 구글을 자주 이용한다. 검색된 단어에 대해 2, 3 단계만 더 들어가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구글 검색은 전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특정한 지역에 독감에 대한 검색이 많으면, 독감지도를 그릴 수 있다. 중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지면, 폭우지도도 만들 수 있다. 구글은 21세기 빅브러더다. 이러한 구글검색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우선 구글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것을 보여준다. 구글의 비즈니스 모델이 광고인 만큼 광고주의 검색어를 우선 노출시킨다. 따라서, 구글은 진짜 중요한 정보를 검색하는덴 한계가 있는 검색엔진이다. 구글은 ‘진실되거나 신뢰할 수 있는 답’이 아니라 ‘대중적인 답’을 준다. 이 책은 독일의 슈피길지의 전문가 16인이 SNS시대 지식에 대해 얘기한 글이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믿었던 정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매일매일 자신과 모든 사물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지식도 그러해야 한다. 관습대로 인간의 뇌를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살지 말고, 항상 생각해야 한다. 검색엔진을 통해 수집한 것은 지식과 아무 관련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넘쳐나는 정보를 여과, 축출, 정제, 체계화, 평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보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보가 여과과정을 거쳐 서로 연계되고, 융합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기억력 훈련’과 ‘지구력 향상’을 추천한다. 기억력은 두뇌의 부단한 연습으로 지구력은 오래 달리기, 걷기, 등산 등 체력을 통해 향상할 수 있다. 운동과 뇌의 관계는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세상에 떠도는 정보의 홍수속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으면 알 수 있을까? 무엇이 진정한 지식인지, 지혜의 판단기준이 무엇인지, 행복한 삶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고, 두뇌를 말랑말랑하게 주무를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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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에서는 통합진보당의 파국행태에 대한 보도가 끊이질 않는다. 어제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집중보도를 하면서 삼십년이 넘는 사상논쟁, NL과 PD가 나오고 보도기자의 입에서는 주사파라는 말까지 나온다. 다른때였다면 무심코 뉴스를 듣고 말았을텐데 갑자기 뉴스기사에 대한 관심이 쏠린 이유는 '무엇이 과연 진정한 지식인가'를 읽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뉴스에 사용되는 어휘나 문장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 뉴스를 이해할 만큼 시청자들의 정치적 지식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개념과 인과관계에 대한 일반 시청자들의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150) 가끔 뉴스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기사검색을 하고 그와 관련된 이전의 기사들을 찾아봐야할때가 있다. 나 역시 정치적 지식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본 개념적인 지식뿐 아니라 뉴스로 전해지는 기사의 핵심과 사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무엇이 과연 진정한 지식인가,라는 물음은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기본 개념의 지식을 일컬을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더 깊이있는 시각에 대한 물음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 글을 바로 현실에서 체험하게 될 때 그 말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수밖에 없다. 물론 그러한 체험이 없더라도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곱씹어보게 되고 새롭지는 않지만 '지식'에 대한 개념과 접근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립해보게 해주고 있다. 인터넷 검색은 물론 책도 그렇고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지식조차 후세에 가면 개념이 바뀔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논문'이라는 것 역시 하나의 가설을 시작으로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그 내용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과학은 객관적인가,라는 논쟁에서 짚어볼 수 있는 것처럼 논문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논문저자의 관점을 역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명확한 자료라고 할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무심코 넘겨버리던 '지식'이라는 개념과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인류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과 같이 심각한 오류는 더이상 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에 우리의 자손들은 지금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었던 사실이 어리석은 오류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142) 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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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한 무지'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다. 독일의 신학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지은 《박학한 무지》라는 책의 유명세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표현을 쿠자누스 고유의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박학한 무지'라는 표현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과 더불어 소개되곤 하는데 소크라테스의 말은 이 표현의 두 번째 의미에 해당한다. 원래 의미는 보다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은 박학한 무지를 통해서 신이라는 영원한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의 논리를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박학한 무지'라는 표현은 참된 지식에 목말라하면서도 표면적인 정보에 만족하고 만다는 세 번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간단히 구글 검색과 위키피디아, 네이버 지식으로 대변되는 사이버 세계에서 '박학한 무지'는 이제 풍자와 비판의 색채를 띄게 된다. 집단지능이니 떼 지능이니, 이런 말들이 소셜네트워크에 중독된 이른바 M세대의 '박학한 무지'를 대신하는 표현이 아닐까? 가령 일본의 대표적인 경영 구루인 오마에 겐이치가 집단지능론에 대항하여 '지식의 쇠퇴'라는 논리를 주장하는 이유도 '박학한 무지'의 세 번째 의미와 상통한다. 문화엘리트들은 이를 혐오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유럽의 문화전문가들에게 혐오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서슴치 않고 정치적으로 세뇌된 소동, 세계관을 자극시키지도 못하고 단순하고 오락적인 선전효과만 있는 의식산업의 일반적 틀을 창조적으로 뛰어넘지 못하는 모든 형태와 양식이라고 답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의미, 진부함, 허영, 평범함, 선전적인 것, 일차원적인 것, 폭력적인 설교, 사고의 부자유다."(194쪽)
그럼 무엇이 과연 진정한 지식인가? 누구나 참된 지식을 원하지 인터넷에서 떠도는 사이비 정보나 거짓된 지식을 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일단 인류의 지식의 역사를 대강 훑어보게 되면 보편적 지식의 확립 과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지식 오류의 순환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된다. 가령 지구가 평평하다는 오류, 시금치에 철분이 많이 들어있다는 뽀빠이식 오류, 여성이 열등하다는 오류, 골상학의 오류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오류가 보편적인 지식으로 간주되었던 적이 있다.
'사실'과 '진리'를 구별하고 심지어 '진리'와 '진실'을 구분하는 학자도 있는 마당에, '정보'와 '지식'의 구별은 보다 더 상식적인 차원에 속하는 논의가 아닐 수 없다. 일단 정보는 원자재인 '날것'에 불과할 뿐이다. 반면에 지식은 정보를 맥락에 맞추어 정리하고 상황에 맞게 이해하여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응용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이어령 선생의 'DIKW모델'을 강조하고 싶다. 다름 아니라 주어진 데이터(Data)를 한 군데에 모아 정보(Information)를 얻고 그 정보에서 다시 지식(Knowledge)을 쌓아 삶의 지혜(Wisdom)로 업그레이드해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이나 인터넷은 정보의 집합소이지 지식의 보고라고는 말할 수 없다. 비록 도서관이 모든 지식을 한 곳에 모은다는 인류의 원시적인 꿈과 맞닿아 있지만 말이다. 오늘날 위키피디아나 네이버 백과도 여전히 정보의 집합소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정보나 교양이 아니라 실천적인 지식인 것이다. 현재 독일문화원 원장으로 재직중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클라우스 디터 레만은 오늘날 필요한 지식은 보편적 인류지식이나 일반교양이 아니라 다름 아닌 '열정을 유발시키는 지식'이라고 강조한다.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지식이 바로 실천적 지혜의 다른 표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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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과연 진정한 지식인가
과거에 지식과 지식에 대한 탐구는 있는자들의 전유물이자 권력이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책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 문맹률은 현저히 낮아졌고 지식에대해서 알고자 하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너무나 흔하게 널려있어 지식이라는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른다 싶으면 검색으로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찾고 알아낸 것들을, 내가 정말로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 그에앞서 검색된 것들이 참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진정한 지식이 뭘까? 정말 철학적인 질문이다. 책에서 예로든 구글검색결과는 검색자가 원하는 정보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정보가 얼마나 보편화되었는지를 기반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없이 검색결과만을 받아 들인다면, 보편화된 정보(나는 모르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것)에 편입됨을 뜻한다. 이렇게 원하는 것들만 보여주는 것은 정보의 교환,토론을 통한 확장가능성이 배제되어 지식이라는 틀을 축소시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검색결과에는 지식도 있고 광고도 있다, 그리고 그 지식에는 진정한지식도 있고 오류도 있다. 안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며 자신의 지식을 의심했던 과거의 철학자들 처럼 이제는 일반인들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소 난잡하게 나열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책에는 우리가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서 보다 더 탐구하길 바라며, 우리가 알고있는 것들이 오류일 가능성도 열어놓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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